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7치 은행목 기반제작은 계속된다...
처음 이카페에 가입하여 정회원된 기념으로 혹 회원들께 도음이될듯하여 이기록을 남김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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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저절로 이곳을 알아서 가입하였습니다.
알게되어 반갑습니다.
저는 초등학교때 18급 정도에서 중때도 그대로 고딩방학 두번넘겨 바둑을 두어서 5급정도 되었습니다.
지금은 40대 중반에 아마서열 국내 100위 안의 분(프로도전 탈락자)에게 5점에 판당 5-10만원 정도걸고 내기두어 평균 본전률 45%정도 건지는 정도입니다.
오래두면 승률이 떨어져 세판두고 빠져야지 안그러면 정신이 몽롱해져 아마 고수에게도 잘 안됩디다.
그런데 어릴적 막연히 시골 동네분들과 시커먼 표면의 이름모를 재목의 판에 바둑두다가 잘 보이지도 않아 기분이 별로였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바둑을 처음 두었던 그 집, 동네 무허가 약방이었죠.
집에 있는데 종종 바둘돌놓는 소리가 들려 똑 똑 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동네어른들이 바둑두던 그장소에 가면 아무도 없음을 알았습니다.
환청 이었죠.
우리 동네에서 7급 기력 이던 분들을 몇점 놓고 두던제가 방학이 두세번 지나자 제가 다이겨 버렸죠.
다들 어른들이라 그후 제게 놓고 두기는 싫으니 바둑 두자고 사정해도 아무도 두어 주지않아 미치겠더군요.
시골 깡촌이 아니고 도시였다면 기원이라도 갔을텐데...
그때 동네 분들이 은행나무나 비자나무가 바둑판이 최고로 좋다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래서 언젠가는 은행나무 바둑판은 멋진 7치(21cm)를 하나 구해 소장해 보겠노라 마음 먹었죠.
근데 84년도 대학생이되어 종로 관철동에 한국기원에도 가보고 1층 유전다방에서 차도 한잔 먹어보았지요.
2층인가 일반실에서 바둑도 몇판 두어보았는데 할아버지들이 주류이더군요.
지나치다 보니 서봉수9단이 맵시나 차량을 끌고 다니는게 보이고,양상국8단이 바둑판사서 들고 가는것도 보이더군요.
84년 연말정도 한번은 계단에서 볼이 통통한 이창호 꼬마를 발견했는데 그때 신문에 신동이 나타났다는 기사를 보고
그친구인줄 알았죠. 계단에서 그꼬마를 한번 안아주고 몇살이냐고 물었더니 10살이라고 하더군요. 당시 그 꼬마가 3층인가 특별대국실 옆에 연구생실로 들어가기에 하도 신비스러워 한참있다가 망설이다가 살짝 문을 열고 들어가서 슬그머니 옆에 앉았습니다.
침입자인 저를 본듯 만듯 하더군요..맥을 끊을 수 없었던 것이지요.
소파에 옆에앉아 자세히 보니 19세의 유창혁, 몇살 적어보이는 김원 소년, 이창호 등등이 강만우 사범님의 지도하에 바둑 명국 해설과 의견 주고 받기가 열중이더군요. 열중하느라 제가 누군인지 잘몰랐던 것이지요. 그때 저는 시중 5급 정도서 소파가장자리서 걸터앉아서 한 10분쯤 함께 바둑판을 내려다보며 유창혁, 이창호등 인생 동생들의 바둑 질문과 답을 듣고 있으니 무지신기스럽고 재미있더군요.
한참 있으니 강만우 사범님이 눈치를 채고 신경질적인 낯빛으로 째려보면서 묻더군요.
"근데 누구세요?"
"아예~ 그냥 구경...좀.."
, "뭐요?아래층에 일반실 있잖아요? 여기가 어딘줄알고..."
"...."
쫓겨나오는 저를 유창혁(19세),꼬마 이창호(10세)가 정면으로 쳐다보기에 눈길을 마주 쳤습니다.
특히 유창혁사범님의 그 눈길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웬지 그사람이 좋아 지금 이카페에 가입할때 좋아하는 기사 이름에 유 창 혁 이라고 기재하였습니다.
그뒤 13년 23세인 이창호는 제가 여의도에서 직장생활할때 96년말에 동양증권배가 열렸던 옆빌딩이라
구경갔다가 이창호의 눈길이 3초정도 마주쳐 약간 뚫어져라 보는듯 느껴졌으나 긴가 민가 싶습니다.
혹시 그때 눈길이 마주쳤을때 이창호가 13년전 관철동 계단과 연구생실에서 조우한 그 사람인줄 알았을까요?
복기를 잘하니 어디서 본듯한 사람이라는것은 기억 하겠지?
그런 생각이 스쳐갔지만 주눅이 들어 이창호와 아무 대화는 못해봤습니다. 목진석만 몇마디 주고받았울뿐...
88년도 여름에는 부산에서 처음 직장 생활을 하게되었는데, 이종 동생이 길동 000바둑교실에서 바둑대회 왔다기에
김해공항에서 이모님의 부탁으로 이종동생 000과 한양공대 맹00교수님과 그분의 아들인 아마5단이라는 맹지민이라는
바둑 잘두는 꼬마를 서면 대회장까지 안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보니 윤기현 국수님과 함께 사진을 찍은 기억도 나는데 20여년 수많은 이사를하여 사진이 보이지 않는군요.
그날 리붕배 어린이 바둑대회에서 목진석꼬마와 김만수,서무상 세꼬마가 1-2-3위로 바둑을 최고 잘둔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그후 목진석은 8년뒤 96년말 동양증권배에서 여의도 동양증권빌딩에서 몇마디 대화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지금도 유창혁사범님은 꼭 한번 보고 싶습니다.
새장가는 갔을까? 아들둘은 누가 잘 돌볼까?
항상 걱정과 궁금증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이몸이 중매를 잘서는데...그런 생각도 듭니다...
호감가는 19세때 그 모습이 20여년이 흐른 지금도 눈앞에 생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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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년으로 돌아가서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서가 깊다는 종로3가 한일바둑판(대표 일석 문인환선생) 매장에가니
아주 좋은것은 1천만원 정도 가격표가 붙어있더군요.
당시 제가다닌 대학(사립) 등록금이 70만원 이었는데...지금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1억원 육박하는 물건이지요.
그런데 그물건을 보고 1주일후 지나다 다시보니 팔렸더군요.
시골에서 상경한 춥고 배고픈 학생이던 저로서는 84년당시 천만원짜리 바둑판이 팔린다니 놀라왔습니다.
누가 사갔느냐고 물으니 아마 재벌 회장이사갔다나 어쨌다나? '전통'에게 선물하려고 사갔데나 그러더군요.
그뒤 직장생활 20년한 저도 멋진 은행나무 바둑판하나 마련하려니...했는데 전문점에 가면 제법 마음에 드는건
600-1천만원 정도 줘야하기에 도저히 엄두가 나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 만들어 보면 싸겠지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재목을 구해서 의뢰하여 만들어 본 은행나무판 등을 차차 사진 첨부후 노하우를 알려 드리고자 하오니
애기가 회원분은 응용해 보시기 바람니다.
...계속...(목이아파 오늘은 이만...)
첫댓글 옛 이야기가 정말 재미있네요~ㅎㅎ 정말..재목까지 구해서 제작하신다니..바둑에 대한 애정이 대단하시네요^^ 이창호꼬마..를 보셨다니..부러워요^^ㅋ
감사합니다.
비단 바둑판 이야기 뿐 아니라 여러 사범님들에 대한 이야기가 생생하게 전해져 오는 듯하여 정말 재미있네요 ㅎㅎ
이 글이 왜 여기에? ㄷㄷㄷ 바둑이야기게시판으로 옮겨도 충분하겟는데요. 내일 옮기겠습니다.
대단하십니다..바둑에 대한 애정도 절절하게 느껴지구요..^^..앞으로도 기대하겠습니다
2탄은 언제 올려주실꺼에요?...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