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선 잡기가 만만치 않아 문묘에서 나온 뒤 다시 조금 서쪽으로 이동하여 창덕궁 담장 서쪽의 한국미술박물관을 찾았다. 1993년 한국불교미술박물관으로 개관하여, 불교미술 전문박물관으로 자리매김 해오다 2011년 1월 한국미술박물관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한국불교미술을 대표하는 작품을 비롯하여 민화, 도자, 공예품 등 전통미술품과 중국과 아시아 여러 나라의 미술품을 소장 및 전시하고 있다. 상설 전시하는 제1~3 전시실과 기획전시실, 야외전시장을 갖추고 있으며, 별관으로 종로구 창신동에 안양암을 두고 있다.
많은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다지만 이날은 문을 닫아두었다. 마침 담장 밖에 트럭을 세워두어 그 위에 올라가 불만족스러우나마 야외에 있는 일부 석조물들을 담을 수 있었다.
그 가운데 칠층석탑, 오층석탑, 삼층석탑, 석불입상의 모습을 보인다.
종로구 창신동에는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70호로 지정되어 있는 지장암신중도(地藏庵 神衆圖)를 비롯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10여점의 불화와 불상을 보유하고 있는 지장암이란 작은 절집이 있다. 스님께 청을 넣어 겨우 대웅전 안을 볼 수는 있었지만 사진촬영은 허락되지 않았고, 문화재청 홈피를 비롯한 인터넷에서도 제대로 된 사진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하릴없이 지장암에서 나와 서울 성벽을 잠시 바라본다. 꽤 높은 지대 위에 자리하고 있는 동네인데 암문을 통해 시내로 드나드는 사람들이 보인다.
아쉬움을 안고 성북구 보문동에 있는 보문사(普門寺)로 향했다. 전통시대부터 절집이 있었으며 현재는 세계유일의 비구니 종단인 보문종의 총본산으로서 한국불교 발전을 위해 포교ㆍ사회복지ㆍ교육활동에 전념하고 있다고 한다. 보문사는 도심사찰로서 넓은 대지 위에 대가람이 여법하게 자리 잡고, 낙산의 수림과 조화를 이루며 수행도량으로서의 정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는 곳이다.
문화재는 아니지만 보문사에도 석굴암이 있다. 국보(國寶) 제24호인 경주 토함산 석굴암을 본떠 제작한 것으로 1970년 8월에 시작하여 23개월 동안 진행되었고, 호남지방(湖南地方)의 화강석과 경기석 등 총 2,400톤의 화강석이 사용되었다. 전반적인 구성은 경주 석굴암의 조각상을 그대로 따랐으나, 경주 석굴암 정면에는 문이 하나인데 비해서 여기는 세 개의 문으로 되어있으며, 공간상의 문제로 팔부 신장(八部神將)이 생략되었다. 이곳은 수많은 대중들의 기도처로 유명하다고 하며 내가 방문했을 때도 기도를 올리는 신도들이 있었다.
보문사 가람 상단에는 또 1979년에 은영스님이 오대산 월정사(月精寺) 팔각구층석탑을 본떠 만든 탑과 석등이 탑전을 장엄하고 있다. 이 탑은 조성 당시 자운(慈雲)종사가 스리랑카로부터 모셔온 부처님 진신사리 3과를 내부에 봉안한 것으로 보문사에서는 사리탑이라 부르고 있다.
그런데 이쪽에는 문화재로 지정된 불화 3점 중 아무 것도 찾을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정문에 있는 경비실에 가서 물어보니 이 영역 말고 오른쪽으로 돌아 들어가면 대웅전이 있다고 일러준다. 대웅전(大雄殿)은 보문사의 주 법당으로 서별당ㆍ심우당ㆍ남별당으로 둘러싸인 요사채 중앙에 자리하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보문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라고 한다.
대웅전 안에는 불상 뒤로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98호 보문사 석가불도(普門寺 釋迦佛圖)가 걸려 있다. 이 후불탱화는 석가여래가 법화경을 설파한 영산회상의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가로 140㎝, 세로 180㎝ 크기이다. 보문사의 대웅전이 고종 2년(1865)에 중건되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탱화는 이로부터 2년 후에 그려 놓은 것으로 보인다.
대웅전 안의 옆쪽에는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99호 보문사 신중도(普門寺 神衆圖)가 걸려 있다. 신중은 불교의 토착화 과정에서 수용된 불교의 호법신들인데, 이처럼 별도로 그림을 그려 신앙의 대상을 삼기도 하였다. 비단 바탕에 채색하여 그렸으며, 크기는 가로 200㎝, 세로 140㎝의 크기이다. 화면을 상하로 구분하여 상단에 제석을 중심으로 하늘의 천인상을 그려 놓고, 하단에는 호법신인 신장을 그려 넣었다. 내내 마음이 편치는 않았고 지장전은 어디 있는지 잘 알 수 없어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00호 보문사 지장시왕도(普門寺 地藏十王圖)는 포기하고 말았다.
보문사 바로 옆에 있는 미타사에 간 것은 고려시대의 석탑 한 기가 있다고 해서다. 이 일대를 과거에 탑골승방이라 불렀는데 바로 이 고려시대 석탑 때문이라고 한다.
석탑은 대웅전 뒤편, 단하각(丹霞閣) 왼쪽 언덕 위에 있는 탑으로, 이중기단 위에 6층의 탑신이 올라간 모습이다. 구조는 변형된 것으로 이중기단 위에 한 돌로 만든 탑신과 옥개를 올리고, 그 위로 상륜을 올렸다. 부재는 원형이 아닌 다른 탑부재와 뒤섞인 모습으로, 5층까지는 석재가 같으나 6층과 상륜부는 석재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다시 종로구로 나온다. 청룡사(靑龍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조계사의 말사로, 종로구 숭인동에 위치한다. 922년(고려 태조 5)에 도선(道詵) 국사의 유언에 따라 태조 왕건이 어명을 내려 창건했다. 풍수지리적으로 한양의 외청룡(外靑龍)에 해당하는 산등에 지었다고 하여 사호를 청룡사라 하였다.
청룡사 역시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85호 청룡사석지장삼존상및시왕상일괄(靑龍寺 石 地藏三尊像 및 十王像 一括) 등 10여 점의 지정문화재가 있다. 대웅전은 열려 있었고 불화도 몇 점 있었으나 어둡고, 유리 액자에 담겨 있어 촬영이 쉽지 않았다.
명부전은 잠겨 있었고, 삼성각 안에도 지정문화재 탱화가 있는 듯 하지만 아기 고양이들이 계단 끝에서 지키고 있어 그들을 놀라게 하고 싶지 않아 포기하고 돌아섰다.
청룡사는 단종이 쫓겨나 결국 죽임을 당한 뒤 그의 부인인 정순왕후가 머문 것으로도 유명한데 청룡사 옆에 있는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5호 정업원터 비각은 이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비각 안에 응당 비석이 있겠지만 밖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조선 영조 47년(1771)에 세운 비로, 비문 일부와 비각 현판의 글은 왕이 손수 쓴 것이라고 한다.
[인용설명문출처: 문화재청, 한국미술박물관 홈페이지, 전통사찰관광종합정보]
첫댓글 미타사석탑은 이미 별도의 포스트로 보인 바 있습니다.
정순왕후가 머문 청룡사군요.
슬프고도, 백성들의 따뜻한 마음 씀씀이가 가슴을 아리게 하는 이야기지요.
죽어서도 남양주와 영월에 떨어져 있으니...
서울 시내 탑.불상 동선 한 번 세우면 어떨까요?
동선까지 가능할런지는 모르겠고, 서울 시내 불상과 석탑 목록 정리 한 번 해보겠습니다.
미타사, 공간.... 서울 한번 가야겠네요... 더위 누그러지면..ㅎㅎ
ㅎㅎ 정말 너무 덥지요, 요즘은.
창원은 수도권보다 더 더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