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총선을 앞두고 각 당의 공천 경쟁이 치열하다.
하위 평가를 받은 의원들은 과하지욕의 치욕을 견디며 경선에 들어갔다.
소하.장량과 더불어 서한 삼걸중 한명인 한신은
젊을 적 가난하여 한 마을의 정장에게 빌붙어 살 때 그는 마음속에 품은 큰 뜻이 있었기에 항상 칼을 차고 다녔다.
어느 날 불량배 하나가 그에게 시비를 걸고, "칼을 차고 다니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없는 겁쟁이 아니냐?
네놈에게 사람을 죽일 만한 용기가 있다면 그 칼로 어디, 나를 한 번 찔러 보아라.
그렇지 못하겠다면 내 가랑이 밑으로 기어 나가라!"고 하자
한신은 불량배의 바짓가랑이 밑을 기어 나왔다.(과하지욕(跨下之辱)
당연히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한신을 겁쟁이라며 마구 비웃어대고 한신은 매우 화가 났지만 꾹꾹 눌러 참았다.
훗날 초왕에 오른 한신은 신하들과 대화를 하면서 자신이 과거에 겪었던 썰을 풀었을 때 이 일을 언급하면서
"모욕을 견디지 못하고 그를 죽였다면 죄인으로 쫓겼을 것이니
바짓가랑이 밑을 기어가는 치욕을 참아 이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라고 말하였다.
초왕 한신은 그 불량배를 휘하의 중위로 임명했다.
한신에게 쫓긴 항우는 오강에서 해하가를 남기고 자결했다.
훗날 오강를 지나던 두목시인이 < 題烏江亭> 시를 남겼다.
勝敗不可 兵家期 (승패불가 병가기)
包羞忍恥 是男兒,(포수인치 시남아)
江東子弟 多才俊 (강동자제 다재준)
捲土重來 未可知.(권토중래 미가지)
승패는 병가에서도 기약할 수 없는 일
부끄러움을 안고 참는 것이야말로 대장부로다,
강동의 자제들은 재주있는 준걸들이 많은데
흙 먼지를 일으키며 다시 일어설 줄 몰랐구나
근대사에서는 수모를 당하면서도 유명한 유언을 남긴 천제루라는 여인이 있다.
장개석은 송미령과 혼인 하기전에 여러번 결혼하였다.
그 중 제2부인 천제루다.
장개석은 모복매와 결혼하여 아들 장경국을 낳았다.
천제루와 결혼하기 위하여 모복매는 본가에 내 팽개쳐졌다.
천제루 역시 송미령으로 인하여 장과 결혼한지 6년만에 배신당하여 미국으로 유학보내지고
나중에 귀국하여 1971년 홍콩에서 사망하며 장에게 유서를 남겼다.
"30년간 내가 얼마나 억울하고 분했는지 알것이다.
그래도 나는 절대로 남에게 이용당하지 않았고 네 놈과 국가의 명예를 위하여 모든 것을 감수했다."
첫댓글 만득이님의 우물같은 글
공감으로
잔잔하게 들여다 봅니다...
https://youtu.be/aS4YDuTfJ7Y?si=3swzQgrH1NHcZKa6
일본은 "한번 밀리면 끝이다."
주제의 빈곤이나 철학이나 사상의 부제는
쓸데없는 예절과 형식을 만들고 허세를
보편화 합니다.
꿈이 큰 사람은 굴욕이 가볍습니다.
외부의 상황이 자신을 침몰시키기 전에
적극적으로 어려움을 받아들이고 교훈을
얻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것이 현명하겠지요.
어떤 경우에는 사람을 어려운 환경에 처하게
하는 것이 그 사람을 위하게 되는 길이며
또 어떤 때는 나라가 치욕에 빠지는 것이
나라가 진정으로 영광으로 인도되는 경우도 될 것으로 봅니다.
나라는 그 국민의 정신이라고 봅니다.
큰 교훈이 되겠지요.
흔들리며 피는 꽃
비바람 맞으며 피는 꽃
지금은 뵐 수 없는 범능스님
https://youtu.be/hSOlbTGqdfk?si=dpmHzkHZaIfJY4Vp
도종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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