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유물들-2
그리고 초창기의 활동사진 촬영기(배터리가 필요 없고 태엽으로 작동됨)와 영사기, 구형 사진기, 수공구(手工具), 손으로 짠 명주에 붓으로 솔방울들과 수 천 개의 솔잎 하나하나를 정성들여 그린 고병풍, 고화(古畵), 그리고 중국을 다스리고 한국을 장악했던 일본의 기본화기 99식(九九式)장총, 오지병(烏窒甁; 검은 질그릇 병의 준말)등이 있다.
1878년에 만든 1불짜리 은화를 비롯하여 100년도 더된 은전들, 오십년 된 지전들(화폐개혁이 없어서 지금도 사용이 가능한 것을 보면 경제의 안정성이 엿보인다)빛이 바랜 중국 사람이 붓으로 그린 달마대사, 명주에 그린 죽조도(竹鳥圖), 국전에 당선된 여러 화가들의 그림, 1914년 MAIN 주 자동차 번호판[철판에 사기(ceramic)를 코팅하여 불후이며 숫자가 4개 있으니 수 천대에 불과]등을 틈틈이 사모아 소장하고 있는데 나 혼자 보는 것보다는 여러 사람에게 공개하여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고등학교를 다니던 철이 덜 든 시절 아침에 자전거를 밀고 하옥고개의 산길을 헉헉하며 올라가는데 도로를 만든다고 깎아지른 높지 않은 서쪽절벽에 아침햇살에 반사되는 물체가 광채를 발하고 있었는데 이상히 여겨 가보니 그것은 항아리모양을 한 놋쇠로 만든 옥식기(항아리 모양으로 전이 옥은 식기)이었다.
내가 부수어버린 것은 제일 왼쪽에있는 흙이묻은 숫가락 모양 비슷한데 잎이 더 넓었고 숫가락총은 연미처럼생겼으며 이 총[stem]끝이 날카로운 것은 깍두기를 집어올리기 위함일까?
위의사진은 제천의 청풍호 옆에 위치한 동네가 수물되기 직전에
모아놓은 박물관에서 담았는데 숟가락의 잎이 평평해서
국물을 펄수가 없을것 같고 잎은 좁아서 보리밥은 펄 수가 없을것 같다.
닳고 닳아 구멍이 날정도로 얇았고 옆에는 놋숟가락이 있었으며 조그만 미국 숟가락같이 생겼는데 흙이 다져지지를 않아 푸석푸석하여 파기가 쉬웠으며 숟가락의 손잡이 끝은 영락없는 제비꼬리(燕尾)모양인데 날카로움으로 봐서 아마도 반찬을 찍어서 먹게끔 고안된 것 같았으며 표면을 매끄럽게 처리 한 흔적이 보이며 산화 작용으로 검은색이며 약해져서 힘을 드리지 않고도 그냥 똑똑 부러지는데 부러진 면만은 서리 빛이 일었다.
아마도 거기가 고려장 터였든지 아니면 몇 백 년 전에 누가 피란을 가면서 묻어둔 것이었으리라.
그 당시는 골동품에 대한 개념이 없어서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부수어 버린 일을 후회하며 한 번도 다른 박물관서는 본 일이 없는데 언젠가 딱 한번 비디오로 신안 앞바다의 유물을 볼 때 같은 종류의 이 숟가락을 잠간 본 일이 있다.
우리 집에는 오래된 큰 수판이 있는데 뒷면을 판자로 막아놓은 것이어서 엎어놓으면 이것도 영락없는 납작한 수레인데 내가 어릴 때 방에서 타고 놀던 것이며 50년 지기지우(知己知友)이어 미국으로 옮겨와 지금은 가보로 모신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문방사우의 하나인 너무 오래 되어서 표면에 실금이 간 검불홍(黔不紅) 이라는 먹이 있었는데 윤이 많이 나니 어쩌면 유연묵(油烟墨; 곡식의 기름을 태워 만든 먹)인 것 같았고 황모(족제비 꼬리)로 만든 붓은 노루꼬리 붓과는 달라 눌러 글씨를 쓴 후에도 끝이 뾰족하게 원형을 유지하니 세필(細筆)에 사용했다.
새 모양의 청자로 된 연적 있어서 부리로 물이 나오는 것인데 내가 성인이 된 후에는 이미 없어져 마음만 안타깝게 할 뿐이다.
한번은 버지니아 리스버그의 한 골동품상에서 놋쇠로 된 조그만 불상두개를 샀는데 한반도의 것과는 머리 모양에 차이가 나며 하나는 좌상이고 하나는 입상인데 속이 차서 무거우며 잘 다듬어 져 있고 설명서에 애틀랜타의 어느 대학교에서 나왔다고 했으며 너무 정교하게 만들어졌고 무거워 처음엔 금동불상인줄 알고 돈을 많은 돈을 지불했는데 금동은 아닌 것 같으며 지금은 딸이 보관하고 있다.
중국인이 옛날 붓으로 그린 지도(90쪽으로 대개가 강을 위주로 취락이 이루어져 있으며 동네의 이름만 기재가 되어 지금의 어디쯤인지는 알 수가 없음, 사진 참조)라든지 1950년 7월 23일 대전(大田)이 함락되는 것을 일면에 대서특필했던 미국 신문이 있었는데 실은 대전이 적의 수중에 떨어 진 것은 7월20일 이지만 14시간의 시차와 인쇄하는 시간 때문에 이 신문은 이틀이 지연 되는데 누군가의 남편이나 아들을 한국전에 보낸 후 한국의 전과를 예리하게 관찰하던 가족 중의 한사람이 보관해오다가 그가 죽은 후 관심 없는 자녀가 골동품상점에 내다 판 것으로 나온 것으로 간주 된다.
이 신문 1면에 공산군을 빨갱이 즉, ‘Reds’라고 했고 한영사전에도‘Red(단수는 a Red, 복수는 Reds)’라고 고유명사이며 4강 때 한국에서 사용하던 Reds와 일치 되는데 “Be the Reds(빨갱이가 되어라)!” 왜? 피를 상징하고 혐오감을 주는 악연의 이름을 이용했을까? 한대를 건너뛴 세대이어서 일까? 의문부호가 줄줄이 따라붙는다.
북한 빨갱이들은 선전포고를 하고 육지와 바다로 쳐들어왔다,
한국은 육이오 사변인데 미국은 육이육전쟁이며 외국에가서 6.25전쟁이라고 말해도 알아줄사람은 없지만 한국전쟁[Korean War]이라하면 금방알아차리니 바꾸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red’는 형용사로 적색을 뜻하지만 ‘Reds’ 를 영한사전에서 찾아보면 공산주의(국)의, 적화한, 좌익의 등이 되는데, 한국인들이‘붉은 악마’라 외치는 구호는 사전에 아예 없다.
나도 그 당시 서울을 방문 중 있었는데 선수들이 4강에 오르기 전에 "최대한 노력을 경주해보겠습니다" 라고 하면 정통성이 유지되는데 자신 있다고 벌써 이긴 것 마냥 호언장담의 허세를 부렸고 자숙을 해야 할 젊은이들이 꼭 이겨야만 한다는 긴박감과 자만심에 가득 차 무리지어 다니며 밤새도록 술집은 터져나갔다.
첫댓글 귀한 글 잘 보고 갑니다
먹의 종류인 검불홍 유연목 배우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