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호의 간세탈출] 한양도성 백악산 구간(1코스) 와룡공원에서 혜화문까지 순성길 1코스 완주하기.
■간세는 게으름뱅이라는 제주도 말이다. 이동호의 간세탈출은 움추림에서의 탈출, 일상에서의 탈출이다■
지하철 4호선 혜화역 인근 동숭로 대학로 풍경.우측이 서울대병원 건물이다.
2022년 7월16일 정오경 혜화역 4번 출구로 나와 지난 6월25일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 만세동방에서 숙정문을 경유하여 와룡공원에서 성균관대 후문을 통과해 필자의 모교인 성균관대에서 56년 전 추억의 세상 속으로 탐방을 끝내고 혜화역에서 마무리를 했는데 70년 전 6·25 전쟁이 나 대구로 피난 내려 갔다가 9·28 수복하면서 어머니와 함께 들렸던 종로구 연건동 26번지 할아버지 집을 찾아보기로 했다. 56년 전 성균관대를 다닐 때도 할아버지 집이 있었는데 지금은 어떨까?
종로구 연건동 26번지 할아버지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길 전경, 좌측 건물이 서울대병원 건물 담이다.
할아버지 집이 여기쯤이다 싶은데 도로로 변해있다. 흔적도 남아 있지 않다. 세월을 이길 자가 없다고 했던가.56년 전 종로구 충신동에서 성균관대학으로 매일 공부하러 다녔던 거리이다.
옛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본관 건물 전경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건물 맞은편 서울대학교 문리대 본관 건물은 아르코미술관으로 바뀌었고 정문 입구의 마로니에 나무는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건물 전경.
토요일이라 정문이 굳게 닫혀있다. 서울 문리대와 마주보고 있었다.
와룡공원 내 한양도성 순성길 안내도.
백악산 구간(1코스)이 빨간색으로 노정이 표시되어 있다.
4호선 혜화역 4번출구로 나와 길 건너편에서 성대후문 가는 8번 마을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려 올라가면 와룡공원 내 성곽길을 만나 혜화문쪽으로 내려가면서 백악산구간 잔여 코스 탐방을 시작한다.
와룡공원 출발점.
왼쪽이 성북동 복정마을 전형적인 양식 2층집들이 모여 있다. 성곽길로 1.4km 내려가면 혜화문이 나온다. 곧 비가 올 것처럼 잔뜩 날씨가 흐려있다. 등산하기에는 안성맞춤 날씨이다.
한양도성 성곽길 풍경.
오붓하게 걷는 맛이 감칠나다. 게으름 피우지 말고 움직여라. 그래야 건강하게 살아간다.
북한산 백운대
성곽 넘어 북한산 백운대가 눈에 들어온다.
성북동 전경
혜화동 로타리에서 미아리로 가는 대로에서 4호선 한성대입구역 인근에 삼선교가 나오는데 성북동으로 들어가게 된다. 필자가 아주 어릴적 할아버지 등에 업혀 할아버지가 운영하시던 절이 이 성북동 마을에 있었다고 어머니가 말씀해 주시곤 했다.
한양도성과 순성길 지도 안내판.
와룡공원에서 혜화문으로 내려가는 성곽길 중간쯤에서 성북동으로 들어가는 대로 때문에 성곽이 일부 끊기고 대로변 입구에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한양도성의 역사와 순성길을 친절히 가르쳐 주고 있다.
한양도성은 조선왕조 도읍지인 한성부의 경계를 표시하고 왕조의 권위를 드러내며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된 성이다. 1396년(태조5)에 백악(북악산)·낙타(낙산)·목멱(남산)·인왕의 내사산(内四山) 능선을 따라 쌓은 이후 여러차례 고쳤다. 평균 높이 약 5~8m, 전체 길이 약 18.6km에 이르며 현존하는 전 세계의 도성 중 가장 오래도록(1396~1910년, 514년) 성(城)의 역할을 다한 건축물이다.
북한산 백운대 전경.
혜화문으로 가는 길에 성북동 넘어 북한산 백운대가 선명히 나타난다.
순성 쉼터와 혜성교회 전경.
혜화문까지 성곽길을 따라 순성 쉼터와 혜성교회가 나타난다.
공사 구간 공사 전 모습
성곽 보수 현장이 나타났다. 보수 현장 칸막이에 이곳 보수 시작 전 성곽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붕괴 일보 직전의 모습이다.
보수 현장에 게시된 성곽 축조 연혁
부분적으로 성곽 수리가 진행되고 있다. 시대별 성곽 축조 방식이 다름을 알 수 있다.
혜화문에서 낙산 간의 성의 축조 형태/보수 현장에 게시된 사진에서 캡쳐
한양도성의 성벽에는 낡거나 부서진 것을 손보아 고친 역사가 고스란이 남아 있으며, 성벽 돌에 새겨진 글자들과 시기별로 다른 돌의 모양을 통해 축성 시기와 축성 기술의 발달 과정을 알 수 있다.
사직동 성곽 전경/보수 현장에 게시된 사진에서 캡쳐.
범바위 인왕산 성곽길 전경/보수 현장에 게시된 사진에서 캡쳐.
와룡공원 부근 1 지역의 성곽 축조 전경/보수 현장에 게시된 사진에서 캡쳐.
와룡공원 부근 2 지역의 성곽 축조 전경/보수 현장에 게시된 사진에서 캡쳐.
보수 현장에 게시된 완성된 한양도성 지도.
한양도성에는 사대문(흥인지문·돈의문·숭례문·숙정문)과 사소문(혜화문·소의문·광희문·창의문)을 두었는데 이 중 돈의문과 소의문은 없어졌다. 2014년까지 한양도성 전체 구간의 70%가 옛모습에 가깝게 정비되고 숙정문·광희문·혜화문은 다시 세워졌다.
한양도성 혜화동 전시안내센터 표지판
혜화문에 거의 도달하니 혜화동에서 넘어오는 대로와 만나 오른쪽으로 서울시장 구관저 안내 표시에 한양도성 혜화동 전시안내센터 표지판이 보여 발길이 구관저 쪽으로 향했다.
서울시장 구관저 전경, 지금은 한양도성 전시·안내센터로 쓰여지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2013년도까지 여기서 살다가 가회동 신축 서울시장 공관으로 이사갔다고 한다. 80년 된 집이라고 경비실 아저씨가 말해 준다.
서울 시장공관 내부 앞마당 잔디 정원 풍경.
그렇게 크지 않은 정원에 소박한 모습이다.
시장 관저 1층 전경. 전시실로 활용하고 있다.
시장 관저 2층 전경.
시장 관저 전시실에 있는 <도성삼군문 분계지도>
한양도성은 전쟁을 목적으로 산 위에 쌓는 요새가 아니라 조선 왕궁을 상징하고 수도 한성부의 도시 공간을 관리하기 위하여 쌓은 성곽이다. 왕조의 중심인 궁궐과 종묘를 보호하고 도시의 안과 밖을 엄격히 구별하면서 사산(四山)의 능선을 따라 축조되었다.
영조는 1751년(영조27)에 백성을 위하는 마음으로 금송(禁松·소나무를 군사용 선박 제조에 쓰기 위해 소나무 벌채를 허가제로 하는 정책), 준천(浚川·똥물이 진동하는 청계천을 준설하는 정책), 수성(守城·성을 쌓아 도성을 수호하는 정책)으로 이어지는 도시관리 정책을 담아 <어제수성윤음·御製守城綸音>을 반포하였다.
한양을 둘러싸고 있는 사산(四山)의 숲, 도시의 물길, 도성의 방어가 한 몸같이 긴밀한 관계임을 인식하면서 이제까지 '왕의 공간'으로 여겨졌던 수도를 사민(士民)과 함께 하는 공간으로 선언하였다. 아울러 한양도성을 세 구간으로 나누고 도성의 방어와 관리를 맡은 훈련도감, 금위영과 어영청의 삼군문에서 관리하도록 <도성삼군문분계지도>에 표시하였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도시가 번창하려면 좋은 정책으로 계획을 세워 확실히 관리하고 실천해야만 성군 소리를 듣는 것이다. 영조 임금도 똑똑한 편의 군주였다.
한양도성 왕조 시대별 축성·정비 기록도
태조 이성계는 1394년 도읍을 한양으로 옮긴 2년 후인 1396년(태조5)부터 2년여 동안 강원, 경상, 전라, 서북면, 동북면의 백성 197,400여 명을 동원하여 도성을 쌓게 하였다. 처음 완성되었을 때 평지는 흙으로, 산지는 돌로 쌓았으나,
1422년(세종4)에 토성(土城)을 모두 석성(石城)으로 고쳐 쌓았다.
1704년(숙종30)에 임진왜란으로 인해 파괴된 도성의 대대적인 보수가 진행되었고,
백성이 아닌 도성의 군영이었던 훈련도감, 금위영, 어영청이 담당하였으며 이후에도 여러차례 정비되었다.
한양도성은 세계에서 가장 오랜 시간(1396~1910)동안 도성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한양도성을 잘 정비하여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받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성곽으로 전 세계의 관광객이 몰려오도록 하여 성곽길 주변으로 관광객이 편히 쉬도록 하는 카페와 기념품점, 면세점 등 관광 유발 효과를 볼 수 있는 편의시설들도 잘 정비해 나가는 정책이 필요하다.
시장관저에 있는 도성도(都城图).
17세기 말 조선 영조(1724~1776) 시대에 만들어진 <조선강역총도>에 포함된 <도성도>이다. 이런 사료들로 보아 그나마 영조시대에 들어서 한나라의 수도를 수도답게 만들려는 의지가 돋보인다. 홍수 때마다 청계천이 범람해 경복궁까지 침수가 되고 하는 난리를 겪으면서 청계천을 준설해서 다시는 궁궐이 침수되지 않도록 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영조는 현군임에 틀림없다.
혜화문 정문 전경.
혜화문(惠化門)은 조선의 수도인 한양의 4소문(小門) 중의 하나로 동쪽의 소문이다. 숙정문을 대신하여 한양의 북쪽 관문 역할을 하였다. 동소문(東小門)이라는 속칭이 있는데, 이는 조선 초기부터 불린 이름이다.
1397년(태조5)창건 당시에는 홍화문(弘化门)으로 불렀으나 1511년(중종6)에 혜화문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684년(숙종 10년)에 재건립되었고 영조 때에는 없던 문루를 지어 올렸다.
혜화문은 언제부터인가 멸실되었다가 1992년에 복원되었다.
필자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1960년대)에는 지금 서있는 혜화문 자리에는 동굴주막집이 있어서 친구들과 어울려 와서 막걸리 파티들을 많이 했다. 옛날 그 시절 학사주점이 유행하던 때였다. 실제로 동굴이 있었다. 들어가면 시원하고 운치도 있었다.
혜화문 후문에서 인증샷
서울 한양도성(汉阳都城) 순성(巡城)길, 한양도성 성곽길을 따라 걷는 순성길은 서울의 내사산(백악산, 낙산, 남산, 인왕산)을 잇고, 사대문(숭례문, 흥인지문, 숙정문, 돈의문 터)을 포함한 문화유산을 지나는 총 18.6km의 역사와 문화 체험의 길이다. 필자가 정문에서 들어와 후문 쪽 광장에서 인증샷을 찍었다.
혜화문 측면 전경
혜화문에 도착하여 한양도성 순성길 1코스 창의문에서 헤화문까지 백악 구간 성곽길 탐방(순성·巡城)을 완주했다. 혜화문은 혜화동로터리에서 삼선동, 미아리로 가는 대로 옆에 서있다. 자연히 성곽길은 끊어져 대로를 건너 다시 이어진다. 이 다음부터는 낙산 구간 2코스로서 동대문(흥인지문·兴仁之门)까지 성곽길이다. 2코스 출발점으로 들어서 계단을 올라 성곽길을 걷기 시작하는데 장대같은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곧 그칠 것 같지않아 순성길을 중단했다. 그러고도 계속해서 비가 왔다. 2코스 시작은 일요일 17일에 하기로 하고 오늘의 와룡공원에서 혜화문까지의 순성길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