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松溪 박희용의 南禪軒 독서일기 2024년 6월 1일]
사회자본주의와 자본사회주의 두 길
KAIST 총장 이광형 박사는 역작인 『미래의 기원』(인플루엔셜, 2024)의
제3부 10장 ‘사상과 제도의 미래’ 아래 제2항 <지속가능한 민주주의> 에서 ‘인류가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사상적으로 발전시킨 대표적 제도 두 가지가 바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이다.’고 언급했다.
앞서 <지속 가능한 민주주의>에서 현대 민주주의가 가진 문제에 대해 자세히 설파했고, 이어서 <자본주의의 미래>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본주의는 더 많이 소유하고 남들보다 더 앞서가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마음껏 드러내도록 자극하고 이를 동력으로 삼는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탐욕을 연료 삼아 인류의 역사가 질주하도록 이끌었다,」
인류 문명사의 근본 동력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다. 소유욕은 선사시대, 역사시대, 과학문명시대를 관통하는 근본 동력이다. 오늘날의 찬란한 현대문명을 건설한 동력은 자본주의이다. 그러나 현대문명은 물질문명의 풍요를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 삼고 있어 많은 문제와 후유증, 부작용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렇다고 자본주의를 부정하거나 거부할 수는 없다. 80억이나 되는 세계 人口를 만족할 만큼 부양할 수 있는 다른 경제 이론이 없다. 인구의 폭증에 따른 소유욕, 물질 풍요에 대한 욕구의 폭증 때문에 20세기에 공산주의 실험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잘 살고 싶은 인간의 욕구는 어느 지역, 어느 사회나 동일하다. 그 정도도 거의 무한이다. 교과서에서는 자연 보존, 자원의 유한, 환경 오염, 기후 변화 등을 거론하며, 자각을 통한 욕망의 절제와 소비의 통제를 가르치지만 현실 인간은 누구나 물질 풍요형 인간으로 살아간다. 자본주의적 가치관의 한계를 이해하고 물질적 욕구 통제를 실천해야 한다는 자각은 극소수의 지성인들의 몫이고, 대중은 즉물적 인생관으로 살아간다.
그렇다면 이제는 제도와 법에 의한 통제가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공교육과 사회교육이 일반화되면서 현재 인류 중에 많은 사람이 같거나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고 있어서 사상과 제도의 변화에 대한 공감대가 확대하고 있다. 많은 지식인이 자본주의의 틀과 사회주의의 틀이 접목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고, 대중들도 그 필요성의 인식이 확대하고 있다. 쉽게 말해 부정적인 면을 삭제한 수정 자본주의와 수정 사회주의가 정답게 결혼하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경쟁과 전쟁의 세기가 사라지고 신인류 앞에 화해와 평화의 세기가 환하게 펼쳐질 것이다.
19세기 인류의 향상된 삶을 치열하게 사색했던 여러 사상가들과, 20세기 나름대로의 애국심으로 그 사상들을 실천했던 세계 각국의 행동가들이 추구했던 목표는 인류 문명의 발달이었다.
그 결과가 21세기 오늘의 현실이다. 사상가들과 행동가들이 이룩한 공도 많지만, 핵 균형으로 겨우 숨 쉬는 가난한 평화, 과소비로 인한 환경 오염과 기후 변화 등은 그들이 남긴 어두운 유산이다.
이어서 더 큰 풍요와 소유를 가장 중시하는 자본주의의 핵심인 자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본은 현대사회에서 제일 큰 권력을 가지고 있다. 자본의 집결지인 금융은 1, 2, 3차산업의 기업 자체를 상품으로 인식하며, 자신들은 생산 활동을 하지 않으면서 기업보다 더 큰 부가가치를 내고 있다. 생산 조직인 기업이 투자 대상이 되어, 금융의 큰손 몇 사람이 사고파는 과정을 거쳐 기업가치를 만들어낸다.
기업 내에서도 자본을 다른 가치들보다 우선하는 문화가 성행하면서 주주가치를 높이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여기고 있다. 벌어들인 사내유보금을 자사주를 매입해 주식 가격을 올리는 데 쓰며 주주만을 우선하는 자금운영을 하는 경우가 잦다.」
자본주의의 혹으로 성장한 금융자본과 주주가치 우선 경영에 대한 예리한 분석과 비판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한 국가의 경제가 극소수 몇몇 금융 자본가에게 장악되고, 대중은 경제권을 쥐고 있는 그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며, 그들은 현대판 황제가 되어 경제뿐만 아니라 자기들의 금융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정치, 사법, 군수, 교육 등 사회 제반 분야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대중은 경제권을 쥐고 있는 그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근로자들과 국민은 그들 금융 자본가들의 끈 끝에 달린 꼭두각시가 된다. 그리하여 일하는 기계 신분이 대대로 계승된다.
이어서 근로소득과 자본소득의 비율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2014년에 “자본주의를 아무 제재 없이 가만히 두면 자본소득의 비중은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고, 자본소득이 근로소득보다 높아지면 사회는 불안정해진다‘라고 주장하였다.
미국 전체 기업에서 금융이 차지하는 비율이 1950~1960년대에는 10~15%였지만, 1980년대 중반에 30%가 되었고, 2001년에는 40%에 달했다. 제조기업들이 생산 활동이 아닌 금융활동으로 창출한 이익의 비율은 1978년에 18%였다가, 불과 12년 만인 1990년에 60%로 높아졌다.」
자본주의를 제재할 방법이 없다. 정부가 제재하려고 하면, 자본은 로비란 합법적인 고상한 수단으로 의회와 정부 인사들을 매수해서 입법을 막거나 유리하게 한다. 그러므로 시민단체의 활동이 중요하다. 양심적 시민단체는 소금 역할을 한다. 그런데 현대는 소금도 부패한다.
그런데 그 막대한 금융자본이 어디에서 어떻게 축적되고 있는가. 생산활동을 하지 않는 금융기관이 자본을 획득하는 방법은 자본 이윤과 기업 매매를 통한 부가가치이다. 즉 이윤과 부가가치는 기업의 생산 활동에서 나온다. 기업은 근로자들의 노동을 통해 상품을 생산하여 판매한다. 각종 기업이 생산한 상품은 다양한 근로자들이 산다. 즉 기업의 이윤은 근로자들의 가계에서 나온다. 그런 기업의 이윤이 최종적으로 금융자본으로 빨려 들어가므로, 금융자본은 결국 근로자들 임금의 축적이다. 직접 생산 활동을 하는 근로자들의 임금 중 일부분이 흘러 흘러 전혀 땀 흘려 일하지 않는 금융자본으로 축적된다. 이것은 얼마나 엄청난 자본주의의 모순인가.
이어서 저자는 자본소득의 폐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신의 노력으로 만들어내는 근로소득보다 이미 가지고 있는 자본으로 또 다른 자본을 만들어가는 자본소득이 늘어나면 사회의 불평등은 더욱 심화된다. 지금은 상속받은 재산이 없다면 대도시의 주택을 살 가능성이 희박하다,
자본소득은 세습되는 경우가 많아 근로소득자의 박탈감이 더욱 심해진다. 자본소득이 높아진다는 것은 사회 계층 이동성이 둔화된다는 것과 같다. 사회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끊기는 현상이 지속되면 결국 사회가 붕괴되고 말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사회 안의 불평등과 불합리가 극심해지면 폭력적 혁명이 일어난다. 프랑스대혁명이 그랬고 러시아혁명이 그랬다. 경제구조가 변하지 않는다면 2011년에 일어난 반 월스트리트 시위보다 훨씬 격렬한 움직임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자본소득의 비율이 늘어나는 것은 사회 균형의 파괴로 이어질 뿐 아니라 사회 퇴보도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지대, 임대료, 금융소득 등을 통해 자본소득을 얻는 사람들은 편안한 생활을 하기 때문에 뇌가 발달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이 사회에서 더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된다면, 그리고 그러한 삶이 모든 사람의 지향점이 된다면 사회는 자연스럽게 퇴보할 것이다. 또한 성실히 일하는 것에 대한 보상이 충분히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사회 전반적으로 근로에 대한 의욕이 떨어진다. 특히 청년층이 의욕을 잃는다면 더욱 손실이 커질 것이다.」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인간은 누구나 의식주에 쓰고 남은 돈을 저축한다. 다람쥐가 가을에 먹이를 곳곳에 저장하듯 저축은 인간의 본능이다. 이러한 저축 본능을 법과 제도로 막을 순 없다. 여기서 문제 되는 것은 일상의 소소한 저축 차원이 아니라 큰 건물, 광대한 토지에서 발생하는 지나친 임대 수입과, 금융기관이 축적한 거대한 금융자본이다.
과거 시대엔 동서양을 막론하고 토지가 거대한 자본의 근간이었다. 고려가 망한 근본 원인이 왕족과 귀족, 사찰들의 토지 소유 때문에 발생한 민중들의 생활고 때문이었다. 조선 역시 신분제도와 양반 지주들의 토지 소유 문제 때문에 민란이 일어나 국력이 쇠약해져 망했다.
역사적 난제였던 토지 문제는 1945년 해방 이후 남북에서 토지개혁이 시행되면서 해소되었다. 그러나 산업화가 진척되면서 경제가 발달한 현대에는 상업용 건물 소유 문제가 대두되었다. 과거 시대에 토지로 집중하던 자본이 현대엔 상업용 건물로 집중되고, 거기에서 발생한 높은 임대료는 소유주로 하여금 생산하지 않고도 편안한 생활을 하게 하는 동시에 다시 자본 축적에 더해지고 있다.
그래도 상업용 건물 자본은 금융자본에 비해 규모가 작은 편이다. 자본주의에서 가장 큰 문제는 역시 금융자본이다.
이어서 저자는 ‘금융개혁의 어려움’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문제는 금융개혁은 매우 어려운 과제라는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는 미국의 4대 투자은행인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으로 진행이 가속화되었다. 금융개혁을 약속하며 2009년에 당선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역설적으로 그 개혁에 월가의 인사들을 활용했다. 또한 오바마는 줄줄이 구제금융을 요청하는 월스트리트 은행들의 요구도 들어주었다. 투자은행들에 대출을 받아 집을 산 약 600만 명이 집을 잃는 현실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다.
금융 권력이 너무나 비대해져 이를 수술하면 나라 전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기에, 대통령으로서는 이를 단행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이런 전례가 있다 보니 금융권에서는 국가가 자신들을 망하게 두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다.」
이제는 금융자본이 오바마 대통령도 굴절시켜 버리는 불사공룡이 되었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돈 되는 것은 마구 집어삼키며 자본의 덩치를 불려가는 저 불사공룡을. 이광형 박사는 ‘이러한 문제점을 예방하기 위해 세계 주요 국가에서는 금산분리 정책이 활용되고 있다’,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비교적 금융 권력 견제에 각별한 노력을 하고 있다’라고 말하지만, 거대에 거대를 거듭하며 불사장생하는 굼융자본에 어찌 고삐를 꿴단 말인가! 한 국가에서 재채기를 하면 금방 지구를 몇 바퀴 돌아 감기를 거쳐 독감이 되는 글로벌경제 시대에 인간이, 인류가 마련할 수 있는 고삐가 무엇이고, 어떻게 꿰 낸단 말인가.
그러나 아무리 어려워도 인류는 해내야 한다. 금융자본은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괴물이다. 그러나 저 괴물은 자본주의라는 영사기에서 발사된 스크린의 허상이다. 자본주의가 온순해지면 저 괴물도 온순해진다. 금융자본을 길들이는 방법은 자본주의 제도를 대폭 수정하는 것밖에 없다.
이어서 저자는 시야를 좁혀 ‘우리나라의 자본주의 개혁’을 말한다.
「역사 속에서는 성공적인 자본소득의 개혁으로 근로소득과의 균형을 되찾은 경우가 있었다. 자랑스럽게도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 덕분에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도 근로소득이 자본소득보다 크다. 해방 직후 일어난 농지개혁 덕분이라 할 수 있다.
이승만 대통령이 1949년 농지개혁법을 통과시켰다. 이 농지개혁에서 놀라운 점은 지주들이 이 개혁에 동참했다는 것이다. 당시 야당 한민당 총수인 김성수는 900만 평의 토지를 가진 호남의 대표적 지주였다. 야당의 의석수가 더 많았음에도 김성수는 대통령의 편을 들어 농지개혁법에 찬성했다. 1950년대 초부터 시행된 농지개혁법 덕분에 농토를 갖게 된 농민들이 6.25 전쟁에서 한국정부 편에 섬으로써 전쟁을 극복할 수 있었다. 한국은 해방 후 신속하게 농지개혁을 시행해, 짧은 시간에 사회 안정을 이루어 국가를 보존할 수 있는 사상적 기반을 확보했다고 볼 수 있다.」
저자는 이승만 대통령과 한민당 당수 김성수가 이룬 농지개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역사적 사실은 많이 다르다.
이북은 토지개혁을 1946년 말부터 최우선 정책으로 추진해서 1947년 여름에 모두 마쳤다. 무상몰수 무상분배 때문에 불만을 품은 많은 지주 계급이 쫓겨나 월남하게 되고, 이로 인하여 남한에서 극우 반공노선이 강화되었지만, 북한에서는 자기 땅을 분배받은 농민들이 공산당에게 감사한 것은 사실이다. 그 보답으로 수많은 농민이 인민군에 입대하여 김일성이 주도한 남침전쟁에 참전했다.
남한에서도 1946년 말부터 토지개혁 문제가 시급한 민생문제로 대두되었으나 지주계급이 주력인 한민당과 월남한 지주계급이 주력인 반공세력은 유상몰수 유상분배를 처음부터 주장하며 토지개혁을 방해했다. 3년 여를 질질 끌던 토지개혁 문제가 1949년 말에야 유상몰수 유상분배로 겨우 타협되어 어렵게 국회를 통과했다. 이때 이대로나마 토지개혁이 안 되었다면, 국민의 80%를 차지하는 소, 자작농들의 민심이 결코 이승만 정부에 협조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늦게나마 통과되었기 때문에 저자가 언급한 바와 같이 ‘농민들이 6.25 전쟁에서 한국정부 편에 섬으로써 전쟁을 극복할 수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과 김성수, 지주층들이 북한의 토지개혁에 따른 민심의 동향과 동요를 알고,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절박감이 국회 통과의 요인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북한이 전쟁을 준비한다는 고급정보를 알 수 있었다. 토지개혁을 안 하면 남한의 농민층이 대거 인민군을 환영할 수 있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과 김성수는 역사적 필요에 의한 토지개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동적이었고, 지주계급이 손해를 보지 않는 선이었다.
북한은 1953년 전쟁이 끝날 즈음에 나누어주었던 토지를 다시 거두어 들여 국유로 하고 집단농장제를 채택하였다. 자기 소유 토지를 받고 감격에 겨워 인민군으로 출전했던 농민들이 아마 깊은 한숨을 쉬었을 것이다.
남한의 농민들은 몇 년에 걸쳐 정해진 세금을 내고 난 다음부터는 온전한 자기 소유가 된 농토에서 부지런히 일하여 의식주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는 잉여 농산물을 자유롭게 판매하여 얻은 수익으로 농토를 차츰차츰 넓혀 나갔다.
저자 이광형 총장은 이 장의 결론으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해방 이후 혼란의 시기에 우리나라는 자본소득의 비율을 성공적으로 낮췄다. 근로소득이 높아진 나라에는 열심히 일할 역동성이 생긴다. 사회 안정감과 발전에 대한 의욕 속에서 우리나라는 짧은 기간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뤘다.
대한민국도 자본주의가 정착된 지 상당 기간이 흐르면서 자본소득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조선시대 때 토지 강자가 약자를 삼켰다면, 지금은 자본 강자가 약자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청년층이 희망을 잃고 근로 의욕을 상실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도 이해가 된다. 1948년 농지개혁으로 근원적 문제를 평화롭게 해결한 것처럼, 현대에 맞는 해법을 고안해내는 것이 우리의 과제다.」
저자는 어떤 해법을 고안해낼 것인가 하는 화두만 던져 놓았다. 저자 나름의 해법이 있을 테고, 각국의 경제 전문가들과 세계적인 석학들이 효과적인 해법을 많이 고안해냈을 것이다. 문제는 실천이다. 해법을 고안만 해놓고 현실 경제에 적용하지 않으면 화중지병, 그림 속의 떡일 뿐이다. 그래서 필자는 일반적인 논리이지만 다음과 같은 해법을 제시해 본다.
우선, 상업용 건물과 토지 임대로 발생하는 자본 축적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법으로 이자율과 임대료율을 알맞게 정하는 것이다. 임대 수입에 고율의 세금을 부과하면 임대료만 인상하게 되고, 임대료 인상은 물가 상승으로, 물가 상승은 임금 인상으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지대, 건물 임대료를 한국은행 기준 고시 이율에 맞추어 정해야 한다. 비공식 임대로는 사회 경제를 해치는 중범죄로 엄히 조치해야 한다. 지주와 건물주에게는 시중 이자율에 기준한 일정한 수입을 보장하고, 사용자에게는 알맞은 임대료 부담으로 적절한 수입을 보장해야 한다.
현대사회는 복잡 다양 다층하기 때문에 기준이 되는 규칙과 법이 어느 시대보다도 확실하게 효력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상업용 건물과 토지 임대료로 발생하는 자본은 금융자본에 비하면 약소한 문제이다. 금융자본이야말로 현실 경제를 왜곡하여 장차 미래 경제를 파탄 낼 수도 있는 중차대한 문제이다. 기존의 자본주의에서도 막대한 금융자본이 축적되어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데, 21세기 초부터 시작된 신자유주의 경제구조에서는 금융자본이 세계적인 위력을 발휘하며 이미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한 국가 단위의 금융자본은 해당 국가의 경제를 장악한 지 오래되었고, 세계 단위의 초국적 금융자본은 이윤을 얻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침투하여 한 국가뿐만 아니라 지역 경제권, 세계 경제권까지 장악하고 있다.
국가 단위든 국제단위든 금융자본의 횡포를 이대로 두어서는 국가 경제와 세계 경제가 결코 건강해질 수 없다. 병들어 결국 국가 경제와 세계 경제가 붕괴하고 만다.
각 국가와 국제기구는 금융자본이 세계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국가 단위에서는 각국 정부가 금산분리 정책과 자본 이동 제한, 금융기관의 공영화와 국가 관리 강화 등의 입법과 감시 감독 기능의 강화를 통해 금융자본에 고삐를 꿰야 한다. 특히 신자유정책에 맹종하지 말고 외국 금융자본의 무분별, 무차별적인 국내 자본 시장 유입과 기업 매수, 매도를 제한, 방지하여 건전한 국내 자본 시장 육성을 관리해야 한다. 각국이 협력하여 초국적 금융자본과 거대자본의 무분별한 유동을 제한해야 한다. 특히 외국 자본이 국내에 들어와 얻은 이윤에 대하여서는 80% 정도의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
무엇보다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은 지구에서 가장 진화가 잘 된 최고 지성인들답게 자국 경제 발전에만 집착하여 자국의 금융자본이 해외로 진출하는 것을 장려하거나 묵인하지 말고, 세계 경제가 인류라는 같은 종끼리의 물질적 순환임을 자각해야 한다.
오늘날 60억 세계 인구의 의식주를 해결하고 점증하는 물질적 욕구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미우나 고우나 자본주의의 길밖에 없다. 공산주의와 사회주의가 발생한 근본적 요인은 민중의 의식주 문제 해결 때문이었다. 공산주의자라고 사회주의자라고 인간을 무시하고 인류 문명을 부정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어떤 면에서는 너무나 인간과 인류 문명의 역사를 깊이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실험은 결국 소수의 만족으로 끝마쳤다. 체강동물인 다수의 인간은 여전히 물질적 풍요를 삶의 목적으로 여기고 있다. 물질적 욕구에 얽매이지 않고, 가난하고 소박한 삶을 살아도 만족하는, 안빈낙도하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인류 문명 발전의 원동력은 더 나은 삶을 바라는 늘어난 인구이다. 풍요한 물질과 안락한 생활을 위해 인류는 문명을 발전시켜 왔다. 늘어난 인구는 왕족과 귀족만이 누리는 물질적 풍요가 못마땅하여 왕정을 뒤엎어 버리고, 모든 사람이 자기 노력에 따라 물질적 풍요를 누릴 수 있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발전시켜 왔다. 인류 문명의 바탕은 물질문명이고, 정신문명은 그 위에서 자라는 꽃이다.
인류문명의 발전을 위해서는 자본이 필요하다. 가계는 근로소득으로 영위할 수 있지만, 사회적 사업과 공익사업, 대중적 욕구를 충족하는 상품 생산을 위해서는 거대한 자본이 필요하다. 자본이 갖고 있는 양면성 중에서 지금까지는 개인과 기업, 국가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상업성이 주류였다면, 이제는 이익을 추구하되 사회 전체를, 국가 전체를, 세계 전체를 성찰하는 공공성도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아야 한다.
저자 이광형 총장이 이 장에서 핵심 키워드로 제시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핵심 주장은 현대에 맞는 해법의 고안이다. 그 해법이 현대에 맞아야 바람직한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다.
결언한다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화해와 접목이다. 두 주의의 역사적 갈등과 앙금을 털고, 미래를 위해 선뜻 버릴 것은 버리고 받을 것은 받는 변증법적 발전만이 인류 생활과 문명의 계속을 위한 유일한 길이 될 것이다. 이 길을 이름하여 ‘사회자본주의’라고 한다.
사회자본주의는 ‘자본’이 내용이며 실질이고, ‘사회’는 형식이며 명분이다. 기존의 ‘수정’과 ‘신자유주의’라는 형식과 명분이 초래한 자본주의의 부작용과 반작용을 지양하고, 자본주의 본연의 가치를 발현하기 위해서는 ‘사회’라는 형식과 명분을 도입해야 한다. 자본은 몸이고 사회는 정신이다. 몸만 비대하면 병에 걸린다. 정신은 몸속에 존재한다. 몸과 정신이 함께 해야 건강하다.
자본이 시멘트라면 사회는 철근이다. 시멘트만으로 큰 건물을 지을 수 없다. 철근을 넣어야 많은 인구가 살 수 있는 아파트를 건축할 수 있다. 자본이라는 소가 주인의 말에 따라 일을 잘 하기 위해선 사회라는 고삐를 단단히 꿰야 한다.
역사는 진보하고 있다. 인간의 정신은 진화하고 있다. 그러므로 21세기 신시대부터는 개인과 집단의 이익을 추구하는 자본주의가 아니라 개인과 집단의 이익과 함께 사회 공동체의 이익도 추구할 수 있는 자본주의로 진화해야 한다. 사회자본주의가 현대에 맞는 해법이다.
자본주의를 배척하며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만을 추구하던 많은 공산권 국가들이 현대에 들어 자본주의적 경제 방법론을 일부 도입하고 있다. 그것을 자본사회주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구 증가는 자연의 섭리이기 때문에 그들 공산권 국가들도 인간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물질적 욕구를 계속하여 통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앞으로의 인류문명사는 ‘자본’과 ‘사회’ 중의 어느 쪽에 비중을 더 두느냐에 따라, 자유민주 진영 국가들의 사회자본주의와 통제사회 진영 국가들의 자본사회주의가 쌍벽을 이루며 진행될 것이다. ‘자본’과 ‘사회’ 둘 다 인류문명 발전에 필수 요소임을 이제는 알았으니, 양쪽이 냉전과 열전의 시대를 접고 선의의 경쟁을 시작해야 할 새 시대가 되었다.
사회자본주의 개념이 총론으로 제시되었으니, 뜻을 함께 하는 세계 각국의 석학들이 각론을 채워서 인류문명의 새 지표를 세워야 할 것이다.
2024년 6월 1일 안동 南禪軒에서 쓰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