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전국시대를 끝내고 분열된 중국을 통일한 것은 진시황제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진시황제의 통일 무리했으며
그 사후에 일어난 진제국 붕괴의 원인이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망진자호'라고 진시황제의 뒤를 이은 2세 황제 호해의 어리석음과 조고의 전횡에 책임을 돌리지만
역사적 내용을 읽다보면 진짜 책임자는 진시황제였으며 그들은 무능했을뿐 결정적인 원인이 아니었다고 봅니다.
실제로 진제국 붕괴의 시작인 진승 오광의 난은 시황제가 죽은 바로 직후에 시작되었습니다.
진시황제는 역대 황제 중 유일하게 5번이나 중국전국을 순행했습니다.
그리고 5번째 천하 순행 중에 병사합니다.
왜 그리도 무리해서 순행을 했을까요?
개인적으로 진시황제는 자신의 통일이 불완전했으며
진제국은 위기에 빠졌다는것을 직감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가 불로초를 구하며 생명을 연장하겠다고 몸부림쳤던 것은
바로 그러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방책이지 싶습니다.
수백년 분열을 마감한 통일 진제국은 이후 산산조각 분열되어 6국이 다시 부활합니다.
그 중 초나라 출신 두 명의 인물에 의해서 수도함양이 함락되고 후손은 도륙이 되지요.
그 인물은 항우와 유방이었습니다.
이들은 진나라가 남긴 유산을 두고 다투었습니다.
군사적으로 강력했으며 패왕을 자처한 항우를 이기고
한제국 400년을 이룩한 인물은 유방이었습니다.
그들이 벌였던 치열한 전쟁은 우리나라의 장기판에도 남아 있을 정도로 중요한 전쟁이었습니다.
그렇기에 한번 들여다 볼만한 전쟁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 중국사 역대 4대강국 한당원청 중에서 그 첫번째 국가인 한나라는 이전쟁의 결과로 건국되었습니다.
수많은 역사적 인물이 등장하는 이전쟁 과정을 이렇게 읽어보니 드는 생각이..
고대 중국 봉건제가 이후 군현제로 바뀌는 역사적 흐름 속에서 마지막 불꽃과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시대가 변했음에도 항우는 이를 인지하지 못했고 유방은 이점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진시황제의 후계자는 2세황제 호해가 아닌 유방이었습니다.
또한 여후의 이성제후 탄압도 어쩌면 유방과의 공감대가 형성된 한제국 건국 정책의 흐름이 아닌가 합니다.
결과론적으로 한제국은 400년간 유지되었습니다.
다만 아쉬운점은 지리적 접근이라 부제가 있듯이
당시 중국 지역 상황이나 지리적 상세한 설명이 있을거라고 봤는데 좀 부족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래도 자세한 지역적 상황에 대한 연구가 선행이 되어야 할것인지라 이런 기반연구가 충분한지 모르겠네요.
국내저자에 의해서 시도된 초한전쟁 소개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평가해봅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저 자 : 이동민
대구교육대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대학원 지리교육과 교육학박사 학위 취득.
현 진주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 교수, SSCI에 등재된 학술지 《Journal of Geography》 편집위원.
지리학의 시각으로 지구사, 문명사, 전쟁사를 해석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초한전쟁》, 《기후로 다시 읽는 세계사》가 있고,
역서로는 《지리의 모든 것》, 《사카모토 료마와 메이지 유신》, 《세계화와 로컬리티의 경제와 사회》.
출판사 : 흠영
가 격 : 23,000원
출간일 : 2022년 09월 28일
목 차 :
1장 새로운 세력의 대두
2장 거록대전, 패왕의 탄생
3장 항우의 18제후 분봉
4장 중원에 선 한왕 유방
5장 팽성대전, 56만 대군의 궤멸
6장 경색전투, 유방의 위기 탈출
7장 안읍전투, 위나라의 멸망
8장 정형전투, 승리의 배수진
9장 폭풍이 몰아치는 형양
10장 유수전투, 한신의 북벌 완수
11장 길어지는 초한의 대치
12장 해하전투, 서초의 멸망
13장 초한 그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