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궁 - 조선후기의 이궁(행궁) 1617년(광해군 9년)에 시작 1623년에 완공 인조의 아버지 정원군의 집이 있었는데 이곳에 왕기가 서려있다는 이야기가 있어 그 터를 몰수하고 왕궁을 지었다는 이야기가.. 임진왜란때 경복궁이 불에 탄 이후 대원군이 증건하기 전까지는 동궐인 창덕궁과 창경궁이 법궁이 되었고 서궐인 경희궁이 행궁으로 사용. 원래 경희궁에는 숭전전을 비롯 100여동의 크고 작은 건물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건물의 상당수를 옮겨갔으며 특히 일제 강점기 때 본격적인 수난을 맞이했지요 1910년 일본인을 위한 학교 경성중학교가 들어서면서 숭전전등 주요 전각들이 대부분 헐려 나갔고 그 면적도 절반' 정도로 축소되었습니다다. 1926년 숭전전을 조계사에 팔았는데 현재는 동국대학교 정각원으로 남아있다고 합니다 현재 경희궁에 있는 숭전전은 복원된 것입니다
경희궁의 정문 흥화문 - 원래 자리에는 건물이 들어서고 길이 생기는 바람에 이곳에 세워졌지요 담장도 없어요.. 일제때 이토히로부미를 기리기 위한 박문국이란 사찰을 지어놓고 궁궐 정문이었던 흥화문을 사찰 정문으로 사용했다네요 후에 장충동 영빈관을 거쳐 신라호텔 정문으로 사용하다 겨우 정문의 명분을 찾았지만 제자리는 찾지는 못했지요
종로구의 아름다운 나무로 지정된 나무인데요 얘도 돌아가는 세상사에 속이 터졌을까요? 이런 모습으로도 잎을 피우고 지고 살아가는 모습에 마음이 쨘해집니다
숭전전 - 임금님이 신하들과 조회를 하거나 궁중연회 사신접대등 공식행사를 하던 곳 정조, 경종, 헌종의 즉위식도 이곳에서 거행되었다해요 일제때 조계사 절에 팔렸다가 현재 동국대학교 정각원이라는 건물로 사용중이라는데 낡고 보관상태가 안좋아 옮겨오지 못하고 다시 복원했다고해요
임금의 집무실이었던 자정전 - 숙종의 빈전으로 사용되기도 했던 곳이에요 빈전이란 임금의 시신을 모신 공간인데요 승하하시고 능에 모시기까지 5~6개월씩 걸리기도 했다고해요 그동안은 시신의 부패를 막기위해 얼음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영조의 어진이 보관되어 있는 태녕전 용도는 볼확실하다고.. 많은 왕들이 경희궁에 머무셨지만 그중 영조가 제일 많이 사랑하셨다고 해요 원래 경덕궁이었는데 경희궁으로 바꾸신 분도 바로 영조. 흔적도 없이 파괴되었지만 <서궐도안>에 따라 복원
자정전과 태녕전 뒤쪽으로 보면 바위속에서 샘이 솟아 물이 흐르는 서암이 있어요 숙종이 서암이라고 새겼다고 하는데 지금은 흔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서암(왕암)때문에 이곳에 왕기가 서린 곳이라고 했다죠
우리도 이 왕기 좀 받아볼라꼬..
경희궁 뒷쪽 산책길로 한바꾸 돌았습니다
*경교장 - 강북 삼성병원 주차장에 위치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 숙소겸 청사로 사용된 건물 (45년 11월 ~ 48년 8월15일) 이나 실질적으로는 백범 김구선행인 서거한 1949년 6월26일이다 경교장건물은 원래 금광업으로 돈을 많이 번 조선 3대갑부 중 한사람인 최정학 (1891-1959)의 개인자택 그는 대일항쟁기에 비행기를 일본에 헌납한 친일행위를 한 사람이었으나 자택을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로 내놓았다 원래 죽첨장으로 불렀으나 선생이 친일냄새가 난다하여 인근의 경교다리 이름을 따서 경교장이라 하였다 선생이 서거한 이후 남겨진 유족들은 최창학이 요구한 집세를 내지 못해 경교장을 떠나야했다 그후 경교장은 중화민국 대사, 한국전쟁중에는 미군의료진 주둔처, 월남대사관 등으로 사용되다가 고려병원 (강북삼성병원 전신)에 인수되어 한때는 병원부속건물로 사용되었다
2001년에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 2005년에 국가사적지로 승격되어 2층 김구 집무실이 복원되고 2010년에 강북삼성병원이 경교장의 복원을 위해 병원시설을 이전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백범 김구선생이 총에 맞아 숨지신 방
경교장을 나와 성곽길을 따라 조금 오르다보면 홍난파가옥을 만납니다
미국인 앨버트 테일러의 "딜쿠샤" 1923년에 건축 딜쿠샤는 힌두어로 이상향, 행복한 마음, 기쁨을 의미 앨버트 테일러는 UPI통신사의 서울특파원으로 1919년 일제의 화성 제암리 학살사건을 최초로 세상에 알렸다 그는 고종황제의 국장을 촬영한 사진도 남겼다
그는 독립선언서를 발견하고 세상에 알린 사람이었다 3.1 독립선언문을 입수해 갓 태어난 아들 침대밑에 숨겨 두었다가 외신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렸다 이일로 6개월간 서대문 형무소에 갇혔고 1942년 일제에 의해 추방될 때까지 딜쿠샤에 살았다 이후 그는 끝내 돌아오지는 못했지만 유언에 따라 한국에 묻혔다
우리나라에서 매우 희귀한 벽돌쌓기의 형식으로 매우 이국적인 건물. 그동안 무관심속에 방치되어 건물은 엉망 붕괴위기. 지금은 국가재산으로 귀속했으나 현재 10여가구가 거주 2013년 딜쿠샤의 소유주인 한국자산관리공사로부터 서울시가 문화재등록 동의를 받았으나 이곳에 살고있는 이들의 이주 대책이 없어서 문제가 많다
임진왜란때 행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명장 권율장군의 집터입니다 이 420년된 은행나무는 권율장군이 직접 심으셨다고.. 나가는 길이 없어 저 파란대문을 통과하여 성곽길로 올라가게 됩니다 문을 열어놓은 집 주인께 감사한 마음으로 조용히 지나갔지요
인왕산 성곽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한적하고 오붓한 이쁜 오솔길이 나옵니다
황학정 - 궁술연마장 유형문화재 25호 고종의 명으로 경희궁, 회상전 북쪽에 지었던 것을 일제 강점기인 1922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겼습니다
단군을 모신 제단이라고 하는데 이곳에 와서 절을 하고 소원을 비는 사람들도 많다고 하네요
사직공원에 있는 사직단입니다 종묘와 함께 한 나라의 근간이 되는 중요한 곳이었지요 오른쪽이 토지의 신에게 제를 올리는 사신단 왼쪽이 곡식의 신에게 제를 올리는 직신단 왕들이 일년에 몇차례씩 경복궁에서부터 이곳까지 행차를 해서 제를 지냈다고 해요 일제강점기 때 엄청난 훼손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덕수궁에서 시작하여 사직단에서 마무리를 하였는데요 오늘 서울 역사와 문화 탐방을 다니면서 참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습니다 두번 다시 겪어서는 안될 역사적 슬픔.. 우리가 알고 지켜 나가야 할 것 입니다..
오늘 역사탐방에 함께 해주신 님들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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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새롭게 역사공부를 다시 하는듯 하여
영양가있는 음식을 먹은듯 뿌듯하네요
애썼어요~~
언제나 맡은일에 열정이 넘치는 세라님
쌩유여요~~^~^
든든한 응원군 인왕님에게도 언제나 감사~
한곳한곳 귀에 쏙쏙 들어오게 공부 참 ~~잘한 날...
몇분들의 역사전문가 다운 지식들로 복습까지~``
그 중 처음 알게 된 경교당은 정말 속상하고 마음 안타까웠던 곳..
여러모습으로 담겨진 어제 걷기는 정말 굿~~이였어요~세라님~자주 그런 길 열어주세요`~^^
저두 경교장에서 해설사 선생님의 얘기를 들으며 많이 안타까웠네요
다음에는 고궁걷기로 한번 할까요? ㅎㅎ
@세라 고궁걷기 좋아요좋아요~~ㅎㅎ
특히 창덕궁 리딩 부탁드리고픈 맘.....
구한말부터 근대한국까지~주~욱 한편의 파노라마가 따로 없네요.멋진 해설과 좋은 사진까지 세라님 넘 수고하셨어요~ 항상 건강하세요~홧팅!!
삼족오님의 보충설명도 큰 도움되었네요
특별하면서도 즐거운 하루였어요~
걸으면서 공부하는 역사탐방 재미있어요. 세라님 예쁜사진 멋진해설까지 너무 수고하셨어요. 또 만나요.
재미있었다니 다행이여요
다음길에서 또 뵐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