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산책] 세종의 애민정신에서 찾은 정책서민금융
강력한 이자 제한 정책 펼쳐 가난한 백성의 어려움 덜어줘
서민금융진흥원 지원과 비슷
실업 등으로 경제활동 힘들 땐 반드시 서민금융상담 받아보길
세종대왕은 백성에 대한 사랑이 유별났던 임금으로 잘 알려졌다. 백성들이 쉽게 쓰고 익힐 수 있는 한글을 창제한 것은 물론이고 관노비에게 출산휴가도 부여했다. 또 장애가 있는 백성을 채용하고 쌀과 곡식을 주는 등 다양한 복지제도를 시행했다. 그가 펼친 경제정책에서도 애민정신은 오롯이 드러난다. 세종은 흉년이나 자연재해 등으로 백성들이 겪는 어려움을 세심하게 파악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정책을 마련해 실시하도록 했다.
그중 하나가 ‘이자 제한’이었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구휼제도였던 ‘환곡’은 흉년이나 춘궁기에 곡식을 빌려주고 추수기에 이자를 붙여 거둬들이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하지만 빌려준 곡식을 넘어 과도한 이자를 거둬들이는 폐해가 지속적으로 발생했고, 이 때문에 백성들의 삶은 더욱 팍팍해졌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강력한 이자 제한 정책을 펼쳐 백성의 어려움을 덜어주고자 한 세종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세종 14년(1432년) 기록에는 ‘연 10푼을 최고 이율로 정하고 매월 이자는 3푼을 넘을 수 없으며, 비록 시간이 많이 지났다 하더라도 다만 일본일리(一本一利)만 받게 해야 한다’는 방침이 나온다. 즉 이자를 연 10%, 월 3%로 제한하고 이자의 총액이 원금을 넘지 못하도록 규정한 것이다. 이처럼 백성의 어려움을 살펴 해결하려는 모습은 오늘날 서민·취약계층을 지원하는 정책서민금융과 비슷하다.
오늘날에도 정부는 신용과 소득이 낮아 은행 대출을 이용하지 못하는 서민·취약계층을 포용하기 위해 다양한 서민금융지원제도를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 대부업·불법사금융 등 고금리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에게는 서민금융진흥원을 통해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의 정책서민금융상품을 지원한다. 또 성실하게 열심히 살다가 예기치 못한 위기로 대출금 상환을 연체해 전화 독촉 등 가혹한 추심에 시달리는 사람도 돕고 있다.
그간 필자는 직접 현장을 다니면서 서민금융상품과 채무조정지원제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매우 많다는 것을 느꼈다. 전남 목포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에서 만난 한 자영업자는 사업 실패 후 취업과 실직을 반복하면서 빚이 늘어나 오랜 기간 추심에 시달리고 있었다. 대출금 800만원을 17년간 연체하면서 연체이자 등으로 빚이 무려 4000만원 넘게 불어나 정상적인 경제생활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신용회복위원회 채무조정을 통해 대부업 등 고금리 부채를 월 4만3000원씩 8년간 분할 상환할 수 있도록 해 무척 고마워했다.
지난해 8월 갑작스러운 폭우가 내릴 때는 서민금융진흥원과 신용회복위원회 직원들이 수해가 발생한 전북 순창군 유등면 외이마을을 찾아가 금융상담 서비스를 제공했다. 겨울농사를 위해 파종해야 하는데 농작물·농기구 피해를 복구할 비용이 없어 막막해하던 부부와, 집이 물에 잠겨 어려움을 겪는 농민들을 위로하고 햇살론 등 서민금융상품을 지원해 도움을 줄 수 있었다.
만약 이들에게 서민금융지원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은행 대출을 이용하지 못해 대부업과 불법사금융 등 고금리 대출을 받고, 소득이 줄어든 상황에서 연체를 반복하다가 결국 기초생활수급자 등 취약계층이 될 가능성이 크다. 개인은 스스로 재기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무너지고, 국가적으로는 복지비용 상승으로 재정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
뿌리가 얕은 나무는 그렇지 않은 나무보다 태풍 같은 자연재해에 쉽게 쓰러진다. 이러한 시련을 겪은 이후 나무가 다시 일어나 과실을 맺으려면 찢어진 가지를 제때 치료하고 지지대로 튼튼하게 고정해주는 회복의 시간이 필요하다. 서민금융지원을 필요로 하는 이들도 쓰러진 나무와 같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같은 감염병, 실업·사업실패·질병 등의 위기는 살면서 누구나 겪을 수 있지만, 경제적 기반이 약한 서민이 위기를 스스로 극복하고 다시 일어서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신용·소득 등 다양한 이유로 은행 대출이 어렵거나 대출금 연체로 정상적인 경제활동이 힘든 상황이라면 반드시 서민금융상담을 받아보길 바란다.
●이계문 원장은 …
▲서울대학교 정책학 석사 ▲행정고시 34회 ▲주미국대사관 공사참사관 ▲기획재정부 정책기획관·대변인 ▲현 서민금융진흥원장 겸 신용회복위원장
이계문 (서민금융진흥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