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화성은 1796년에 축성된 읍성의 하나이다. 정조가 양주에 있던 사도세자의 능인 영우원(永祐園)을 화성시에 있는 융건릉으로 옮겨 명칭을 현륭원(顯隆園)으로 고쳤으며 능행을 위한 행궁을 화성 안에 건축하였다.
성문은 동서남북에 4개가 있는데 북문이 장안문이고 반대 남쪽이 팔달문이다. 동서에 청룡문과 화서문이 있다. 남북문은 중층문루로서 도성문루에 버금가는 규모와 형태를 갖고 있다. 암문은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적이 알지 못하는 출입구를 내서 사람이나 가축이 통행하고 양식을 나르는 통로이다. 화성에는 모두 5곳에 설치되어 있으며 대개 벽돌을 많이 사용했고 원여장 등의 특수한 장식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암문에는 보통 건물을 세우지 않지만 서남암문에만 예외적으로 포사를 설치했다. 이외에도 수문 2곳, 적대 4곳, 노대 2곳, 공심돈 3곳, 봉돈 1곳, 치성 8곳, 포루 10곳, 장대 2곳, 각루 4곳, 포사3곳 등의 시설이 있다.
연무대(동장대)
장대란 성곽 일대를 한눈에 바라보며 화성에 머물던 장용외영 군사들을 지휘하던 지휘소이다. 화성에는 서장대와 동장대 두 곳이 있다. 동장대는 무예를 수련하는 공간이었기에 연무대(鍊武臺)라고 하였으며, 지형은 높지 않지만 사방이 트여 있고 등성이가 솟아 있어서 화성의 동쪽에서 성 안을 살펴보기에 가장 좋은 곳이다.
연무대 왼쪽으로 올라와 방화수류정쪽으로 걸어가는 화성길 야경이 너무 아름답다.
방화수류정
방화수류정은 1794년(정조 18) 10월 19일 완공되었다. 주변을 감시하고 군사를 지휘하는 지휘소와 주변 자연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정자의 기능을 함께 지니고 있다.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닌다(訪花隨柳)”라는 뜻을 지닌 방화수류정은 독특한 평면과 지붕형태 때문에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은 화성에서 가장 뛰어나며 다른 성곽에서는 볼 수 없는 독창적인 건축물로 평가되고 있다.
북수문(화홍문)
화성을 남북으로 가로질러 흐르는 수원천 위에는 북수문과 남수문 두 개의 수문으로 1794년(정조 18)에 공사를 시작하여 1795년(정조 19)에 완성되었다. 별칭은 화홍문으로 화(華)자는 화성을 의미하고, 홍(虹)자는 무지개를 뜻하며, 장쾌한 물보라가 수문으로 넘쳐나는 모습이 아름다운 곳이다.
북수문에 다리에 세워진 석수다.
장안문
장안문은 화성의 4대문 중 북쪽 문으로 수원화성의 정문이다. 장안이라는 말은 수도를 상징하는 말이자 백성들의 안녕을 의미한다. 장안문은 우진각 지붕(지붕면이 사방으로 경사지게 되어있는 형태)으로 규모가 웅장하다. 성문의 바깥에는 반달모양의 옹성을 쌓았는데 이것은 항아리를 반으로 쪼갠 것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성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북포루
포루(舖樓)는 성곽을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치성 위에 지은 목조건물이며 군사들이 망을 보면서 대기하는 곳이다. 북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 중 하나로1795년(정조 19)에 완공된 포루로 장안문과 화서문의 중간에 위치하여 근처의 북서포루(北西砲樓)와 함께 성벽에 다가오는 적을 공격할 수 있게 하였다.
서북공심돈
공심돈은 성곽 주위와 비상시에 적의 동향을 살피기 위한 망루와 같은 것으로 화성에서
처음 등장하였다.
화서문
화서문은 화성의 4대문 중 서쪽 대문이다. 1795년(정조 19)에 공사를 시작하여 1796년(정조 20)에 마쳤다. 화성 서쪽의 남양만과 서해안 방면으로 연결되는 통로 역할을 하였다.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보물 제403호로 지정되었다. 편액은 초대 화성유수였던 채제공(蔡濟恭)이 썼으며 옹성 안 홍예문 좌측 석벽에는 성문공사를 담당하였던 사람과 책임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서북각루
각루는 성곽의 비교적 높은 위치에 세워져 주변을 감시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설로 비상시 각 방면의 군사지휘소 역할도 하였다. 서북각루는 화성의 4개 각루 중 하나로 숙지산이 마주보이는 자리에서 화서문 일대의 군사를 지휘하기 위해 만들었다.
서포루
서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砲樓) 중 서북각루와 서장대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1796년(정조 20)에 완공되었다.
포루는 성벽의 일부를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치성 위에 3층의 내부를 비워두고 그 안에서 화포공격을 할 수 있도록 만든 시설물이다.
서노대
노대는 성 가운데서 다연발 활인 쇠뇌를 쏘기 위하여 높게 지은 시설로 화성에는 서노대와 동북노대가 두 곳이 있다. 서노대는 팔달산 정상에 위치하여 사방을 볼 수 있으며 정팔각형 평면이며 기와 벽돌로 쌓았다.
화성장대(서노대)
장대란 성곽 일대를 한눈에 바라보며 화성에 주둔했던 장용외영 군사들을 지휘하던 지휘소이다.
화성에는 서장대와 동장대 두 곳이 있다. 서장대는 팔달산 정상에 있으며 ‘화성장대(華城將臺)’란 편액은 정조가 친히 쓴 것으로 1794년(정조 18) 완성되었다. 정조는 1795년(정조 19) 윤2월 12일 현륭원(융릉) 참배를 마치고 서장대에 올라 성을 수비하고 공격하는 주간훈련과 야간훈련을 직접 지휘하였다.
저 멀리 공터 앞 전각이 화성행궁이다.
서암문
암문은 성곽의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적이 알지 못하도록 만든 출입구로 사람이나 가축이
통과하고 군수품을 조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된 문이다. 화성에는 5개의 암문이 설치되어
있으며, 서암문은 자연 지형을 이용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에 가까이 접근하기 전에는 암문이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감춰져 있다.
서포루
서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砲樓) 중 서북각루와 서장대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1796년(정조 20)에 완공되었다.포루는 성벽의 일부를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치성 위에 3층의 내부를 비워두고 그 안에서 화포공격을 할 수 있도록 만든 시설물이다.
서남암문과 서남포사
암문은 성곽의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적이 알지 못하도록 만든 출입구이다. 사람이나 가축이 통과하고 군수품을 조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되었으며 이 문은 용도(甬道: 담을 양쪽으로 쌓아 만든 길)의 출입문이기도 하다.
5개의 암문 중에서 유일하게 포사(舖舍)가 설치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1796년(정조 20)에 홍예가 완성되었다.포사(舖舍)는 성 밖의 위험을 성 안으로 알리는 역할을 하는 시설로 깃발을 휘두르거나 대포를 쏘아 위급신호를 전달하였다.
서남각루
각루는 성곽의 비교적 높은 위치에 세워져 주변을 감시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으며 비상시 각 방면의 군사지휘소 역할을 하는 곳이다. 서남각루는 화성의 4개 각루 중 팔달산 남쪽 능선에 설치한 용도(甬道)의 남쪽 끝에 세워졌다. 1796년(정조 20)완성하였으며, 편액에는 화양루(華陽樓)라고 쓰여져 있는데 ‘화’자는 화성을 뜻하고 ‘양’자는 산의 남쪽을 뜻하는 것이다.
팔달문
팔달문은 화성의 4대문 중 남쪽 문으로 남쪽에서 수원으로 진입하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정조대왕과 당대 국왕들이 현륭원을 가기 위해 이곳을 통과했다고 한다. 1794년(정조 18)에 완공하였다. 팔달문은 모든 곳으로 통한다는 '사통팔달'에서 비롯한 이름이며 축성 당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보물 제402호로 지정되었다. 성문의 바깥에는 반달모양의 옹성을 쌓았는데 이것은 항아리를 반으로 쪼갠 것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성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동남각루
각루는 성곽의 비교적 높은 위치에 세워져 주변을 감시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건물로, 비상시 각 방면의 군사지휘소 역할도 하였다. 동남각루는 화성의 4개 각루 중 성 안팎의 시야가 가장 넓고 남수문 방면의 방어를 위하여 남공심돈과 마주보며 군사를 지휘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봉돈
1796년 6월 17일 완성된 수원 화성 봉돈(烽墩)은 일반적인 봉수대(烽燧臺)가 주변을 잘 살필 수 있는 산 정상에 별도의 시설로 만들어진 것과 달리 화성 성벽에 맞물려 벽돌로 만든 것이 특징이다. 우리나라 성곽 양식에서는 보기 드문 형식으로 마치 예술작품처럼 정교하게 만든 수원화성의 대표시설이다. 평상시 남쪽 첫 번째 화두(火竇: 횃불구멍)에서 횃불이나 연기를 올려 용인 석성산과 흥천대 봉화로 신호를 보낸다. 다른 4개의 횃불구멍은 긴급한 일이 없으면 올리지 않았다.
봉화 신호 체계
봉수(烽燧)는 밤에는 횃불, 낮에는 연기로 전하는 군사신호체계이다.
총 다섯 개의 횃불구멍을 통해 상황을 전달하는데 남쪽 첫 번째 횃불구멍부터
○ 평상시에는 밤낮으로 봉수 1개
○ 적이 국경근처에 나타나면 봉수 2개
○ 국경선에 도달하면 봉수 3개
○ 국경선을 침범하면 봉수 4개
○ 적과 아군 사이에 전투가 벌어지면 봉수 5개를 올렸다.
창룡문
창룡문은 화성의 4대문 중 동쪽 문으로 창룡은 곧 청룡으로 풍수지리상 좌청룡이며 동쪽을 의미한다. 성문을 보호하기 위한 옹성을 반달모양으로 쌓았는데 장안문, 팔달문과 달리 한쪽을 열어놓았다. 옹성 안 홍예문 좌측 석벽에는 공사를 담당하였던 사람과 책임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동북노대
노대는 성 가운데서 다연발 활인 쇠뇌를 쏘기 위하여 높게 지은 것으로 화성에는 서노대와 동북노대 두 곳이 있으며, 창룡문과 동북공심돈의 중간에 동북향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반달 모양의 담장으로 보호하고 있다.
동북공심돈
공심돈은 성곽 주위와 비상시에 적의 동향을 살피기 위한 망루와 같은 것으로 화성에서 처음
등장하였다. 화성에는 서북공심돈·남공심돈·동북공심돈이 있다.
형태는 커다란 둥근 원의 모습으로 화성 성곽내에서 가장 특징이 있는 건물의 하나이다.
동북공심돈 내부는 소라처럼 생긴 나선형의 벽돌 계단을 통해서 꼭대기에 오르게 되어 있어
일명 ‘소라각’이라고도 불린다.
처음 출발했던 연무대다. 수원화성은 매력적인 곳임을 또 한 번 느끼고 간다.
출처 : 수원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