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장 사랑을 팔고 사는 중간상인(中間商人)
번쩍!
파앗―! 파라라라라랏―!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난 밤하늘의 조그마한 비사(秘事).
찬란한 꼬리를 끌고 암천(暗天)을 명멸하던 유성이 스스로 자신의
몸을 터뜨려 화려한 불꽃을 수놓았다.
이때 고요한 빛의 적막을 깨고 지극히 행복에 겨운 듯한 옥음이 또
르르 굴러나왔다.
"아……, 대가! 너무…… 아름답지요?"
그 음성에 뒤를 이어 웅후하면서도 낭랑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하하하……! 꼭 난매의 눈빛 같구료……!"
정실은 극히 아름답고 우아하게 꾸며져 있었다.
휘황히 타오르는 용봉 촛대의 커다란 불꽃 아래 길다랗게 그림자를
드리운 두 남녀!
여인은 촉촉이 물기 어린 두 눈과 열정이 어린 두 볼을 붉게 물들이
고 있었고, 사나이는 흔쾌하고도 부드러운 미소를 띤 채 여인을 바라
보고 있었다.
그들은 바로 용소유와 백란지였다.
살랑―.
바람결에 나부끼는 백란지의 검은 머리카락이 용소유의 볼을 간질였
다.
"……."
백란지는 살짝 용소유의 품에 기댄 채 창문 가에 앉아 신비한 밤하늘
을 그윽이 바라보았다.
실로 한 폭의 그림 같은 광경이었다.
'사랑스럽다……!'
용소유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서서히 그의 손이 백란지의 가느다란 허리를 잡아갔다.
하나, 막 그의 손끝이 따스한 그녀의 허리에 닿았을 때, 그녀가 살짝
허리를 뒤틀어 그의 손길을 벗어나는 것이 아닌가?
"……?"
용소유는 문득 놀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밤하늘의 별빛이 모두 거두어져 그녀의 두 눈 속에 담겨져 있었다.
하나, 그녀의 눈빛은 용소유에게 강한 반발과 도전의 뜻을 전해오지
않는가?
'으음 착하기만 한 란지가 왜?'
용소유는 지금 엉뚱한 오해를 하고 있었다.
여인!
그 신비 불가사의한 이름은 아무리 착하다 한들 여인이었다.
백란지도 예외는 아니었다.
문득 그녀가 장미꽃 같은 입술을 열어 또르르 옥음을 토해냈다.
"사형! 도대체 몇 명이에요?"
가시가 돋친 음성이었다.
"몇 명이라니?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오?"
용소유는 얼떨떨할 수밖에 없었다.
제아무리 하늘을 꿰뚫는 지혜를 지닌 그였지만, 그가 영원히 알 수
없는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오묘 불가사의한 여인의 심리였다.
느닷없이 백란지는 섬섬옥수를 바싹 용소유의 코앞에 들이대고 하나
씩 꼽아가기 시작했다.
"사형! 들어봐요!"
"뭘……?"
"흥! 나 말고 말이에요? 강연하, 예소령, 공손화미, 설혜영, 화소연
, 공손수미……, 아휴! 일곱 명이에요! 무려 일곱 명이라고요!"
불빛 아래 우아하기만 한 그녀의 긴 속눈썹 두 개에 쌍심지가 돋았
다.
"일곱?"
그때까지도 용소유는 그녀의 말뜻을 몰라 얼떨떨해 있었다.
하나 목석이 아닌 다음에야 백란지의 두 눈 가득한 것이 질투라는
것을 어찌 눈치 채지 못하랴.
"후후……, 란지! 그녀들이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소?"
"……?"
백란지는 흠칫 놀라며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곧 홱 토라지며 고개를 외면했다.
"아휴! 저 능청스러운 얼굴 좀 봐. 몰라요! 이젠 사형과는 말도 않
겠어요!"
그녀의 하얀 두 뺨에 잔뜩 바람이 물렸다.
"하하…… 란지, 말을 않겠으면 잠이라도 잡시다."
용소유는 무슨 속셈인지 휘적휘적 침상으로 걸어가 누워버렸다.
'어머? 아휴……, 내가 속았지. 사형이 저런 사람일 줄이야……. 가
는 곳마다 씨를 뿌리고…… 흥! 자기가 무슨 사랑의 농부라고……
미워! 정말 미워. 하지만…….'
백란지는 자신의 마음조차 잘 모르겠는지 자꾸 뒤바뀌고 있었다.
한데, 정작 태연한 것은 용소유였다.
"드르렁…… 쿠울…… 쿨……!"
침상에 눕자마자 그는 열심히 코를 고는 것이 아닌가?
"아휴……, 저 능청!"
백란지는 살짝 걸음을 옮겨 용소유가 누운 침상으로 다가갔다.
한데 용소유는 깊은 잠에 빠진 듯 연신 코를 골고 있지 않은가?
사랑은 한순간 인간의 의지를 상실케 한다. 여인은 또한 사랑에 장
님이 되고 만다.
'어머, 정말 잠이 드셨나봐? 하긴 고단하시기도 할 거야…….'
그녀는 살짝 섬섬옥수를 뻗어 비단이불을 끌어올렸다.
순간, 그녀의 허리는 그만 건장한 팔에 감겨 버렸다.
"어멋!"
그녀는 숨죽인 비명을 터뜨렸다.
"후후……, 란지!"
"아이 놓아요, 빨리!"
그런데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그녀는 오히려 백사 같은 긴 팔을 우
람한 용소유의 등판을 껴안는 것이었다.
"아……, 미워요……."
살포시 긴 속눈썹이 감겼다.
자연스럽게 용소유의 손끝이 고결한 백란지의 살결을 성난 노도처럼
휩쓸고 있었다.
꿈같기도 하고 향긋하기도 한 입술의 교차.
용소유의 몸은 깊은 늪 속에 빠져가듯 백란지의 몸을 탐했다.
열기!
뜨거운 열기를 담은 용소유의 손끝이 고결한 백란지의 살결을 성난
노도처럼 휩쓸고 있었다.
반짝!
백란지는 그의 손길이 스치고 지나는 곳마다 숨쉬며 알알이 살아 일
어나는 속살의 새로운 탄생을 느꼈다.
서서히 거추장스러운 허물이 벗겨져 있었다.
사르륵 사락―.
무늬 고운 비단자락이 속삭이듯 스치며 떨어져 내렸다.
아! 둥그스름하게 뻗어내린 날아갈 듯한 어깨의 선과 그 밑에 갸름
하게 흘러내린 선과 그 밑에 급격히 부풀어오른 풍만한 가슴…….
"란지……, 내 사랑은 오직 당신뿐이오……!"
"아아……, 사형! 행복해요……!"
달콤한 비음이 그녀의 입술을 타고 꿈결같이 흘러나왔다.
사랑할 줄 아는 남자와 여자!
그들의 몸은 자연스럽게 활활 타올랐다.
▲
밤(夜).
모든 신비스런 일이 이루어지는 시각이다.
또한 만물이 하루의 피로를 풀고 쉬는 시각이기도 하다.
하나 쉬지 못하는 여심이 있었다.
아니, 여심뿐만이 아니었다.
"우헤헤……, 사형은 좋겠다. 진짜 좋겠는데……."
정실을 둘러싸고 있는 울창한 화원 앞에서 전신을 비비꼬며 수줍은
미소를 띠고 있는 소년이 있었다. 그는 몽혼이었다.
"우히히……, 사형이 장가가는 날은 이 몽혼님께서도 꽃 같은 색시
를 얻어서……. 으이구, 간지러워라……."
빙글빙글―.
몽혼은 그냥 즐거워하고 있었다.
한데 이 시간, 정말 난처한 지경에 이른 사람들이 있었다.
빛의 그림자!
그보다 더 은밀하게 용소유를 호위하고 있는 천궁사신객, 바로 그들
이었다.
운신객 탕마신옹!
그는 평생 처음으로 곤혹스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설소저…… 사실, 노부의 직책으로 보아 궁주님을 경호하는 것이니
만큼에…… 또…… 그러니까……."
운신객은 횡설수설하고 있었다.
그 앞에서 함초롬히 피어난 난화 같은 설혜영이 아주 예쁘게 방글방
글 웃고 서 있었다.
'쩝! 이거 벌써 한 시진 동안 아무 말 없이 웃고만 있으니 안 된다
고 돌아가라고 할 수도 없고……!'
설혜영은 벌써 한 시진 동안 그렇게 운신객을 조르고 있었다.
참으로 끈질긴 여심(女心)이었다.
그 말없는 침묵의 설득은 완고한 운신객을 서서히 침몰시켰다.
설혜영은 영리하고 끈질겼다.
"휴우……, 에라 모르겠다. 설소저, 들어가 보시오!"
마침내 운신객은 두 손 두 발을 다 들고 말았다.
"호호호……, 노선배님 고마워요. 이 은혜는 꼭 갚아 드릴게요!"
처음으로 설혜영이 생긋 웃었다.
그리고는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바람같이 몸을 날려 정실 쪽을 향해
날아갔다.
'ㅉ……! 궁주님은 어쩌다 저렇게 꽃다운 낭자들을 무더기로, 휴우
……, 다른 신객들도 보나마나 나보다 더한 곤경에 처해 있을 것이
다!'
서리가 허옇게 내린 백발을 흔들며 운신객은 안개처럼 숲 속으로 신
형을 감추었다.
무신객 성수신의 진청운.
평생을 죽음과 칼로만 살아온 대기인(大奇人)인 그도 역시 두 송이
야화(野花)에 시달릴 대로 시달리고 있었다.
"진노선배님! 한마디만 하면 되는걸요? 예?"
공손수미!
그녀는 아예 흰 수염을 잡아뜯을 듯이 매달려 애교를 팔팔(?) 날리
고 있었다.
"진 할아버지! 잠깐이면 돼요, 네?"
그녀는 성수신의 장포를 쓸고 털어주면서 향긋한 체향으로 노기인의
뇌를 혼란 속으로 몰고 들어갔다.
"……."
침묵의 유혹꾼(?)은 여기도 있었던 것이다.
공손화미는 말없이 성수신의 눈을 들여다보며 생긋이 웃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이렇게 속삭이고 있었다.
'진 노선배님……, 아시지 않아요? 노선배님께서도 젊은 날이 있으셨
을 것 아니에요? 그저 눈 딱 감으시고 저희들을 보내 주세요. 네?'
이 단계에 걸친 절색의 소녀들의 공략!
그것은 냉정한 성수신의 조차도 견딜 수 없는 무서운(?) 변칙 공격
이었다.
'으이구…… 못살겠다! 궁주님께서도 여난(女難) 때문에 혼 좀 나시
겠구나……!'
성수신의는 드디어 뒤로 나자빠졌다.
"두 소저! 들어가시오."
"어머! 역시 성수신의 선배님은 멋쟁이라니까?"
공손수미는 팔짝 뛰며 꽃입술에 침을 발랐다. 하나, 다음 순간 그녀
의 영롱한 두 눈망울에 뾰족한 가시가 돋았다.
휙!
그녀의 앞을 나를 듯이 달려가는 공손화미를 보았던 것이다.
'어머? 언니가……. 흥, 그렇다고 내가 뒤질 줄 알고……?'
그녀 역시 한 마리 야조처럼 어둠 속을 갈랐다.
"흐이유……, 에라 모르겠다."
무신객 역시 소리 없이 흩어지며 부근의 숲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우신객 창허신도.
평생을 호협과 수도로만 살아온 그도 이날 밤만큼은 난처한 수세에
몰리고 말았다. 왜냐면 화소연이 눈물이 글썽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화낭자……! 오늘만은 어쩔 수가 없소. 정실 주위 일 리(一里) 내
에는 아무도 근접시켜서는 안 된다는 궁주님의……."
하나, 철석간장을 지닌 창허신도 역시 그 이상을 어떻게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이슬 맞은 배꽃처럼 함초롬히 서서 호수같이 그윽한 두 눈에 수정
이슬을 가득 담은 소녀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약해지지 않는다면 악
마나 다름이 없으리라.
"쯧……, 정말 곤란하군……!"
흐르지 않는 눈물.
봉황선자 화소연 역시 총명한 여인이었다.
'가장 진실한 남자일수록 여인의 눈물에는 약한 법이지……!'
아니, 그녀는 벌써 그 경지(?)까지 도달했단 말인가?
그때 눈물이 굴러 떨어졌다. 화사한 두 볼에 길게 흘러내리는 눈물
을 보는 순간 창허신도가 냅다 소리치고 말았다.
"통과! 모르겠다! 나중에 궁주님께 문책을 받든지 말든지…… 무량
수불……!"
비장(?)하게 소리친 창허신도는 다음 순간 아차! 외치고 말았다.
"호호……, 노선배님, 고맙습니다."
휙―!
바람처럼 교구를 날리는 화소연의 음성은 얄미울 정도로 명랑하지
않은가?
"빌어먹을……! 이백 년이 넘도록 살아온 내가 또 속았도다!"
아마도 창허신도는 여인에게 여러 번 속은 경력(?)이 있었는가 싶었
는데……!
숲은 소리 없는 야음에 흠뻑 젖어 있었다.
한데, 아득히 보이는 정실의 깜박거리는 불빛을 말없이 지켜보고 서
있는 늘씬한 교신 하나…….
"휴유……."
나직한 탄식이 돌연 어둠의 적막을 깨뜨렸다.
그 탄식은 실로 사람의 애간장을 녹이는 구슬픈 두견새의 흐느낌이
었다.
강연하의 슬픈 그림자는 버드나무에 처연히 기대어져 있었다.
"아……, 그 날 이후 한 번도 소녀를 부르지 않으시는군요? 너무 하
시지 않은가요? 아무리 당신은 저 하늘이고 소녀는 의지할 곳 없는
이 땅 위의 이름 없는 풀꽃이라지만……, 소유! 한 번의 사랑으로
소녀는 당신을 만족해야만 하나요? 아아……!"
깊고 깊은 유원의 탄식 소리가 살랑거리는 밤바람 속을 떠돌고 있었
다.
"별빛을 바라보며 한 평생 소녀는 혼자 살아야 하는 걸까요? 당신은
…… 너무…… 너무…… 너무……, 흑흑!"
달맞이꽃의 하소연일까?
그녀의 몸은 버드나무에 쓰러지고 말았다. 섬세한 어깨가 가냘프게
흔들거렸다. 그때였다.
"하매……!"
조용하면서도 나직한 음성과 함께 그녀의 어깨를 살짝 짚어오는 손
길이 있었다.
"아……?"
화들짝 놀라며 급히 뒤돌아보는 강연하의 눈 속으로 한 사람의 모습
이 들어왔다.
그를 보는 순간 강연하는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다.
"전주님……!"
그렇다. 교교한 월광을 가슴에 품은 듯 화사한 아름다움이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농염한 미인은 바로 예소령이었다.
하나, 예소령의 두 눈에 떠오르고 있는 것은 짙은 우수로 감추어진
슬픔의 그림자!
꽃잎이 떨어질 듯 그녀의 입술이 열렸다.
"하매……, 나를 그냥 언니라고 불러요. 어차피 하매와 나는 같은
심정을……."
순간 강연하의 몸이 그대로 예소령의 품에 안겨왔다.
"언니! 흐흐흑……!"
"하매, 너무 슬퍼하지 말아요. 그 분은 넓으신 분이야……."
예소령의 눈이 밤하늘을 향했다.
그녀의 눈 속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성좌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들어
왔다.
예소령의 섬섬옥수가 가볍게 강연하의 등을 쓰다듬었다.
"그 분은 하늘이야……! 그리고 우리도 그 넓은 하늘에 조금은 자리
잡고 있을 거야!"
독백!
하지만 그것은 처량하고 쓸쓸한 가을 낙엽이었다.
"아아……."
"헉! 헉……!"
뜨거웠다.
은근한 달빛이 소리 없이 비쳐 들어오는 실내의 침상에 숨가쁘게 얽
힌 두 남녀의 나신(裸身)!
그녀의 몸에 용소유의 손길이 부드럽게 움직였다.
백란지는 잘 조율된 악기였다.
'아……, 이대로 …… 죽어도…… 좋아……!'
가냘픈 비음을 토해내며 그녀는 자신이 아득한 암흑의 나락으로 떨
어져 내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용소유는 사나운 야수였다. 아니, 폭풍 속을 휘젓는 한 조각 돛단배
의 조타수였다.
신비의 여체는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원시의 밀림이었다.
밀림은 지금 한 사나이에 의해 활짝 열려지고 있었다.
사랑의 불꽃이 이글거리며 타올랐다.
환희와 기쁨 속에 하얀 팔이 건장한 사나이의 등을 으스러져라 껴안
고 있었다.
한데, 이 순간 무지무지하게 바쁜 사람이 있었다.
"낭자들이 웬일이시오?"
몽혼은 지금 목에 있는 대로 힘을 주고 있었다.
그 앞에 간지러울 정도로 상냥한 미소를 띠고 있는 네 명의 소녀들.
"호호호……, 몽대협 안녕하세요?"
귀궁쌍미 중의 공손수미가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우히히……, 대협이라? 그것 듣기 좋은 소리군. 한데……? 이대로
통과시켰다가는 사형께 내가 박살이 날 테고…….'
몽혼은 열심히 꿍꿍이속을 굴렸다.
결론은 단 하나.
'혜헤……, 나의 이 소리나는 머리가 박살이 날지언정 통과는 끝(?)
이다.'
몽혼은 곧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험! 안녕하십니다……."
한데, 그가 뒷말을 잇기도 전에 지극히 청아한 향기가 그의 코를 벌
렁거리게 만들었다.
"킁! 킁……! 이건 복숭아 냄새 같은데……?'
그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호호홋! 역시 몽대협답군요. 자, 저희 자매의 성의니까 잡숴 보세
요."
공손화미가 불쑥 내미는 손에는 희디흰 복숭아 세 개가 놓여 있었다
몽혼의 눈이 더욱 커졌다.
"우악? 그건 천년설도……?"
"호호……, 역시 안목이 높으시군요? 그래요. 맞아요. 천년설도예요
."
공손화미는 회심의 미소를 살짝 머금었다.
순간, 귀궁쌍미의 옆에 서있던 화소연과 설혜영의 눈에도 놀람의 빛
이 떠올랐다.
천년설도!
그것은 대륙의 오지 북해(北海)에서 무려 천 년을 묵은 절세영과였
다.
맛은 둘이 먹다가 셋이 죽어도 모르고, 효능은 한 개에 내공이 무려
십 년이나 증가하는 선품(仙品)이었다.
'우히힛……, 꿀꺽……!'
몽혼은 목젖을 크게 꿈틀했다.
'뇌물? 히히……, 그래도 좋다. 우선 잡숫고…… 그 다음에 오리발
을 내밀면 그만이지 뭐.'
참으로 엉큼하고 교활한 몽혼.
한데, 천년설도를 시작으로 화소연과 설혜영도 품 속에서 무엇인가
를 꺼냈다.
"으와! 삼정태을성단(三頂太乙聖丹)!"
몽혼의 눈이 바쁘게 소리를 내며 이쪽저쪽으로 굴렀다.
"끼야호! 요건…… 구전대환령실(九轉大環靈實)!"
그의 입이 함지박만 하게 벌어졌다.
희대의 선약인 삼정태을성단과 구전대환령실 역시 천년설도에 못지
않은 무림의 보물이었다.
'우헤헤헤헤……, 사형은 여복이 만발하고 이 몸은 뇌물복이 삼삼하
니…… 기차게 끗발 날리는구나! 역시 잠을 꽉꽉 눌러참은 보람이
있구나…….'
몽혼은 성큼 받아서 날름 입에 넣었다.
자고로 뇌물(?)을 준 자와 받아먹은 자와는 모종의 거래가 이루어지
는 법!
합의(合意)는 끝났다.
몽혼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소녀들은 속으로 야무지게 결의를 다졌다.
'흥! 일단 약속 장소에 오기만 하면…… 그 분을 결코 다른 계집들
한테 빼앗기지는 않을 테야.'
용소유, 그는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 순간에도 정신없이 바
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정사(情事)!
그것은 뿌듯한 희열과 야릇한 피로를 몰고 왔다.
건장한 가슴에 땀이 젖은 검은 머리카락이 해초처럼 엉키고, 용소유
는 가만히 매끄러운 살갗을 쓰다듬고 있었다.
반짝!
물끄러미 용소유를 바라보는 백란지의 눈에는 환희에 빛나는 정의
물결이 넘칠 듯이 출렁거렸다.
말(言)이 필요 없는 한때였다.
사랑을 확인한 여심은 그저 행복하기만 했다.
한데, 그때였다.
"우히히……, 사형! 소제 몽혼입니다요."
능글맞은 전음이 용소유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용소유는 씨익 웃었다.
"몽혼! 네놈이 중간에서 재미 좀 보았으렷다?"
그의 말에 몽혼은 펄쩍! 놀란 음성이었다.
"아니, 사형은 그 일 중에도…… 에구구, 요 입 방정맞게!"
철썩!
몽혼은 기이한 음향을 터뜨렸다.
"이게 무슨 소리지요……?"
전음이 아닌 느닷없는 소리에 백란지가 깜짝 놀라며 급히 물었다.
"하하…… 아무것도 아니오."
용소유의 손이 그녀의 허리를 부드럽게 휘감았다.
"아이……."
백란지는 야릇한 비음을 흘리며 그의 품으로 무너지듯 안겨왔다.
살짝 걷힌 이불 사이로 드러나는 그 가슴이 용소유의 가슴에 눌려졌
다.
그때 몽혼의 쏜살같은 전음이 빠르게 이어졌다.
"사형! 소제는 단지 전달하는 입장이니만큼 나중에 야단치지 마십시
오."
"후후후……, 녀석! 좋다. 말해 봐라."
"귀궁쌍미 두 낭자는 청려헌에서 뵙잡니다. 또 설혜영 아가씨는 자
신의 방에서 기다리고 있구요? 헤헤……, 화소연 소저는 연못가 숲
속에 있겠다고 했습니다. 아셨죠? 우히힛……, 대형! 왕창 꽃밭입니
다요……."
몽혼의 끝말은 이미 멀리 사라지고 있었다.
"끄응!"
용소유는 자신도 모르게 내심 기묘한 신음을 터뜨렸다.
"아니? 사형! 왜 그러세요?"
급격히 식어가는 용소유의 몸을 느끼며 백란지는 여인만의 기이한
예감이 들었다.
"아… 아니오!"
"아닌 게…… 아닌 것 같은데요?"
백란지의 음성이 뾰족하게 높아졌다.
'어휴……, 큰일났군!'
용소유는 다시금 우악스럽게 그녀를 향했다.
"으음……, 이거…… 놔……."
앙탈하던 백란지의 팔이 스르륵 다시 용소유의 등을 감았다.
풍운아 용소유!
그는 천마대종사 범후천의 말은 아예 잊고 왕창(?) 꽃밭 속에서 헤
매고 있었으니 과연 장차의 일은 어찌 하려는가?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