연중 제9주간 목요일
마르코 12,28ㄱㄷ-34
최고의 계명은 하느님처럼 사랑하며 사는 것
오늘 강론은 마더 데레사의 한 일화로 시작할까 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분주하게 오전을 보냈던 마더 데레사 성녀는
잠시 고요한 곳에서 기도하며 주님의 안에서 휴식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마침 지나가던 한 청년이 마더 데레사의 평화로운 기도 모습을 보고
마더 데레사에게 다가 갔습니다.
그리고 너무나도 간절하고 진지한 모습으로 마더 데레사에게 묻습니다.
“저도 당신처럼 기도를 잘하고 싶습니다.
기도를 잘할 수 있는 비법을 좀 가르쳐 주십시오?“
마더 데레사 성녀는 그 사람을 찬찬히 바라보며 물었습니다.
“그래 당신은 기도를 잘하기 위해 무슨 노력을 했었습니까?
그러자 그 사람이 자신있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지난 몇 년동안 전 세계를 돌며 기도로 유명하다는 사람은 다 만나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로부터 기도하는 방법을 자세히 들었습니다.
그 내용이 너무나도 많고 다양해서 아마도 책으로 쓰면 여러 권은 될 것입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모아놓은 온갖 기도방법을 펼쳐 자랑하며
더 새로운 방법이 있는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마더 데레사는 그 사람에게 조용히 말했습니다.
“제가 정말로 기도를 잘 할 수 있는 비법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기도를 잘할 수 있는 유일한 비법은 바로 기도하면 됩니다.“
그리고 마더 데레사는 다시 조용히 기도 속으로 빠져 들었습니다.
너무나도 단순한 이 대답에 이 청년은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한 가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기도를 잘 하는 방법을 찾아 수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정작 자신이 기도했던 시간, 자신의 기도는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예화를 들으면서 거창한 청년의 질문에 비해 마더 데레사의 대답은
너무나도 단순하다는 사실에 웃음도 나오지만
그 단순함속에 담긴 핵심을 찌르는 예리함은 놀랍기만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한 율법학자가 예수님께 너무나도 거창한 질문을 합니다.
“선생님!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뭔가 거창한 대답을 기대한 이 질문에 예수님의 대답은 너무나도 단순합니다.
“온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의 이웃을 너의 몸같이 사랑하여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결국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최고의 계명은
하느님처럼 사랑하며 사는 것이고
이런 사랑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바로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와 있는 사람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가 기쁘게 신앙생활을 하는 비결은
단순함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러한 단순함에 내 계산이 끼어들고,
내 욕심이 끼어들 때 우리의 신앙은 복잡해지고
우리의 신앙생활도 무겁고 힘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오늘 하루 주님의 아들 딸로 살면서
사랑하라는 주님의 이 말씀을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말씀을 탁 믿으며 그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주님께 단순한 마음을 청하는 것은 어떨까요?
부산교구 신문갑 비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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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열 프란치스코사베리오 신부
연중 제9주간 목요일
마르코 12,28ㄱㄷ-34
“진정한 힘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사람들에게 힘을 북돋아 주고,
행동하게 자극하며,
어떠한 쇠사슬로도 묶어놓을 수 없습니다.
십자가 위에서도,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젊음의 아름다움도, 누군가의 승인이나 인정도,
돈이나 위신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냥 사랑을 꽃피게 하세요. ……
사랑은 누구도 멈추게 할 수 없습니다.”
전에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교황으로 선출되신 이후
그분의 말씀과 행동은 신선하다는 표현을 넘어 충격적으로 아름답다.
그분에 관한 기사, 매일 설교를 가능하면 인터넷으로 접하려고 노력한다.
살아있는 복음정신과 실천을 그분 안에서 볼 수 있음이 너무 기쁘다.
너무 많은 공감을 하며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
이 보다 더 큰 계명이 없다 하신 복음말씀.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말 그대로 지천인 세상에 살고 있다.
사랑에 대한 해석도 참 다양하다. 시에서도, 노래가사에서도, 소설에서도,
영화에서도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여 노래하고 울고 있다.
우리는 분명 사랑이 없으면
시들다가 이내 죽게 되어있는 존재이다.
하여 늘 사랑에 갈증을 느끼고 있다.
그런데, 늘 의식해야 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사랑을 하더라도 제대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먼저 무엇이 사랑인지에 대해
각자가 올바르게 그 의미를 파악해야만 한다.
무엇을 사랑이라고 하는지,
어떻게 하는 것이 사랑인지를 배우고 체험해야만 한다.
아름답게 산다는 것은 사랑할 줄 안다는 것이다.
글라렛 선교 수도회 김대열 프란치스코사베리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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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순 바오로 신부
연중 제9주간 목요일
마르코 12,28ㄱㄷ-34
우리 신앙인에게는 하느님을 따르는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을 우리는 ‘계명’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십계명이 포함되고, 그 밖에 우리에게 신앙인의 의무로 주어진 것들이 포함됩니다.
많은 계명 가운데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계명을 알려 주십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
우리는 이 계명을 잘 지키며 살아가고 있나요?
“예.”라는 대답이 쉽게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복음 말씀은 계명을 잘 지킬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줍니다.
우리가 참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려면
‘마음, 목숨, 정신 그리고 힘’을 다할 줄 알아야 합니다.
타인의 것이 아닌, 나의 마음, 목숨, 정신과 힘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려면
나의 모든 것을 사용할 줄 아는 열정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하느님을 향한 나 자신의 온전한 몰입입니다.
다음으로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해야 합니다.
이웃을 사랑하려면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처럼 가장 큰 두 가지 계명,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모두 나를 출발점으로 삼습니다.
우리가 이 계명을 잘 지키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자신에게 물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하느님을 향한 열정을 지니고 있으며,
나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가?’
우리는 자신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사랑받기 위하여 태어난 소중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까?
내가 하느님께서 흙먼지로 손수 빚어 만드시고,
숨과 영을 불어넣어 주신 소중한 존재임을 알고 있습니까?
나를 사랑할 줄 모르는데,
나에게 하느님을 향한 열정이 불타오를 수 있을까요?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이웃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출발점,
그것은 바로 하느님의 소중한 자녀인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인천교구 박형순 바오로 신부
-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에서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