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5. 5. 주일
임은미 선교사 묵상
최고의 날 ~ "내가 오늘 "기꺼이" 드려야 할 것이 있는가?" 에스라 2장
나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말을 받으면서 산다.
감사한 이유가 다양하지만 그 중 하나는
"본 이 되는 삶을 살아 주셔서 감사합니다!"이다.
내가 설교하는 설교 중 자주 하는 설교가 "본 이 되는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나는 한국 오면 택시를 탈 때가 있는데 택시 타면 거의 매번 "전도"를 한다.
전도할 때 내가 만난 기사님 중 85%는 교회를 안 다니신다고 한다.
그런데 교회를 안 다니시는 이유 중 가장 큰 퍼센티지를 차지하는 이유는 바로 교인들에게 받은 상처 때문이라는 것이다.
교인인데 사기를 친 사람도 있고
교인인데 바람난 사람도 있고
하여튼 교인들로부터 "그리스도의 본"이 되는 모습을 못 보아서 교회를 다니다가 그만 둔 기사님들이 많이 있었다.
과연 "그리스도인의 본"이 무엇일까?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내가 보여주는 "그리스도인의 본"은 무엇일까?
나는 일단 전도 하기를 힘쓴다.
나는 내 삶에서 만남을 아주 크게는 두 가지로 나눈다. 그리고 그 만남의 목적을 아주 단순하게 정의한다.
내 삶에 있는 딱 두 종류의 만남은
예수님 안 믿는 사람과의 만남
그리고 예수님 믿는 사람과의 만남으로 나뉘어 진다.
이 두 만남의 목적은?
예수님 안 믿는 사람에게는 어찌하든지 나는 그 사람에게 단 한 번이라도 "복음의 통로"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 믿는 사람에게는? 나를 만남으로 인해 그들의 믿음에 진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래서 어떤 때는 나를 만나고 또 만나고 또 만났는데 "믿음의 진보"가 없어 보이면 내가 이 사람을 만나야 할 이유는 없다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러한 나의 마음을 묵상에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나를 만나기 전에 자신의 "믿음의 진보"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되고 믿음의 진보가 없는 것 같은데 나를 만나야 하면 만나기 바로 전에 성경 책 몇 장이라도 더 읽고 나를 만나러 나온다고 한 사람도 있었다
나를 10년이 넘게 만나는 사람이 있는데 아직도(?) 내 생각에는 "믿음의 진보"가 없는 것 같아서 이제는 이런 사람은 만나지 않는 것이 좋지 않을까?
나로서는 "시간 낭비"인 거 아닐까?
이사람 만날 시간에 다른 사람 만나서 그 사람에게 "믿음의 진보"가 올 수 있다면 "믿음의 진보"가 있는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나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기도 한다.
한국에 왔으니.. 나는 또 전도하기 시작한다.
케냐에 있을 때는 개인적인 전도를 할 기회가 별로 없다.
그곳은 "단체"로 한꺼번에 하나님을 믿게 하는 기회가 더 자주 있다 한다면
한국은 내가 설교를 하는 일과 개인적 상담을 하는 일 빼고는 내가 한국에 있는 동안 묵고 있는 신월동 주변에서 내가 만나는 이웃들 개인 전도를 하게 된다.
어제도 개인 전도할 대상(?) 한 명을 만났다 ㅎㅎ
앞으로 내가 한국을 떠나기 전 세 번은 만날 이웃인 것 같아서리 "관계 전도" 1단계를 들어갔다.
전도할 때 너무 다급하게 내지는 그야말로 예수님 안 믿는 것을 나무(?)라듯 그렇게 다가서면 안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전도는 "적극적"인 것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항상 상대편을 존중하고 그리고 상대편 입장에서 대화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다.
어제는 하여튼 교회를 거의 다녀 본 적이 없다는 어느 분을 만나서 좋은 대화를 나누었다.
잠언서 이야기를 많이 대화 가운데 했더니 그런 말이 성경에 있냐고 한다. ㅎㅎ
귀여운 새 신자 후보님 ㅎㅎㅎ
넘 사랑스럽지 않은가?
성경에 대한 관심을 보인다는 그 자체가!
성경은 남편이 아내를 "귀히 여길 때" 남편의 기도가 막히지 않는다고 말씀 해 주신다.
그런데 이것이 꼭 남편이 아내를 귀히 여길 때만 이루어지는 약속일까?
아내는 남편을
부모는 자녀를
자녀는 부모를
이웃과 이웃이
서로를 "귀히 여길 줄 안다면" 우리 모든 사람의 기도에 막힘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영적 전쟁에서 "중보기도"의 중요성을 이야기하지만
내가 암만 "중보기도"를 많이 받은들
내 스스로가 내 주위의 사람들을 "귀히 여기는 마음"이 없다면
우리들이 하는 기도에 막힘이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래서 우리는 정말 조심해야 하는 것이
상대편을 귀히 여기지 않고 무시하고 정죄하고 비판하는 그 모습이 아닐까 한다.
그렇게 살면??
우리의 기도 응답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도 응답 받는 비결 아주 간단하다.
"내가 마주 하는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을 모두 귀히 여길 줄 알으면 우리의 기도 막힘이 없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예수님 믿는 사람들끼리는
서로의 "믿음의 진보"를 도우면서 서로를 귀히 여기는 실천을 하고
예수님 안 믿는 사람들에겐
일단 선한 행실과 선한 말씨로 그들의 영혼을 귀히 여기는 자세가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말 성경 에스라 2장
68. 몇몇 족장은 예루살렘 여호와의 집에 도착해 그 자리에 하나님의 집을 재건하기 위해 기꺼이 예물을 드렸습니다.
69. 그들은 이 일을 위해 각자 자기 능력에 따라 그 보물 창고에 금 6만 1,000다릭과 은 5,000마네와 제사장이 입을 옷 100벌을 드렸습니다.
유다 백성들이 성전을 지으려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했는데 그들이 성전을 짓겠다고 예물을 드릴 때 기꺼이 드렸다는 것이다.
즉슨?? 아주 기쁘게 감사하게 자신들의 재물을 드렸다는 이야기가 된다.
여기서 금 6만 1천 다릭이라고 쓰여있는데 다릭은 그 당시 금화를 칭한 표현이라고 한다.
네이버 검색에서 "다릭"을 찾아 보았더니 1 다릭이면 금 8.41 g이라고 한다. 그래서 내가 전자계산기로 8.41 곱하기 6만 1천을 해 보니 합계가 513,010 g 이 나온다.
이러면 이거이 몇 킬로 인감유?
513 킬로가 된다는 이야기이다.
요즘 금 한 돈이 얼마인지 모르겠다
513 킬로 금이면 값이 얼마일까?
성전을 재건 하는데 금을 513 킬로를 헌물 했다고 하는 것..
그것도 아까운 마음 없이 "기꺼이!!"
몇몇 족장이라고 했으니 귀환한 모든 백성이 다 이렇게 많이 헌물을 했다는 이야기는 아닌 것이다.
하나님께 무엇을 드릴 때 가장 귀중한 것이 바로 "태도"가 아닌가 한다.
억지로 5,000 킬로가 넘는 금을 드린들 하나님 기뻐하시겠는가?
나는 에스라를 묵상하면서 포로로 잡혀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자기들의 땅인 예루살렘에서 성전을 지으면서 보여준 그들의 태도와 그들의 헌물들을 보면서 우리 시대에 하나님이 "성전"이라고 불러주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이르는 서로의 "온전한 성전 됨"을 도와 주기 위해 과연 우리는 무엇을 "기꺼이" 헌신해야 하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주님 오늘도 최고의 날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너무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주님이 귀히 여기시는 "성전"들입니다.
이 성전이 잘 세워지게 하기 위하여 제가 무엇을 "기꺼이" 해야 하는지를 오늘도 명심하도록 도와 주옵소서
오늘은 계원대학 교회에 5주년 축하예배 설교하러 갑니다.
"본 이 되는 그리스도인"의 제목으로 설교할 때 제가 지켜 행하고 본 이 되었던 것들만 잘 증거하는 시간 되기를 기도 드립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 저를 보시면서 하루 종일 기쁘시면 참 좋겠습니다!
외울 말씀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 베드로전서 3장 7절 말씀)
💕 사랑하는 그대여 💕
2024. 5. 5.
사랑하는 그대여~ 사랑하는 그대여~
출. 석. 부르고 있습니다
대답하셔야죠?
"사랑하는 내 딸아~"
"사랑하는 내 아들아~"
"내가 사랑하는 나의 자녀들을
서로 귀히 여길지니라
서로 귀히 여길지니라.
한 사람만 상대편을
귀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서로 귀히 여길지니라.
너의 기도가
막히지 아니할 것이니라.
너의 기도
내가 듣고 있음이라
너의 기도
땅에 떨어지는 것이 없음이라.
그러나 너는
너의 이웃을,
너의 가족을,
너의 공동 지체를
귀히 여기느냐?
귀히 여기느냐?
귀히 여길지어다.
너의 기도가 막히지 아니할 것이니라."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저희들로 하여금
어떻게 하면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는지
성경에서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귀한 지혜 감사합니다.
이러한 지혜를 저희들의 삶에
잘 적용하도록 성령님 도와주옵소서.
사랑하는 그대여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축복합니다.
오늘도 그대의 최고의 날입니다.
(* '사랑하는 그대여' 말은 '사랑하는 그리스도의 대사여'를 줄여서 말하는 것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