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동물의 흔적 – 겨울눈에 찍힌 발자국
야생동물의 삶이 바로 눈에 보이진 않지만, 우린 가까운 산에서 흔적을 통해 그들이 함께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야생동물의 흔적을 찾아보는 일은 그것을 전공하는 학자의 학문 분야가 아니다. 자연과 야생동물에 호기심이 많은 일반인이나 자연을 학습하는 어린이들 모두가 훌륭한 취미로 가질 수 있다.
야생동물의 흔적을 찾고 그들을 상상하는 것은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며 숲의 진실에 다가갈 수 있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야생동물의 흔적을 찾아보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몇 가지 방법이 있다. 발자국, 배설물, 시간에 따른 흔적의 변화(발자국이 남긴 흙탕물이 가라앉는 속도 등), 먹이 흔적, 털 등.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이는 겨울. 자연과 야생동물에 관심 있다면 집에서 가까운 야산으로 산책을 해보자. 비록 어떤 동물을 볼 순 없다하더라도 그들이 남긴 자취는 곳곳이 흩어져 있을 것이다. 특히 눈이 그친 다음날 간다면, 눈 위에 새겨진 다양한 암호들로 우리를 유혹할 것이다. 그 암호를 익히다보면 최종적인 주인공을 만날 날이 있을 것이다. 동물은 자신의 모습으로 존재를 표현하지 않는다. 흔적으로 살아있음을 표현한다.
발자국은 일생 동안 끊임없이 남겨지는 흔적으로서 동물의 흔적을 이해하는데 가장 기초가 된다. 발자국을 통해 종, 개체, 방향, 속도, 시간 등을 알아내는 것은 추적자의 능력을 가늠하는 중요한 요소이며 많은 경험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사냥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면 발자국을 통해 어떤 동물이 어느 쪽으로 이동했는지를 아는 것만으로도 내가 서 있는 숲을 새롭게 느끼기에 충분하며, 점차 자연을 깊게 이해하도록 이끄는 훌륭한 계기가 될 것이다. 모든 동물 종은 발 모양이 다 다르다.
따라서 발자국만으로도 어떤 동물의 것인지 대부분 알 수 있다. 이것은 동물 종마다 서로 다른 생존전략이 발 모양에 고스란히 녹아있음을 뜻한다. 따라서 “이 동물은 왜 이런 발자국이 남겨질까?” 또는 “이런 발자국을 남긴 동물은 어떤 발을 가졌을까?” 하는 호기심이 동물의 습성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지구상에 포유동물이 처음 나타난 때에는 모두 다리가 넷이고 발가락 다섯 개에 발톱이 달려있으며 발바닥으로 걸었다. 고슴도치 같은 식충류와 설치류에서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뒤꿈치를 들고 달리면 다리길이가 길어져 보폭이 커지고 땅에 닿는 발 면적이 줄어들어 더 빨리 달릴 수 있다. 나아가 개처럼 발가락만으로 걸으면 다리길이가 더 길어지고, 사슴처럼 발가락 끝에 달린 발굽으로 걸으면 다리길이가 가장 길어진다. 따라서 사슴 쪽으로 갈수록 걸을 때 쓰는 발가락 수는 줄어든다.
오소리와 곰은 발가락 다섯 개를 모두 모두 쓰기 때문에 다리가 짧고 빨리 달리지 못한다. 그 대신에 짧지만 다부진 앞발과 긴 발톱을 발달시켰다. 늑대와 호랑이는 뒤꿈치를 들고 발가락 네 개로 달린다. 그래서 곰과 오소리보다는 빠르지만 발가락 두 개로 달리는 사슴보다는 빠르지 않다. 하지만 늑대는 먹잇감을 쫓는 지구력을, 호랑이는 날카로운 발톱을 발달시켜 약점을 보완해왔다.
발가락 다섯 개가 잘 발달한 경우 다섯 발가락의 길이는 다 다르다. 발가락은 안쪽부터 1~5번으로 번호가 매겨지는데, 1번은 사람의 엄지에 해당하고 5번은 새끼발가락에 해당한다. 3번이 가장 길고 그 다음으로 4번, 2번, 5번이 차례이며 1번이 가장 짧다. 곧 맨 앞쪽 발가락이 가장 짧고, 맨 바깥쪽 발가락이 그 다음으로 짧다. 예를 들어 다섯 발가락이 선명하게 찍힌 발자국을 보았을 때 가장 짧은 발가락이 왼쪽 끝에 있다면 오른쪽 발의 자국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발은 발바닥으로 걷는 동물과 발가락으로 걷는 동물의 것으로 나눌 수 있는데, 발가락으로 걷는 동물에는 발굽으로 걷는 동물도 포함된다.
❶ 발바닥으로 걷는 동물의 발(척행성蹠行性, plantigrade)
발바닥으로 걷는 동물은 초기 포유류의 특징인 다섯 발가락과 발톱을 모두 가지고 있으며, 다리가 짧아서 뛰어오르거나 먼 거리를 달리는데 약하다. 하지만 곰과 오소리처럼 앞발이 다부지고 앞발톱이 길게 발달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설치류(쥐, 다람쥐), 식충목(두더지, 고슴도치), 족제비과(족제비, 오소리), 곰과의 동물이 여기에 속한다.
발바닥으로 걷는 동물들은 몸무게에 비해 발바닥 면적이 넓어서 몸무게가 잘 분산되고 발바닥이 부드러운 편이다. 그래서 덩치가 비슷한 다른 동물에 견주어 발자국 깊이가 앝고 윤곽선이 분명하기 않아 발자국을 발견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예를 들어 땅의 상태에 따라 족제비과인 오소리 발자국이 개과인 너구리 발자국에 비해 아주 희미할 때가 있다. 또 멧돼지는 땅에 낙엽이 쌓여있어도 발굽 자국의 윤곽을 보고 크기를 짐작할 수 있는 반면, 반달가슴곰은 낙엽이 조금만 쌓여도 뚜렷한 발자국 윤곽을 찾기 어렵다.
❷ 발가락으로 걷는 동물의 발(지행성趾行性, digitigrade)
빨리 달리거나 높게 뛰기를 하는 동물들은 오랫동안 발가락을 이용해 걷는 것을 발전시켜 왔다. 사람 역시 달리거나 뛸 때 발뒤꿈치를 들고 앞쪽으로만 땅을 딛는 것을 떠올린다면 쉽게 이해할 것이다. 개나 고양이처럼 발가락으로 걷거나 사슴처럼 발굽을 이용하게 되면서 더욱 가늘고 긴 다리를 갖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걷는 데 쓰이는 발가락 수가 줄어들고 발가락은 더욱 튼튼하게 바뀌었다.
가장 흔하게는 1번 발가락(사람의 엄지)이 퇴화했고, 사슴과 같은 유제류는 대부분 2번과 5번 발가락도 퇴화해서 며느리발톱(부척, dew claws)으로 발 뒤쪽 위에 작게 남아있다. 말은 3번 발가락을 뺀 모든 발가락이 사라져 하나의 발굽으로만 걷는데, 이는 말이 달리기에서 가장 접합하게 진화된 발을 지니고 있음을 의미한다.
❸ 발굽으로 걷는 동물의 발(제행성蹄行性, unguligrade)
발굽이 있는 동물을 통틀어 유제류(有蹄類, Ungulata) 라고 하며, 분류학적으로 말처럼 발굽의 수가 홀수인 기제목(奇蹄目, Perissodactyla, Odd-toed ungulate)과 노루나 소처럼 짝수인 우제목(偶蹄目, Artiodactyla, Even-toed ungulate)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유제류의 발자국은 말처럼 3번 발가락만 발달하여 홀수인 1개로 찍히는 경우와 3, 4번 발가락이 발달하여 소처럼 짝수인 2개로 찍히는 경우가 있다.
우리나라의 야생 유제류는 모두 발굽이 짝수이기 때문에 대개 발굽 2개가 찍히거나 발굽 위의 작은 며느리발톱이 함께 찍혀 4개의 발굽이 찍힌다. 유제류는 뛸 때나 진흙 안에 찍힌 경우가 아니면 보통 2개의 발굽이 찍히지만, 멧돼지나 사향노루는 걸어갈 때에도 작은 며느리발톱이 함께 찍혀서 4개의 발굽이 발자국을 만드는 일이 많다. 며느리발톱은 2번과 5번 발가락이 퇴화한 모습이다.
❹ 앞발과 뒷발
개과와 고양이과 동물의 발자국은 앞발 자국이 뒷발 자국에 비해 넓고 동그란 모양에 가까우며, 곰과와 족제비과의 뒷발 자국은 발가락이 짧고 발바닥이 길게 나타난다. 설치류는 앞발 자국과 뒷발 자국의 발가락 수가 다르게 찍히는데, 앞발은 4개 뒷발은 5개의 발가락이 찍히며, 뒷발은 족제비과처럼 발가락이 짧고 발바닥이 길다.
유제류는 걸어갈 때 앞발 자국이 뒷발 자국에 비해 조금 크고 깊이 찍히는 경우가 많으며, 앞발 자국은 두 개의 발굽 끝이 벌어지는 반면, 뒷발 자국은 끝이 모아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개과와 고양이과 동물뿐 아니라 유제류도 모두 걸어갈 때 앞발이 디딘 자리를 뒷발이 덮고 지나가기 때문에 온전한 앞발 자국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유제류의 경우 출산 경험이 있는 암컷은 벌어진 골반으로 인해 뒷발 자국이 앞발 자국보다 살짝 바깥쪽에 찍히는 경향이 있다.
❺ 왼발과 오른발
발바닥으로 걷는 동물의 경우 발가락 다섯 개가 선명하게 찍혔을 때 가장 짧은 발가락이 왼쪽 끝에 있다면 오른쪽 발의 자국임을 뜻한다. 하지만 가장 짧은 1번 발가락은 아주 희미하게 찍히거나 아예 찍히지 않을 때가 많다. 그래서 흔히 길이가 모두 다른 발가락 4개의 자국만 나타나게 되는데, 이때 가장 짧은 발가락은 맨 바깥쪽인 5번 발가락이 된다는 것을 염두에 뒤야 한다. 발가락으로 걷는 동물 가운데 개과 동물은 발가락 4개와 발톱 자국을 남기는데, 발자국이 좌우 대칭이기 때문에 왼발 자국인지 오른발 자국인지 알아보기 어렵다.
반면에 고양이과 동물의 발자국은 발가락 4개가 찍힌다는 점에서는 개과 동물과 같지만 발톱 자국이 없고, 발자국이 한쪽으로 일그러진 비대칭이어서 어느 쪽 발자국인지 알아볼 수 있다. 말하자면 고양과 동물의 발자국은 1번 발가락이 퇴화하여 나머지 4개 발가락만 찍히는데 사람의 새끼손가락처럼 5번 발가락이 가장 아래로 내려와 찍히며, 발볼의 아래 끝이 5번 발가락 쪽으로 내려와 있다. 따라서 발자국이 진행 방향과 직각이나 평행을 이루지 않고 오른발 자국은 오른쪽으로, 왼발 자국은 왼쪽으로 비스듬하게 기울어져 있다.
그러나 뒷발 자국은 비교적 대칭을 이뤄 어느 쪽 발자국인지 알아보기 어려울 때가 많다. 하지만 발자국은 하나가 아닌 여러 개가 걸음걸이를 이루기 마련이고 동물들은 대부분 약간 갈지자로 걷기 때문에 걸음걸이에서 오른쪽에 있는 발자국이 오른발이고 왼쪽에 있는 발자국이 왼발이라고 보면 된다.
❻ 이동 방향
눈이나 낙엽으로 덮인 숲에서 흐릿한 발자국을 쫓을 때 가장 먼저 동물이 어느 방향으로 이동했는가를 확실히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반대쪽으로 쫓아가 동물한테서 점점 멀어지는 낭패를 보는 수가 많다. 모든 발자국은 이동방향 쪽으로 깊게 눌리는 특징이 있다. 사람 발자국 역시 모래밭에서 걸어간 모습을 보면 앞쪽이 뒤꿈치보다 깊게 파여 있다. 이동하는 쪽으로 무게 중심이 계속 옮겨가기 때문에 앞쪽이 깊게 눌리게 되는 것이다.
이런 특징은 몸무게에 비해 발자국 너비가 좁고 윤곽이 뚜렷한 유제류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겨울철에 눈이 쌓이면 발자국이 눈가루에 덮이거나 녹아서 뚜렷이 보이지 않는 일이 많다. 이때 개과의 경우 고양이과 동물에 견주어 발을 눈 위에서 길게 끄는 편이며, 발자국의 앞쪽보다는 뒤쪽으로 길게 끌린다. 따라서 발자국 뒤에 길게 끌린 자국을 보고 어느 쪽으로 갔는지 알 수 있다.
또한 수달, 족제비, 설치류 따위는 눈 위나 모래 위에서 이동할 때 꼬리가 끌린 자국을 남기는 일이 많아서 꼬리 끌린 자국으로도 이동 방향을 알 수 있다. 발자국도 희미하고 눈도 쌓여 있지 않은 경우에도 동물의 이동 방향을 금방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동물이 이동하면서 몸과 다리에 죽은 나뭇가지들이 걸려 부러지고 떨어지게 되는데, 이런 나무 조각들이 떨어져 있는 쪽이나 풀이 누워 있는 방향이 곧 이동 방향이다.
❼ 걸음걸이
두 발로 걷는 인간이 네 발을 사용해 걷는 동물의 걸음걸이를 이해하는 것은 무척 어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따라서 걸음걸이의 모든 것을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이 동물이 걸어갔는지 또는 뛰어갔는지 정도는 쉽게 알 수 있는데, 이는 동물이 처함 상황을 이해시켜 주기도 한다. 또한 몇몇 종은 독특한 걸음걸이를 지니고 있기에 이러한 몇 가지 지식을 알고 있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발자국은 땅의 상태가 바뀌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흐릿해진다. 따라서 발자국 모양만으로 어떤 동물의 발자국인지를 알아보기가 쉽지 않은 때가 있다. 그런데 동물들은 골격과 습성에 따라 걸음걸이가 발자국만큼이나 다 다르다. 또 그때그때 목숨을 지키기 위해, 또는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하는 행동들이 걸음걸이에 나타난다.
동물의 여러 가지 걸음걸이를 많이 보고 잘 이해한다면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 멀리서도 어떤 동물이 어떤 행동을 하고 사라졌는지 더 생생하게 짐작할 수 있고, 흔적을 살펴보고 야생동물의 행동을 알아 나가는 일이 더욱 흥미로워질 것이다. 예를 들어 눈 위에 찍힌 삵의 발걸음과 흔적을 보고, 삵이 먹이를 발견하고 조심조심 걷다가 힘차게 내달려 덮친 다음 먹이를 물고 꼬리를 한껏 들어 올린 채 경쾌하게 걸어간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여간 즐겁지 않다. 이것은 분명 자연을 더 넓고 깊이 이해하는 것일 뿐 아니라 자연이 주는 기쁨을 새롭게 발견하는 일이다.
동물의 걸음걸이를 이해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겨울날 눈이 쌓였을 때 밖에 나가 개와 함께 뛰놀며 개의 발자국이 어떤 식으로 바뀌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또한 TV에 나오는 동물의 달리는 모습을 녹화한 뒤 느린 화면으로 돌려 보거나, 동물의 걸음걸이를 분석해 놓은 승마 교본이나 경기 장면을 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두 발로 걷는 인간이 네 발로 다니는 동물의 걸음을 명확히 이해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므로 아주 세심하게 관찰해야 한다.
❽ 걷기 & 속보(빨리 걷기)
네 발을 떼고 딛는 때가 모두 다르며, 대개 앞발을 디딘 곳에 뒷발을 내디딘다. 걷는 발걸음은 규칙적이어, 오른쪽 뒷발을 먼저 떼었다면 오른쪽 앞발, 왼쪽 뒷발, 왼쪽 앞발 순으로 발을 뗀다. 앞발을 디딘 곳에 뒷발을 내딛기 때문에 앞발 자국은 뒷발 자국에 가려 일부만 보이거나 아예 안 보이는 수가 많다. 걷기는 속도가 가장 느리지만 눈으로 확인한 지점에 앞발을 디디고 같은 자리를 자연히 뒷발이 밟는 것이므로 안전하다. 또한 눈이 내린 곳에서 오랜 시간 이동할 때에는 앞발이 만든 눈구멍에 뒷발을 내딛기 때문에 힘이 덜 든다.
느리게 걸으면 뒷발 자국이 앞발 자국에 닿지 못하거나 살짝 겹쳐지고, 빠르게 걸을수록 뒷발 자국이 앞발 자국을 지나쳐 찍힌다. 발걸음의 독특한 형태로서 측대보(側對步, amble pace)라는 것이 있다. 양쪽 다리를 엇갈려 걷지 않고 같은 쪽 발을 동시에 떼어 걷는 것으로, 두 오른발이 땅에 닿으면 두 왼발은 공중에 떠 있고 두 왼발이 땅에 닿아 있으면 두 오른발은 공중에 떠 있게 된다. 개가 지치거나 장애물을 피해 걸을 때 이런 걸음걸이를 하며 때로는 고양이나 말도 이렇게 걷는다. 낙타는 대개 측대보로 걷는데, 좌우 양쪽으로 무게 중심이 계속 바뀌기 때문에 흔들림이 심하다. 사람들이 말보다 낙타를 탈 때 더 불편하게 느끼는 것은 이 때문이다.
빨리 걷기(속보)는 걷기보다 빠른 걸음으로, 한쪽 앞발을 뗄 때 다른 쪽 뒷발을 동시에 떼는 것이다. 곧 오른쪽 앞발을 들고 놓을 때 동시에 왼쪽 뒷발도 같은 동작을 한다는 말이다. 걸음을 뗄 때마다 몸을 들어 올리지 않고 앞으로 미끄러지듯이 나아가므로 속도는 빠르면서도 가장 지치지 않는 걸음걸이다. 빨리 걷기를 할 때 발자국은 걷기와 아주 비슷하다. 걷기보다 보폭은 넓어지고 다리 폭은 좁아지는데, 속도가 높아질수록 더 그렇다. 따라서 빠른 속도의 빨리 걷기에서는 거의 완벽한 일자 걸음이 나타나는데, 특히 여우의 발자국에서 자주 볼 수 있다.
❾ 달리기
달기는 빠르게 뛰어 달리는 것을 말한다. 달리기에서는 네 다리 모두가 한 곳에서 공중에 떠 있게 되는데, 도약할 때 앞으로 나아가는 힘은 한쪽 앞발로 착지하고 그 다음 내딛는 앞발에서 시작된다. 예를 들어 왼쪽 앞발로 착지한 다음 오른쪽 앞발로 도약을 했다면, 곧 공중에서 네 발을 모으고 잠깐 뜬 다음 바로 왼쪽 뒷발과 오른쪽 뒷발을 차례로 내디디며 땅을 박차고 멀리 뛴 뒤, 왼쪽 앞발로 착지하면서 곧 오른쪽 앞발을 디디며 다시 도약하는 과정을 되풀이 하는 것이다. 이때 한 걸음걸이에서 두 차례 공중에 뜨게 된다. 하지만 엘크나 멧돼지 같이 덩치가 큰 초식동물들은 뒷발을 디뎌서 멀리 뛰는 두 번째 도약에서 네 발을 모두 땅에서 떼지 않는 경우도 많다.
달리기를 할 때는 발자국이 하나도 겹치지 않아서, 네 개씩 띄엄띄엄 찍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달리기는 힘이 많이 들기 때문에 발자국을 쫓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빨리 걷거나 걷기로 바뀌어 있기 십상이다. 달리기를 하면 몸무게와 가속도 때문에 발자국이 깊이 파이는데, 발자국 안에 흙 부스러기가 가라앉지 않았고 날이 건조한데도 흙이 말라있지 않으면 동물이 방금 지나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❿ 뛰기
뛰기는 네 발 모두가 공중에 뜨게 된다는 점에서는 달리기와 같지만 앞발이 아닌 두 뒷발을 박차면서도 도약한다는 점이 다르다. 족제비의 경우 두 뒷발을 나란히 모아 공중으로 뛴 다음 두 앞발로 나란히 착지하고 앞발 자국 위에 다시 두 뒷발을 내디디며 공중으로 뛰기를 되풀이한다. 이런 흔적을 눈 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발자국 두 개가 나란히 쌍을 이루며 일정 간격으로 남아있다.
산토끼, 청설모, 다람쥐도 족제비처럼 두 앞발과 두 뒷발을 동시에 움직이긴 하지만 앞발 자국과 뒷발 자국이 겹치지 않는다. 속도가 빨라질수록 뒷발 자국이 앞발 자국을 넘어서 찍히는데, 산토끼는 두 앞발이 직선상에 놓이고 두 뒷발은 수평으로 넓게 벌어진 자국을 남기는 것이 특징이다. 덩치가 큰 동물들한테 뛰기는 달리기보다 더 힘이 들기 때문에 주로 깊은 눈밭을 지나가거나 도랑이나 울타리 같은 장애물을 뛰어넘을 때 쓰인다. 하지만 덩치가 작고 등이 길며 다리가 짧은 족제비 같은 동물과 일부 설치류에서는 가장 흔한 걸음걸이다.
발자국은 겨울철 눈 위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눈이 많이 쌓였을 때에는 발가락이 눈 속에 깊이 박혀 잘 알아보기 어렵고, 눈이 갓 내렸을 때에는 부드러운 눈가루에 파묻히는 일이 많다. 따라서 눈 위에 난 발자국을 가장 뚜렷하게 볼 수 있는 때는 눈이 내리고 하루 이상 지나서 눈 표면이 조금 녹아 물기를 머금고 햇빛과 바람에 살짝 다져졌을 때다. 또한 산의 북쪽 비탈처럼 햇빛이 거의 들지 않는 곳에서는 눈가루가 잘 뭉쳐지지 않고 부서지기 때문에 겨울 내내 선명한 발자국을 보기가 힘들다.
이처럼 겨울철에 야생동물은 눈 위에 지나간 흔적을 남기지만 뚜렷한 발자국을 보는 것은 뜻밖에 쉽지 않다. 하지만 조금만 관심을 가진다면 주변에서 한 해 내내 많은 야생동물의 발자국을 관찰할 수 있는 곳이 있다. 강가나 시냇가에 모래나 진흙이 쌓여 있는 곳, 바닷가 갯벌 가장자리, 길가에 물이 말라 가면서 진흙이 가라앉아 있는 웅덩이, 햇빛이 들지 않고 늘 축축한 맨땅인 하천의 다리 아래 같은 곳에서는 언제든지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여러 야생동물의 발자국이 우리는 기다리고 있다.
『최현명․최태영, 야생동물의 흔적. 산사랑(통권 15호)』을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