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부부 심리 코너
바쁜 남편, 한가한 아내
여자 나이 40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한 여자가 한 남자의 아내가 되어
살림하면서 남편 뒷바라지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시어른도 모셔야
되는 1인 3역을 해내면서 살아가는 동안 머리카락은 빛을 바래가고 느는
건 눈가의 주름살뿐이다.
이런 중년 나이가 되었을 때 주부들은 문득 자신의 나이를 의식하고
덧없이 지나쳐버린 세월을 회상하는 경우가 많다. 젊은 시절의 곱고
청순했던 처녀시절의 예쁜 얼굴이 아내 노릇, 엄마 노릇, 며느리 노릇을 해
오는 동안 나이든 아줌마로 변해버린 거울 속의 자신의 모습에서 여자는
간혹 아쉬움과 쓸쓸함을 느끼기도 한다.
더구나 남편은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일 속에 빠져들고, 아이들은
커가면서 학교 공부, 과외, 시험 준비 때문에 새벽에 나가서 밤늦게 집에
오는 경우가 허다해서 낮 시간의 대부분을 혼자서 지내야되는 주부들은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진 자신의 위치를 불안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요즘에는 주부들을 대상으로 하는 각종 문화 강좌나 생활 체육
프로그램이 인기가 있다는데, 그것이 모두 요즈음 너무 시간이 많아
고민스런 주부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간접 증거일 수 있다.
따라서 우리 주변에는 나이가 들면서 공허해진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 운동을 하건, 외국어를 배우거나, 취미클럽에서 자신이 이루지 못한
처녀 시절의 꿈을 다시 키우고 있는 중년 여성층이 늘고 있다.
J부인, 그녀는 일주일이 바쁜 여자다. 무슨 직장에 다니는 것도 아니고
개인 사업을 하는 것도 아니다. 순전히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공허감,
소외감을 극복하기 위해서 볼링을 하고, 크로마하프 모임에 나가고,
동문회에 나간다. 또 아이들 육성회 모임에 가거나 주일에는 교회에
나가고, 주중에는 구역 예매에 참석하거나 종교단체의 봉사모임에 나가는
경우가 많아졌다. 몇 년 전에는 일본어 학원에도 다녀서 요즘에는 간단한
일본어로 말할 수 있는 실력도 되었다. 지금 이처럼 일주일이 바쁜
J부인도 신혼 초에는 아이를 기르고 남편 따라 이곳 저곳 이사 다니느라고
정신이 없었으나,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이 되고 아이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에 접어들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러자 찾아든 쓸쓸하고
외로운 마음을 그냥 두면 우울증에 빠질 것 같아 이것저것에 신경을
쓰다보니 일주일이 바쁜 여자로 변해 버린 것이다.
반면에 H부인은 40대 초반, 요즈음 우울하고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밥맛이
없다. 그래서 표정이 어둡고, 기운이 없어 누워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더구나 낮 시간은 그런 대로 견딜 수 있으나 밤 시간이 되면 더욱
쓸쓸하고 고독한 마음 때문에 괴롭다. 그렇다고 그녀의 남편이 바람을
피우거나 아이들이 말썽을 피우는 것은 아니다. 착한 아이들과 성실한
남편, 남들이 볼 때 걱정거리가 없는 행복한 주부다. 그런 행복한 주부가
40대 초반에 찾아든 우울증 때문에 정신과 의사의 치료를 받고 있다면
남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
어려서 많은 오빠들 틈에서 풍족하고 곱게 자란 그녀는 약간 지적이고
고상한 성품이다. 여고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직장생활 중 알게된 지금의
남편은 3살 연하의 남자였다. 결혼 당시 친정에서는 가진 것이 없고
나이가 적다는 이유로 자신의 결혼을 반대했으나, 젠틀하고 성실한 남편
하나만 보고 신방을 차렸다. 가난한 신혼 때는 고생도 많이 했고 이사도
많이 다녔으나 몇 년 전부터는 남편의 사업이 궤도에 올라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요즘에는 아이들도 공부 잘 하고 남편은
사업에 몰두, 밤늦게 귀가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래서 남편은 더욱
바빠졌고, H부인은 갈수록 한가한 아내가 되어버린 것이다.
간혹 동창들이라도 만나면 "이제는 너도 먹고 살만 해졌으니 운동도 좀
하고, 어울려 다니면서 좋은 사람 소개해 줄 테니 말동무라도 하면서
즐겁게 살아 보라" 는 충고를 받기도 하지만 본래 내성적이고 워낙
까다로워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기분이 울적할 때는 친한 친구와
어울려 쇼핑을 하면서 이것저것 물건을 사보기도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공허감은 점점 더 커질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주부 우울증 환자의
자살 뉴스를 보고 이러다가는 큰 일 나겠다 싶어 정신과 치료를 시작한
것이다.
이처럼 여자의 중년기에 찾아든 외롭고, 쓸쓸하고, 고독한 심리는 갱년기
우울증의 초기증세인데 잠 못 자는 시간이 많아지고, 우울증이 심해지면
자살을 생각하는 주부도 있다.
이런 현상은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면서 일시적으로 생길 수 없는
생리적 현상에 대한 심리적 반응이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여자의 중년에 나타나는 우울증세를 가을 추수와
비교해서 '시추기'라고 말하기도 하고, 철새들이 남기고 떠나버린 빈
둥우리에 비교해서 '빈 둥지 증후군'이라 말하기도 한다.
남자는 사춘기를 넘기기가 어렵고 여자는 사추기(갱년기)를 넘기기가
어렵다는 것이 정신과 의사의 공통된 견해다. 여성의 중년에 생길 수 있는
우울증은 너무 한가한 주부에게 생길 수 있으나 너무 바쁘게 살아온
주부들에게도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중년의 위기를 슬기롭게 넘어가기
위해서는 평소에 밝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생활습관이 중요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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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원] 남자는 질투 여자는 사랑 3-1 바쁜 남편, 한가한 아내
⊙햇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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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4.16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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