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마지막을 읽었지만 몸이 너무 안 좋아서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역시 많은 생각이 떠올랐을 때 쓰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겨우 하루 지났는데 어떤 생각을 했는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슬프게..
일상에서 함께 걷고 싶다는 문장과 줄리언 오피<군중>을 보면서 누군가는 일상의 이야기, 옆집의 이야기를 알려지지 않은 작은 작가가 적어서 베스트셀러가 되고 읽는 것을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난 그런 것을 보면서 위로를 받는다. 모두 이렇게 사는구나 나만 참 못나게 산다고 생각했는데 하면서 어제도 너무 아파서 혼자서 무엇이 문제였을까 왜 이렇게 급작스럽게 통증이 온것일까 조금만 더 있어보고 안되면 병원 가야지 했지만 부정적인 생각은 안했다면 거짓말이다. 그속에서 나보다 더 한 사람들의 상황을 떠올리며 위로를 받았다. 여성부분에 나오는 작가를 보면서...
너는 네가 가진 전부다는 문장과 여성의 시간이라는 문장에서 한동안 머물렀다. 나도 여자지만 내가 자랄때는 아무것도 몰랐다. 첫 생리를 생각하면 아찔했다. 그후 큰 딸에게는 초등학교 고학년때부터 생리를 시작하면 엄마에게 꼭 이야기해라는 말을 강조했었다. 아들에게도 몽정하면 이야기하라고 했지만 부끄러워서 말을 못했다는 말에 웃었다. 그래서 통과했지만 큰 딸의 첫 생리때 파티를 해주었다. 진정한 여자로 태어난 것을 축하하고 이젠 아기를 가질 수 있는 소중한 몸이 되었으니 소중히 여겨야 한다면서 벌써 그것도 오래전 이야기가 되었다. 지금도 생리대를 구입하면 당당하게 들고오는 나를 보면 아이들은 놀란다. 너무 당당한가? 하지만 숨길 일은 아니라고 부끄러운 일은 더더욱 아니라고 그리고 아직 생리하는 것은 축복이야 몸이 좀 아파서 문제지만 하며 말을 한다.
부모는 어떤 자리일까 작가처럼 부모이여 딸인 나에겐 힘들때도 있다. 부모역할이 이렇게 힘들다니 그래서 일까 자주 엄마에게 전화를 한다. 어떻게 키웠나며 그럼 넌 말썽부리지 않았다고 하시지만 내기억엔 많은 말썽이 들어있는데 시간이 지나서 예쁜것만 포장되어 기억에 남아있는 것 같다. 엄마가 무릎에서 바람나온다고 한 나이가 되고 보니 이해가 되고 다리가 잘 안들이네 하는 말이 이젠 흘러들리지가 않아 영향제를 찾아 사다 들이고 하지만 지금까지 키운 것에 대한 보답은 아직도 한참 멀었다. 그러면서 티격태격하는 모녀다.
여성이라는 부분에선 많은 부분이 공감이 되었고 쓸려면 끝이 없을것 같다. 하지만 글쓰기 능력의 부족으로 다음에 다른 기회하며 살짝 접는다.
<아슬아슬하게>만 봐도 많은 말들이 나오고 최옥경의 그림에선 주변인의 느낌이 났다. 그속에서 벗어나고 싶은 몸부림까지 보여서 실제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여기에 나오는 작품중 보고 싶지 않은 것이 어디있을까 보고도 몰랐던 작품도 있으니 한숨만 나온다.
박진아의 노란 바닥에선 앙리 마티스가 떠올랐다. 다른 작품들을 보면 또 다른 느낌이겠지 서도호의 글을 읽으면서 처음 아파트에 입주 할때부터 나만의 공간을 만들었었다. 지금은 두 아이가 나간 후 다른 곳으로 옮겼지만 나만의 공간에선 자유와 평화가 있었다. 굳이 나가지 않아도 그래서 참 좋았다. 지금도...
헤테로토피아라는 말이 있다는 것에 오호 얼마 안 있어 단어는 했지만 기억 저편으로 사라질것 같지만 읽으며 행복했던 기억은 남아 있을것이다.
구본창의 <문 라이징>을 보면서 처음 달항아리를 보았을 때의 감동이 되살아났으며 이렇게도 작품을 만들수 있다는 생각에 놀랐다. 얼마나 많은 고정관념이 나에게 있는지 다시 볼수있었다. 하긴 상감청자를 만들 기술을 잃어버려서 분청, 백자로 변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 백자를 그렇게 좋게 보지 않다가 국립 중앙박물관에 가서 보고는 왜 이런 멋진 작품을 이렇게 말했을까하며 한동안 그 앞에 서있었던 기억까지... 지금도 여러 장소에서 달항아리를 본다. 하지만 시간, 장소, 조명에 따라 모두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어 볼때 마다 새롭다.
철이없다는 말을 엄청 싫어했는데 '어른답다, 어린이 같다'는 글을 읽고 이젠 뭐어때하고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리고 윤헤정 작가의 인생, 예술 책 읽어봐 그 말이 얼마나 좋은지 알수 있을거야라고 당당히 예시까지 제시해 줄 수 있어 행복하다.
마지막의 작품은 한동안 마음을 끌었다. 작가를 보는데 볼탕스키 어디서 본것 같은데 하면서 모던 라이프의 도록을 펼쳤다. <기념비> 맞다. 여기에 서서 가연이랑 이건 뭘 뜻하는 거지 자기의 성장 사진인가. 그런데 너무 어릴때 사진 뿐인데 기념비라니 뭘 기념하는 거지 하며 엉뚱항 해석을 한 기억이 났다. 해설이라도 조금 적어두지 전혀 모르겠다며 두번을 봐도 이해 안 되는 작품이라고 했는데 책을 읽으며 아하는 단어가 입밖으로 세어나왔다. 하룻강아지 법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초초초자가 뭘 알아서 이런 말을 했는지 한심했다. 그러고 도록을 보는데 무게감이 느껴졌다.
죽음이라는 것이 나에게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나부터도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니 처음엔 두려움이 컷다면 지금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두렵지 않다는 것은 거짓말이고 가장 가까운 이의 죽음 또한 경험하지 못한 나에겐 더욱 두렵다.
하지만 삶이란 높은 탑을 쌓는 게 아니라 미완성의 그림을 그리는 것이고, 특정 세대가 아니라 바로 나로 구성된 우리가 만드는 것이다. 라는 문장과 행복이란 건 대단히 거창한 걸 마침내 해낼 때가 아니라 작고 평범한 일들을 해나갈 때 조금씩 쌓여 완성되는 것 같아요. 라는 글귀에서 그냥 앞으로 나가 보기로 했다. 지금의 걱정은 모두 기우인데 해 본들 소용이 없으니 그만두고 끝날때 까지 가보기로 했다.
마지막을 덮으면서 많이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