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지붕 피아노/서성수-
소문도 없이 다가오는 빗소리
가는 비 낮은 소리도 놓치고 않고
굵은 비 우당탕탕 더 커다랗게 들리는 것은
누군가 지붕 위에 피아노를 올린 것이 분명하다
산자락 둘러싼 무대에 단풍잎 조명이 켜지면
구름과 바람과 안개로 짠 드레스를 입고
지붕 제일 높은 곳에 자리 잡은 연주자
노란 연미복의 은행나무는 지휘봉을 들어 올리고
오동나무 가죽나무 산수유는 제각기 악기를 들어
오래 호흡을 맞추어온 협연을 준비한다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악기가 함께 하는 연주도
그 시작은 느리고 여리게 귓속말로 찾아와
선율의 변주가 악보를 그대로 그려나가며
능선과 맞닿은 공제선에 현을 당겨두고
손가락 끝 가볍게 뜯어져 나오는 꽃잎의 춤사위
혼신의 힘으로 떨림판을 두드리는 운지법으로
산등성이와 골짜기가 동음조율로 맥놀이를 맞추면
구름 타고 내려와 악보를 펼치는 커다란 손가락
장대한 화음을 자아내는 연주자를 위해
희고 검은 강철 건반을 이어붙인
박공지붕의 타현악기가 된다
세상 바깥으로만 음을 튕겨내던 해머의 굳은살이
제 가슴 안쪽 흉곽을 뚫고 들어서는 내생은
바깥세상 보다 더 깊고 너른 공명의 무게여서
진동판이 부르르 몸을 떠는 강철 지붕 피아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