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생명 말씀(2024.2.4.) 말씀 / 마태 7:24-27 기본이 든든한 신앙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옛날에 어느 부자가 외아들을 잘 가르치려고 유명한 선생을 사방으로 수소문했습니다. 그래서 고명한 선생을 찾아내 외아들을 집 떠나보냈습니다. 그 선생이 어찌나 엄하고 까다롭던지 학생이 글공부를 다 마칠 때까지는 집에를 내왕할 수 없다는 조건 이었습니다. 부자는 귀한 외아들을 오래 못 보게 되는 것이 마땅찮았지만, 외아들을 크게 만들 욕심으로 그 조건에 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부모가 아들한테 내왕하는 것도 금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부자는 아들이 떠나고 나서 반년을 가까스로 참아냈는데 더는 참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아들이 보고 싶기도 하고, 또 글공부는 얼마나 했는지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선생 몰래 아들의 모습이나마 보자고 작정을 하고 집을 떠났습니다. 선생 집에 가까워지니 글 읽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부자가 귀를 기울여보니 그건 분명 아들의 목소리였습니다. 부자는 반가워서 당장 선생 집으로 뛰어들고 싶었지만 간신히 참고 글방의 봉창에 침 바른 손가락으로 구멍을 냈습니다. 아들은 선생 앞에서 글을 읽고 있는데, 가만히 들어보니 그게 천자문 이었습니다. 서탁에 펼쳐진 책도 천자문이 분명했습니다. 부자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한 달이 못 걸려 뗄 수 있는 천자문을 반 년 동안이나 붙들고 있다니, 저 자식이 그리도 머리가 둔하단 말인가 하는 생각 때문 이었습니다. 부자는 못내 실망해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또 반년이 지나게 되니 다시 아들이 보고 싶고, 그 동안 얼마나 배웠나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소. 그래 또 선생 집으로 갔습니다. 봉창으로 방 안을 들여다보니, 아니 이게 어찌 된 일이오. 여전히 천자문을 공부하고 있는게 아니겠습니까? 부자는 그만 하늘이 무너지게 낙담하고 말았습니다. 내 자식이 완전히 바보 멍텅구리로구나 하고 말입니다. 아무리 낙담을 했어도 그건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라 부자는 또 반년 만에 길을 나섰습니다. 아니, 정말로 이게 어쩐 일이란 말인가. 그 때까지도 서탁에 펼쳐진 책은 천자문 이었던 것입니다. 도대체 저 선생이 공부를 가르치는 건가 마는건가, 부자는 그만 선생한테 울화통이 치밀어 올랐습니다. 아무리 자기 아들이 머리가 돌덩이라고 하더라도 선생이 애를 쓰면 일 년 반 동안에 천자문 하나 떼지 못할까 하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공부고 뭐고 다 작파하고 아들을 당장 끌고 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 동안 들인 돈도 아깝고, 그리 유명하게 소문난 선생이 엉터리일 리도 없고 해서 부자는 화를 꾹꾹 눌러 참으며 돌아섰습니다. 또 반년이 지나 부자는 선생 집을 찾아왔습니다. 아니, 그런데 이게 정말 무슨 귀신이 곡할 노릇인가요. 서탁에는 그대로 천자문이 펼쳐져 있으니 말입니다. 부자는 더는 참지 못하고 집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선생에게 그 동안 쌓인 분풀이를 하고 아들을 끌어냈습니다. 부자가 온갖 험한 소리를 다 해도 선생은 묵묵히 듣고만 있었습니다. 아들을 집으로 데리고 온 부자는 천자문을 펼치고 읽어보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들은 눈 딱 감고 숨도 안 쉬고 한달음에 외어 버렸습니다. 아니 이럴수가 있는가. 그런데 왜 천자문만 펴놓고 있었을까, 부자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동몽선습을 폈습니다. 그런데 막히는 데 하나 없이 줄줄이 읽어 내리고 말았습니다. 부자는 놀랐고, 이상한 생각은 더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음에는 논어를 펼쳐놓았습니다. 아들은 그것도 막힘없이 술술 읽고 말았습니다. 부자는 그만 귀신에 홀리는 기분이었습니다. 또 다른 책을 내놓았지만 아들이 막힘이 없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아들은 결국 사서삼경을 다 읽어내게 됐었습니다. 그 때서야 부자는 무릎을 쳤습니다. 그 선생이 정말 기막힌 선생 이로구나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쌀 수십 가마니를 달구지에 싣고 아들을 앞세워 선생을 찾아갔습니다. 선생 앞에 큰 절로 백배사죄하며 아들을 다시 맡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선생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선생이 한 말은, 저 아이의 학문은 인제 버려버렸다는 것입니다. 그게 한마디였습니다. 부모가 아이의 기본 교육을 망쳐버렸다는 것입니다. 선생은 천자문이 모든 학문의 근본이고, 모든 문장은 천자문의 응용이라는 것을 알기에 철저히 기본을 가르쳤던 것입니다. 모든 학문이나 예술이나 인간도의에 이처럼 기본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기본은 단순하고 쉬운 것 같은데 가장 중요한 원리가 되기 때문에 기본에 충실한 사람은 계속 성장하고 원숙한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그런데 욕십만 부리고 빨리 일취월장하려고 하는 사람은 나중에 성장 진보의 한계를 맞게 됩니다. 지난번 독서모임 시간에 배웠지 않습니까? 지식도 숙성 기간이 필요하다고, 숙성의 기간이 결여된 지식을 그저 전달하고 과시하고 싶어 안달하는 사람들, 그들에게는 축제로써의 배움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그저 교만과 아집에 빠질 뿐입니다. 아무리 돈이 많고 겉으로 출세를 하였어도 기본이 안 된 사람은 인성이 안된 것이 그대로 들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다 못해 악기를 하나 배워도 기본 연습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기본에 충실한 사람은 높은 단계로 계속 발전할 수 있지만 기본이 안 된 사람은 10년이 가도 좋은 소리가 나오지 않습니다. 연습을 많이 해도 기본이 안 되기 때문에 그런 경우는 가면 갈수록 더 안 좋아집니다. 위대한 음악가 모차르트는 자신에게 음악을 배우겠다고 찾아오는 사람이 있으면 꼭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혹시 전에 어디서 음악을 배우신적이 있습니까?” 그가 배운적이 있다고 하면 수업료를 두배를 청구하고, 배운 적이 없습니다 하면 이렇게 말했습니다. “좋습니다. 그러면 수업료 반만 내도록 하십시오.” 누군가 의아해서 물었습니다. “초보자는 반만 내고 10년가까이 배운 나에게는 두배를 내라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모차르트가 말했습니다. “물론 이유가 있습니다. 음악을 배웠다고 하는 사람들의 경우 우선 그 지거기를 털어내야 하는데 그게 힘든 일입니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것이 새로 가르치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단 말이요” 그러면 신앙에는 기본이 없을까요?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에도 기본이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생활을 잘 하고 정말 하나님께 칭찬받는 훌륭한 신앙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말씀도 잘 깨닫고 사람들에게도 인정받는 그런 신앙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해야 그렇게 됩니까? 열심히 교회 빠지지 않고 다니고, 성경 많이 읽고, 기도 많이하고, 십일조 꼬박꼬박 내고, 봉사 잘 하면 되나요? 그런 것을 신앙의 기본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신앙생활도 역시 가장 중요한 기본이 있습니다. 듣고 물으며 기본을 잘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성장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2장을 보면 육신을 입으신 그리스도로서 어떻게 삶을 시작하셨는지,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번은 그의 부모가 예루살렘에서 유월절 절기를 마치고 돌아가는데 어린 예수님이 일행 중에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다시 아이를 찾아 예루살렘에 돌아가 사흘 후에 겨우 성전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을 때 예수님은 선생들 중에 앉으사 그들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하고 계셨습니다.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놀랍게 여겼습니다. 이것이 성경에 잠깐 기록된 어린 시절 예수님의 모습 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이시라도 이처럼 듣고, 묻고, 배우며 성장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 분 자체가 말씀 이십니다. 더이상 누구에게 배울 필요가 없는 분 이십니다. 그럼에도 어린 시절 예수님은 선생들 사이에서 듣기도 하고, 묻기도 하며 배우시는 겸손과 열정을 보이셨고, 지혜와 키가 자라가셨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듣고, 묻고 배우며 성장하는 것을 멈춰서는 안 됩니다. 다 안다는 교만한 생각과 싸워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신앙인들이 이 배운다는 것, 끝없는 향상심의 원리를 잘 모릅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생각한ㅣ다 아는 것 같습니다. 신학교 졸업하면 이제 배운 것을 가르치는 선생이 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한참 잘못된 생각입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벼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듯이 우리는 알수록 모르는 자가 되어야 하고, 성장 해 갈수록 온전하지 못한 것을 깨닫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한시도 책을 놓거나 배움을 멈출 수 없습니다. 사도 배울이 그랬습니다. 다 된 것 같은 완성에 이른 자 같은데 아직 이룬 것도 없고 잡은 것도 없고 여전히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 좇아간다고 하였습니다. 배움에 있어서는 언제나 그는 무지하였습니다. . 우리가 기본에 충실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기본이 안 되면 삶이 엉망진창 된다는 것입니다. 축구, 달리기, 야구 모든 운동도 기본이 있습니다. 기본이 된 사람은 열심히 노력하는 만큼 대기만성합니다. 그러나 기본이 안 된 가운데 실력을 빨리 쌓으려는 사람은 실력이 절대 늘지 않고 굳어져버리거나 후퇴합니다. 현대 무용의 어머니라고 불리우는 이사도라 덩컨이 이런 말을 했스니다. “나는 니체에게 춤을 배웠다.” 일찍부터 발레를 배운 최고의 발레리나였지만 고급 스럽고 세련되기는 하였지만 갖가기 인위적인 제약이 많은 고전 발레에 의문을 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가슴으로부터 속구치고 자연과 자유를 향한 강렬한 동경을 표현하는 춤을 출 수 있을까? 결국 철학자 니체에게 가서 깊은 경지의 춤을 배운 것입니다. 그리고 최고의 발레리나가 되었습니다. 정말 될성싶은 사람들의 특징은 최고에 이를수록 겸손히 배우는 자입니다. 저도 사람을 볼 때 가장 기본으로 보는 것이 배우려는 사람인가를 봅니다. 그런 사람 만나면 아낌없이 교제하며 다 쏟아부어주고자 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을 찾기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많이 아는 것을 평가해주기를 바라는 경향이 대부분입니다. 우리는 이 땅은 성장학교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워칭2에서 그랬지 않습니까? 지구는 거대한 학습장 이다. 모든 것은 영적 성장을 위해 설계된 수업 이다. 이 땅에 살면서 생명을 지닌 존재는 끊임없이 성장 발전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아무것도 완성되어 존재하는 것은 없습니다. 모두가 성장 구조로 태어났습니다. 특히 인간의 경우는 육체, 정신, 영혼이 모두 성장 발전이 필요한 미완성의 존재입니다. 성장이 멈추면 썩고 부패하고 죽습니다. 반면 조금씩이라도 성장할 때 또한 기쁘고 행복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기본도 끊임없이 배우는 자가 되고 성장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손흥민 아버지 손웅정의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는 책을 읽어보았습니다. 보통 사람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책을 읽어보았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이 분도 모든 것은 기본에서 출발한다고 하며 기본을 중시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손웅정씨는 우리의 삶 자체가 현재 징행형이며 삶에 완성을 없다고 합니다. 무엇을 이루었어도 이제 겨우 반 이다 생각하고 게속 성장을 멈추지 말고 노력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본ㅇ니 자신도 가르치는 자가 되기 전에 배우기 위해서 끊임없이 책을 읽습니다. 일 년에 300권 읽는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첫째는 자기 성장을 위한 것이고, 다음에는 좋은 아빠, 좋은 선생, 좋은 코치가 되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배우지 않고 가르칠 수 없습니다. 가릋ㅁ의 기본이 배우는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축구는 화려한 기술을 익히는 것이 다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훌륭한 인성을 갖추고 인생을 겸손, 감사, 성실함으로 대할 줄 아는 것이다. 축구를 좋아해서 하지만 축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네덜란드 토털사커의 창시자 불세출의 축구영웅 요한 크라이프의 말을 인용합니다. "내가 만난 윌드크래스 선수 중에 인성이 나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리고 이분은 일상생활의 기본도 이야기 합니다. 삶에서 청소와 운동만큼 기본이 없다는 것입니다. 매일 새벽 4시 30부터 일어나 청소와 새벽운동을 꾸준히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손흥민에게도 그것을 삶의 실천으로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알고 보니 손흥민이 인성이 있는 월드 크래스의 선수가 된 것이 저절로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뒤에 이러한 훌륭한 삶의 철학이 있는 아버지가 있었던 것입니다. 묻고 듣고 배우며 성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삶의 기본 요소 이지만 더 나아가 중요한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실천하는 것입니다. 알고 배워도 실천이 안 되면 아직 기본이 됐다고 할 수 없습니다. 산상수훈의 주옥같은 말씀을 마치시고 마지막 주님이 주신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빌게이츠가 산상수훈을 토씨하나 안틀리고 죽기 살기로 암송했다지만 그가 성공 후에 실천적인 삶을 살지 않았다면 그 암송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26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에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결론은 이제 아는 것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를 반석 위에 지은 집으로 비유하시는 것은 기본의 중요성을 이야기는 것입니다. 집을 짓는데 있어서 튼튼환 기초 공사는 기본입니다.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도 무너지지 않는 집, 한 말슴이라도 실천하는 것이 신앙의 기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고 떠는 것은 귀신도 하지만 귀신이 안되는 것이 실천입니다. 끊임없이 배우는 것 그리고 하나라도 실천하는 것 그것이 신앙의 기본입니다. 기본이 안되고 집을 짓는 것들은 다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10장에도 한 율법사가 나와 영생의 길을 묻는 내용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하나님과 사랑과 이웃 사랑 두 가지를 말씀해주십니다. 그리고 이를 행하면 영생을 얻는다고 하십니다. 그러자 율법사는 이웃이 누구냐고 묻습니다. 이런 그에게 강도 만난 자를 도와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말씀 해 주십니다. 한 사람이 예루살렘으로 내려가다가 강도 만나서 물건 빼앗기고 거반 죽도록 맞아서 버려졌습니다. 그 사람 곁은 레위인도 지나갔고 제사장도 지갔습니다. 아마도 하나님 섬기는 일들에 다들 바빴던 것같습니다. 그런데 한 사마리아인이 머물러 도와주고 정성을 다해 간호를 해주었습니다. 주막까지 데리고 가서 끝까지 책임졌습니다. 그 사람은 계명도 잘 모르고 하나님도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 문자적으로는 A.B.C 모르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말씀하신 후 너도 가서 이같이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천이라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 레위인 제사장들 모두 하나님 말씀 잘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행하지 않았습니다. 사마리아인은 하나님을 잘 알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웃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계명을 지킨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살인 안 하고 간음 안하고 도적질 안 하는 것 이런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라는 기본 정신을 지키는 것입니다. 정신을 지키지 않으면 아무리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해도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반면 계명을 잘 몰라도 사랑을 실천하면 모든 계명을 다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머더데레사가 그렇게 인류의 어머니로 추앙을 받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만은 지식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평생에 사랑이란 한 말씀을 실천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처음에 인도 캘거다 거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죽어가는 사람들 돌봐서 행복하게 죽도록 돕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그 때 집이 dying hous 였습니다. 그런덴 잘 죽으라도 데려와 섬긴 행려병자들이 사랑을 받자 자꾸만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living hous로 바뀌었습니다. 나중에 기자들이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큰 일을 할 수 있었습니까? 우리는 한 번에 한 사람밖에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님의 일은 어떤 것도 작은 일이 없습니다. 처음 한 사람을 사랑하지 못했다면 지금 이런 역사는 없을 것입니다. 마지막 죽을 때 유언의 말씀도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 이었는데 그 유언을 들으며 200만명이 울었다고 합니다. 그 분의 삶이 바로 사랑의 메시지였기 때문입니다. 사랑도 기본이 있습니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 입ㄴ다. 기서이 없이는 천 사람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한 사람 사랑이 사랑의 기본이고, 사랑은 모든 계명의 기본입니다. 결론적으로 삶도 신앙도 예술도 우리는 평생 기본에 충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위대한 일도 기본을 넘어선 것은 없습니다. 기본 속에 위대함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천자문 속에 모든 학문이 들어 있는 것처럼, 기본속에 전체가 들어 있는 것입니다. 기본을 반복 반복 하다보면 높은 경지에까지 오르게 됩니다. 우리가 매일 새벽마다 큐티는 영적 생활에 가장 중요한 기본입니다. 매주 수요일 선정한 책을 가지고 하는 독서모임 모든 독서의 기본입니다. 반복 반복 읽으면서 숙지하게되면 모든 책들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우리 모두 자신을 다시 돌아보며 다시 기본의 중요성을 새ㅔ기고 숙지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