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춘 칼럼] 경찰은 뭉개고, 언론은 피해자를 공격하고
표적의 죽음으로 이익을 얻는 세력이 배후
적당히 묻어버린다면 이 나라의 희망은 없어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피습 당해 자칫 사망할 수도 있는 위기를 넘기고 다행히 잘 치료되어 퇴원했다. 집도 의사의 소견으로는 가해자의 칼이 조금만 깊이 들어가 경동맥을 건드렸거나, 그 피습 상태로도 출혈이 과다했다면 사망할 수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사건 직후 마치 이 대표가 이상한 노인의 우발적인 습격을 받아서 가볍게 다친 것처럼 보도가 나왔고, 부산대병원에서도 충분히 치료받을 수 있었는데, 헬기까지 타고 서울대병원으로 옮겨 지역의료를 무시했다는 식으로 생명을 다투는 사람의 선택에 도덕적인 질타를 했다. 그래서 지난번 대선에서 현 대통령인 윤석열에 불과 25만 표 뒤진, 현재 제1야당 대표이자 이 나라의 가장 중요한 정치 지도자의 한 사람에 대한 테러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이상한 분위기가 계속된다.
야당 대표 살해 시도, 경찰은 뭉개고 언론은 피해자 공격
가장 납득할 수 없는 것은 사건 직후의 정부, 경찰, 언론 등의 거의 노골적인 증거인멸, 사건 축소, 그리고 다른 프레임으로 국민 관심 돌리기다. 국무총리실 산하 대테러상황실은 사건 발생 직후 40분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 이재명 대표가 ‘1센티 열상’을 입었다고 사건의 진실을 축소하는 문자를 뿌렸다. 수사기관은 범죄가 발생하면 현장을 보존하는 것이 기본인데도, 경찰은 곧바로 현장을 지웠고, 이재명이 입었던 피묻은 셔츠는 진주의 의료폐기물 업체에서 발견되는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 얼마 전 자살한 배우 이선균 씨의 경우처럼 수사 과정을 생중계하듯이 언론에 흘려서 인격 살인을 가해온 수사당국인데도 이번 사건에서는 범인이 민주당적을 가졌다는 사실을 흘린 이후에는 이유도 대지 않은 채, 그의 당적과 가해 동기를 파악할 수 있는 변명문을 공개할 수 없다고 결정했다. 경찰은 범인과 차에 동승했던 사람이 자진 신고를 했는데도, 3일이 지나서야 소환했고, 공범 여부 등 중요한 점을 동승자에게 제대로 물어보지도 않았다. 경찰은 신원뿐만 아니라 피습 당시 영상, 그리고 가해에 사용한 칼, 피의자의 변명문도 공개하지 않았고, 현장검증도 하지 않았다,
민주당 측의 조사에 의하면 사건 직후 가해자가 누구이며, 왜 그런 살인을 시도했는지 묻는 보도는 거의 없었고, 피해자인 이재명에게 책임을 돌리는 보도는 8개 채널에서 하루 400개씩 쏟아냈다고 한다. 세월호 참사 직후 모든 종편이 청해진 해운과 유병언 일가가 마치 사건 책임자인양 중계방송 하듯이 보도를 쏟아낸 것과 판박이다. 미국 뉴욕타임즈가 미리 보도한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국내 언론의 이 사건 보도는 물타기로 일관하고 있다.
극우이념 가해자가 ‘좌파’ 정치인 제거하려한 분명한 정황
이 사건이 이렇게 넘어가도 될까? 물론 과거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피습사건도 있었고, 최근에는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에 대한 테러도 있었다. 그런데 과거의 정치인 테러와 달리 이번의 경우 가해자가 <월간조선> 30년 구독한 이력, 그가 사용한 칼, 민주당 이재명 지지자로 위장하여 몇 번이나 계속 접근하려는 시도를 했다는 점(사인을 받겠다고 계속 말한 것), 그리고 피해자인 이재명 대표가 입은 치명적 상해 등을 종합해 볼 때 극우이념을 가진 가해자가 이재명을 제거되어야 할 좌파로 보면서, 살해를 시도한 정황이 분명하다.
암살과 테러는 특정 종교나 이념에 대해 외골수의 신념을 가진 극단주의자들이 자신이 적이라고 생각하는 인물을 제거하면 ‘나라와 세상을 구할 수 있다’는 주관적 확신과 신념으로 저지른다. 그러나 그런 확신범을 조종하거나, 자금과 무기를 제공하거나, 노골적으로 행동을 부추기는 정치적 발언이 언제나 선행하는 경우가 많다. 여운형 암살이 대표적이다. 지난 미 대선직후 극우파들이 미 국회의사당에 진입하기 직전에 트럼프가 “지금 행동할 때”라고 선동적 발언을 한 것도 의회 난동의 방아쇠를 당긴 발언이다.
물론 피압박 민족이나 피착취 세력이 저항의 한 방편으로 감행하는 테러도 있다. 안중근과 김구도 테러를 수단으로 일제에 저항했다. 압도적 힘의 우위를 뒤집을 수 없는 상황에서 저항적 테러는 위축된 대중들에게 용기를 주고, 억압자들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한 것인데, 이런 테러를 일으킨 사람은 거의 그 자리에서 살해당하거나 살아나도 사형을 면할 수 없었다. 무슬림들의 자살 테러는 자기가 먼저 죽기를 선택한 것이다. 즉 힘의 관계나 정치 환경에서 극히 불리한 위치에 있는 약자나 저항세력은 대체로 죽음을 각오하고 테러를 감행한다.
죽음 각오한 저항의 테러, 배후 감추는 극우의 테러
그런데 제국주의, 극우 반공주의 체제 하에서 사회주의, 리버럴 지향을 가진 지도자들에 대한 극우 테러는 성격이 다르다. 미국의 극우세력인 KKK단의 테러, 케네디 대통령 암살, 마틴 루터 킹 목사 살해 등은 모두 여기에 속한다. 이 경우 극우 테러는 공권력과 여론이 대체로 자신의 편이라는 확신, 그리고 테러를 감행해도 발각되지 않거나, 설사 체포되더라도 수사기관과 법원이 모두 자기 편이기 때문에 곧 풀려날 것이라는 확신이 있을 때 테러를 감행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테러의 경우 공권력이나 극우 정치세력이 실제로 배후에서 이들을 지원한다. 그래서 테러 이후에도 수사는 형식적으로 진행되고 배후는 끝내 밝혀지지 않는다. 케네디 살해, 김구 살해가 그러했다.
1947년 여운형 살해 테러범 한지근은 현장에서 체포 구속되었으나, 공판에서 배후 공범 관련 질문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당시 미군정은 여운형 암살 계획을 알고 있었다. 범행의 배후로 극우 테러리스트 조직인 ‘백의사’의 염동진 등이 무기를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지만, 사건 발생 27년 후, 공소시효가 지난 시점이었다. 김구 살해범 안두희는 사건 이후 체포되어 피의자임에도 거의 귀빈 대우를 받았고, 곧 풀려나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살았다.
그런데 표적이 되는 인물이 테러로 사망하면 정치적 환경은 완전히 역전된다. 케네디와 킹 목사가 암살당하지 않았다면 미국과 미국의 민주당이 오늘처럼 우경화되었을까? 중도좌파 여운형과 통일 민족주의자 김구가 암살당하지 않았다면 한반도가 지금처럼 70년 동안 분단 상태에 놓여 있었을까?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는 중요 인물, 특히 개혁과 진보를 상징하는 인물의 살해는 그 국가와 사회의 궤도를 우경화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즉 비록 수사기관에 의해 살해의 배후는 끝내 규명되지 않더라도, 이들이 사라지면 가장 큰 이익을 얻는 세력이 누구인가를 보면 가해의 배경이 드러난다. 여운형이 암살당하기 전날 김용중에게 보낸 서한에는 “이곳 미국인들은 극우분자를 두둔하오. 좌파면 누구나, 아니 극우가 아닌 사람은 누구나 공산주의자로 낙인찍고 그 활동에 방해를 당하고 있소”라고 적었다. 당시 여운형은 남한에서 총선이 실시되면 극우가 추대하는 이승만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 될 수 있었다. 여운형과 김구 살해는 이승만과 한국 극우 친일 세력이 모두가 원하는 일이었다.
‘표적’의 죽음으로 이익을 얻는 세력이 배후
즉 정치 테러는 단독 혹은 우발적으로 발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지금까지 진행된 이재명 대표에 대한 태러 수사는 단독 우발 범행으로 몰아가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과거 여운형, 김구 때의 수사와 거의 판박이다. 가해자 이력은 공개되지 않고, 공범 관련 수사는 하는 시늉만 하고, 현장의 증거는 곧바로 지워버리려 했다. 지금 경찰이 가해자 신원과 가해 배경을 감추는 것은 과거 여운형과 김구 살해 직후 테러범을 ‘정중히 모시는’ 정도에 버금간다.
테러나 학살이 발생할 때는 언제나 그 표적이 되는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폄훼, 악의적 공격, 그리고 악마화 과정이 선행한다. 주로 언론이나 정치가들의 발언 등을 통해서 이들은 반민족 세력, 사회악, 그래서 죽여도 좋은 존재라는 선전이 확산, 반복된다. 1945년 직후 11번이나 테러를 당하다가 결국 희생된 여운형에 대해 당시 한민당 극우파 세력은 “여운형은 공산당의 앞잡이다. 여운형은 일제 강점기 2천만 원의 돈을 받아먹었다. 여운형은 깡패두목이며 사기꾼이다”라는 소문을 퍼뜨렸다. 김구 역시 암살당하기 전에 빨갱이, 여순사건 배후 조종자로 몰렸다. 이렇게 천하가 모두 아는 항일 투사이자 애국자를 ‘민족분열주의자’ ‘공산당 앞잡이’ 심지어 친일파라고까지 흑색선전을 계속하면, 그러한 선전을 철석같이 확신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나오고, 그들 중 극단주의자가 테러를 실행한다.
지금까지 이재명 대표에 대한 언론과 정치권의 비난, 폄훼, 그리고 악마화 과정도 과거 여운형이나 김구 테러 직전 그들에 대한 인신공격과 매우 유사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재명 대표를 단 한번 면담조차 하지 않았고, 한동훈 전 법무부장관은 그를 ‘잡범’이라고 불렀으며, 극우 유튜버는 그를 ‘빨갱이’라고 공격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심지어 ‘공산 전체주의’ ‘운동권 카르텔’ 운운하면서 야당 지도자들이 타도되어야 할 공산 전체주의 수괴인 양 이념적 덧칠을 했다. 이런 대통령과 여당 정치인들의 적대적 언사는 극우 극단주의자 테러 세력에게 확신을 주는 정치환경을 조성하며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는 매우 중요한 촉발제이다.
이재명을 악마화하는 한국의 전쟁 정치
거의 죽음의 위험 앞에 있는 사람을 헬기로 이송한 것을 두고 ‘특권’이며 ‘지방을 무시한 것’이라고 시비를 걸거나, 심지어 자작극이라고 공격하는 등의 극우 유튜버나 보수 언론의 거친 담론을 보면 결국 ‘잡범’ ‘중대 피의자’ ‘빨갱이’ 이재명은 테러 현장에서 죽었어야 하는데 안 죽어서 문제라고 보는 듯한 느낌도 준다 해방 후 가장 높은 국민적 지지를 받던 여운형, 김구에 대한 한민당과 친일세력의 거친 공격과 이들이 살해된 직후 극우세력의 태도도 그러했다.
이재명 대표 피습사건은 이재명 개인의 지도력이나 인격, 태도, 정치 이념이나 노선으로 접근할 문제가 전혀 아니다. 이것은 한국이 과거 해방정국과 마찬가지로 테러와 폭력, 적대와 학살이 난무하는 혼란 상황으로 되돌아 가는가, 아니면 계속 문명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가의 문제다. 21세기 백주 대낮에 이런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도 그렇지만, 이 야당지도자 살해미수 사건을 정부, 경찰, 언론이 과거처럼 적당히 묻어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오늘 한국 정치의 야만성을 그대로 드러내 준다. 인물의 풀이 제한된 이 좁은 남한 땅에서 이념적 극단주의와 권력자들의 은밀한 공작으로 중요한 국가 지도자들이 살해당하거나, 정치적으로 매장당한다면 도대체 그런 국가에서 어떤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