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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미국 앨라배마 공장 전경. |
정몽구(鄭夢九) 현대차그룹 회장은 지난 9월 6일,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현대차의 소형차 전략생산기지인 인도 공장과 터키 공장을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정 회장은 인도 타밀라주(州) 첸나이에 있는 인도 공장을 찾아 인도 전략 차종인 ‘i20’의 생산 라인을 둘러봤다. 또 터키 이즈미트시에 위치한 터키 공장을 찾아 양산 예정인 ‘신형 i20’의 생산 준비 상황을 직접 챙겼다. 정 회장이 이처럼 휴일을 반납하고 해외 공장 순시에 나선 것은 그가 유독 현장 경영을 중시하는 것도 한몫을 하지만, 오늘날 현대·기아차의 해외 공장 중요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 더 큰 이유다.
현대차 브랜드 가치, 11조원
글로벌 브랜드 컨설팅업체인 ‘인터브랜드(Interbrand)’는 지난 10월 9일 현대차의 브랜드 가치가 약 11조원(40위)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현대차의 브랜드 가치가 10조원대를 넘어선 것, 또 40위에 랭크된 것은 처음이다.
현대차가 글로벌 브랜드 경영을 대내외에 선포한 것은 지난 2005년 1월. 이 해에 현대차의 글로벌 가치는 84위에 랭크됐었다. 이번 발표를 보면, 자동차 부문의 브랜드 가치는 도요타(전체 순위 8위·브랜드 가치 45조원), 벤츠(10위·36조원), BMW(11위·36조원), 혼다(20위·23조원), 폴크스바겐(31위·14조원), 포드(39위·11조원), 현대차, 아우디(45위·10조원), 닛산(56위·10조원), 포르셰(60위·7조원), 기아(74위·5조원), 쉐보레(82위·5조원)의 순(順)이다. ‘현대차’라는 브랜드가 84위(지난 2005년)에서 40위로 껑충 뛰어오른 것은 10년이 채 되지 않은 일이다.
‘인터브랜드’ 관계자는 “현대차는 ‘제네시스’ ‘쏘나타’ 등 경쟁력 있는 신차를 바탕으로 양적에서뿐만 아니라 브랜드 가치에 있어서 질적으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회사 중 하나다. 현대차를 구매하는 데 브랜드 로열티가 한몫을 하게 된 것은 굉장히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짧은 시간에 브랜드 가치가 높아진 것에 대해 “단순히 외부에 브랜드를 노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임직원 모두가 브랜드 철학에 대해 깊이 공유하도록 함으로써 제품개발, 마케팅, 서비스 등 전(全) 부문에서 고객이 현대차 브랜드에 대해 일관된 메시지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해온 것이 효과를 거뒀다”고 말했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데에는 현대차의 글로벌 공략 전략이 바탕에 깔려 있다.
해외생산 500만 시대 코앞
현대・기아차는 현재 세계 8개국에 총 16개의 생산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미국・중국・인도・러시아・브라질 등 해외에서 생산할 수 있는 현대・기아차 차량 대수는 연간 총 449만 대다. 조만간 해외에서 생산하는 ‘현대・기아차’ 자동차는 500만 대를 넘어설 전망이다. 기아차가 멕시코에 연간 30만 대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짓고 있고, 현대차의 중국 4공장 건설이 가시화되고 있어서다. 이렇게 되면 현대・기아차 해외 생산 500만 시대가 열린다.
현대・기아차가 전 세계 무대를 대상으로 끊임없이 공장을 짓고 있는 이유는 글로벌 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현지 공장’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현대차가 오는 2016년까지 완공하기로 한 기아차 멕시코 공장의 사연은 이렇다.
현대・기아차 관계자의 말이다.
“멕시코는 연간 판매 수요가 100만 대이고 향후 성장 가능성이 높은 국가이지만, 관세가 20%에 달했습니다. 기아차는 아예 판매를 할 수 없었습니다. GM, 폴크스바겐, 도요타, 닛산 등 글로벌 메이커들도 현지 생산 체제로 멕시코 시장을 공략하고 있습니다. 멕시코는 인건비가 저렴하고, 노동생산성이 높은데다, 중남미를 포함해 40여 개국과 FTA 네트워크를 갖고 있어서 꼭 필요한 곳입니다. 특히 북미와 중남미 다수 국가에 무관세로 판매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실제로 현지에 생산 공장이 있는 것과 없는 것, 이 차이는 정말 크다. 현대・기아차의 판매 대수가 이를 입증한다.
현대・기아차에서 중국 공장은 글로벌 생산 기지의 핵심이자, 그룹이 글로벌 경영 체제를 구축하는 데 가속력을 배가시킨 곳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현대·기아차가 글로벌 톱 5 자동차 메이커사로 도약하는 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중국에서의 폭발적인 판매 덕분이었다”고 말했다. 물론 그 폭발적인 판매 뒤에는 중국 현지 공장이 있다.
현대・기아차는 지난 2002년 10월, 북경기차와의 합자(合資) 법인으로 북경현대를 설립해 두 달 만에 양산 체제를 갖췄다. 이때 중국 내 판매 대수는 현대차가 1002대, 기아차가 3만95대였다. 북경현대 공장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면서 현대・기아차의 판매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지난 2004년 현대차 14만4088대가 팔리더니, 이듬해에는 23만3668대, 57만309대(2009년), 79만3008대(2010년), 103만808대(2013년)가 중국에서 팔렸다. 같은 기간 기아차는 11만8대(2005년), 33만3028대(2010년), 54만6766대(2013년)가 팔렸다. 현대차는 지난 2008년 총 7억9000만 달러를 투입해 북경 2공장을 새로 짓고, 기아차는 2012년 연간 30만 대를 생산할 수 있는 중국 3공장을 착공해, 현재 중국형 ‘K3’와 ‘K4’를 생산하고 있다.
현대・기아차 중국사업본부 관계자는 “현지업체 81개, 한국에서 동반 진출한 업체 91개 등 총 172개의 협력사가 자동차 불량화를 최소화해 중국 고객들에게 최상의 만족감을 제공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며 “향후 중국 공장에서는 중국차 시장이 세분화되는 것에 맞춰 중국 전용 신차를 개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기아차 공장이 들어선 것은 신의 축복’ 팻말 세운 미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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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앨라배마 공장을 둘러보는 정몽구 현대차 그룹 회장(가운데). |
세계 자동차 시장의 최대 격전지인 미국에서도 공장이 있을 때와 없을 때 판매는 천지차이다. 2000년부터 미국 진출을 검토하고 있던 현대・기아차는 지난 2002년 4월 미국 앨라배마 공장을 건설해 지난 2005년 5월부터 이곳에서 자동차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현대차는 미국 현지 소비자들에게 ‘메이드 인 USA’ 현대차라는 인식을 심어주며 높은 품질 확보에 열을 올렸다. ‘그랜저’(현지명 아제라)를 시작으로 프리미엄 세단인 ‘제네시스’(2008년), ‘에쿠스’(2009년) 등을 잇따라 론칭했고, 한동안 답보 상태였던 미국 내 판매는 지난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불을 뿜기 시작했다. 지난 2010년 53만8228대가 팔리더니, 이듬해인 지난 2011년에는 64만5691대, 70만3007대(2012년), 72만783대(2013년)의 ‘메이드 인 USA’ 현대차가 팔렸다.
세계적인 경영 컨설팅 업체인 ‘올리버와이먼’은 <2009년 하버리포트>에서 “북미 전체 35개의 자동차 프레스 공장 중 현대차 앨라배마 프레스 공장이 생산성 1위로 뽑혔다. 생산을 시작한 지 불과 5년 만에 생산성 1위를 달성해 놀랍다”고 평가했다.
현대차의 뒤를 이어 미국 시장에 진출한 기아차의 성과도 눈부시다. 기아차는 지난 2006년 3월 조지아주에 공장을 세우기로 하고, 지난 2009년 11월부터 본격적으로 양산하기 시작했다. 기아차는 지난 2001년부터 공장을 짓기로 한 2006년까지 북미에서의 판매가 20만 대에 머무르고 있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양산을 시작한 후부터 판매에도 가속도가 붙었다. 기아차의 미국 내 판매는 30만63대(2009년), 35만6268대(2010년), 48만5492대(2011년), 55만7599대(2012년), 53만5179대(2013년)를 기록했다.
현대・기아차 미국 법인 담당자는 현지에 공장을 세우기 전과 후의 브랜드 인지도 차이는 상당하다고 분석했다. 그의 얘기다.
“미국에 현지 공장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세계 시장에서 브랜드 이미지 향상 효과가 큽니다. 판매가 늘어나는 것은 물론이고, 환율 리스크도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죠. 자동차 설계에서부터 부품개발, 생산, 마케팅, 광고, 판매, A/S 등 전 부문의 현지화 체제를 구축하여 미국 소비자들의 ‘바이 아메리카’ 감정과 정서에 충분히 부합했습니다.”
―미국인들이 현대차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겠군요.
“현대차 공장이 있는 앨라배마주는 10년 전만 해도 목화 산업에 의존하면서 미국 내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이었습니다. 요즘은 미국 내 최대 규모의 자동차 생산기지로 변신해 주민들이 자긍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 계기가 된 현대차에 대한 애정이 굉장히 높다고 느껴집니다. 기아차 공장이 위치한 조지아주의 한 주민은 ‘기아차 공장이 들어선 것은 신의 축복이다’라는 팻말을 자기 집 앞마당에 세운 적이 있을 정도입니다.”
599개 협력사도 함께 해외로 데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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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현지 판매딜러가 제품을 설명하는 모습. |
현대・기아차의 브라질 법인도 주목할 만하다. 브라질은 세계 4대 자동차 시장으로 꼽히는 곳이다. 현대차는 지난 2010년 10월 본격적으로 공장 건설에 들어가 25개월 만에 공장을 완성했다. 2012년에 7만9098대가 팔렸던 현대차는 공장 완공 이듬해인 지난해에는 총 18만8035대가 팔렸다.
현대・기아차 브라질 법인 관계자의 얘기다.
“공장이 있는 삐라시까바시에서는 정부 주관 주요 축제에 한국 문화 행사가 마련됩니다. 시 의회에서는 기업체 이름을 딴 도로명을 만들지 못하는 조례를 변경하여 ‘현대(HYUNDAI)’ ‘서울(SEOUL)’ 등 한국 관련 도로명을 부여하도록 했습니다. 현지에 처음으로 한국식당이 생기고, 현지 수퍼마켓에서는 라면, 소주를 비롯해 한국 식음료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현대차를 넘어서 신(新) 한류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현지의 도요타나 GM공장과 비교했을 때 어떻게 평가받고 있습니까.
“<하버리포트> 조사 결과에서 현대차 브라질 공장이 다른 브랜드들을 제치고 가장 높은 생산성 공장으로 선정됐습니다. 남미 전 자동차 메이커 중 최초로 차체 공정 용접 자동화율을 100% 달성했습니다. 또 도장 공장에서는 기존의 ‘3번 코팅, 2번 건조’에서 ‘3번 코팅 1번 건조’로 공정 단계를 줄여서 전기와 용수를 획기적으로 절약해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현대차의 러시아 공장은 지난 6월16일, 러시아 정부가 주관하는 ‘러시아 국가품질상’에서 대상을 받았다. 이날 시상식은 드미트리 메드베데프(Dmitri Medvedev) 러시아 총리가 주관했고, 러시아 각 부 장관 등 주요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치러졌다. 러시아에 진출한 외국계 기업이 ‘대상’을 수상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는 것이 현대・기아차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대・기아차는 지난 2010년 9월에 신흥 자동차 시장으로 떠오른 러시아에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하다는 판단으로 러시아 공장 준공에 들어갔다. 당시 러시아에 여러 개의 자동차 생산 공장이 있었는데, 단순 조립 공장의 수준이었다. 프레스 공장 등 종합 자동차 생산 공장의 면모를 갖춘 것은 현대차 러시아 공장이 유일했다. 그리고 러시아 진출 3년 만에 품질 경영 능력이 입증된 것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러시아 국가품질상 심사위원들이 현대차에 대해 높은 수준의 품질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고, 품질 경쟁력이 뛰어난 차량을 생산하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현대・기아차가 전 세계를 무대로 사세를 확장하는 동안 599개의 협력사가 함께했다. 1차 협력사 239개, 2・3차 협력사 360개를 현대차가 함께 끌고 나갔기 때문이다. 해외 동반 진출 협력사의 매출은 지난 2002년 3조8000억원에서 34조8000억원(2013년)으로 늘었다. 현대・기아차의 글로벌 시장 공략은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