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
<말씀봉독>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겔 36:25-28) <등단 후 멘트> 귀한 찬양을 감사드립니다. 인사 나누겠습니다. 오늘은 참으로 좋은 날입니다. 사랑의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좋은 일이 있습니다. 지금은 교회력으로 사순절 기간입니다. 사순절은 부활주일 전에 40일 동안 예수님의 공생애 초기의 40일 금식하시며 광야에서 시험받으신 것을 기념하면서, 또 십자가 고난을 기억하면서 절제하고 회개하며 금식하며 보내는 기간입니다. 올해는 3월 6일 수요일 날,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 제2 수요일 날부터 시작해서 주일을 빼고 6주간을 합니다. 6■6=36하고 ‘재의 수요일’부터 수, 목, 금, 토 4일을 합해서 40일이 됩니다. 그래서 4월 18일 성 금요일까지 계속되는 것이 사순절 기간입니다. 그래서 40일 동안 특별히 주님의 고난을 기억하면서 고난에 참여하는 기간인데, 이것은 교회 역사를 보면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 때부터 지금까지 지켜져 내려온 것입니다. 이 기간 동안에는 파티를 하거나 자기 개인의 어떤 기쁨과 만족을 위해서 잔치를 하는 것들을 절제하고,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스스로 절제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바로 사순절입니다. 우리가 풍요로움 속에서 살다보니까 고난이 우리에게서 멀어진 것 같습니다. 고난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우리에게서 멀어졌기 때문에 주님의 은혜가 또 멀어진 것입니다. 60년대, 70년대 우리가 힘들고 어려운 시절을 지날 때에는 금식하며 눈물로 기도하였던 우리들의 모습인데, 눈물도 사라지고 금식도 사라지고 간절한 기도도 사라진 우리들의 현실을 보면서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영적으로 우리가 다시 회복되어야 합니다. 신앙이 회복되어져야 합니다. 오히려 퐁요로움 속에 영혼은 더욱더 빈곤해지고 공허해졌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삶은 더 깊은 절망의 나락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다시 성령의 은혜를 회복해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이 임해서 내 마음에 기쁨이 다시 샘솟듯이 솟아오르는 은혜가 우리에게 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우리가 들여다보면 어디에 지금 와 있는지 여러분이 알 것입니다. 기쁨이 사라지고 감사가 사라지고 열정이 사라진 나의 모습을 주 앞에 회개해야 합니다. 주님, 다시 회복하기 원합니다. 처음 예수를 믿었을 때, 그 은혜 받았을 때의 모습을 다시 회복하기 원합니다. 눈물로 기도하며 주님 앞에 찬양했던 그 모습을 회복하기 원합니다. 오늘 주님 앞에 간절히 주님께서 우리를 회복시켜 주시도록, 회개의 영을 주시고 회복의 영을 주시도록 통성으로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주여, 주여, 주여! (통성기도) <복음성가 : 성령님 내게 오소서> 성령님 내게 오소서 기도드립니다. 권능과 능력으로써 나에게 채우소서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성령의 은혜가 우리에게 다시 임하길 원합니다. 우리가 처음 은혜 받았을 때 모습으로 돌아가기 원합니다. 눈물, 콧물 쏟으며 주님을 찬양하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던 그때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하시고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신앙의 열정을 회복시켜주시고, 주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다시금 우리 마음속에 회복되어져서 우리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주님을 섬기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형식적인 신앙, 나태해진 신앙, 그리고 감사, 감격이 사라진 신앙을 이 시간 다시 회복하여서 우리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우리 주 앞에 우리 자신을 드려 헌신할 수 있도록, 주님, 은혜를 베풀어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성령님 내게 오소서 기도드립니다. 권능과 능력으로써 나에게 채우소서 <설교말씀> 할렐루야. 성령의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오늘은 에스겔 36장 25절로 28절 말씀을 가지고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길 원합니다. 제목을 한 번 따라해주세요.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사랑이 무한하신 하나님께서는 한 번 택한 하나님의 자녀를 절대 버리지 아니하시고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영원토록 돌보시고 지키시고 그의 삶을 인도해주십니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선택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예정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웬일인지 웬 은혜인지 그 하나님의 선택 속에, 예정 속에 구원받아 오늘 이 자리에 있게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이요, 기적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끊임없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숭배하고, 말씀을 거역하고, 주님을 떠났지만, 주님이 또 용서하시고, 또 용서하시고, 또 용서하시고 그들을 품어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이 통일왕국을 이룬 것은 다윗 때 그 왕국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첫 번째 왕 사울에 이어서 두 번째 다윗왕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모든 땅을 회복하고 통일왕국을 이루고, 그 다음 솔로몬 때까지 그 왕국이 이어져갑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나라는 1대, 2대, 3대까지 하나 되었다가 아들 르호보암 왕 때, 4대 왕 때, 나라가 반이 나누어집니다. 그래서 북왕국을 이스라엘이라고 하고 남왕국을 유다라 부르게 됩니다. 그런데 북왕국 이스라엘은 나뉘어지고 난 후 모든 왕들이 우상을 숭배하며 하나님을 등졌습니다. 온 백성이 타락했습니다. 그래서 주전 922년에 남북이 나누어졌는데 200년 후에 주전 722년에 앗수르에 의해서 북왕국 이스라엘이 멸망을 당합니다. 남왕국 유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우상을 숭배하고 죄짓고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얼마 가지 않아서 주전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을 당합니다. 그리고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는데 그곳에서 가서 70년 포로 생활을 하게 됩니다. 끌려갔던 일대의 그 귀족들 손주들이 죽고 자손이 또 태어나고 또 태어나면서 그들은 눈물로 탄식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셨나, 우리가 예루살렘에서 주님을 찬양하는 그때가 그립도다. 하나님이 영원히 우리를 버리셨는가? 떠나셨는가?” 눈물로 지새울 때 하나님께서 그 눈물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을 회복시켜주셔서 70년 만에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오게 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해주셔서 우리가 죄짓고 불의하고 방탕해서 먼 길로 갔다고 할지라도 눈물로 회개하고 돌이키면 다시 품어주시고 용서하여주시고 새사람으로 만들어주시고 회복의 은혜를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1. 정결함의 은혜 그 회복의 은혜 첫 번째가 정결함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게 이스라엘과의 언약을 지키시고 그들을 회복시켜 주시는데 먼저 그들을 주께 돌아오게 하시며 정결함의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에스겔 36장 25절은 말씀합니다.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스로 타락했습니다. 바알과 아세라 신을 섬기면서 각종 우상을 섬기면서 죄짓고 불의하고 방탕한 삶을 살았습니다. 온 국민이 하나님의 품을 떠난 것입니다. 그들의 삶은 죄로 얼룩졌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이 눈물로 회개할 때 그 죄의 얼룩들을 지워주시고 정결케 해 주시고 다시 주님 자녀로 그 품에 안아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스스로 회복할 능력이 없어요. 주님께서 저들에게 정결함의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그 은혜로 말미암아 저들이 회복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가 죄로 얼룩진 채로 나올 수가 없습니다. 정결 의식을 통과해야만 주님 앞에 나아올 수가 있습니다. 민수기 19장 20절은 설명합니다. “사람이 부정하고도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면 야훼의 성소를 더럽힘이니 그러므로 회중 가운데에서 끊어질 것이니라 그는 정결하게 하는 물로 뿌림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부정하니라” 주님 앞에 나올 때 정결하게 하는 물로 뿌림을 받아야 한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 스스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죄,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은 그 모든 잘못의 죄,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한 죄, 서로 미워하고 분노하고 시기하고 다툰 죄, 음란 방탕한 죄, 원망한 죄, 남을 짓밟고 무시한 죄, 이 모든 죄가 우리 삶 가운데 뿌리를 내려서 우리는 죄 덩어리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이 같은 죄로 얼룩진 우리들이 주님 앞에 회개하고 나올 때 정결의 물을 뿌려서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서 정결하게 만들어주시고 주님의 사랑의 품에 우리를 안아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깊은 상처, 아픔, 슬픔 외로움, 절망을 주님께서 씻어주시고 우리 마음에 주님의 평안함과 위로와 기쁨을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이 정결하게 하는 물이 무엇이냐?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인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19절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주님 앞에 나올 수가 없습니다. 예수의 보혈의 능력으로 보혈의 능력으로 죄 사함받고 주 앞에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는 우상숭배의 죄를 우리 삶 속에서 씻어내야 합니다. 우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우상입니다.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면 돈이 우상이고, 하나님보다 권력을 더 사랑하면 권력이 우상이고, 하나님보다 인기 명예를 더 사랑하면 그 인기와 명예가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우상의 핵심은 바로 납니다. 내가 돈을 더 사랑하고 내가 권력을 더 사랑하고, 내가 명예를 더 사랑하고 내가 인기를 더 사랑하기 때문에 나라고 하는 우상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으면 우리는 늘 나라고 하는 우상 앞에 무너질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교만하고 탐욕으로 가득한 나를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예수의 보혈로 씻어 정결함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주 앞에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님만이 나의 모든 것 되십니다.”라고 고백할 때 정결함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의 피로 우리 마음의 상처, 슬픔, 원망, 섭섭함, 분노, 미움, 교만, 탐욕을 다 씻어내면 우리의 영의 눈이 밝아져 우리 주님을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 8절에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이와 같은 은혜가 임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이 보이지 않고 우리 주님만 보이게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과 나는 간곳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그와 같은 은혜가 임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날마다 정결하게 하시는 예수의 보혈의 능력을 날마다, 순간마다 의지해서 우리의 모든 상처와 아픔과 더러운 죄를 씻어내고 주님의 보좌 앞에 더 가까이 더 가까이 더 가까이 나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성령의 은혜 정결함의 은혜가 임하고 난 다음 둘째로 우리에게 임하는 은혜가 성령의 은혜인 것입니다. 에스겔 36장 26절은 말씀합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정결함을 받은 다음 그 깨끗하게 빈 마음의 그릇에 성령이 임하시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성령이 임하시냐? 정결한 마음을 가진 자에게 성령이 임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우리의 생각이 달라집니다. 우리 삶의 모습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왜 우리 삶의 문제가 많으냐? 성령이 임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고, 왜 성령이 임하지 않느냐? 우리가 해결되지 않은 죄의 모습이 우리 마음속에 둥지를 틀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원망과 불평과 미움과 섭섭함과 분노와 아픔과 상처의 모든 찌꺼기들을 우리 마음의 그릇에서 비워내야 합니다. 예수의 보혈로 그것을 깨끗이 비우고 그 빈 그릇에 성령의 은혜가 충만하게 임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령이 임하면 우리가 새 마음을 갖게 되고 새로운 모습으로 주님을 섬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늘 미워하고 분노하고 속상해하고 상처받고 살던 우리가, 기뻐하고 감사하고 즐거워하고 주님을 찬양하는 모습으로 변화되어서 내가 만난 모든 사람을 주의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임해야 합니다. 성령은 예수님과 같은 영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혜사로 오셨습니다. 보혜사는 옆에서 도와주는 분인데 예수님이 마지막 만찬 자리에서 저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가면, 나와 똑같은 보혜사 옆에서 너희를 도와주는 성령을 보내주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성령님은 예수님과 동일하신 분입니다. 성령이 우리 마음 가운데 임하시면 성령이 우리 마음 가운데 굳은 마음을 깨뜨려 주셔서 우리 모습이 예수님 모습을 닮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이 예수님의 생각처럼 바뀌어지게 하시고, 우리의 말이 예수님의 말처럼 거룩해지게 바꿔지게 만들어 주시고, 우리의 성품이 예수님을 닮은 성품으로 온유와 겸손을 옷 입고 변화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은혜가 임하지 않으면 우리 마음은 이미 딱딱하게 굳어져서 굳은 마음으로 늘 좌충우돌하며 문제투성이의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단단한 땅에는 아무리 비가 내려도 옆으로 다 흘러버립니다. 그 단단한 땅을 부서뜨려서 갈아엎어서 부들부들한 땅이 될 때 비가 내리면 비가 촉촉이 그 속에 스며들고 그래서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자라서 열매 맺게 되는 것처럼 우리 굳어진 마음이 성령의 방망이로 두둘겨서, 갈아 엎어서 옥토같이 부드러워 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부드러워지면 주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은혜의 단비가 내려 우리 마음속에 은혜의 단비가 신앙의 뿌리를 내리게 하고 아름다운 신앙의 꽃을 피우게 만드는 것입니다. 강한 믿음의 사람이 되게 만들고 꿈과 소망의 사람이 되게 만들고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얼마나 강하고 고집스러운지 모릅니다. 사람들이 다 제 잘난 맛에 사는데 예외가 없지요. 자아가 강할수록 부딪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 사람은 여기 가서도 부딪히고 저기 가서도 부딪히고 저기 가서도 부딪혀요, 왜 자아가 강하니까 여러분 예수님 믿고 나서 성령충만 받으면 조금 바보처럼 사는 게 좋습니다. 뭐 유행가 가사처럼 ‘난 바보처럼 살았어요’ 그게 아니고 내가 좀 손해 보며 산다는 것입니다. 좀 손해 보면 어때요. 그걸 아득바득 따져가지고, 계산을 해서 내가 반드시 내가 이겨야 되고, 내가 내 것을 취해야 될 필요가 뭐가 있습니까. 우리 주님 다 아시는데. 지나가는 인생길에서 우리가 마음이 편하고, 기쁘고, 즐겁고 감사한 것이 전부이지 그냥 다투고 싸워서 악착같이 이겨야 되고, 악착같이 내 주장을 해야 되고, 그래서 마음이 편해질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마음이 더 불편한 마음을 낫게 되고, 더 많은 갈등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주님이 우리를 바꾸시는 것입니다. 사랑의 사람으로 만들고 온유의 사람으로 만들고, 겸손의 사람으로 만들고, 양보하고 베푸는 사람으로 만들고 큰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주셔서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 마음에 늘 깨달음을 주십니다. 잘못된 길을 갈 때, 내가 분노하고 미워하고 다툴 때 성령이 우리 마음에 채찍질하셔서 깨닫게 하시고, 돌이키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성령이 탄식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 나와야 됩니다. 죄와 싸워야 합니다. 싸워 승리해야 합니다. 절대로 뒤로 물러가면 안 되는 겁니다. 에베소서 5장 18절은 말씀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성령충만의 복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밤낮 쓰러지고 넘어지고 상처받고, 미워하고 분노하고 다투며 살지 말고 성령충만 받아서 이기고 또 이기고 또 이기며 믿음의 큰 용사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며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1903년 원산 대부흥운동을 이끌었던 하디 선교사님 이 분은 캐나다의 유명한 이과대학인 토론토 의과대학 졸업생입니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서울대쯤 되겠죠. 그래서 늘 ‘내가 이렇게 엘리트다. 내가 이렇게 명문대학의 이과대 학생인데 내가 한국에 선교하러 왔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을 좀 무시했습니다. 이 배우지도 못하고, 가난하고, 내가 이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베풀러 왔지 그렇게 교만한 마음을 갖고 와서 사역을 하니까 열매가 맺어지지 않아요. 원산과 강원도 지역을 다니면서 선교를 했는데, 그 사역을 시작한 다음 해에 첫째 아이가 죽고, 1893년일 겁니다, 아마. 그리고 10년 후에 둘째 아이가 죽습니다. 그니까 한국에 와서 아이 둘을 잃었어요. 근데 1903년 중국에서 사역하던 화이트 선교사님이 오셔서 “우리 선교사들끼리 모여서 좀 기도회를 갖자.” 그래서 기도회를 갔는데, 각기 돌아가면서 한 시간씩만 말씀을 전하자 그래서 하디 선교사님께 준 주제가 기도에 대해서 말씀을 한 시간 전해주세요. 쉽게 말하면 선교사 수련회를 가진 겁니다. 그래서 하디 선교사님이 본인 전하는 말씀을 준비하면서 성경을 읽는 가운데, 누가복음 11장 13절의 말씀이 그의 마음에 팍 레마로 뛰어 들어왔습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이 말씀을 읽을 때 그가 눈몰 콧물이 쏟아지면서 성령의 불이 떨어졌습니다. 성령이 임했습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 눈물을 흘리며 회개합니다. 그의 교만과 고집과 그의 완악함을 회개했습니다. 백인문화의 우월감으로 한국인을 무시한 것과 자신의 능력만 믿고 자기를 자랑했던 그 모습을 회개했습니다. 성령께서 “너의 그 받은 은혜를 그대로 선교사들에게 고백을 해라.” 그때 이렇게 그 모습을 회상합니다. 성령이 내게 오셨을 때 성령의 첫 요구는 나의 선교사 생활의 대부분을 함께 보냈던 선교사들 앞에서 나의 실패와 그 실패의 원인을 시인하게 하시는 것이었다. 동료 선교사들 앞에서 자기의 부끄러움을 고백한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눈물로 내가 이렇게 교만해서 하나님이 나를 책망하시고, 내 선교사의 삶에 열매가 없었다고 고백할 때 선교사들 모두에게 성령이 임해서 성령충만 받고 눈물로 기도하며 큰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 은혜를 하디 선교사님이 성도들에게 나가서 그대로 이야기 했습니다. “내가 교만했습니다. 내가 우월감을 가지고 여러분을 업신여기고 깔봤습니다.” 눈물로 회개할 때 성령의 불이 떨어져서 모든 성도들이 다 성령의 불을 받게 변화되었습니다. 그래서 원산교회에 큰 부흥이 일어나서 그 교회가 3년 만에 3배로 부흥했습니다. 할렐루야! 이 부흥의 열기가 1907년 평양에 이르러서 평양대부흥 운동을 일으키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던 것입니다. 후에 언더우드 선교사가 이 사건을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한국교회 대 부흥운동 그 첫 출발점은 적어도 원산의 한 남 감리교 선교사 가운데 한 사람 하디의 영적체험 성령체험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이 성령충만인 것입니다. 반드시 성령충만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4장 31절은 말씀합니다.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면 굳은 마음이 부드러운 마음이 되고, 우는 마음에 기쁨과 감사함이 넘쳐나고, 죄악의 모습이 사라지고, 강하고 담대한 믿음의 사람이 되고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헌신하는 주님의 일꾼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3. 말씀의 은혜 성령의 은혜와 함께 우리에게 셋째로 임하는 것이 말씀의 은혜입니다. 성령의 은혜와 말씀의 은혜는 분리될 수가 없습니다. 성령의 은혜가 임하는 곳에 말씀의 은혜가 있고 말씀의 은혜가 임하는 곳에 성령의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에스겔 36장 27절은 말씀합니다.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 생활을 하면서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왜 우리를 떠나셨습니까? 왜 우리를 버리셨습니까?.” 눈물로 기도하던 가운데 저들이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아 우리가 생명보다 귀한 하나님 말씀을 떠났구나. 하나님 말씀을 저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떠나셨구나.’ 그래서 다시 그들이 말씀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우상을 숭배하며 우상을 따라갔던 저들이 회개하고 말씀으로 돌아오고 말씀으로 따라갈 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70년 만에 고국에 돌아와서 주님을 찬양할 수 있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A.D 70년에 로마의 디도 대장에 의해서 이스라엘이 완전히 망합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이후에 40년 만의 일입니다. 완전히 망해서 이스라엘 나라는 역사 가운데 사라져버린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1900년 동안 전 세계를 떠돌아다니면서 제일 먼저 한 것은 그들이 정착한 그 지역의 한가운데 회당을 세우고 그 회당을 중심으로 함께 모여 살았는데, 그들이 말씀의 은혜를 회복한 것입니다. 그들이 아침마다 모여서 말씀 묵상하고 회개하고 말씀대로 살기를 소원했습니다. 그 말씀이 1900년 동안 흩어져서 살던 이스라엘을 붙들어 주었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한 것입니다. 1948년 5월 14일 정말 기적적으로 세계 역사 가운데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큰 기적을 은혜를 이스라엘이 체험했는데, 옛 영토를 회복하고 돌아가서 이스라엘이 독립하게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어떻게 1900년 동안 자기 나라를 떠나 살다가 1900년 만에 돌아와서 그 땅을 달라고 그러는데 그 땅을 누가 내놓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일하신 것입니다. 그때 말씀 붙잡고 1900년 동안 주님만 의지했기 때문에 1900년 만에 그들이 살던 가나안 땅으로 그들을 돌려보내 주시고 이스라엘의 놀라운 독립의 축복을 맞게 해 주신 것입니다. 그 땅에서 1900년 동안 쫓겨난 사람들이 “왜 우리 땅에 갑자기 들어와 내 땅이라고 우리를 쫓아내느냐?.” 그래서 그들과 대항하고 싸우고 있는 그룹이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Palestine Liberation Organization)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1900년 동안 살다가 쫓겨나니까 내 땅 물어 내놓으라고 그들이 늘 공격해 오고 있는 것입니다. 어찌되었던 간에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땅이 맞으니깐 하나님이 돌려주신 거예요. 가만 생각해 보니까 만주 저 넓은 땅이 우리나라 땅이었는데. 중국한테 내놓으라고 하면은 한 평도 아마 안 내놓을 겁니다. 그래봤자 1300여 년 밖에 안 지났는데 말이죠. 하나님 그렇게 역사하신 것입니다. 말씀을 지켰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것입니다. 시편 119편 103절입니다.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과 동행하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날마다 말씀의 은혜로 새로워지길 바랍니다. 말씀의 은혜 가운데 주님을 만나고 새로워지고 영적으로 재무장하여서 큰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늘 말씀을 묵상하는 큐티(Q.T) 시간을 가지고 경건의 시간을 가지고 주님과 동행하십시오. 그리고 내게 주신 말씀을 꼭 붙잡고 그 말씀과 동행하며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이사야 41장 10절 말씀은 올 한해 여러분에게 주신 말씀으로 마음에 품고 말씀 묵상하고 또 고백하고 또 고백하고 또 고백하고 또 고백하면서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을 우리 다 같이 고백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너를 붙들리라! 할렐루야! 야곱이 형의 미움을 받아서 정처 없이 집을 떠나 먼 길을 갑니다. 그 길이 20년 길이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 외롭고 힘들고 먼 길을 갈 때 주님께서 주신 말씀이 창세기 28장 15절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할렐루야!!”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면서 두 가지 음성을 듣습니다. 하나는 세상이 우리에게 주는 세상의 음성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이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선택은 여러분이 하는 것입니다. 늘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 길을 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음성은 사람을 통해 들려오는데 우리에게 염려를 가져다주고 걱정을 가져다주고 불신을 가져다주고 미움을 가져다주고 분노를 가져다주고 상처를 입히고 우리를 절망에 빠지게 만듭니다. 그게 세상의 음성입니다. 세상의 음성이 우리에게 위로와 만족을 줄 수 없습니다. 주님의 음성만이, 주님의 음성만이,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이 주님의 음성만이 우리를 영원토록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만들 것입니다. 절대로 말씀으로부터 멀어지지 말고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의 음성 앞에 순종하고 헌신하며 믿음의 길을 가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결론의 말씀에 에스겔 36장 28절에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이제 우리는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의 땅에서 하나님의 존귀한 백성이 되어 주님과 동행하며 믿음의 전진, 전진 또 전진해나가게 될 것입니다. 온 천지는 변해도 일점일획 변치 않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믿음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고 붙드시고 버리지 아니하게 하시겠다는 그 말씀 감사합니다. 우리는 작고 상처받고 흔들리고 낙심하는 연약한 모습 속에서 고통 가운데 살아왔습니다. 주님 용서하여 주옵소서. 너무나 세상의 음성을 많이 들어서 우리 인생이 너무나 힘들어졌습니다. 오늘 이후로 주님의 음성만 듣게 하여 주옵소서.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내가 너를 붙들리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약속의 말씀 붙잡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 또 전진해서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 믿음의 사람, 기적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