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길-칼바위 능선에서 童心에 젖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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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 초입에 들어서니 활짝 핀 진달래가 우리를 반겨준다. 완만한 능선 길로 오르니 진달래도 우리를 따라 온다. 진달래 흐드러진 길을 걷는 초로의 세 노인들은 어느새 동심의 세계로 빠져든다. 배고팠던 그 시절 철부지 동무들과 어울려 따먹었던 그 ‘참꽃’이 지천으로 피었다. 산길을 걷는 발걸음이 한결 가볍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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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한 점 없이 화창했던 4월6일 오전10시 중학교 동창생 친구 둘과 경부선 관악 역에서 만났다. 역 앞을 지나는 1번 국도를 건너 산길로 접어들었다. 관악산에서 갈라져 높낮이를 계속하며 안양과 금천까지 내려와 반원형으로 펼쳐진 산줄기들 가운데 삼성산이 있다. 그날 우리들은 그 산줄기들의 능선을 따라 왼쪽방향으로 걸었다. 완만하게 이어지던 산길은 3km쯤 오르니 급경사의 바위 길로 변했다. 하늘로 치솟은 바위절벽이 길을 막아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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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걸어 온 흙길은 졸지에 울퉁불퉁한 바위 길로 변했다. 그리고 앞에는 거의 수직에 가까운 바위절벽이 높이 솟아있었다. 어떻게 넘어가나 걱정이 될 정도였다. 10여년 만에 이 산을 오른다는 한 친구는 가파른 바위 뒤를 간신히 돌아서 올라갔었다고 했다. 다행히 절벽 이래에 튼튼한 나무계단길이 설치돼 있었다. 뿐만 아니라 계단 중간엔 널찍한 전망대까지 설치돼 있었다. 눈 아래 일망무제로 펼쳐지는 안양과 금천시가지, 그리고 서쪽으로 시원하게 벋어나간 고속도로를 바라보니 가슴속이 후련해진다. 다른 등산객에게 부탁해 기념촬영하고 길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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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은 한동안 평탄하게 계속됐다. 능선의 오른쪽 아래엔 안양유원지와 예술공원, 왼쪽 아래엔 경인교육대학 캠퍼스가 보였다. 소나무 가지사이에 빨갛게 핀 진달래가 봄새악시 붉은 뺨처럼 예뻤다. 그렇게 40분쯤 올라가니 이날 산행 중 최고 난코스라 할 복병이 기다리고 있었다. 가파른 절벽인데다 어른 한사람이 겨우 빠져나갈 수 있는 좁은 틈새를 두고 두 바위가 서있다. 이 틈새를 어른 키로 세 길쯤 올라가야 했다. 우리들 중 한 친구는 아예 이 길을 피해 우회로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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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보다 한 발 먼저 왔던 20대 초반의 두 청년이 틈새 아래 서있었다. 이 길을 지나가야된다는 말에 아주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머리가 희끗희끗한 우리가 간다니 그들은 용기를 내어 오르기 시작했다. 역시 젊음은 강했다. 망설이던 처음과는 달리 약간의 시행착오를 겪긴 했지만 그들은 틈새를 타고 올라가 바위절벽 위에 섰다. 그리고 뒤이어 오르는 우리를 오히려 걱정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절벽위에 오르니 비교적 평평한 바위길이 이어진다. 그들은 올해 스물세 살이라고 했다. 우리가 72세라는 말에 감탄을 넘어 무척 놀라는 표정이다. 젊은 자기네들보다 더 건강하게 산행을 하는 모습이 놀랍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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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가니 칼바위 능선에 높이 선 게양대에서 국기가 힘차게 펄럭이고 있었다. 주춧돌 오석(烏石)판에 이 지역 공군전우회에서 1998년4월8일에 세웠다고 기록돼 있었다. 바로 옆 이정표엔 관악역 3.4km라고 표기돼 있다. 산행시작 2시간만이다. 조금 전에 만난 두 청년들에게 부탁해 기념사진을 찍고 걷기 시작했다. 청년들은 우리들에게 ‘조심하시라’는 인사 후 되돌아 내려갔다. 왼쪽 아래 양지쪽 산자락엔 삼막사가 아스라이 보였다. 오른쪽 건너편 저 멀리엔 관악산 주능선위에 기상청 원형 안테나와 방송국 안테나들이 하늘로 솟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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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산길은 날카로운 바위들이 계속되었다. 위험하기도 했지만 조심조심 지나가는 스릴도 있었다. 그 길에 있는 한 바위봉우리는 두 개의 바위가 입맞춤하는 연인들 모습을 닮았다. 그들의 수줍은 입맞춤을 붉게 핀 한 묶음의 진달래가 가려주려는 듯 보였다. 그 지점이 제일 높은 곳인지 앞에는 우람한 안테나 두 개가 하늘을 찌를 듯 높게 서있었다. 거기를 지나니 길은 약간의 오르내림을 반복하긴 했지만 평탄했다. 오늘 우리가 걷는 길은 커다란 말굽자석 모양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3시간 만에 우리들은 말굽자석의 중간지점쯤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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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가 바람을 막아주는 양지쪽 너럭바위에 둘러앉아 준비해 온 음식들로 산상오찬을 즐겼다. 함께 온 두 친구는 음식솜씨가 부인들보다 낫다는 평을 듣는다. 그들이 만들어 온 고기 찜과 샐러드 비슷한 나물과 김밥, 내가 가져간 떡과 사과로 푸짐하고 맛있는 상을 차렸다. 바위가 바람을 막아 준데다 맑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살이 어우러져 따사로운 오찬장이 되었다. 이 멋진 순간을 몇 잔의 막걸리와 소주로 맘껏 즐겼다. 그야말로 세상에 더 부러울 것 없는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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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여에 걸친 오찬을 마치고 말굽자석의 남은 구간을 걷기 시작했다. 길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출발지점을 향하고 있었다. 장군봉, 호압사로 가는 갈림길들을 지나 시계 바늘의 반대방향으로 걸었다. 도중에 있는 물맛 좋은 샘터에서 목도 축이고 물통에도 담았다. 그렇게 한 시간 반쯤 걸으니 오래된 암자가 나타났다. 대웅전 석축기단 앞에 세로로 새운 나무현판에 한글로 ‘조계종 불영암’이라 씌어 있었다. 암자 주변은 삼국시대 신라가 쌓은 호암산성(虎岩山城)이란다. 서쪽 저 멀리 서해 남양만까지 보이는 군사요충지에 지어진 성임을 알 수가 있었다. 암자 옆에 있는 큰 저수지는 신라시대에 군용수로 만든 것을 조선시대에 확장했다는 안내판이 있었다. 길이 22m, 폭 12m, 깊이 1.2m나 되는 큰 못의 이름은 ‘큰 우물’ 혹은 ‘하늘우물’이란 뜻을 가진 ‘한우물’이다. 한우물에서 조금 떨어진 윗 쪽에 우물 한 개가 더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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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영암을 지나니 길은 내리막이다. 온 산을 붉게 물들이며 피어있는 진달래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으며 산길을 내려왔다. 급히 내려오다 보니 산허리를 자르고 지나가는 4차선 강남순환고속도로의 절개지 낭떠러지가 나타났다. 발아래엔 무수한 차량들이 전속력으로 달리는 고속도로다. 발을 헛디딘다면 큰 일 날 곳이다. 절개지 가장자리로 둘러쳐진 철조망을 따라 가파를 경사 길을 곡예 하듯 내려왔다. 진땀을 흘리며 바닥까지 힘겹게 내려와 도로 아래를 지나는 토끼 굴을 통과했다. 관악역 맞은편에 새로 조성된 관광지역의 음식점촌이다. 친구가 미리 알아 둔 추어탕 집에서 산행을 마감했다. 그때가 오후4시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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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걸은 산길은 11.6km, 순수한 산행시간은 3시간22분으로 스마트 폰 앱에 기록됐다. 이날 내가 걸은 걸음 수는 26,600보였다. 뜨끈한 추어탕과 바삭한 미꾸리지 튀김에 두 통의 막걸리로 피로를 풀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우리들은 산을 내려오며 버들가지를 꺾어와 음식점에서 버들피리를 만들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불어 종업원들을 놀라도록 해준 것이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어릴적 시절로 가고픈 마음에서 그랬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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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탄합니다. 특히 칼바위는 사진으로도 아슬아슬하네요.
솔뫼님께서 마음에 힘을 불어넣어주십니다. 감사합니다.
제 졸고가 마음의 힘이 되신다니 감사합니다!
나는 산에 올랐던지가 한참 되었습니다.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설 때의 행복감은 어느 것과도 비교하기가 어렵지요.
마음 같아서는 당장 산으로 가고 싶은데...
기다리겠습니다. 함께 산에 가는 그 날까지!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