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폿집 순례기, 시간날 때 심심풀이 땅콩으로 읽으시라....
봄 : 사람의 향기에 취하다.
1.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서울 광화문 소문난 집)
- 광화문 교보문고 뒤, 청진동 주변에 오면 그곳에서 술마시던 시인 박인환이 생각난다. 그, 박인환 은 ‘목마와 숙녀’와 - 한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 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 ‘세월이 가면’ -지금 그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를 남기고 사라져 갔다.
- 그의 허무주의와 페이소스가 남겨진 그곳에 문인들이 많이 가는 대한민국 최후의 대폿집인 ‘소문난 집’이 있다. 그 집은 세가지로 놀란다. 첫째는 너무 작고 누추한 집이라서, 둘째는 술손님의 면면이 시인, 예술가 등 너무 화려해서, 셋째는 주모의 인품과 미모에 놀래서
- 낡은 바라리 코트의 깃을 곧추세운 채 인생의 슬픔과 절망과 희망, 사랑, 그리고 문학과 예술을 절박하게 토로하던 시인의 모습을 그대로 닮은 손님들. 담배연기는 안개처럼 허공을 소리없이 점령한다. 그 속에서 막걸리는 장마같이 넘쳐흐른다.
2. 나도 이제 ‘사한량’이다(전남 순천시 남원골)
- 인정을 마시고, 흥에 취한다, 인생의 풍류를 즐길 줄 아는 것이 한량의 소임이라면, 술 한잔과 구성진 판소리 창에 한껏 취하는 것이 어떤가? 남도의 산야는 그저 바라만 보는데도 눈물이 날 지경이다.
- 동편제는 섬진강을 중심으로 동쪽인 남원, 운봉, 구례, 순창 등지의 소리, 남성적이며 담백 웅건하고 산천이 떨듯한.... 서편제는 섬진강 서쪽인 광주, 보성, 나주, 곡성, 해남, 강진, 완도 등지를 중심으로 한 애조띤 여성적인 소리로서 기교가 뛰어나고 화려한 표현력
- 방 한쪽에 아쟁과 가야금, 북과 장구가 놓여 있다. 북채는 탱자나무를 손으로 깎아 만든 것이다. 이곳에서는 서로를 ‘김한량’, ‘이한량’이라고 보낸다. 한량이 ‘멋을 알고 풍류를 안다’는 존칭쯤 된다. “잘한다!”, “얼씨구!” 대폿집 소리꾼은 더욱 신이 나서 열창하고, 좌중은 추임새로 화답한다.
- 동탁 조지훈선생의 주도유단론이 걸작이다. 최저 9급에서 최고 9단까지 있는데 例를 들어 9급 不酒 : 술을 아주 못 먹진 않으나 안먹는 사람...-> 9단 廢酒 ; 술로 말미암아 다른 술 세상으로 떠나게 된 사람을 가리킨다.
3. “얼마나 놀라운가. 번개를 보면서도 삶이 한 순간인 걸 모르다니...”(서울 종각 앞 남원집)
- 인사동의 주점소개 : 부산식당은 화가들의 전시회 뒤풀이 장소로 유명하다. 주문받은 후에 밥을 짓는다. 이모집이나 완자무늬도 미술인들이 즐겨찾는 집이며 고구령, 작은 뜨락도 신흥 대폿집이다. 시인통신은 문인, 예술가들이 주로 드나든다.
- 술은 많은 걸 잊게 해준다. 창작의 긴장도, 예술에 대한 좌절도, 생활의 고단함도, 그리고 분노와 소외와 외로움과 권태도...
- 허무하게 사라진 눈꽃같고 봄날의 한바탕 꿈같고 새벽녘의 이슬같은 것이 인생인가? 몸뚱이는 사라져도 예술만은 살아남기를 바라지만, 그것도 부질없는 망상일지도 모른다. .... 그저 버리고 갈 뿐
4. 사람사는 곳이다(전남 여수시 공화동 말집)
- 일제시대 곡물 수탈할 때 곡물을 운반하는 말을 주위에서 길렀다 해서 말집이라 함.
- 하루종일 일하면서 쌓인 목구멍 먼지를 돼지껍질과 막걸리로 씻어낸다.
- 위치 : 여수가 고향인 사진작가 배병우가 여수 안팎 750군데 주점 가운데 최고로 꼽는 집으로서 여수에서 오동도 쪽으로 가다가 공화동 샹보르호텔(구 세종호텔)에서 옆 골목길로 150m 쯤 올라간 곳, 언덕 위 양지바른 곳
여름 : 햇빛 쏟아지던 날들
5.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서울 종로 5가 광장시장)
- 오순네, 강경할머니네, 완도집, 명자네, 광주집, 안나의 뜰, 할머니집, 녹두빈대떡집, 회원조집, 그리고 ‘목포의 눈물’을 불어대는 하얀얼굴의 색소폰 할아버지
- 위치 : 종로 5가 보령약국 건너편 광장시장 좌판 골목으로 들어서 청계천로까지 약 240m에 이르는 종축, 또 중간을 가로지르는 횡축으로 무려 600여개의 좌판들이 폭 10m 골목에 두줄로 들어서 있다. 우리나라 최고 최대의 대포집 촌이다.
6. 그랬다면 당신은 세상 헛산 것이여(전남 광주시 영광할매집)
- 홍어! 세치 밖에 안되는 입 안의 혀로 느끼는 맛이 뭐가 요렇게 다르다냐? 고놈 참 지리고 지리다. 이 지독한 냄새를 사람들은 좋다고 환장을 하니. 더군다나 가격도 허벌나게 비싸네 그려. 알쏭달쏭한 게 홍어 맛이다.
- 세상에서 진짜 맛있는게 홍어맛이다. 그걸 모르고 인생 하직한다면 난센스다. 맛만 좋은 게 아니라 몸에도 좋단다. 고혈압, 비만, 변비, 기관지, 당뇨, 관절염... 삭힌 홍어 맛은 분명 한국에서만 나는 맛이고, 그 맛은 전라도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전라도 음식은 한국의 맛, 한국의 자랑이다. o 홍어 맛의 진수는 첫째 코, 둘째 애(간), 셋째 날개, 넷째 살, 다섯째 뼈
- 어느 시인이 말했단다. “막걸리 한 사발에 홍어회 한 점, 그 홍탁이라는 유명한 전라도 음식을 아직 못 자셔보았는가? 그랬다면 당신은 세상 헛산 것이여...”
- 서울에서는 세종문화회관 뒤 ‘신안집’, 인사동 ‘홍어가 막걸리를 마셨을 때’, 종로 3가 ‘무주집’, 노량진 ‘여수식당’, 안국동 헌법재판소 뒤 ‘목포집’ 등이 있다.
7.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경북 예천 삼강리 나루터주막)
- 낙동강 가는 길은 꿈속 같다. 도로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물안개가 자욱했지만, 계속해서 나는 고요한 대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안개 속에 선 집들과 밭과 숲들이 모두 고독하게 홀로 있을 뿐이다. 그렇게 낙동강 1300리 하나 남은 마지막 주막...
- 지금은 나루터가 쓸쓸하다. 자동차가 다니면서 손님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할머니 혼자 사는 방에는 시집올 때 해온 이불이 까맣게 녹슨 형광등 갓 밑에서 초라하지만 단정하게 개어져 있다. 70년이나 된 골동품 같은 이불이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체취를 그리워 함인가. 할머니에게는 여전히 원앙금침이다.
- 마지막에 들린 부석사에서 본 글씨가 인상에 남는다. 공양간에는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버리고 건강을 유지하는 약으로 알아/ 도를 이루고자 이 음식을 받습니다’ 또 해우소에는 ‘버리고 또 버리니 큰 기쁨일세/ 한조각 구름마저 없어졌을 때/서쪽에 둥근 달빛 미소지으리/
가을 : 마시자 한잔의 추억...
8. 왕대포 엘레지(대구시 남산동 도로메기집-도로메기는 도루묵의 방언)
- 술과 음식이 홍수처럼 넘쳐나는 지금은 오히려 단순하고 조금은 결핍된 분위기가 그리워진다. <여로>의 태현실이 하던 국밥집처럼 단출하면서도 따뜻한 맘씨의 주모가 있고 추억이 묻어있는 음식이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9. 나도 행복의 나라로 갈테야(부산시 중앙동 남원골 부산포)
- ‘행복의 나라로’를 작곡한 한대수는 핵물리학자와 음악가 사이의 부유한 외아들로 태어났지만 부친이 의도적으로 17년간 종적을 감추는 바람에 외로움 속에 방황을 거듭했다. 그는 특히 초등학교 때 미국으로, 중고등학교를 부산에서 다니고 다시 미국으로, 다시부산으로... 떠돌아다녔다. 그가 꿈꾸는 것은 항상 ‘장막을 걷어라/ 너의 좁은 눈으로 이 세상을 떠보자.......’였다. 그는 낙원으로 탈출하고자 했다. 그곳은 부산인가?
- ‘아잖없 수 갈 냥그(그냥 갈 수 없잖아)’는 독립운동가이며 작곡가인 한형석선생의 글씨다. 이곳은 주모가 괴팍한 예술가들을 좋아해서 부산의 대부분 예술가들이 모이는 장소이다.
- 동동주는 25년 전부터 한 집에서 만든 걸 받아 먹는단다. 1되 반들이 동동주 한 통이 얼마인지 알고 있는 손님은 아무도 없다. 같이 합석한 손님들이 모두 20년 넘께 다닌 단골이어선지, 부르는게 값이다. 손님이 일어설 줄 모르면 주모는 그냥 자기 방에 가서 잠들어 버린다. 그러면 손님들이 알아서 계산하던가, 쪽지에 내역을 적어 넣는다.
10. 지나간 것은 항상 그리워지는 법이니...(서울 혜화동 할머니집)
- 혜화동 로터리에서 서른 걸음쯤 성북동 쪽으로 걷다보면, 왼편에 ‘할머니 왕대포’라는 대폿집이 있다. 산허리에서 만난 찔레꽃처럼 ‘왕대포’라는 이름에 마음이 설레었지만 그곳은 너무도 초라했다.
- "한잔 하세요“라며 빈 의자를 내준 이가 다짜고짜 내게 막걸리 잔을 권한다. 마치 한참 전부터 나를 기다린 듯, 그리고 오래 전부터 아는 사이인 듯 자연스럽게 잔에 술을 붓는다. 술잔을 채워 준 이의 눈길 때문에 단숨에 들이켰다. 이 한잔 술에 내 눈동자는 이미 달아올랐다. 받은 잔을 다시 돌려주고 술을 따르고... 그렇게 시나브로 대폿집 안의 손님들과 아는 사이가 되었다.
- 합석한 손님의 양복 옷깃에서 묵은 때가 번질거린다. 궁핍과 자존이 함께 보였다. 연극배우는 물론이고 이 자리의 모두가 녹록치 않은 삶일 것이다. 그래서 나름의 어둠을 털어버리려 열심히 잔들을 비운다. 황혼이 내린 골목길의 대폿집에서 마시는 막걸리는 푸슈킨의 시를 읽었을 때처럼, 마음속의 슬픔과 노여움을 둔하게 만든다. 이 시처럼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슬픔의 날을 참고 견디면/ 머지 않아 기쁨의 날이 오리니...’
11. 브라보, 브라보, 나의 인생아!(부산 자갈치 시장 영도다리 주막)
- 이 주막의 좌석은 모두 노천이다. 바닷가 둑 덕에 자연스럽게 야외 식탁에서 마시는 셈이다. 야외용 탁자가 서너 깨쯤 있지만, 이쪽이 훨씬 운치있게 느껴진다. 방파제 한쪽으로 상을 차렸다. 내 발끝을 향해 파도들이 살살 밀려온다. 갈매기들은 눈앞에서 너울대고 부드러운 바닷바람은 연신 내 머리칼을 쓰다듬는다.
- 사는게 답답한 이들이여, 여기 와서 저 불빛 좀 쳐다보라. 술 한잔 들이켜고 파도소리, 바람소리, 갈매기소리, 뱃고동소리, 들리는 온갖 소리에 귀 기울여보라. 바다에 별빛 떨어지는 소리까지... 화려한 향연이 있는 곳, 권태와 우울이 날아간다.
겨울 : 낭만에 대하여
12. 그래도 사발주는 돌아간다(서울 고대앞 고모집)
- 대폿집의 의미는 ‘어우러짐’과 ‘나누어짐’의 차이이다. 대폿집은 칸막이가 없고, 누구든지 안쪽부터 앉게 되니 한쪽만 끼리끼리 놀 수는 없다. 같이 노래도 하고 그래서 유대감도 가지고 돈도 나누어내고, 대폿집에선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서로의 문화가 이루어진다
- 눈이 내린다. 수백만, 수억만 발의 눈이 화살처럼 나를 향해 맹렬히 쏟아진다. 눈은 내 몸에 하얗게 꽂혀 깊이 박히고 만다. 그것은 추억이라는 이름의 화살이다.
13. 그리움이 있어 아름다운 그곳(속초시 청호동 아바이 마을 단천식당)
- 대폿집 풍류엔 여러 종류가 있다. 술에 대한 풍류, 주모와 찾아오는 손님에 관한 풍류, 주변 풍경에 관한 풍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빠질 수 없는 것은 맛의 풍류다.
- 속초 청초호의 수로를 건너면 거기가 속초시 청호동 아바이 마을이다. 1.4후퇴 당시 남하하는 국군을 따라 내려온 함경도 사람들이 고향에 가지 못하고 정착하여 만든 동네다. 고향에 곧 돌아갈 줄 알고 고향에서 가까운 이곳에서 잠시 머무르게 되었다.
- 단천식당의 가자미식해는 맛이 예사롭지가 않다. 식해란 젓갈의 사촌쯤 되는 음식으로, 계절에 맞는 생선의 내장을 제거한 다음 토막을 치고 좁쌀, 찹쌀 등으로 만든 밥과 새콤한 양념을 버무려 삭힌 것이다.
- 한밤 중, 청호동 아바이마을의 불빛이 사라진다. 꿈속에선 고향이 있는 함경남도 단천과 북청에 갈 수 있는지, 그럴 수만 있다면 당연히 서둘러 잠을 청해야겠지. 고향을 찾아 떠나는 연락선의 뱃고동 소리는 언제나 들릴까? 괜스레 성질난 파도만 불꺼진 아바이 마을을 시끄럽게 한다. 우르릉 꽝꽝...., 처얼썩 꽝꽝....
14. 오~매 징하게 취해부럿네(전남 강진읍 장터주막)
- 강진장의 역사는 무려 2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요즘 장은 현지 생산물보다 공산품들이 더 많은데 강진장은 풍요로운 전남의 삼평(함평, 남평, 창평)과 주변 평야에서 수확한 농산물과 남해 청정수역에서 건져올린 싱싱한 고기전의 생선들이 신선도를 뽐내며 좌판에 누워있다.
- 휘청휘청 술에 취해 읍내 군청 옆에 있는 ‘영랑생가’를 찾았다. ‘오매 단풍 들것네’, ‘모란이 피기까지는’ 등으로 유명한 서정시인 영랑 김윤식이 태어난 곳이다.
15. 대폿집 만세!(제주 탐동 잠녀 주막)
- 제주도, 파도의 거품을 걷어내면서 사람들은 저마다 살아온 이야기, 살아갈 이야기를 고스란히 바닷새에게 전해주었다. 바닷새는 전해들은 사연들이 너무 무거워 섬을 떠나지 못해고 언전가는 딱딱한 돌덩어리로 굳어 버릴 것 같았다.
- 잠녀는 해녀란 뜻이다. 제주의 바다에선 소주를 마셔야 한다. 그것이 어울린다. 한라산 소주라면 더욱 좋다. 봄 여름엔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어 잔, 가을 겨울엔 소라 한점에 소주 두어 잔, 그게 제격이다.
첫댓글 전국 각지로 어지간이도 다니셨군 박대감은 역시 풍류객 이셔..황진이가 환생한다면 박대감부터 보자고 달려들것같군
정말로 여기 다 다녀봤다는 이야기야??????????????????
대폿집 품평회를 보는듯..올리신 글 너무나도 잘 읽었습니다. 박정식 감사님의 정열적인 막걸리에 대한 예찬론 같기도 하고요...다 가본곳 인가요?
박삿갓?? ...오늘의 입담은 그냥나오는게아니구려~~ 먹지못하는막걸리소리들으니 옛생각나는구려지금은없어졌지만혜화동로터리에서 삼선교쪽으로가다보면 높은 축대아래 "석굴암"이란 굴속주점이있었는데.. 통금이있던 추운 70년 12월 어느날 잘알고지내던 강 모 선배님 그날도 같이 저녁을 거기서 보냈는데.. 다음날 아침에... 세상에 안계시더라구요...
ㅎㅎ 석굴암 생각납니다
???는 뉘신가요???/ 갑갑합니다.
나도 물어보고 싶었어...ㅎ
s 종전 해외에서쓰던 컴퓨터의 내것하고 유사하내 누가 또 남의것으로 모방한 모양이군 누구인지 궁금하내 운영자가 확인을 해주었으면 좋겠내요.
지나간 삶의 추억들을 마음속에서 한번더 하고십다면 정식 행복한 사람이군**계속 행복 한삶 이루어지길 바라면서**용우**/
나도 생각 나는데,,,,
이많은대포집을다가보았나!정말대단해요~~~~~~~
이실직고 합니다. 다 다닌 것이 아니고요... 여러 동기님들과 함께 다니고 싶은 곳이랍니다. 석굴암에 저도 가 보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