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도입 멘트
네네..독서 DJ이카로스입니다.
독서디제이 방의 공기는 저 사진의
하늘처럼 파란데.. 적막하기만 하죠.ㅎ
<논어>를 연재하다가
갑자기 드는 생각은 “내가
과연 논어를 운위할 자격이
있는가?”라는 의문이 고개를
자꾸 쳐드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논어를 옮긴다는게
한편으론 “부담스럽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습니다.
하지만 구실을 찾았습니다.
<명문장 카페>는 ‘삶의 현장에
명문장을 전파하는 스타트업이
잖앗!”라고 말입니다.
공자말씀을 보면 곤궁해도
항상 <대의명분>이
중요합니다.(^^)
오늘도 명문장 카페는 공자처럼
문화주의를 꿈꾸며 난세를 헤매고
다닙니다.
#2. 논어
(김형찬 옮김, 현암사 간행)
1.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느긋하되 교만하지
않고, 소인은 교만하되 느긋
하지 않다.”
(논어 제13편 자로(子路) 중에서)
(DJ멘트 : 저는 ‘교만’이라는
낯선 단어를 큰어머니한테
들었었죠. 계절성? 우울증?을
앓고 계시는데 평소에 온후하신
분이 우울증이 발현이 되실때는
전혀 다른 분이 되시는 거죠.
경상도의 한 종갓집
맏며느리로 들어오셨는데
제사를 종교의식처럼 여기는 집안에서
큰 어머니는 기독교 신자가 되셨
거든요.
그러니 일가친척의 눈총을 얼마나
받으셨겠어요. 이른바 종교갈등이죠.
집안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으니..
그래서 우울증의 원인으로 추정하는데
그 증세가 발현되면 “교만하다” 등
무서운 말씀을 하셨죠. 저는 시골에서
들을 수 없었던 낯선 단어를 들어서
기억하고 있죠.
우리는
기독교나 이슬람교가 유일신으로
배타적이라고 비판하는데요.
유교도 이에 못지 않습니다.
이미 <중용>에 보면
“도가와 불교의 무리가
나오게 되자 더욱 이치에 가까워 참된
진리를 어지럽히게 되었다”며
도교와 불교를 이단시하고 있습니다.
유교가 도교와 불교영향을
받아서 발전했는데 말이죠.
특히 주자학 즉 성리학은요.
조선성리학에서는 이율곡 선생이
1년동안인가를 절에 들어간적이 있었는데
그걸 두고 유생사이에서 ‘사상적인 의심’을 끝임없이 합니다.
이율곡과 이퇴계가 만났을 때 그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퇴계집에도
나옵니다.
그러니
성리학은 양반사대부의 지고지순한
유일사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상은
변화하는 세상과 어긋나는 것이 조선후기에 심하게 나타납니다.
성리학이 도그마화하면서 세상변화에
적응못하는 아주 “교만한? 유일사상”이
된거죠.
이게 서학 즉 천주교 등을 배척하는
위정척사운동의 바탕이 되기도하고
일제 침략에 저항하는 비타협적인
선비정신의 토대가 되기도 합니다.
공자말씀과 다른 결의 이야기죠.
<교만>이란 말씀에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습니다.
<명문장 카페>라는 스타트업은
정해진 궤도가 없습니다. 그게
창업정신입니다. (^^)
2.
자로가 여쭈었다.
“어떻게 하면 선비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서로 진심으로 격려하며 노력하고,
잘 화합하며 즐겁게 지내면, 선비라고
할 수 있다. 벗 사이에서는 서로
진심으로 격려하며 노력하고,
형제간에는 잘 화합하며 즐겁게
지내는 것이다.”
(논어 제13편 자로(子路) 중에서)
(멘트 : 말씀대로 해야하는데..
가르침이죠.
근데
이해관계가 있고 선입견이 있고
감정이 있다보니 갈등과 다툼이
생깁니다. 그래서인지 유교에서는
자기 수양과 배움을 그토록 강조
하는가 봅니다. 인간의 본성은
착하니 갈고 닦아서 본성을
회복해야한다는 말씀이죠.
맹자에서는 성선설로
이어집니다.)
3.
자로가 완성된 인간에 대해
여쭙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중략).......
“이익될 일을 보면 의로운가를
생각하고 나라가 위태로운 것을 보면
목숨을 바치며, 오래된 약속일지라도
평소에 한 그 말들을 잊지않는다면,
또한 완성된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논어 제14편 헌문(憲問) 중에서)
(멘트 : “이익될 일을 보면
의(義)로운가를 생각하고”는
아마도 경제활동의 지침이
아닐까, 합니다.
맹자에서는 양혜왕이 “고명하신
맹자께서 오셨으니 나라에 이익
이 있겠지요?”라고 묻자
맹자는 “왕께서는 어째서 이익에
대해서만 말하십니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인의(仁義)가 있을
뿐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자본주의 활동은 이익이면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 특징이 있습니다.
특히 <독점>은 고정적이고 안정적
이익을 가져다 줍니다. 하지만 모든
분야에서 독점만큼 폐해가 많은 것이
없습니다. 사회가 기득권화될수록
각 분야는 독점화되고 그건
이익이 고정화되기 때문에
의롭지 못한 것입니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기관, 이익을
독점하는 대기업, 여론을 독점하는
언론재벌, 변호사나 의사 등
직업의 독점적이익을 강화하는 직능
단체나 노조, 세습하는 대형교회 등등~
독점은 필연적으로 그 피해가
소비자에게 전가되고 양극화를
촉진시키고 중산층을 몰락시켜
민주주의를 위협합니다.
우리가 모든 분야에서 독점을
견제하고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도록 적극 참여해야하는
이유입니다.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해야 부패하지 않고
공자말씀이 숨을 쉽니다.
4.
...(생략)...
진나라에서 양식이 떨어지고
따르던 사람들은 병이 나서
일어날 수도 없게 되었다.
그러자 자로가 성이 나서
공자를 찾아 뵙고 말하였다.
”군자도 궁할 때가 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곤궁함을 참고 견딜 수
있지만, 소인은 곤궁하면 곧
함부로 행동한다.“
(논어 제15편 위령공(衛靈公) 중에서)
(멘트 : 자로가 화가 날만하죠(^^)
군자는 자기수양을 하고 절제하고
모범을 보이고 그리고 경제적으로
궁하더라도 인내해야하니..나같아도
군자를 안하고 싶습니다.
”뼈깎는 노력에도 곤궁함을 벗어날
수 없으니..“
5.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인위적인 작위가 없이 나라를
다스린 사람이 순임금이로다!
어떻게 하였을까? 몸가짐을
공손히 하고 바르게 임금의 자리를
지키고 계셨을 뿐이다.“
(논어 제15편 위령공(衛靈公) 중에서)
(멘트 : 이 책에서는 이 구절에 대해
”임금이 먼저 도덕적인 모범을 보임으로써
백성들이 자연스럽게 따르도록 했다“
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리더가 모범을 보여 도덕적
교화를 통해 다스리는 인치(人治)이죠.
”왜 도덕인가?“ ”왜 윤리인가?“를
보여주는 대목이죠. 그러나 그 도덕과
윤리는 구습에 매인 도덕과 윤리가
아니라 마땅히 그러해야하는 양심에
기반한 말과 행동방식입니다.
이제 시대변화에 맞게 개인윤리,
가족윤리, 공동체 윤리가 새롭게
변화해야하고 그건 누가시켜서가
아니라 문화의 힘을 통해 가능합니다.
민주주의에 책임과 의무, 윤리가 결합되는 방식으로요.
재밌는건 <민주주의>는 진보가,
<책임과 의무>는 보수가 강조하는
비중이 더 높죠.(^^)
6.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자신에 대해서는 스스로 엄중하게
책임을 추궁하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가볍게 책임을 묻는다면, 원망을 멀리
할 수 있다.“
(논어 제15편 위령공(衛靈公) 중에서)
(멘트 : 리더의 덕목이죠. 근데
현실에서 반대가 더 흔하죠.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상대에겐
가혹하고..설령 자신에게 도덕적
잣대가 엄격하더라도 그걸 타인에게
강요해서는 안됩니다.
타인에 대한 교화나 계몽은 분위기
조성이나 문화의 힘으로 가능하게
해야합니다. 근데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그래서 리더의 모범이 그토록 중요한가
봅니다.
7.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자긍심을 지니지만
다투지는 않고 여럿이 어울리지만
편당을 가르지는 않는다.“
(논어 제15편 위령공(衛靈公) 중에서)
(멘트 : 분명 공자는 군자의 경우
<편당>을 지어서는 안된다고
하셨죠. 하지만 조선의 성리학은
편을 가르는 붕당정치의 폐해가 심했죠.
아마도 주자학의 주희영향을 받은
신권사상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주희의 제왕학은 군왕과 신하의 공동
통치라는 개념까지 생겼을 정도니까요.
그러나 군신공치나 신권사상은 나쁜게
아닙니다.
붕당정치는 전제군주정이 가질 수 있는
권력의 독점과 폐해를 견제하는
정당정치의 가능성까지 보였습니다.
그래서 정쟁이 심할수록
절대왕정하에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폐악인 외척이나 환관의
득세가 제어됐습니다.
저는 조선이 그렇게 가망이 없었는데도
더 일찍 망하지 않은 이유 중의 하나는
붕당정치에 있었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러한 붕당정치도
조선후기에 갈수록
그 폐해가 심각해집니다.
영조가 탕평책을 펼치며 봉합
가능성도 보였었는데요. 이게
개혁군주인 정조 사후에는
세도정치로 빠지면서 점점
희망이 없어지기 시작합니다.
8.
자공이 여쭈었다. ”한마디로
평생토록 실천할만한 것이
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은
서(恕)로다!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하지 않는 것이다.“
(논어 제15편 위령공(衛靈公) 중에서)
(멘트 : 충서(忠恕), 유가사상에서
인(仁)을 실천하기 위한
중요한 윤리적 덕목입니다.
그래서 충과 연결지은
서(恕)에 대한 해석도 많습니다.
”자기가 하고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하지 않는 것~~~“
생각할 꺼리가 많죠..
첫댓글 물시어인의 대상이 되어도
화이부동하면 군자다?
누구도 개.돼지를 키우고 싶지 않은데
(기소불욕)
나한테 시키면 어쩔 수 없이 따를 뿐.
(동이불화)
가끔 공자왈은 겉은 그럴싸 하여
세상 돌아가는 현실과 동 떨어진 이야기임.ㅎ
오늘은 공부 내용이 기네요.
그래도 즐거운 맘으로 읽었습니다.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하지 않는것!"
중요하고 중요하지요.
오늘은 실천에 즐거움을 느껴봐야겠습니다.
독서 디제이 이카로스^^
오늘도 감사드리며
즐거움 가득한 토요일 되세요 ~~
논어의 핵심 키워드는
인(仁) 이라고 합니다.
인(仁) 이라는 글자는
사람 인(人) 변에
두 이(二)가 결합하여
사람이 둘만 모여도 서로를 위해 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곧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마음씨라는 겁니다.
그렇게 위하는 마음이
仁 이라는 거죠^^*
(한상복/배려/p93)
공자의 사상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지침이 되고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데 있음.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남에게도 강요하지 마라"
저도 처음에 이 말이 사회생활에 굉장히 좋은 말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자기는 하고 싶지 않아도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 있는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제 생각엔 군자의 윤리적 태도
에 관한 말씀이 아닌가 합니다.
공자말씀은 <군자> 즉 리더에 대해
주로 말씀하시는 거고, 이러한 맥락에서
“군자는 자신이 싫어하는 일은 남도
싫어하기때문에 자신의 입장만 생각해
타인에게 시키지 말고 스스로 앞장서
모범을 보여라”는 의미로 받아들입니다.
타인에 대한 공감과 배려를 넘는
적극적인 해석인데 공자말씀의
맥락을 생각할 때 그렇게
해석합니다.
공자말씀인 논어는
같은 내용도 제자마다 다르게
답할때가 있고, 내용도
추상적일때가 있어
후대에 보다 구체화되는데
己所不欲 勿施於人
(기소불욕 물시어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하고 싶지않아도
누군가는 해야하는 일”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사례인지 모르나, 리더가
평소 모범을 보여왔다면,
<누군가>도 기꺼이 따를
것이고, 따르지 않아도
평소 모범을 보여왔기 때문에
설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