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발발과 북한에서의 생활, 김연실
한국전쟁 발발과 북한에서의 생활
무성영화 시대스타 김연실 5편
by한상언Sep 27. 2021
서울 생활이 안정되자 김연실은 동생 문제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 당시 촬영감독으로 유명한 동생 김학성은 이혼해 김연실 가족과 함께 살고 있었다. 부모 형제가 일찍 세상을 떠나 세상에 단둘이 남은 남매였다. 그러다 보니 김연실에게 동생은, 인생의 전부를 헌신하게 만든 삶의 목표였다. 그런 김학성은 조선의 가장 유명한 촬영감독으로 성장했고 비록 이혼은 했지만 가정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연실의 눈에는 언제나 아이처럼 보였고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줘야만 했다.
해방 후 들뜬 분위기 속에서 최세용이라는 사람이 보국문화흥업주식회사를 세워 최금동 원작 시나리오 <노도>를 영화로 만들겠다고 나섰다. 연출은 신경균, 촬영은 김학성이 맡았다. 김연실도 촬영에 참여하기로 했다. 오랜만에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이었다. 남녀 주인공 역은 최운봉과 신인이던 최은희가 캐스팅되었다.
<노도>는 어촌을 배경으로 한 영화였다. 학병을 다녀온 가난한 남자를 부잣집 딸이 자신이 가진 돈으로 서울로 올려 보내 공부시킨다는 이야기였다. 로케이션은 포항 근처 감포에서 이루어졌다. 포항은 예전에 김연실이 <바다와 싸우는 사람들>을 찍은 곳이었다.
감포에서 민박집을 구해 배우들과 스태프의 숙소로 삼았다. 김연실은 최은희와 함께하며 그녀를 동생처럼 챙겼다. 영화 출연이 처음이었던 최은희는 그런 김연실이 고마웠다. 김연실이 최은희의 옆에서 그녀를 살갑게 챙긴 것은 동생 김학성이 최은희를 맘에 들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함께 생활하며 살펴본 최은희는 배우로서도 매력이 있었지만 누구나 탐내 하는 천생 여자였다. 최은희 같은 참한 여자가 동생을 보살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생겼다. 김연실은 최은희를 동생처럼 챙겼고 김학성을 대신해 적극적으로 결혼을 권했다.
<노도>는 <새로운 맹세>로 이름이 바뀌어 개봉되었다. 이즈음 최은희는 나이도 많고 애까지 딸린 김학성과 결혼을 결심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김연실은 결혼식을 서둘렀다. 낙랑에서 있었던 피로연에는 많은 하객들이 참석해 이들 부부를 축하해 주었다. 낙랑의 단골이던 최봉식은 이들 하객들을 데리고 다방 ‘고향’에서 2차 피로연을 열었다. 그 자리에서 김연실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어느 때 보다도 좋았던 한때였다.
결혼 후 중앙신문사의 카메라맨으로 입사한 김학성은 입사 3개월 만에 신문사가 문을 닫게 되면서 직장을 잃었다. 동생 부부가 아무 일도 않고 있는 것이 딱했다. 최은희에게 연기를 다시 해보자고 권했다. 당시 김연실은 중앙극장 사장 김상진의 후원으로 극단 신청년을 만들었다. 김상진은 김연실이 출연했던 <종소리>를 연출했던 인물로 김연실과는 오랜 인연이 있었다.
1947년 말 창단한 신청년은 김연실과 친분이 있던 김복자, 김양춘, 최은희 등 여배우들과 서월영, 박제행, 강계식, 박경주 등 연극무대에서 이름을 떨친 유명 배우들이 함께 했다. 여기에 연출은 박진. 장치는 김정환이 맡았다. 실력 있는 연극인들 다수가 월북하여 한산한 연극계에 큰 활력이었다.
이때 이규환 감독이 김연실에게 영화를 찍자고 제의해 왔다. 제목은 <돌아온 어머니>로 16밀리 영화였다. 이규환과는 <임자 없는 나룻배>에서 함께 한 적 있었다. 단출하게 만들어지는 영화였지만 주인공 역이라 부담이 없지 않았다.
이 영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진통제로 아편을 과다 복용하여 아편중독자가 된 어머니가 아들을 구박하고 절도행각을 벌이다가 끝내 숨을 거두고 혼자 남은 아들은 원양어업에서 돌아온 아버지와 만나게 된다.
완성된 영화도 16밀리 영화이다 보니 큰 기대도 없었고 큰 주목도 받지 못했다. 당시 유행하던 극장 쇼의 프로그램 중 하나로 상영되었다. 주인공 역을 맡아 오버액션이라는 지적을 받을 정도로 연기를 펼친 김연실에 대해 영화평론가 유한철은 “중독 환자라는 특수 연기를 거의 표현하여 극을 이끌고 나갔다”며 그녀의 열연을 칭찬해 주었다.
좌우로 대립하여 시끌벅적하게 싸우던 것이 정부 수립 이후 언제 그랬느냐는 듯 침착해졌다. 아니 분위기가 수상했다. 명동의 분위기도 예전 같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 낙랑에 들러 웃으며 인사 나누던 사람들 중에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사람들이 많았다. 일부는 북으로 갔다고도 했다. 남아있는 사람들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도 심상치 않았다.
1948년 12월 국가보안법이 만들어졌다. 과거 좌익단체에 가입한 전력이 있는 모든 사람들은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하여 사상교화를 받아야 했다. 《경향신문》의 주간이던 정지용도 문학가동맹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국민보도연맹원이 되었다. 경향신문사의 사회부 기자로 진보적인 기사를 썼던 김혜일도 마찬가지였다. 연극인, 영화인 중에 연극동맹, 영화동맹에 가입 안 한 사람이 없었다. 연극동맹, 영화동맹 역시 민주주의 민족전선 산하 단체로 좌익단체였다. 다들 입을 다물고 있었다. 김연실은 어수선한 분위기가 염려스러웠다.
급기야 전쟁이 터졌다. 서울로 피난민이 몰려왔다. 순식간에 인민군 탱크가 거리를 지나갔다. 서울 시내에 심영, 문예봉 등 북으로 갔다던 배우들이 나타났다. 김연실과는 인연이 깊은 인물들이었다.
시공관에서 열린 서울시민 위문 대회에는 북에서 온 배우들이 등장해 노래도 부르고 연설도 했다. 얼마 전까지 좌익 예술인이라며 테러를 당하기 일쑤였던 이들이 박수를 받으며 등장하자 세상이 바뀐 것이 비로소 실감 났다.
김연실에게도 여러 경로를 통해 평양으로 가자는 제의가 들어왔다. 북조선 국립영화촬영소에 입소하여 영화 제작에 참여해 달라는 권유였다. 남편 김혜일도 마찬가지로 평양행을 권유받았다. 전시라 거부할 수 없었다. 딸 계자만 이웃에 맡겨두고 어린 딸과 함께 평양으로 갔다. 그 사이 인천 상륙작전이 있었고 전세는 역전되었다. 국군이 진격해 올라오자 더 이상 평양에 머물 수 없었다. 강계로 소개하라는 지시를 받고 갖은 고생 끝에 강계에 도착했다. 죽음이 일상처럼 존재했다. 몸이 약한 어린 딸은 시름시름 앓다가 영양실조로 목숨을 잃었다.
1950년 말 중국군이 참전하면서 전쟁은 장기화되었다. 북한에서는 본격적인 선전활동을 위해 극영화 제작을 시작했다. 파괴된 촬영소는 중국 장춘으로 옮겨 갔다. 과거 만주국의 국책영화회사인 만주영화협회는 신중국 성립 후 동북영화제작소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곳의 6개의 스튜디오 중 3개가 북조선 국립영화촬영소의 영화 제작에 할애되었다.
이곳은 김연실에게는 익숙했다. 해방 전 김혜일과 함께 살던 신경이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 장춘으로 이름을 바꾼 것이었으며 국립영화촬영소는 과거 만영이던 동북 전영에 짐을 풀었다. 만영은 과거 만주국 시절에 제집 드나들 듯 다니던 곳이라 익숙했다. 국립영화촬영소 소속의 김연실은 연기 활동을 재개했다. 김혜일도 촬영소에 소속되어 영화미술을 맡게 되었다.
김연실은 전동민이 연출한 <정찰병>에 출연하게 된다. 이 영화는 인민군 정찰과 부과장 리학철(박학 분) 소좌가 지휘하는 1개 정찰 소대가 총공격을 앞두고 적후 정찰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을 묘사한 영화였다. 이 영화에서 김연실은 국군의 추격을 피해 달아나는 인민군 소좌 리학철을 숨겨주는 물방앗간 할머니 역을 맡았다. 남편 김혜일은 이 작품의 미술을 담당했다.
1953년 7월 전쟁이 끝났다. 장춘의 촬영소는 평양으로 이전했다. 김연실도 촬영소 사람들과 함께 평양에 돌아왔다. 잠시 멈췄던 영화 출연도 계속되었다. 김연실은 1954년 완성된 윤용규 연출의 <빨찌산의 처녀>에서 복실 어머니 역을 맡았다. 그렇게 큰 비중의 역은 아니었다.
전후 복구가 시작되고 촬영소도 조금씩 활기를 찾았다. 1956년 한설야의 동명의 단편 소설을 서만일이 각색한 <승냥이>에 출연했다. 이 영화는 미국 선교사의 흉계에 의하여 살해된 식모의 아들 수길이의 억울한 죽음을 통하여 미제국주의의 박애와 인도주의의 허위를 폭로하고 미제에 대항하여 싸운 조선의 근로인민들의 투쟁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연극 연출을 주로 하던 리석진이 영화 연출을 담당한 이 영화에서 김연실은 선교사 스티븐슨의 부인, 메리 역을 맡았다. 김연실이 출연한 영화 중 가장 도드라진 영화였다.
영화를 촬영하며 외국인 분장을 하고 외국사람처럼 연기해야 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서울에서 마주쳤던 서양 부인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표정과 움직임을 연습하고 카메라 앞에 서서 천연덕스런 연기를 펼쳤다.
영화가 완성되어 관객들에게 상영되었다. 대중들과 평론가들은 김연실의 연기에 대해 대체로 호의적인 평가를 내렸다. 특히 국립극장 총장인 극작가 신고송은 다음과 같은 말로 김연실의 연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오랜만에 우리 관객은 영화 스크린에서 김연실의 형상을 주의 깊게 보게 되었다. 물론 그가 북반부에 온 뒤에 여러 가지 영화에 출연하였으나 역의 비중에 있어서 이 메리 역은 그의 전 영화생활을 통하여 처음으로 외국인의 형상으로 분장한 점에 있어서 우리들의 주목을 끈다. 김연실의 메리 역은 기술적으로 성공하였을 뿐 아니라 이 인물이 가진 부정적 성격의 표현에 있어서 생활 감정의 포착이 별반 빈틈없이 되었다.”
신고송의 평가처럼 김연실의 연기에 대해 전체적으로 긍정적인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주영섭의 경우에는 “<승냥이>에서 김연실의 메리 부인 역은 무식한 미국 여인의 모습은 나왔으나 미국 선교사 부인으로서의 위선과 교활이 부족하였다.”며 약간의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사실 오랜 연기 경력을 지닌 김연실도 외국인을 연기한다는 게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조선예술》 주최로 열린 <영화에 출연한 주인공들의 경험 교환회>에서 김연실은 외국인 역을 맡아 연기했던 상황의 난감함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자신이 없다 없다 해도 <승냥이>에서처럼 자신 없는 연기는 난생처음이었습니다. 부정 역도 처음인 데다가 외국인 분장도 처음이고 콘티를 받은 지 1주일 만에 카메라 앞에 서게 되니 자신 있는 연기를 할 수 없었습니다. 더욱이 연극과 영화에 반반씩 경험을 가지고 있는 나는 우선 다이아로그에서 난관에 부닥쳤습니다. 적지 않은 고심을 하였습니다마는 성과는 적었습니다. 보통 노력만으로는 1주일간에 처음으로 형상하는 《교활하고 앙큼한》 미국 년이 되기에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과거 남반부에서 미국 년을 본 기억을 더듬어 형상해 보았으나 랏슈에서 많은 결함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나 개인으로서는 좋은 경험으로 되었다고 보나 인민에게는 큰 죄를 지었다고 반성하게 됩니다.”
1956년에는 <승냥이>에서 메리 역을 맡아 연기한 것 이외에도 단역이긴 했으나 주동인 시나리오를 전동민이 연출한 <행복의 길>에 출연하기도 했다. 김연실은 “추운 들판에서 따뜻한 방으로 들어간 듯한 감을 금할 수 없었”다며, “조선 사람이 조선 사람의 역을 맡은 데서 오는 것이겠지요. 특히 이번에 내가 느낀 것은 배우들이 연기에서 자신을 가지기 위하여서는 우선 체험이 필요하다는 점이었”다고 이야기했다. 낯선 외국인 연기가 아닌 조선사람 연기를 했을 때의 편안함을 강조한 것이었다.
전쟁 이후 본격적인 연기생활을 재개한 김연실은 카메라 앞에 선다는 것만으로 젊은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연기에 욕심이 많은 그녀는 두 편의 영화에서 서로 다른 역을 맡아한 후 더 많은 작품에서 다양한 역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좌담회에서 “이런 인물 저런 인물 고루고루 다양하게 해 보고 싶어요. 부정 인물은 부정 그대로 맛이 있고 긍정 인물은 긍정 그대로 맛이 나며 또 처녀 역은 처녀대로 맛이 나니까요!”라며 농담처럼 이야기했지만 그녀의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이었다.
영화촬영소에서는 배우들의 연기력 향상과 앙상블 유지를 위해 촬영소 내에 배우극단을 두고 연극 공연을 펼쳤다. 1957년 3월 연암 박지원 탄생 220주년 기념으로 배우극단에서는 오병초 연출로 <양반전>을 무대에 올렸다. 김연실은 양반 이생원(김동규 분)의 부인 역을 맡았다. 이 연극을 보고 나서 국립극장 배우 주종일은 다음과 같이 김연실의 연기를 평가했다.
“김연실의 형상은 매우 소박하게-풍자극에서 흔히 배우들이 과장할 수 있는 약점과는 멀리-진실하려고 노력한 것은 대단히 좋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는 연출상 문제와도 결부되는데 양반 이생원과 콘트라스트가 되지 않음을 느꼈다. 풍자를 위한 풍자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풍자극으로서의 특성을 살리는데 더 주의를 돌릴 필요가 있다고 봐진다. 여하튼 이 역의 형상은 기본적으로 잘 된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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