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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시련을 인내하면서 기쁨을 유지할 수 있습니까?
“나의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여러 가지 시련을 만날 때에 그것을 온전히 기쁘게 여기십시오.”—야고보 1:2.
요점:
1 시련을 겪으면서도 어떻게 기쁨을 유지할 수 있다. (마태복음 5:11 낭독)
2 스데반이 죽고 예루살렘의 제자들이 유대와 사마리아 전역으로 흩어졌으며 가난, 질병, 투옥등으로
시달렸다.
3 여러가지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기쁨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
4 시련은 칼을 만들 때 사용되는 불과 같다.
5 시련을 이길 지혜를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
6 하느님의 말씀은 거울과 같아서 우리에게 부족한 점을 알아내고 그 면에서 발전하는 데 도움이 된다. (야고보 1:23-25
성경을 읽는 것은 거울을 보는 것에 비교된다.
7 하나님의 도움을 의심하는 사람은 “바람에 밀려 출렁이는 바다 물결과 같다.” (야고보 1:6)
8 우리는 연구 조사를 해서 여호와가 하느님이고, 성경이 그분의 말씀이며, 여호와의 증인이 그분의
백성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9 시련을 인내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야고보 5:11)
10 시련을 겪을 때에 아무도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고 있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하느님은 악한 일로 시험을 받으실 수도 없고, 아무도 악한 일로 시험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야고보 1:13)
11 여호와께서는 “변하거나 달라지지 않으신다.” (야고보 1:17)
비평: 인용된 야고보서의 성경 본문에 대한 에드워드 던랩*의 주석은 이러하다.
야고보 1:2 2 Consider it all joy Having given greetings, James proceeds to discuss a vital subject, the proper reaction of Christians to trials. Instead of viewing trials with feelings of self-pity, sadness, depression or fear, Christians are encouraged to regard them as a reason for rejoicing. This does not ignore the fact that trials can be very "grievous." In itself, the affliction gives no reason to feel elated, for it may be very painful. (Heb. 12:11) However, James is looking at the matter of trials from the standpoint of what the final result can be. Hence, while undergoing trial, we should consider the situation all joy, realizing that the experience can be for our good, our lasting happiness. (Matt. 5: 10-12)
이 모든 것을 기쁨으로 생각하라. 야고보는 중요한 주제인 시련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적절한 반응에 대해 토론한다. 자기 연민, 슬픔, 우울, 두려움의 감정으로 시련을 보는 대신,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을 기쁨의 이유로 여기도록 격려한다. 이것은 시련이 매우 "슬픈" 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지 않는다. 고통은 그 자체로 의기양양함을 느낄 이유가 없다. 매우 고통스러울 수 있다. (히 12:11) 그러나 야고보는 최종 결과가 어떻게 될 수 있는가 하는 관점에서 시련의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련을 받는 동안, 그 경험이 우리의 이익, 우리의 영원한 행복을 위한 것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음으로써 온전히 기뻐해야 한다. (마 5:10-12)
시련자체는 고통스럽고 슬플 수 있지만 그 시련을 현장 학습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조만간 그것이 나에게 큰 유익을 주게될 결과에 초점을 맞추라는 뜻이다. 믿음을 이론적으로 많이 준비하여도 현장에서 부딪히지 않으면 결코 온전한 믿음임을 입증할 수 없다. 모든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기회가 주어질 때 성장하는 것이다. 연설을 잘하기 위해서 아무리 준비를 하여도 연설할 실제 기회가 없으면 연설 능력은 발전하지 않는다. 이처럼 시련을 믿음을 단단하게 성장시키고 입증할 기회로 받아들인다면 온전히 기뻐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야고보서 1:6) 그러나 믿음으로 계속 청하고 결코 의심하지 마십시오. 의심하는 사람은 바람에 밀려 출렁이는 바다 물결과 같습니다.
But let him keep on asking in faith, not doubting at all. Our appeal to God for wisdom in connection with trials should be made in faith. It is the kind of faith, trust or confidence that one should have toward a loving father who is deeply interested in the welfare of his children. There should not be even the slightest doubt about our needing wisdom and about God's granting it. The petitioner must have full faith in God and his Son, and in their readiness to provide what is needed. He must have no motive other than the interests of the Christian faith and the purposes of God. His own personal welfare is, of course, tied closely to these things, and such a prayer will be in his own best interests also. (Mark 11:24)
우리가 하나님께 시련과 관련하여 지혜를 달라고 호소하는 것은 믿음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자녀들의 복지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랑하는 아버지를 향해 가져야 할 일종의 믿음, 신뢰 또는 확신감이다. 우리가 지혜를 필요로 하는 것과 하나님이 지혜를 베푸시는 것에 대해 조금이라도 의심해서는 안 된다. 지혜를 구하자는 하나님과 그의 아들을 전적으로 믿어야 하며, 필요한 것을 제공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는 그리스도인 믿음의 유익과 하나님의 목적 외에 다른 어떤 동기부여도 없어야 한다. 물론 그 자신의 개인적 복지는 이런 것들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그러한 기도는 먼저 자신에게 가장 큰 유익이 될 것이다. (막 11:24)
The person who is unsure about his petitions, as to whether God will answer them, is indeed unstable. The uncertainty robs him of his peace of mind and heart. He may at times experience a surge of hope and trust, and then lapse into despair and doubt. He does not wholeheartedly commit all his affairs to Jehovah God. Such a doubter is like a wave of the sea, tossed about in every direction -up and down as well as sideways. Because he lacks firm conviction, he is easily influenced by the pressure of circumstances. (Compare Ephe- sians 4:14.)
하나님께서 그의 청원에 응답하실지 확신이 서지 않는 사람은 참으로 불안하다. 그 불확실성은 그의 마음과 마음의 평화를 앗아간다. 그는 때때로 희망과 신뢰가 급격히 치솟음을 경험하기도 하지만, 곧 절망과 의심으로 빠져들 수 있다. 그는 진심으로 모든 일을 여호와 하나님께 맡기지 않는다. 그런 의심은 바다 물결처럼 상하 좌우로 흔들린다. 그는 확고한 신념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환경의 압박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 (엡 4:14 비교)
바람에 출렁이는 바다 물결과 같다는 것은 바람과 같은 주위 환경에 영향을 너무 쉽게 받아 자신의 믿음이 이리저리
흔들린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어느 방향으로도 진행하지 못하여 분명한 결과를 산출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야고보서 1:13) 시련을 겪을 때에 아무도 “내가 하느님께 시험을 받고 있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하느님은 악한 일로 시험을 받으실 수도 없고, 아무도 악한 일로 시험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When experiencing any kind of affliction or adversity, a person would be wrong in concluding that Jehovah God is trying to induce him to commit sin. If the individuallets something in connection with the trial become a temptation to him-for example, if he turns from resistance to yielding because of some selfish advantage, or because he is seeking a way to avoid facing and enduring the trial-God is not to blame. For God will give strength to endure if the Christian remains steadfast in his own heart. (Phil. 4:13) The divine arrangement, God's way of dealing with his servants, never leads to sin. Whatever God permits to befall us is in no way designed to cause us to transgress or to make wrongdoing look attractive. Jehovah God is holy, pure, clean. He cannot be induced by any kind of evil or any undesirable situation or circumstance to commit wrong. There is no way in which to make wrong things attractive to the Most High, trying him with them.
여호와께서 죄악으로 빠지실 수 없듯이, 또한 그분은 우리를 죄악으로 인도하여 그의 계명을 어기거나 죄의 저항력을 약화하도록 하실 수 없다. 범법행위로 그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 있을 수 있는 곳에 그의 법을 어겨야만 얻을 수 있도록 우리를 곤경에 빠뜨리지 않는다. 비록 시련이 닥치도록 허락하시지만, 악의를 가지고 종들을 시험하지 않으신다. 그는 우리의 유익과 더 나은 것을 얻게 하시며 해로운 것을 주시지 않는다. 그러나 사탄은 우리가 잘못을 범하도록 유혹의 덫을 시련으로 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충실한 그리스도인에게는, 그로 인해 축복이 되도록 하느님은 사탄의 시도를 이용하여 시련을 징계와 완전케 하는 도구로 사용한다.(히 12:7, 11) 유혹의 덫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 아니라 사탄에게서 올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막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 시련을 허락하심으로 충실한 그리스도인에게 축복이 되도록 이용하신다.(적극적 견해)
(야고보서 1:17) 17 모든 좋은 선물과 모든 완전한 선물은 위에서, 하늘의 빛들의 아버지에게서 내려옵니다. 그분은 움직이는 그림자처럼 변하거나 달라지지 않으십니다.
The gifts that humans give do not always turn out to be good for all concerned, and often the motive in giving is not pure; hence, there is imperfection in human gifts. This does not mean that no human· gift is good. In fact, at times gifts from God come by human instrumentality. Jehovah God is the source of anything that is altogether good in every respect. Only perfect gifts come from him. "He himself gives to all persons life and breath and all things." (Acts 17:25) God's giving is invariably pure and promotes the welfare and happiness of humankind. (Acts 14: 17) He furnishes us all things "richly for our enjoyment." (1 Tim. 6:17) Also, God's gifts are complete, flawless. There is nothing lacking in them. BecauseJehovah dwellsin the highest heavens, "every good gift and every perfect present" can be spoken of as coming "from above," that is, from his place of residence. "Every good gift and every perfect present" originates with the Father or the Creator of the "celestial lights"-the sun, the moon and the stars. He speaks of himself as "the Giver of the sun for light by day, the statutes of the moon and the stars for light by night, the One stirring up the sea that its waves may become boisterous, the Onewhose name is Jehovah of armies." (Jer. 31:35) However, he is not just the Maker of the heavenly bodies; he is also the source of spiritual enlightenment. The apostle Paul writes: "For God is he who said: 'Let the light shine out of darkness,' and he has shone on our hearts to illuminate them with the glorious knowledge of God by the face of Christ." (2 Cor. 4:6) In its rising and setting, the sun casts shadows of changinglength and intensity. Dependingonthe positionof the ~arth in its rotation and in its orbit, considerablevariation occurs in the way that the sun's radiant heat and light are distributed. Unlike the sun, the Creator of the heavenly bodies is not subject to changes. There is no variation with him, as when the sun causes a change in shadows by a change in its position in the sky. Only at high noon is the sun at its zenith with reference to the observer. Jehovah God, however, always is at his zenith in providing what is good. We can always rely on him.
인간이 주는 선물이 관련자 모두에게 항상 좋은 것으로 판명되는 것은 아니며, 종종 주는 동기가 순수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의 선물에는 불완전함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선물이 좋은 것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사실, 때때로 하나님의 선물은 인간의 도구로 사용하여 온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모든 면에서 모두 선한 모든 것의 근원이다. 완벽한 선물만이 그에게서 나온다. "그는 친히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호흡과 모든 것을 주신다."(행 17:25)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은 변함없이 순수하며 인류의 복지와 행복을 증진시킨다. (행 14: 17) 그는 모든 것을 "우리의 즐거움을 위해 풍성하게" 제공해 주신다. (딤전 6:17) 또한 하나님의 선물은 완전하고 흠이 없다. 그들은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가장 높은 하늘에 계시는데, "모든 좋은 선물과 모든 완전한 선물"은 "위로부터" 즉, 그의 거하는 곳으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모든 좋은 선물과 모든 완전한 선물"은 태양, 달, 별 등 "천체의 빛"의 아버지 곧 창조주로부터 유래한다. 그는 자신을 "낮에는 태양으로 빛을 주시고, 밤에는 달을, 밤에는 별을 주시는 분으로 언급한다. 또한 "바다를 요동치게 하여 거친 파도를 일으키시는 분, 그 이름이 만군의 여호와이신 분이"라고 말한다. (렘 31:35) 그러나 그는 천체를 만드는 분일 뿐만 아니라 영적 깨달음의 원천이기도 하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어둠 속에서 빛이 비쳐라” 하고 말씀하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의 얼굴을 통해 자신에 관한 영광스러운 지식의 빛으로 우리의 마음을 비추셨습니다.(고후 4:6) 해는 뜨고 지는 가운데, 변화하는 길이와 강렬함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자전 및 궤도에서의 지구의 위치에 따라, 태양의 복사열과 빛이 분포하는 방식에 상당한 변화가 발생한다. 태양과 달리 천체를 창조하신 분은 변하시는 분이 아니다. 태양이 하늘에서의 위치 변화에 의해 그림자에 변화를 일으킬 때와 같은 변화가 그에게는 없다. 정오에만 태양은 관측자를 기준으로 절정에 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항상 선한 것을 베푸시는 정점에 계신다. 우리는 언제든지 그에게 달려가 의지할 수 있다.
(야고보 1:23-25) 만일 어떤 사람이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는다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는 자기를 보지만 떠나가면 자기가 어떠한 사람인지를 금방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자유에 속한 완전한 법을 자세히 살피고 그 안에 머무는 사람은 듣고 잊어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행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는 자기가 하는 일로 행복해질 것입니다.
From his reflected image in the mirror, a man can see all his defects and blemishes. Presumably he looks so as to evaluate his appearance, consider it and correct, if possible, any irregularities his appearance manifests. What he looks like is conveyed to his mind. So, too, by hearing the "word" we can come to see ourselves for what we actually are. A man before a mirror generally does not take long to form an opinion about his appearance. He may see signs of increasing age. Perhaps tension and sleep- less nights have caused bags under his eyes. In some cases, dissipation leaves its marks. When before the mirror, he has a clear view of these things, which should give him concern and make him think seriously of how he has used his life and how he can improve the remaining years. But when he turns away, his interest in what his appearance was quickly fades. He may even prefer to forget some undesirable features. Away from the mirror and occupied with other things, he forgets all about his appearance, including what might be needed to correct it. (Compare 2 Peter 1:9.) It is different with the man who is a doer of the work. He peers into the perfect law. The Greek expression for the verb "peers" denotes 'stooping beside something.' The idea is that of bending forward to look at an object very carefully. (Compare John 20:5,11; 1 Peter 1:12.) The doer of the work does just that. He scrutinizes the perfect law with the desire to do it, seeing himself, his life, in relation thereto. That law, being perfect, is complete, embracing everything that is required of a Christian. It needs no addition of human traditions to fill it out or make up for any lack. Its commandments and principles are a perfect guide to right conduct that will lead on to salvation and God's approval. (Prov. 30:5,6; Ps. 119:105, 140) This law goes along with the freedom enjoyed by God's people. Such freedom is opposite to enslavement to sin and death. The expression "law that belongs to freedom" points to the new covenant, the laws of which are written on hearts. (Jer. 31:33) Unlike the Mosaic law, which condemned the Israelites as sinners deserving of death, the "law that belongs to freedom" leads to life. (Rom. 7:5, 6, 9; 8:2, 4; 2 Cor. 3:6-9) Christians, therefore, are not under a lengthy code of rules and regulations, but are to be guided by God's revealed will. (Gal. 5:1, 13, 14) Hence, they act because of conscience toward God. What they do is from the heart, willingly, not under compulsion because of a code of rules with its pen- alties for violation. Since love is the very foundation of God's law, the Christian's worship is primarily positive, not negative. (Matt. 22:37-40; compare James 2:12.) To persist in the law that belongs to freedom means to do more than examine it. Such a man is different from the man who looks into a mirror and then forgets, losing interest in what the mirror revealed. The Christian 'remains beside' (Kingdom Interlinear Translation) the perfect law, that is, he "persists," continues to scrutinize it with the view of keeping his life in close conformity to it. (Ps. 119:9, 16, 97) There is a need to be absorbed fully with that law, letting it be our guide. Because of applying the "word" in his daily life, the Christian demonstrates that he is not a forgetful hearer-not a person who may listen respectfully but who then fails to act on the information hea'td. He is really putting what he hears to work. As a result, he is happy. The perfect law brings him genuine benefits that make life far more enjoyable. (Ps. 19:7-11; compare 1 Timothy 4:8.) He enjoys the contentment and satisfaction that come from knowing that he is pleasing in Jehovah's sight.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서, 그는 자신의 모든 결점과 흠을 볼 수 있다. 아마도 그는 자신의 외모를 평가하고, 고려하며, 가능한 한 그의 외모가 드러내는 잘못된 부분을 모두 바로잡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생김새가 뇌리에 전해져 온다. 마찬가지로, "말씀"을 들음으로써 우리는 또한 우리가 실제로 어떤 상태인지 자기 자신을 볼 수 있다. 거울 앞에 있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오래 걸리지 않아 자신의 외모를 충분히 관찰할 수 있다. 그의 외모에 나이가 드는 증세가 나타날지도 모른다. 아마도 긴장과 밤에 잠이 부족한 탓으로 그의 눈 밑이 처졌을 수도 있다. 어떤 경우에는, 방탕한 세월이 그 흔적을 남기기도 한다. 거울 앞에 서면 분명히 이런 것들에 대한 시각을 갖게 되는데, 이는 그에게 걱정을 끼치고 그가 어떻게 자신의 삶을 살았는지, 그리고 남은 세월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는지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한다. 하지만 그가 거울에서 돌아서는 순간 그의 외모에 대한 관심은 금세 사라진다. 그는 아마 일부 외모의 바람직하지 않은 특징들을 잊어버리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거울에서 돌아서 다른 것에 몰두하면서, 그는 자신의 외모를 고쳐야 하는데 필요한 것을 포함하여 모든 것을 잊어버린다. (베드로 후서 1:9 비교) 말씀을 행하는 사람은 다르다. 그는 완전한 법을 자세하게 들여다 보고 있다. 동사 "peers"의 그리스어 표현은 '어떤 것 옆에 구부리는 것'을 의미한다. 사물을 매우 주의 깊게 보기 위해 몸을 앞으로 숙이는 것이다. (요한 20: 5, 11; 벧전 1: 12와 비교) 말씀을 행하는 자가 바로 그렇게 하고 있다. 그는 완전한 법을 세밀히 조사하고, 그와 관련하여 자신과 자신의 삶을 살핀다. 그 법이, 완전하기 때문에, 완성된 것이며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수용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것을 채우거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기 위해 인간의 전통을 추가할 필요가 없다. 그 계명과 원칙은 구원과 하나님의 승인으로 이어질 바른 행위의 완벽한 지침이다. (잠 30:5, 6; 시 119: 105, 140) 이 법은 하나님의 백성이 누리는 자유와 조화된다. 그 자유는 죄와 사망의 종과는 반대이다. "자유에 속하는 법"이라는 표현은 새로운 계약을 가리키는데, 그 계약은 마음에 쓰여 있다. (렘 31:33) 이스라엘 자손을 죽음에 처할 만한 죄인으로 저주한 모세 율법과 달리, "자유에 속하는 율법"은 생명에 이르게 한다. (롬 7:5, 6, 9; 8:2, 4; 고후 3:6-9)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장황한 규례와 규정 아래 있지 않고, 하나님의 밝혀진 뜻에 의해 인도 받는다. 이리하여 그들은 하나님을 향한 양심 때문에 행동하게 된다. 그들이 행하는 바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지, 위반에 대한 벌칙이 씌여진 법전 때문에 강요된 것이 아니다. 사랑이 바로 하나님의 율법의 근간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숭배는 주로 부정적이 아니라 긍정적이다. (마 22:37-40; 야고보 2:12 비교) 자유에 속하는 법에 고착한다는 것은 그것을 조사하는 것을 넘어서 행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사람은 거울을 들여다보다가 거울에 드러난 것에 대한 관심을 잊어버리는 사람과 다르다. 그리스도인은 완전한 법의 "옆에 머무른다"(왕국 행간역). 즉 그가 "끈기있게 지속"하며 그의 삶을 그에 가깝게 순응시킨다는 관점에서 계속 면밀히 관찰하고 있다. (119:9, 16, 97) 그 법을 안내자로 삼음으로써 그에 온전히 몰두할 필요가 있다. '말씀'을 매일의 삶에 적용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그가 공손히 듣고는 들은 바에 따라 행하지 못하고 곧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들은 것을 진실로 열심히 행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그는 행복하다. 완전한 법은 그에게 삶을 훨씬 더 즐겁게 만드는 진정한 유익을 가져다 준다. (시편 19: 7- 11; 딤후 4: 8, 비교) 그는 자신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기뻐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데서 오는 만족감을 느끼고 흡족해 한다.
(야고보서 5:11) 보십시오! 우리는 인내한 사람들을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욥의 인내에 관해 들었으며, 여호와께서 주신 결과를 보았습니다. 여호와는 애정이 매우 부드럽고 자비로운 분이십니다.
We call everyone who has persevered in the face of trials, and especially when he has done it with patience, a happy person, one who has Jehovah's blessing. Jesus said: "Happy are you when people reproach you and persecute you and lyingly say every sort of wicked thing against you for my sake. Rejoice and leap for joy, since your reward is great in the heavens; for in that way they persecuted the prophets prior to you." (Matt. 5:11, 12) This fact should comfort those who are in trials, hardships or tribulations, and should strengtl1en them to keep on serving God with patience. If we count such persons happy, we can achieve happiness in the same way. Job is an outstanding example of courageous endurance. All of James' readers had heard of Job or had read the Bible account. Job was not an Israelite, yet he was accepted by the Jews as a faith-building example. The book of Job was recorded, no doubt, to show the reason why God allows his servants to suffer, and also to reveal his care for them. (Job 1:7-22; 2:6-10) After Job had proved his trustworthiness and loyalty under extreme conditions of suffering, God rewarded him in several ways: Job gained a better understanding of God and his purpose. Job was caused to see God's majesty, power and justice, his almightiness and wisdom. (Job 40:6-14; 42:2) Also, God expressed his approval of Job before Job's three reproved companions. He directed these companions that, in order to get into good standing with Him, they would have to have the prayers of Job in their behalf. (Job 42:7, 8) Jehovah restored Job to health and extended his life for 140 years, giving Job 10 children and a double amount of material possessions. (Job 42: 10-17) Moreover, Job's respect and dignity were also restored. God mentioned Job as an outstandingly righteous man in Ezekiel 14:14, 20. He is certainly among the faithful men of old and looked forward to a resurrection. (Job 14:13-15) Though Job lacked full understanding of the reason for his trials, and therefore indulged in some wrong reasoning, he remained loyal to God, steadfastly refusing to deny God or blame him with injustice. (Job 1:21, 22; 2:9, 10) God's up- holding Job in endurance, forgiving Job his shortcomings, and the rich reward to Job at the end of the trial, showed deep appreciation for Job's faithfulness and great compassion and mercy on the part of Jehovah. (Ex. 34:6; Ps. 103:8) Job repented over the erroneous things he said during his dialogue. (Job 42:1-7) Accordingly, Christians should take comfort in the fact that God will do the same for them if they persevere with patience and keep their hearts clean and firmly fixed on Jehovah. We can be sure that he will care for us and bring us to our goal, just as he did with Job and with other faithful men. (Mic. 7: 18, 19)
우리는 시련 앞에서 인내한 모든 사람을, 특히 그가 참을성을 끈기 있게 가지고 인내 했을 때, 행복한 사람, 여호와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부른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들이 나 때문에 여러분을 모욕하고 박해하고 여러분에 대해 거짓으로 온갖 악한 말을 할 때에, 여러분은 행복합니다.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십시오. 하늘에서 여러분의 상이 크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전의 예언자들도 그와 같이 박해를 받았습니다." (마 5:11, 12) 이 사실은 고난과 시련과 고난 또는 환난을 겪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도록 그들을 강화해야 한다. 우리가 그런 사람들을 행복하게 생각한다면, 우리는 같은 방법으로 행복을 얻을 수 있다. 욥은 용기 있는 인내심으로 뛰어난 인물의 예이다. 야고보서의 모든 독자들은 욥에 대해 들어봤거나 성경 욥기를 읽었을 것이다. 욥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었으나, 유대인들에게 믿음을 건축하는 본으로 받아들여졌다. 하나님께서는 틀림없이 그의 종들을 고통받게 하는 이유를 보여주며, 종들을 보살피는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 욥기를 기록하였다. (욥 1:7-22; 2:6-10) 욥이 극한적 고난의 상황에서 신뢰와 충성을 증명한 후, 하나님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에게 상을 주셨다. 욥은 하나님과 그의 목적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욥은 시련을 인내함으로써 하나님의 위엄과 권능과 정의, 그의 강건함과 지혜를 보게 되었다. (욥 40: 6-14; 42: 2) 하나님께서는 책망하는 욥의 세 친구 앞에서 욥을 승인하신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는 이 동료들에게 지시하여,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욥이 그들을 위하여 기도를 해야 한다고 하셨다. (욥 42:7,8) 여호와께서 욥의 건강을 회복시키고, 욥에게 자녀 10명과 재산의 두 배를 주면서, 그의 생명을 140년간 연장하였다. (욥 42:10-17) 게다가, 욥의 자긍심과 품위도 회복되었다. 하나님이 욥을 에스겔 14: 14, 20에서 의인으로 세우셨다. 그는 확실히 옛 충실한 사람 가운데 하나로 손꼽혔으며 부활이 기대되어진다. (욥 14:13-15) 비록 욥은 고난의 이유에 대한 온전한 이해가 부족했고, 따라서 잘못된 추론에 빠져 있었지만, 하나님을 부정하거나 불의한 탓으로 돌리는 것을 완강히 거부하며, 하나님께 충실하였다. (욥 1:21, 22, 2:9, 10) 하나님이 욥에게 인내심을 갖게 하시고, 욥의 단점을 용서하시고, 욥에게 시련의 끝에 풍성한 상을 주신 것은, 여호와의 입장에서 욥의 충실성을 인정하시고 큰 동정심과 자비를 보여주셨다. (출 34: 6; 시 103: 8) (욥 42:1-7) 그리스도인은 참을성 있게 인내하고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여호와께 굳게 고착하면 하나님께서도 그에게 욥과 똑같이 하실 것이라는 사실에 위안을 삼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게서 욥과 다른 충실한 사람들에게 했던 것처럼, 우리를 보살피고 우리의 목표를 이루게 하실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미 7:18, 19)
결론: 믿음과 인내는 상호보완적이다. 인내하게 하는 동기는 그것이 나에게 유익하다는 적극적 견해가 강해야 한다.
아무리 미래에 보상을 받는다고 생각하려 해도 현재 그것이 괴롭고 고통스러우며 슬프다면 인내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므로 먼 미래가 아니라 가까운 장래에 보상이 있을 것을 확신해야 한다. 8에서 인내하는 믿음을 마치 여호와의 조직에 속한 것을 확신하는 것이라는 주장은 애곡된 주장으로 옳지 않다 그것은 진정한 믿음이 아니라 인간적인 것이며 우상 숭배적인 것이다. 우상숭배의 주요한 특징은 "보이는" 것에 의존하고 믿는다는 것이다. 워치타워가 주장하는 "보이는 조직"은 보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특성이 될 수 없으며 우상적인 특징이다. 즉 그들의 주장에는 영감받은 것이 아니라 온갖 인간적인 사고와 주장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유일하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게 의존해야 한다. 오늘의 내용은 야고보서의 주석만으로도 훌륭히 이해될 수 있다.
에드워드 던랩* 은 길르앗 선교학교의 교무주임이었으며 탁월한 강사였다.
그는 후에 야고보서 주석을 집필하였으나 일부 내용이 통치체의 권위를 세우지 못한 관계로
수십만부가 파쇄되었다. 그는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아 거의 70세이 이르러 워치타워 본부에서
제명되어 젊을 때 하던 일인 도배일로 생계를 꾸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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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안녕하세요, 글을 잘 읽었습니다, 마지막 결론 문장에 대해 제 생각을 이야기 해 봅니다, 보이는 조직이 우상숭배라고 하셨는데.. 성서를 보면 보인는것에 절하고 그 것에 기도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여호와의 증인들이 워치타워에 절하고 기도하고 그 조직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자나요 ~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를 따르기는 했지만 모세에게 기도하고 절하진 않았자나요 모세가 바라는 것도 그러한 점이 아니었죠, 물론 모세가 실수를 하기도 했지만 궁국적으로 모세도 워치타워도 보이는 조직이지만 그들이 숭배대상이 아니므로 ..
여호와의 증인들도 여호와께 숭배를 드리기 위해 워치타워를 도구처럼 이용하는 것이지 그 도구자체를 숭배하는 사람은 없기에 문제가 될가요?
성경도 보이는 책이자나요 ~ 성경도 보이는 것이니 의존하면 안된다는 말은 좀 일차원적인 접근 아닌가 생각합니다, 성서도 보이는 조직도 하느님에게 가까이 가기 위한 도구이지 그 도구가 숭배 대상은 아니라는 점이죠, 워치타워도 항상 그러한 점에 강조를 하자나요 ~ 우리는 틀릴 수 있다고 하지만 최대한 참이 무엇인지 찾는 노력은 의심하지 말아 달라는 것
그리고 현제 이 세상에 워치타워 보다 더 활발하게 조직적으로 성경을 즉 여호와를 알리는 조직이 있을가요? 저도 여호와의 증인이고 이 조직이 문제점이 있다는 것은 어느정도 인지 합니다, 하지만 이 조직보다 여호와에 대한 숭배를 나타냄에 있어서 현재 더 나은 조직이 없기 때문입니다 ~ 오늘날 일개의 개인 스스로 터득해서 여호와를 알 방법이 있나요? 없다면 그 일을 가장 적극적으로 하는 곳이 어딘가요? 이 부분이 바로 워치타워의 핵심 아닐가 생각 합니다, 물론 역시 인간으로 이뤄진 조직이니 사건사고 실수 문제가 생기죠~ 모세가 이끌던 무리들 예수가 이끌던 무리들은 문제가 없었나요 ?
@수친구 도구를 사용하다가 실수로 본인이 다쳤다면 그 원인이 설명서대로 도구를 올바로 사용했는데 도구의 하자로 문제가 생겼다면 도구가 시정 할 필요가 있지요 ~ 하지만 보면 대체적으로 본인의 실수가 더 크다는 점이죠 , 설사 온전히 설명서를 잘 따랐지만 도구의 부실함으로 내가 피해를 입었다면 이 부분에서는 증명이 필요하고 판사가 필요하죠 하지만 영적인 생활에 있어서 생기는 문제를 하느님 이외에 누가 함부로 판단 할 수 있겠습니까? 허지만 우리에겐 성경이 있지요 성경도 객관적인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없는 문제라면 그 부분에는 정말 겸손과 자기 희생 정신이 필요하지요 .. 정말 쉽지 않다는거 압니다 , 욥처럼 인내와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지요,하지만 우린 이 세상이 아니라 하느님에게 희망을 둔 사람들이기에 내가 성경자침대로 했다면 모두가 몰라 준다고 뭐가 손해가 되겠습니까 ? 당장은 억울하고 괴롭고 이사람들이 왜이러나 싶겠지만 .. 여호와께서 다 보상 해 주실텐데 말입니다 , 수친구님의 말씀처럼 여호와를 믿고 인내하면 여호와의 보상이 반드시 따를 것이기 때문이죠
이 부분에 먼저 이야기 하겠습니다, 워치타워와하느님을동일시 한다? 어떤 면에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어느정도 이해가 갑니다, 분별력이 필요한 부분인거 같습니다 , 다시 모세를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 모세가 백성을 이끌고 광야생활을 할 때 그 긴 세월동안 세세한 것 하나하나 모두 여호와께서 지시하고 정해 주셨을 까요? 정말 중요한 문제임에도 모세가 개인적인 성향이나 판단이 반영이 되었을 거라 판단 됩니다, 애굽생활이 더 나앗는데 모세따라 광야에서 고생한다고 불평 불만도 많았고 심지어 이탈되어 죄를 짓고 결국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 백성이 수두룩 했죠 , 모세의 잘 못인가요?
워치타워의 인도를 받더라도 결국엔 여호와와 나 즉 1:1관계가 중요하지요 , 앞서 말씀드린것처럼 워치타워는 도구 그 도구가 또 다른 도구도 생산을 해내죠 , 그 도구를 사용 하기 위해 우린 설명서에 명시된 중요한 도구의 사용법을 지켜야 하지요 아니면 그 도구로 인해 다칠 수 있죠 ~ 연결된 문제지만 다르다는 겁니다, 샘터에 가는 것이 목적이지만 샘터에 가기 위해 타야할 자동차와 가이드가 필요하다면 그 차에 탔을 때 지켜야 할 규칙과 가이드의 안내가 필요하죠
@수친구 수친구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관점의 차이 맞습니다 , 모세가 오늘 날의 중앙장로회가 대체 될 수 없는 점에서 모세는 여호와께서 직접 인도 하셨고 물리적인 기적도 부여하셨지요 , 중앙장로회는 사람들이 모여서 선택된 자 들이지 여호와께서 직접 선택한 사람들은 아니지요 ~ 또 워치타워는 나라가 아니지요 ^^ 맞는 말씀 인정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날 성서에서 예수께서 언급하신 전파하고 함께 모이라는 말씀은 오늘날 누가 조직하고 전파해야 할가요? 그 조직이 워치타워가 아니면 어디라는 건가요?
@군쿤 저도 종교자체를 비난만 하던 사람으로서 여호와의 증인의 전파 활동으로 인해 성경을 제대로 공부 하게 되었고 여호와하느님을 알게 되었고 진화론에서 창조론으로 세계관 자체가 바뀌게 되었는데.. 분명한 것은 지난 백년이 넘는 시간동안 여호와의 증인이 한 업적은 분명 하느님께서 기뻐하실 일이 아닐가요? 이러한 부분도 부정 하시는 지요?
@수친구 제가 종교에 관해 아직 많은 경험과 지식이 부족해서 질문들이 좀 시시할 수 도 있겠지만
답변을 일일이 해주심에 감사합니다. ^^ 저는 사실 아는게 별루 없거든요 .. 성경을 좋아하지만
모든 내용이 머릿속에서 정리되어 어떠한 체계적인 지식이 수립이 되지 못했습니다.
수친구님은 탈증인 아니신가요? 한 개인이 홀로 성서를 보고 혼자서 충분히 신앙생활이 가능하다는 말씀인지요? 특히 신약에 보면 조직적으로 밖에 할 수 없는 여러가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의무가 있잖아요, 예를 들면 땅끝까지 전파하는 일 끝이 다가올 수록 계속 더 함께 모이라는 것 적은무리 큰무리.. 이러한 것들은 무리에 속해야만 실행이 가능하고 또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거자나오~
@수친구 사실 조직에서 이런 글이나 사이트 쳐다 보지도 말라고 하는데 .. 도저히 이해 안되는 부분들이 많은데 , 조직내에서 이런 질문들을 쏟아내기엔 괜한 오해와 선입견만 생길거 같아 , 입닫고 있습니다 만 , 저는 사실 문제점이 많다에는 이해가 갑니다~ 성서가록에 문제가 없었던 모임이 있었나요? 불완전체가 모이면 더 불완전해지니까요 , 제가 궁굼한 것은 대안 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로 하느님을 섬기는 것인지 , 성서시대엔 여호와께서 직접 행사를 하셨지만 오늘날 그런 일은 안생기니까
성경만 들고 답을 얻어야 하는데 .. 전문가들마다 해석이 달라서 이 또한 난관입니다 .. 하느님만 믿기엔 교란자가 너무 많아 분별력을 나타내기가 어렵네요 ! 아직 여호와의 증인보다 하느님 섬기기에 ㄷㅓ 나은 조직이나 이해를 못찾겠어요 !
@수친구 아 ..뭔가 느낌이 오네요 (그리스도인 자유를 찾아서) 열심히 공부 해 보고 또 질문 드려도 될까요?
@수친구 아! 봉사 ^^
이 인간들아!
왜 댓글을 삭제하나? 이것은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고 이것도 보호하는 것인가?
니들은 사생활 침해를 하면서 보호한다는 명분을 달잔어
콱! 쥐어박고 싶지만
사랑은 도발하지 않는다는 말씀 때문에 참는다 ^^
빨리 원상 복구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