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이 사법부를 포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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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법경유착 - 대기업으로 몰려가는 판검사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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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준 기자 ltj@digitalmal.com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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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그룹들이 그룹 내 법무실을 강화하면서 전현직 판검사들을 끌어 들이고 있다. 분식회계, 경영권 분쟁, 불법대선자금 등 각종 법률 분쟁에 연루될 수 있는 기업들이 이런 위험을 줄이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곱게만 볼 수 없는 까닭이 있다. 이 쟁쟁한 법조 인사들이 지닌 정보력과 인맥, 로비력은 검찰과 법원을 누비며 수사기밀을 유출하거나 기업에게 유리한 판결을 유도하는 힘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저지르는 불법행위를 은폐하거나 더 한층 세련되게 합법행위로 둔갑시킬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민주화 이후 분산된 각종 권력을 자본이 침식해 들어가고 있는 가운데, 이젠 사법 권력마저 자본에 포섭되어 가고 있다”고 한탄한다.
더욱이 삼성은 이건희 회장 지시로 앞으로 5년 안에 변호사 수를 300명으로 늘릴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이 본보기로 삼는 건 GE(제너럴일렉트릭)의 법률지원 체제다. GE는 약 1000여명의 사내 변호사를 두고 있다. 이미 지난해 가을 삼성은 이 모형을 배우기 위해 구조조정본부(이하 구조본) 소속 변호사를 미국의 GE 본사로 파견한 바 있다. 현재 국내 최대 법무법인(로펌)인 ‘김&장’ 소속 변호사는 270여명. 만약 삼성이 계획대로 변호사 300명을 갖춘다면 국내최대 ‘로펌’을 그룹 안에 갖추는 셈이 된다. 현재 삼성그룹 소속 국내 변호사 50명중 판검사 출신의 유명 변호사는 모두 30여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검사 출신만 11명. 웬만한 지방검찰청에 버금가는 규모이다. 특히 이들 중 대다수는 특수부와 공안부 출신들이다. 이 가운데서도 백미는 전체 그룹 경영을 지휘하는 사령탑인 구조본 법무실이다. 여기엔 현재 알려진 것만 검사 출신 8명, 판사 출신 3명 모두 15명의 판검사 출신 변호사가 사장-상무급 임원으로 포진해 있다. 이 실장은 노무현 대통령과 사시 17회 동기생이자 노 대통령의 친목모임인 ‘8인회’ 회원이다. 탄핵심판 때 그는 노 대통령 변호인단 일원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이 실장은 검찰에서 특수수사를 총괄하는 대검찰청 수사기획관을 지낸 뒤 1999년부터 ‘김&장’ 대표 변호사로서 SK분식회계사건, 대북송금사건, LG 대선자금 사건과 같은 굵직한 기업관련 소송을 맡았다. ‘김&장’에서 이 실장은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으로 기소된 허태학 전 삼성에버랜드 사장을 변호하면서 삼성과 첫 인연을 맺었다. 이 실장 뿐 아니라 구조본 소속 다른 검사 출신 변호사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지난해 말 삼성은 구조본 부사장으로 서우정 변호사를 영입했다. 서 부사장은 서울고검 검사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부장검사 출신이다. 서 전 검사와 함께 서울지검 특수부에서 일했던 평검사 1명도 함께 삼성으로 옮겨왔다. 서울지검 특수부는 바로 삼성 이건희 회장의 장남 재용씨가 관련된 에버랜드 주식편법 증여 의혹사건과 같은 굵직한 기업수사를 하던 곳이다. 역시 서울 지검 특수1부 검사 출신 엄대현 구조본 상무는 검사 시절 증권과 경제 분야에 해박해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 같은 대형 경제사건들을 맡은 경험이 있다. 김수목 구조본 상무도 광주지검부부장 검사를 지낸 특수통 검사 출신이다. 김 상무는 2002년 검사 시절 ‘이용호 게이트’ 수사팀을 맡았다. 2003년에 김&장 소속 변호사로 옮겨서는 나라종금 의혹사건 변호를 맡기도 했다. 이기옥 상무보 대우는 수원지검 특수부 검사출신으로 백두사업 납품업체 선정과 관련해 뇌물수수로 혐의로 린다 김을 조사한 바 있다. 판사출신으로 눈에 띄는 이는 여남구 구조본 상무 대우다. 그는 서울고법 판사출신으로 2001년 인터넷 업체들이 무료로 제공했던 이메일 서비스를 중단하자 네티즌들이 제기한 피해보상소송사건을 맡아 “서비스 업체에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판결한 바 있다. 삼성은 구조본 법무실 뿐 아니라 각 계열사 법무팀 인력도 화려하다. 해외 변호사를 포함해 약 20여명 법률 전문가를 두고 있는 삼성전자는 최근 서울지검 검사출신인 김영호 삼성물산 법무팀장을 삼성전자 법무팀 상무 대우로 발령했다. 삼성생명 법무팀장 신흥철 상무는 법관 임관성적 3위인 수재 판사로 법원에서 촉망받던 인물이다. 그는 서울지법 판사 시절인 1995년 말 12.12 사건, 5.18 사건 및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전두환씨에게 사전구속영장을 발부했던 주인공이다.
대검 중수부 3과장, 서울고검 부장검사을 지낸 김 부사장은 강금실 법무부 장관 취임 뒤 장관직속 법무부 정책기획단에서 검찰과 법무개혁을 주도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특히 김 실장은 최태원 SK(주) 회장의 신일고-고려대 3년 선배다. 최 회장은 김 실장을 영입하기 위해 수차례 그에게 간곡한 부탁을 했다고 알려졌다. SK는 또 지난해 1월 판사 출신으로 청와대 법무비서관실 행정관을 지낸 강선희 변호사를 영입해 윤리경영실 법률자문팀장을 맡기고 있다. LG그룹도 최근 그룹내 변호사를 23명으로 늘리면서 법무 인력을 보강하고 있다. 지주회사 LG(주)는 최근 김상헌 법무팀장(상무)을 부사장으로 승진시켰다. 김 부사장은 서울형사지방법원 판사와 서울지법 지적소유권 전담부 판사출신이다. LG는 또 2003년 서울중앙지검 검사 출신인 이종상 상무를 영입해왔다. 이 상무는 검사시절인 1997년 유명 필기구 업체인 한국 빠이롯드 부도수표 사건을 수사했다. 판사 출신 권오준 상무도 LG전자 법무팀 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권 상무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김호연 빙그레 회장의 상속재산 법정분쟁 주심판사를 맡았다. 대기업들의 이러한 ‘수요’에 발맞추듯 법원과 검찰에서는 쟁쟁한 판검사들을 ‘공급’해주고 있다. 2월과 4월 대법원과 검찰 정기인사를 앞두고 고위직 판검사 60여명이 사표를 내고 이 ‘시장’으로 나올 예정이다. 이들에 대한 대기업들의 물밑 작업도 이미 시작됐다. 승진이 확실했던 서울중앙지법 A부장판사가 지난 1월 삼성으로부터 부사장급 영입제의를 받고 사표를 냈다고 알려졌다. 삼성이 이 부장 판사를 부사장급으로 영입하면 이종왕 변호사를 중심으로 부장 검사와 부장 판사 출신을 좌우에 배치하는 셈이다. 대법원 재판연구관 B 판사도 SK로부터 영입 제의를 받고 사표를 냈다. 이 두 현직 부장 판사가 실제로 자리를 옮긴다면 현직 부장 판사가 변호사 개업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대기업 법무팀으로 이직하는 첫 사례가 된다. 기업들의 이런 우려엔 설득력이 있다. 실제로 증권집단소송법, 공정거래법, 제조물책임법 등 국내경영 관련 법규는 갈수록 까다롭게 바뀌고 있다. 세계화로 시장이 열리면서 특허분쟁, 통상마찰, 적대적 인수합병과 관련한 소송분쟁도 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후지쯔사는 자신들이 보유한 PDP관련 기술특허를 침허했다며 미국과 일본 법원에 삼성SDI를 제소해 삼성은 수조 원대의 손실을 입을 뻔 했다. 이창훈 SK텔레콤 기업문화실 과장은 “앞으로 회사는 법률 ‘리스크’에 대비해 투명경영과 윤리경영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데, 그러한 경영시스템을 지원해주는 인력이 바로 법조계 전문인력”이라며 “대기업들이 판검사들을 영입하는 건 단순히 구색갖추기가 아닌 생존전략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기업들이 전현직 판검사들을 끌어들이는 까닭에는 ‘다른 효과’를 노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곧 대기업은 이 판검사들이 지닌 법조계 내부 정보력과 인맥을 최대한 활용해 법률위험을 줄이고, 심지어 기업관련 수사나 재판에서도 최대한 유리한 결과를 이끌어내는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참여연대 사법개혁센터 박근용 간사도 “최근 흐름을 보면 순수하게 영업행위에 대한 법률자문과 구제를 위한 것으로만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기업들 불법행위를 수사했던 특수부 출신 검사나 기업이 피고였던 소송을 맡았던 이들이 대기업으로 가고 있다. 기업들은 이들을 ‘바람막이’나 로비용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기업이 법조인을 뽑을 때 그들의 인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있을까.” 특히 특수수사를 맡았던 검사들이 대기업으로 가는 것은 문제란 지적이 많았다. 이들이 기업에 들어가면 수사 기밀을 유출하거나 ‘비리방어 전술’을 ‘지도’하는 역할을 맡을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실제로 삼성이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서우정 부장검사를 영입할 때 이런 논란이 일기도 했다. 서울지검 특수부는 삼성 이건희 회장의 장남 재용씨가 관련된 에버랜드 주식 편법증여 의혹사건 수사를 하던 곳이었기 때문에 수사정보 유출 논란이 빚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대기업들이 이런 인맥을 탐하는 것은 SK분식회계 사태와 불법대선자금 수사를 겪으면서 검찰 내부동향을 미리 파악할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그렇다면 검찰 내부에 인맥을 갖춘 거물급 검사들을 영입하는 작업은 필수인 셈이다. 최태원 회장이 학교 선배인 김준호 전 대검 중수부 부장검사를 영입하기 위해 수차례 간곡하게 부탁했다는 점도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공직자윤리법 저촉 문제도 제기될 수 있다. 공직자윤리법 ‘퇴직공직자취업제한제도’는 “공직자들이 영리 또는 사기업체에 취업하기 위해서는 퇴직 전 3년간 소속부서에서 해당업체와 관련한 업무를 했는지를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로부터 사전승인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심사와 승인기간은 퇴직일부터 2년 동안이다. 한 법원 관계자는 “공직자윤리법에도 공직자가 사표를 내자마자 기업으로 옮아가는 것을 우려해 별도 심사과정이 필요하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며 “따라서 법관이 법복을 벗자마자 대기업으로 가는 것은 여러 가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 사법부 신뢰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한화의 대한생명 인수 의혹사건만 보더라도 검찰이 정경유착을 포착해서 수사한다. 곧 기업경영을 과거 비정상적인 정경유착 방식으로 하긴 힘든 상황이다. 이제는 정경유착이 아니라 기업이 법조인들을 영입해 미리 수사기관이나 법원에 대해 정보를 수집하고, 불법행위를 사전에 은폐하거나 합법으로 조율하는 작업을 할 가능성이 있다. 아무래도 기업관련 수사나 판결을 담당했던 판검사들이 기업 법무에 대해서도 합법과 불법의 경계선을 가장 잘알고 있을 터이다. 그래서 그 경계 가운데 기업은 ‘합법 수준’을 찾고 또 여전히 저지르는 불법관행을 은폐하려는 방편으로 이들을 활용할 수 있다.” 이런 지적들에 대해 대기업 관계자들은 “능력을 이용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반박한다. 삼성구조본 한 관계자는 “전관 예우를 너무 부정적으로만 볼 순 없다”고 주장했다. “삼성의 경우 인재를 많이 모은다. 전직 판검사가 중요한게 아니라 그들이 법률 전문가이기에 중요하다. 지식, 경험, 인력관계가 많은 전문가니까 인재를 중시하는 삼성에서 그런 분들 위주로 뽑는 건 당연하다.” 연수원을 졸업하고 바로 삼성계열사 법무실로 입사한 한 변호사는 “전현직 판검사 분들이 지닌 경력은 오히려 일반 로펌이 갖지 못하는 경쟁력”이라며 “기업들은 그 점을 높이 산 것”이라고 말했다. 인맥 이용이나 정보유출 우려에 대해 이 변호사는 “이해하기 어렵다. 판검사 출신들이 외부에 변호사로 있을 땐 자기 경험과 인맥, 정보망을 이용하는게 편법이 아니고, 기업 내부로 들어오면 편법이 되는갚라며 반박했다. “예전 권위주의 정권 때 사법부는 대통령과 정치권력에게 ‘밥’이었다. 대통령이 검찰과 법원을 다 쥐고 흔들었다. 그런데 민주화가 되면서 중앙 정치권력이 분산됐다. 모든 권력들이 자율성을 지니고 분산하는 과정인데, 이를 역으로 보면 권력이 빈 공백 상태인 셈이다. 바로 자본이 그 공백을 치고 들어오고 있는 상황이다. 곧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들어오면서 중앙 집중된 권력이 해체되고 사법부를 비롯한 모든 권력이 분권화, 자율화되고 있고, 이것을 자본이 침투, 포섭해가고 있다.” 대기업과 관련된 여러 중요한 검찰수사와 재판들이 아직 진행중이다. 그 가운데 삼성에버랜드 주식 편법증여에 대한 법원의 판결도 남아있다. 이 재판은 법적 심판 뿐만 아니라 증여세 한 푼 안내고 삼성 그룹 전체 경영권을 이어가려는 삼성 일가의 편법에 도덕적 책임을 묻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삼성SDI 노동자 불법 위치추적 사건에 대해선 최근 검찰이 수사를 중단했다. 사건을 맡았던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 이영우 검사는 “기술상 수사가 어렵다”고 하지만 김성환 삼성일반노조위원장은 “이번 사건은 검찰수사의지 문제다. 검찰이 이동통신업체나 삼성임직원들을 소환해 수사할 마음만 있다면 해결할 수 있다”고 맞서고 있다. 대기업이 법률 위험을 줄이기 위해 판검사들을 영입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법조인들도 직업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 하지만 대기업이 이들 판검사들을 영입하는 최근 흐름에서 주목할 점은 ‘권력으로서 자본’이 자기 모습을 한층 뚜렷이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모든 권력이 자본으로 모이고 있다. 이미 투자파업으로 개혁정부를 길들이고 있는 한국 대자본들이 이제는 사법권력을 포섭해가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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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말 2005년 225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