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07. 30 보관용
경암 이원규의 된걸음 세상
우리 자주 여행 가요
이번 여름휴가는 강릉에서 보냈다. 정동진에서 하룻밤을 묵으면서 다음 날 일출을 볼 당찬 계획도 세웠다. KTX를 타고 강릉역에 내리니 낮 12시 5분 전, 식당은 많으나 입맛을 당기는 집이 보이지 않는다. 초당두부를 곁들인 정식으로 더위를 식히며 든든하게 먹었다. 정동진 모랫길을 힘주어 걸었더니 장딴지가 쑤시고 아프다. 숙소를 예약하지 않은 탓에 간신히 빈방을 잡았다. 백조에게 미안해서 횟집에서 맛난 저녁을 먹으며 아쉬움을 달랬다. 굳이 새해 첫날에만 보라는 법은 아닐 터, 뜨건 한여름의 일출도 볼 만할 거로 생각했다. 드디어 일출이 약속된 새벽 5시 24분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하필이면 수평선 위로 짙은 구름이 잔뜩 끼었다. 카메라를 설치해 놓고 기다리던 사진작가들도 투덜대며 앵글을 접는다.
지금까지 살면서 제대로 휴가를 다닌 적이 없었다. 평상시에는 회사 일로 바빠서 휴가 기간에는 밀린 글을 손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무슨 일이 있어도 휴가는 알차게 챙기기로 약속했다. 정동진에서 강릉역으로 되돌아가 열차표를 바꾸고 경포대로 이동했다. 아침나절이라서 그런지 일반인들은 별로 없고 수상구조대원들이 군가를 부르면서 멀리 섬에서 헤엄쳐 건너오고 있다. 모래밭으로 올라와 물을 터는 검은 피부들이 유난히 반짝거린다. 느린 우편함에 편지를 써서 집어넣고 모래사장도 걸었다. 아무래도 날이 너무 뜨거워 해수욕장은 저녁나절이 돼야 사람들이 몰릴 듯싶다. 경포호 둘레길을 걷다가 버스안내판을 보니 오죽헌까지 네 정거장이다.
가정집을 개조한 가게 앞에서 찐 옥수수를 팔고 있다. 그것으로 간단하게 요기하고 백조랑 무작정 걸었다. 네 정거장쯤이야 금방 갈 거라는 생각은 크나큰 오산이었다. 한 정거장이 도시에서의 네 정거장도 넘는 듯하다. 땀을 뻘뻘 흘리며 음지로만 걷는 데도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경포호, 가시연습지, 선교장, 생태저류지를 벗어나 한참 걸었건만 오죽헌은 아직도 4Km라는 교통표지판만 보인다. 손성목 감독이 야심 차게 세운 참소리박물관에서 물도 얻어 마실 겸 잠시 쉬었다. 백조는 힘이 들었는지 “언제나 강릉길 다시 밟아가, 색동옷 입고 앉아 바느질할꼬”라는 사임당의 시를 읊는다. 이래서 오죽하면 오죽헌이라 했는가 싶다.
주문진항으로 가서 유람선이나 타고 한 바퀴 돌고 가는 것으로 또 계획을 바꿨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배는 방금 떠나고 다음 배는 세 시간 후에 출발한다. 급하게 오죽헌에서 택시를 타고 왔는데, 배도 못 타보고 발길을 돌리려니 백조의 어깨가 축 처져 있다. 동해안 여행길은 이번이 처음이다. 어찌 된 영문인지 가는 곳마다 아귀가 맞지 않아 틀어졌다. 다시 강릉역으로 이동해 열차표를 또 바꾸어 일찌감치 귀가하기로 했다. 서울역으로 가는 KTX 차창으로 빗방울이 흘러내린다. 마침 노회찬 의원 장례가 끝난 날이다. 청량리쯤 도착하니 소나기가 되어 쏟아진다. 내일 하루 더 쉬면 죽자사자 또 일해야 산다. 백조는 ‘사랑하는 옆지기를 두고 죽으려고 마음먹었을 그 마음이 이제야 비가 되어 내리는가 보다’라면서 아무리 바빠도 우리는 자주 여행하잔다. 그래야지요, 암 그럴게요.
드디어 부천역이다. 집으로 들어가기 전에, 2천 원 주고 빨간 장미 한 송이를 샀다. 매달 28일을 기념하는 뜻에서 사주기로 한 약속이다. 꽃집 벽에 걸린 낡은 광고가 눈에 띈다. “벌은 꿀 1파운드를 얻기 위해 2백만 송이의 꽃을 옮겨 다닌다고 한다. 거리로 따지면 자그마치 8만8천km에 이른다. 벌이 그것을 노동이라고 여기면 짐일 것이고 꿀단지로 여기면 놀이가 된다. 그런데 꽃을 짐으로 여기는 벌은 아직 본 적이 없다.” 그랬다. 짧은 1박 2일이었지만, 즐거운 여행이었다. 그렇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삶은 달라진다. 넉넉하지는 않더라도 이런 마음으로 꿀을 따는 벌처럼 살아보련다.
첫댓글 안 말립니다.
황백조님과 자주 다니세요. 여행.
정동진과 경포대 일대를 관광하며 의미있는 여행을 하셨군요.
1%의 여행이 99%의 삶을 지탱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좋은 여행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