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감국사 감로암(甘露庵)
--2013년, 장흥위씨 하계수련생 교육--
「存齋 魏伯珪의 敎育哲學 ‘去病書’」
I. 머리말
거병서는 존재 선생의 심오한 교육철학을 담고 있다. 그는 22세부터 평생 후진 교육을 위해 헌신한 교육자라 할 수 있다. 『거병서』라는 제목은 생질 이경(李檠)의 字로 몸과 마음을 닦는 공부를 권유했다. 선생이 63세이던 1789년(己酉)에 사람으로서 갖춰야할 교육으로 16개 항을 실현하기 위해 45개의 전거를 들어 설명하는 내용이다. 이는 현대식 교육으로 말하면 일종의 수업 교수안이라고 할 수 있다.
수업 교수안(敎授案)이란 학교 등 교육 현장에 있는 교사가 교과 수업을 계획하면서 작성하는 문서를 말한다. 수업 교수안은 매 수업이 진행되는 차시별로 작성되며, 본시 수업에서 다루는 학습 단원 계획 수립의 중심이다. 수업 교수안에는 수업하는 단원의 목표와 중요성이 정확히 명시되어야 하며, 이에 따라 차시별 수업 진행 계획이 구체적으로 수립되어야 한다. 수업 교육안 작성에는 활동 내용을 크게 도입-전개-마무리의 세 부분으로 구성하고, 수업 목표 달성을 위한 구체적인 수업 내용을기재하도록 한다.
거병서(去病書) 결어(結語)에 이런 말을 덧붙이고 있다. “어떤 사람이 경의(經義)를 깊이 연구하는 것이 과거공부에 무익하다고 하는데 경의를 깊이 연구한 경우 는 졸기까지 한다. (중략) 문장에 대해 말하는 경우에는 대충 응수하지만 그다지 못하면 문장 역시 제대로 짓지 못한다는 사실을 절대로 모를 것이다. 대체로 세상 사람들은 군자의 수신에 대한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면 듣지 못하는 듯하고 실제로 좋아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문장은 도를 싣고(文而載道), 시는 性情에서 나온다는 을음미해 보라.(만언봉사 제3조목)
IV.‘ 자식을 바꿔 가르친다’
위의 내용은 사람이 되게 하는 큰 법도이다. 배우는 자가 글을 읽을 적에 구구절절 몸소 잘 인식해 절실히 자신을 뒤돌아보고 심사숙고한다면, 경전의 천만 마디 말씀이 무엇인들 병증(病症)을 진단하는 처방(處方)과 병증에 들어맞는 약이 아니겠는가. 아, 사경(四經)이 충분한데도, 사서(四書)가 또 나왔고, 사서로 충분한데도, 주자(周子)ㆍ정자(程子)ㆍ장자(張子)ㆍ주자(朱子)가 또 훈석(訓釋)했다. 그래도 부족하여《소학》,《 근사록》,《 심경(心經)》등이 또 기술됐다.
황명(皇明 명나라)을 거쳐 동방의 여러 유학자에 이르러서 어린들에게 처음 글을 가르친 텍스트인 훈몽(訓蒙)이나 절록의 요점인 절요(節要)로 편집한 책자가 또 다시 수백 편이나 나왔다. 하지만, 이를 읽을 적에 절실하게 자신을 돌아보지 않으면, 다 같이 보탬이 없다. 아무리 절요에 또 절요를 했더라도 또한 무슨 보탬이 있겠는가. 이 36조목은 요점 가운데서 다시 뽑은 지극한 요체라고 말할 만하다.
그러나《 시경》,《 서경》,《 논어》,《 맹자》 등 경전을 배우는 자가 범범하게 보고서 실효가 없는 통발이나 올무와 같은 것으로 치부해 버리니, 누가 이 요점을 뽑은 글에서 마음을 고치고 관점을 바꾸겠는가. 필시 무익할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다만 표현으로 담아내지 못했던 의미를 미루어 널리 설명하고 사방으로 곡진하게 근거를 대어 그 취지를 극진히 하여 각 조목에 붙여 글을 읽는 모범으로 삼았으니, 부디 거병9은 이 조목을 반성하고, 옛 책을 읽기를 바란다. 그렇게만 한다면 그 얼마나마음과 몸을 선하게 할 수 있겠는가.
나는 8, 9세 때부터 경서는 “사람다움을 만드는 신방(神方)이다”라는 점을 알았다. 그래서 중요한 말을 초록(抄錄)하여 좌우에 놓거나 허리띠에 차고 다녔으며, 담장ㆍ벽ㆍ문에 적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20세 이후 의지가 나뉘고 게을러졌으며, 30세 이후에는 세속에 희망이 끊어져 나도 모르게 내 자신을 스스로 버렸다. 40세 이후에는 더욱 다시 분한 감정이 북받쳐 방랑하다가 평생을 그르치게 됐다. 지금 63세에 처지가 곤궁해지고 나서야 근본으로 돌아가 회상해 보니 떨리고 슬퍼서 한밤중에 홀로 깨어 회한의 눈물을 쏟아 낸다.
12회의 사이에 한 번 인간 세상에 태어나서 남자가 되었으니, 그 얼마나 다행인가. 그런데 흰머리에 석양빛이 비추는데 금수와 같은 생존을 벗어나지 못했으니, 원망과 회한이 어찌 그 끝이 있겠는가. 숨이 끊어지기 전에 다시는 이 삶에 죄를 짓지 않기를 거듭하여 맹세했는데, 정신과 의지가 이미 피폐해져 기운을 통솔할 수 없고, 근력이 이미 고단하여 떨쳐 일어날 수 없다. 다만 성현의 가르침과 요결(要訣)을 마음에 간직하여 감히 소홀히 잊지 않아서, 잠깐 사이에 말이나 행동을 하자마자 곧장 그릇됨을 깨달았다. 낮에는 아침의 잘못을 깨달았고, 저녁에는 낮의 잘못을 깨달았으며, 새벽에는 잠자리에서의 잘못을 깨달았는데, 깨닫자마자 다시 생각해 보니, 모두 앎이 아직 참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비유하자면, 뜨거운 “불길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라는 사실을 내가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화롯불에 피부를 데어 보고 알게 되는 참다운 앎만 같지 못했기때문에, 끝내 맹렬히 끊어 버릴 수 없었다. 마치 웅장(熊掌)12의 맛있는 맛을 모르지는 않지만, 그래도 직접 씹어서 단맛을 삼켜 보고 알게 되는 참다운 앎만 같지 못하기 때문에, 끝내 용감히 나아가 기필코 터득할 수 없었다. 이것이 《대학》의 가르침이 반드시 치지를 우선한 이유이다. 잘 읽지 못하는 자는, 비유하자면 불은 차가운 사물이 아니며 곰 발바닥은 먹을 수 있다고 입으로만 말할 뿐이다. 이와 같은 지식과 식견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정자가 《“ 논어》를 읽기 전에도 이런 사람이고,《 논어》를 다 읽은 뒤에도 또다시
이런 사람이라면 이것은 바로 읽지 않은 것과 같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열두 성인의 글을 다 읽어도 예전 그대로 동쪽 집 여느 선비이니 그 또한 무엇이라고 말할 수있겠는가. 어떤 사람은 경의를 깊이 연구하는 것이 과거 공부에 무익하다고 여기는데, 경의(經義)를 깊이 알지 못하면 문장 역시 제대로 짓지 못한다는 사실을 절대로 모르는것이다. 대체로 세상 사람들은 군자의 수신에 대한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면 듣지 못한 듯이 하고, 심한 경우에는 졸기까지 한다. 어떤 사람이 행실이 좋다고 말하면 곧 장 뒤이어 애써 흠을 찾아내려고 하고, 심한 경우에는 화까지 낸다. 문장에 대해 말할 경우에는 대충 응수하지만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근래의 과체에 대해 말하면, 부지런히 애쓰고 밥 먹는 것조차 잊으니, 만고의 성현과 군자는 좋은 문장이 없는 분이 없고, 만고의 문장에 능한 사람은 과거시험에 합격하지 못한 경우가 없음을 어찌 돌이켜 생각하지 않는가. 어찌 꼭 군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문장을 잘 짓는 것도 아니고 단지 근체를 배운 연후에야 과거에 합격한단 말인가. 옛글을 잘 읽어 나의 몸과 마음을 아름답게 한다면, 문장으로 드러내 아름다움을 추구하지 않아도 절로 아름다워지고, 문장이 이미 이루어지면 과거합격을 바라지 않아도 절로 과거에 합격할 수 있다.
더구나 문장이 심오한 자는 마치 흰 바탕에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아서 때에 따라 채색을 받아들일 수 있어 어디든지 적절하지 않는 때가 없다. 문장이 깊지 않은 자는 솜씨가 졸렬한 화공처럼 겨울에 물총새 그리기를 배워 담묵(淡墨)만을 준비하다가 오래지 않아 꾀꼬리 그림으로 바뀌면, 황색을 찾을 길 없어 붓을 내려놓고 탄식할 때에도 오히려 후회할 줄 모른다. 위무공의 이른 바 사람들이 각기 딴마음이 있도다〔人各有心〕라는 경우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내가 거병을 일깨우기 위해 이 문편(文編)을 썼기에 〈거병서(去病書)〉라고 이름했다. 이름은 〈거병서〉라고 붙였지만 그러나 실제로 ‘자식을 바꾸어 가르친다.’라는 의미이다. 만일 내 자식과 조카들이 이 책명을 가지고 핑계 대어 “이는 거병에 대한 글이지, 우리에 대한 글이 아니다.”라고 하면서 나와는 상관없다고 한다면, 내가 한밤중에 흘리는 눈물을 어찌 샘처럼 더 계속 흘리지 않겠는가.
너희들은 농사도 짓지 않고 장사도 하지 않으며 앉아서 옛 책을 읽고 있으니, 누가 막기에 잘 읽지 못하고, 무슨 해가 있기에 절실하게 자신을 돌아보고 생각하지않느냐. 만일 잘 읽어 스스로 문장을 성취한다면 이는 허리에 돈 10만 전을 두르는 격이고, 스스로 군자가 된다면 청전(靑田)17의 학을 타는 격이다. 필경 과거 합격이 절로 될 것이니, 너희들이 어찌 양주(楊州) 고을의 원님이 아니겠는가. 만일 지극히어리석은 자가 아니면 애쓰지 않아도 자연히 알 것이다.
V. 맺는 말
선생은 ‘거병서’를 자식은 물론 후손들이 교과서로 여기고 공부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인간다운 인간이 되려면 거병서를 공부해 깨우치란 말이다. 선생께서는 ‘거병서’라는 제목을 이유로 “나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다.”라고 공부하지 않을 구실로 삼으려는 후손을 미리 경계했다. 사람들이 공부하기 싫어 구실을 찾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는 인간의 속성은 인간의 치졸한 습성이다.
그렇다면 왜 자식은 바꾸어 가르친다 했을까. 선생은 바꾸어 가르치라고만 했지 그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거병서’의 내용이 모두 경전(經典)을 토대한 저술이니 그 이유도 거기에 있을 터이다. “나와 다름없는 자식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까? 그런데 어버이는 제 자식을 가르치기가 어렵다. 그러니 “남들과 바꿔 가르친다(易子敎之)”라는 가르침이 그것이다. “공자도 아들에게 직접 글을 가르치지 않았다.”라는 기록도 곧 같은 의미이다.
맹자 이루 상을 보자. “공손추가 물었다. 군자가 직접 자식을 가르치지 않는 것은 어째서 입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교육은 정도를 가르치는것이다. 아비가 자식을 가르쳤는데 바르지 못하면 화를 낸다. 화를 내면 자식은 섭섭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잘못을 고쳐주는 것이 교육인데 아버지는 왜 화를 내실까 하며 잘못을 따지게 된다. 그러다 서로의 마음이 상해 미워하고 멀어진다.부자간에는 선과 불선을 따지지 않는다.”
거의 모든 사람은 자식을 남을 통해 가르치게 한다.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과정이 그렇다. 자식에게 학문을 가르치기도 어렵거니와 생활인의 도리나 예의를 가르치는 것도 어렵다. 교육의 80%가 가정교육이라는 말은 상식적인 사실이다. 가정은 인간의 기본적인 도리를 가르치기에 가풍(家風)을 평가한다. 더러 학생이나 젊은이의 언행이 나쁘면 “가정교육이 안 된 인간으로 매도”하기도 한다. 이럴 때 “자식은 바꿔 가르친다.”라는 말은 어디까지를 말할까.
작고하신 松堂 위재형 종보(장흥위씨종보, 관북 월명송)편집장님께서는 圓山 전기편찬회장님을 門寶요, 年富力强이라 불렀습니다.
이는 文으로 문중에 기여할 것이라는 선지자의 예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