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혁 동경대학 총합문화연구과 박사과정
1편에 이어서 <오케이 스토어>의 특징을 살펴보고, 본저에서 소개한 디스카운트 스토어들의 포지셔닝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일본식 EDLP 성공사례. 가격·품질 신뢰도로 충성도 높은 고객을 확보한 '오케이 스토어'
업무슈퍼에서 파는 제품들은 확실히 가성비가 좋다. 하지만 대부분 난생 처음 보는 제품들이고 솔직히 용량도 너무 크다. 돈키호테의 특판 가격은 확실히 싸다. 하지만 대상 품목이 매일 바뀌는 데다가, 여타 PB 제품들은 사실 그리 싸지도 않은 것 같다. 그냥 슈퍼에서 파는 것과 똑같은 것들을 가장 싸게 살 수 있는 곳은 없는 걸까? 라는 지극히 평범한 디스카운트 스토어에 대한 소비자의 기대치를 충족시켜 주는 곳이 바로 오케이 스토어다.
독특한 포지셔닝으로 나름의 디스카운트 스토어 이미지를 형성해가며 시장을 공략한 돈키호테나 업무슈퍼와는 달리, 오케이 스토어는 오프라인 소매 체인의 터줏대감인 슈퍼마켓과의 전면 가격전쟁에서 승리하며 자신의 입지를 구축한 케이스다. 생선·과일·정육 등 신선제품도 마다하지 않고 취급하고, PB 상품으로 가격비교의 초점을 흐리기보다는 슈퍼에서 파는 것과 동일한 일반제품(NB)을 더 싸게 판매한다. 특히 월마트를 벤치마킹한 체인답게 특판에 의존하지 않는 상시최저가=EDLP(EveryDay Low Price) 정책을 기본방침으로 하며, 주변 상권의 특판가격이 자사 가격을 추월했을 때는 연동하여 추가할인을 실시한다.
가격경쟁을 위해 오케이 스토어는 검증된 기존의 디스카운트 스토어 운영방법을 총동원하고 있다. NB 상품만 취급하지만 품목별로 취급하는 제품은 2~3종으로 한정하며, 셰어 확대를 위해 적극적 가격정책과 판매보조금 정책을 취하는 2위 메이커의 제품을 주력상품으로 삼는다. 기본적으로 현금 결제만 받는다. 창고형 매장의 장점이 충분히 발휘될 수 있는 넓은 점포가 확보 가능하고 그에 상응하는 소비층이 있는 지역에만 출점한다. 점포 물건은 되도록 임차가 아니라 매입하는 형태로 대응한다. 장기적으로 이익이 될 수 있다면, 설비투자도 마다하지 않는다. 일례로서 첨단 급속냉동 시스템 CAS(Cells Alive System. 물분자 이동을 통해 조직파괴 없이 냉·해동)를 전 점포에 도입함으로써 생선 및 정육 부문의 경쟁력을 확보하기도 했다. EDLP 가격정책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특판 전단지 제작 등 판매·홍보 비용의 최소화도 가능하다. 나아가 사입 부문의 발본적 역량강화를 위해 최근에는 미츠비시 상사로부터 투자 및 경영진을 유치하기도 했다.
소소한 매장운영 방침에서 대형상사와의 연대강화까지 전방위적 비용절감 노력의 결과, 오케이 스토어는 슈퍼마켓에서 파는 전 품목군을 커버하면서도 주변상권 대비 상시최저가를 실현하고 있다. 하지만 마진 폭을 줄이고 비용을 줄여나가기만 해서는 한계가 있는 법.그렇게 확보해낸 가격경쟁력을 바탕으로 매장을 찾은 고객의 추가적 소비를 이끌어냄으로써 객단가 상승을 통한 이윤 확보가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오케이 스토어가 취한 전략은 단순히 고객의 가격에 대한 신뢰를 넘어, 제품에 대한 신뢰, 매장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POP 마케팅이 발달한 일본에선 POP를 통해 온갖 정보가 제공된다. 어느 지역이 원산지다, 어떤 방식으로 재배됐다, 누가 감수했다, 이렇게 요리하면 맛있다 등등. 그러나 그 속에는 기본적으로 판매자가 보여주고 싶은 정보만이 담기기 마련이다. 간혹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아서 싸다", "시즌이 거의 다 끝나서 싸다" 같은 식으로 파격적 가격의 이유제공 차원에서, 그리고 품질에 대한 클레임을 사전 차단하는 차원에서 부정적 정보가 일부 포함되는 경우도 있으나, 기본적으로 구매를 저해할 여지가 더 큰 정보는 제공되지 않는다.
하지만 오케이 스토어에선 "현재 판매 중인 자몽은 남아프리카산으로 신맛이 강합니다. 플로리다산 맛있는 자몽이 주말이면 입하될 예정입니다"나 "장마의 영향으로 양상추 가격이 많이 올랐습니다. 품질도 좋지 않으니 가능하면 메뉴를 변경해 다른 야채를 사용하실 것을 권장합니다" 같은 부정적인 제품정보를 담은 특유의 'Honest Card' POP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오늘 꽁치는 영 물이 안 좋으니까 사지마” 마치 전통시장의 생선가게 아저씨가 묻지도 않았는데 참견하는 듯한 상품에 대한 리얼한 정보 공개에, 매장을 찾은 손님은 단순히 수치로 제시되는 최저가 이상의 안심을 느끼며 장바구니에 이것저것 담아가게 되고, 망설임 없이 다음 번에 또 해당 매장을 찾게 되는 것이다.
양상추의 품질에 대한 부정적 정보를 담은 Honest Card
자료원: 시노하라상점
무제한 가격경쟁을 펼치는 디스카운트 스토어란 업태에서 접객, 진열, 홍보, 서비스 등은 제일 먼저 삭감되는 항목들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방객에 대한 세세한 배려들도 같이 삭감되기 마련이다. 오케이 스토어 역시도 상기 측면에서 군살을 쏙 뺀 운영을 하고 있고,그 과정에서 배려와 서비스가 부족해지는 것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다른 가게에선 공개하지 않을 부정적 정보를 살짝 공개하는 것만으로, 점포 측의 일련의 비용절감 노력이 꼭 업체 이윤추구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고객에게 가격과 품질 양쪽 면에서 모두 최고의 합리적 만족을 주기 위한 것이란 인상을 주게 되는 것이다.
덕분인지 오케이 스토어는 26개 브랜드를 대상으로 조사가 진행되는 JCSI(Japanese Customer Satisfaction Index)의 슈퍼마켓 부문에서 7년 연속 고객만족도 1위를 기록 중이다. 특히 2017년에는 고객기대, 지각품질, 지각가치, 고객충성도 부문에서도 1위를 기록했다. 세계적 디스카운트 스토어인 코스트코를 2위로 따돌리고 거둔 기록인지라 더욱 가치가 돋보인다. 이러한 확고한 고객만족도·충성도를 바탕으로 오케이 스토어는 업계 최고 수준의 매장매출을 실현하며, 벤치마킹 대상인 월마트를 능가하는 15% 이하의 매출판관비율을 유지해 오고 있다.
디스카운트 스토어로서 명확한 포지셔닝,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현장 디테일
1편 서두에서 아마존 효과를 언급하며 인터넷 상거래 발달로 최저가 경쟁이 심화되며 전통적 오프라인 소매 체인은 쇠퇴의 길을 맞이하게 될 것이란 일반론을 언급한 바 있다. 가격경쟁력이 핵심인 디스카운트 스토어의 경우 특히 우려가 컸는데, 세 기업 모두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굳건히 대응해 나가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선은 오프라인 소매 체인이 나아가야 할 기본 방향성을 짚고 넘어가고 싶다. 일본도 배송·물류 인프라가 지속적으로 정비되며 도쿄 인근에선 6~18시간 정도 소요되는 당일배송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생활하면서 2~3시간 이내의 즉각적인 구매를 희망하는 수요는 끊임없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전구가 수명을 다했다, 키보드에 커피를 엎어 고장났다, 조립할 게 있는데 드라이버를 못 찾겠다, 휴지가 떨어졌다 등등. 이럴 때 우리는 300원 더 싸게 사겠다고 반나절 이상씩 기다리지는 않는다. 관련 전문점이 인근에 위치한다는 보장도 없고, 편의점은 역시 그 규모상 취급품목이 아주 제한적이다. 그리고 비싸다. 4만~10만 품목을 취급하는 '돈키호테'는 바로 이러한 오프라인 직접 구매의 기본수요를 무차별적으로 흡수하는 블랙홀을 지향한다.
전구/휴지 같은 건 소모품인데 준비성 있게 미리 사두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으나 보관에는 공간 비용이 발생한다. 냉장·냉동을 요하는 경우도 있고, 개별 소비자 차원에서 그 공간은 매우 한정적이다. 무엇보다도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상품의 품질이 유지되는 기간은 유한하다. 이러한 특징의 대표적 제품군은 물론 먹거리로, 오프라인 소매 체인의 핵심 축은 결국 식품장사일 수밖에 없다.
오케이 스토어는 이 점을 직시했다. 오프라인 소매점이 스케일 메리트를 확보하고 매출 규모를 극대화하려면 결국 가장 큰 시장인 식품장사에서 승리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한 판단에 따라 타깃을 슈퍼마켓이 맞추고, 부분적 특판의 할인 폭으로 고객의 눈을 끌기보다는 EDLP 전 품목 상시 최저가 정책을 고수했다. 또한 Honest Card를 통해 부정적 정보까지 공개함으로써 "저희 매장에서 사면 슈퍼에서 사는 것보다 절대 손해 보지 않습니다"라는 콘셉트를 철저히 고수했다. 가격뿐만 아니라 질적인 측면에도 주목, 소비자의 점포에 대한 신뢰도라는 측면에서까지 대 슈퍼마켓 전쟁에서 전면승리를 거둔 것이다.
한편, 업무슈퍼는 직접 생산해 판매까지 하는 가성비의 끝판왕 SPA(생산소매) 방식을 적용함으로써 유통소매업이란 기본 틀 자체를 넘어서버렸다. 물론 미약한 브랜드파워는 소매시장, 그리고 식품장사라는 필드 특성상 큰 약점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일반손님도 이용 가능한 도매슈퍼"라는 일반 슈퍼와 업무용 도매상의 중간적 위치란 탁월한 포지셔닝으로 이를 효과적으로 극복해냈다.
하지만 적절한 포지셔닝이 성공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SEIYU' 같은 경우에는 2005년부터는 EDLP의 원조인 월마트가 직접 자회사로 운영하고 있으나 오케이 스토어 수준의 최고의 고객충성도 브랜드 위치에는 이르지 못했다. 요는 비즈니스 콘셉트를 얼마나 잘 구현해 내는가이고, 그것은 실제 점포 운영의 디테일이 달려있음을 세 사례는 잘 보여주고 있다.
압박진열로 상품 미로공간을 구현함으로써 디스카운트 어뮤즈먼트 시설을 지향하는 돈키호테에서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상품들 사이 구석진 곳에 의도적으로 경이적 할인 폭의 떨이 ‘보물 상품’을 배치하는 것 같은 기법은 그 상징적 케이스다. 현란한 POP와 함께 진행되는 미끼 상품의 순환 특판으로 상징되는 돈키호테가, 그 이면에선 그 이상의 할인폭의 상품을 일부러 눈에 잘 안 띄는 곳에 감추어두는 상반되는 접근방식의 진열전략을 병행하고 있는 것이다. ‘저희 가게에서 사면 쌉니다’가 기본모델이기 마련인 디스카운트 스토어에서Honest Card를 통해 '이 제품은 품질에 문제가 있으니 한번 더 생각해 주세요’라는 메시지를 발신함으로써 ‘저희 가게에서 사면 절대 손해 보지 않습니다’는 이미지를 구축해낸 오케이 스토어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 일본적인 이러한 소소한 디테일을 일궈내는 배경에는 현장의 재량권 보장이 존재한다. 고지식한 매뉴얼의 나라인 일본이지만, 그 중에서도 역시 디테일이 돋보이는 업체의 경우엔 매뉴얼의 기본원칙이 몸에 밴 가운데 그 이외의 영역에선 현장인력의 경험과 판단을 존중·활용하는 기업문화가 존재한다. 돈키호테에선 3~6개월 정도만 근무하면 아르바이트도 코너를 맡아 발주를 관장하게 되고 가격교섭·설정까지 하게 되기도 한다. 오케이 스토어도 비슷한데, 직접 고용 비중이 높은 환경 특성상 재량권이 더 크게 부여되는 편이다. 부문 실적 하위 10%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자동적으로 전환 배치되는 채찍도 존재한다. 물론 한편으론 분기마다 연봉60% 범위 내에서 특별상여가 실적 연동으로 지급되는 확실한 당근 시책도 시행 중이다.
완전 개방형 창고영업을 하는 업무슈퍼는 다른 의미에서 현장 재량권이 매우 폭넓게 보장된다. 편의점에 가까운 프랜차이즈 출점 중심 방식임에도 불구하고 진열·홍보 측면에서 기업 CI 사용을 까다롭게 요구하는 일은 전무하다. 점포 크기, 고객 특성에 따라 얼마든지 점포에 특화된 발주 및 진열·판매가 가능하다. 진열대조차 쓰지 않고 그냥 박스만 쌓아 진열공간을 구성하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디스카운트 스토어는 결국 군살을 빼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판관비가 감소되면 소비자의 브랜드에 대한 신뢰도 역시 감소하기 마련이다. 이를 메우기 위해서는 (1) 브랜드 전체 차원에서 전략적 포지셔닝이 요구된다. 그리고 (2) 개별 점포 차원에서도 이를 구현하기 위한 점포 운영상의 완성도가 요구된다. 특히 오프라인 체인의 경우에 있어선 개별 점포 차원의 디테일을 통한 개선 여지가 매우 크다. 전체 브랜드 차원의 네임 밸류가 약한 중규모 체인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탁월한 포지셔닝에 기반한 사업 모델, 그리고 매뉴얼적인 기업 CI 적용보다는 현장의 판단을 우선시한 점포 운영 디테일이야 말로 이들 중규모 디스카운트 스토어 체인 3사의 공통분모다.
※ 이 원고는 외부 글로벌 지역전문가가 작성한 정보로 KOTRA의 공식의견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