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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금성 인과의 재회
로스앤젤레스는 화려한 불빛과 소음으로 뒤덮인 바쁘고 어수선한 도시여서, 내 산장(山莊)의 조용한 별빛과 평온함과는 매우 큰 대조를 보여 주고 있다. 1913년 2월 18일 , 내가 그 거리로 나선 것은 홍분을 얻기 위해서라기보다 <<비행접시 착륙하다(Flyinf Saucers Have Landed)>>에 언급한 바와 같은, 그 어떤 말할 수 없는 절박한 생각에 휩싸였기 때문이었다. 로스앤젤레스에 오면 나는 언제나 시가지에 있는 한 호텔에 묵곤 하였다. 그 날 나는 호텔 종업원이 짐을 방으로 날라 놓고 팁을 받고 나간 뒤에도 계속 들뜬 마음으로 방 한가운데 우뚝 서 있었다. 오후 4시 였다. 어째서 내가 이곳에 왔는지도 모르는 채, 뭘 해야 할지 몰라서 망설이고 있었다. 나는 창가에 다가서서 어수선한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물론 어떤 확실한 영감 같은 것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갑자기 어떤 생각이 머리를 스치자 나는 층계를 내려와 로비를 가로질러서 칵테일 라운지 쪽으로 걸어갔다. 그곳의 호텔 종업원은 나를 잘 알고 있었다. 전에는 의심하고 있었지만, 내 얘기를 듣고 원반(圓盤) 사진을 보고 나서부터는 그도 원반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나를 보자 반가이 맞아 주었다. 몇 마디 말을 건넨 후 그는 많은 사람들이 그의 원반 이야기로 흥미를 갖게 되었고, 어느 땐가 내가 이곳에 들르게 되면 꼭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 받았다는 이야기를 내게 해주었다. 그는 나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었으나 나로서는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적어도 그때만은 나는 이야기를 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나는 낯선 사람들을 상대로 비공식적인 강연을 할 기분은 나지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뭔가를 기다리고 있는 시간을 보내기에는 유일하게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 나는 그 무엇인가를 열렬히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승낙하자 곧 많은 남녀가 모여들었다. 그들의 눈빛에서 진지함을 읽은 나는, 최선을 다해서 그들의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그럭저럭 아마 7시쯤 되었을 때였다. 나는 그들과 헤어져서 저녁을 먹으려고 거리로 나가 좀 걷기 시작했다. <그 어떤 알 수 없는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예감이 끊임없이 떠올라 혼자 있고 싶어졌던 것이다. 멍한 기분으로 식사를 마친 뒤 나는 호텔로 되돌아왔다. 로비에는 아는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었다. 이제는 바에 가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다.
불현듯 나는 M양 생각이 났다. 그녀는 나의 젊은 제자로 이 도시에 살고 있었다. 그녀는 당분간 팔로마 산의 우리 산장에 올 수 없게 되었다면서, 다음에 로스앤젤레스에 오면 전화해달라는 당부를 내게 했던 것이다. 나는 전화박스로 들어가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내 목소리를 듣고 반가운 모양이었다. 그러나 차가 없으니까, 나를 만나러 시내전차로 오자면 그럭저럭 한 시간쯤은 걸릴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나는 석간신문을 사 들고 별로 탐탁지 않은 사람과의 만남을 피하기 위해 내 방으로 올라갔다. 흥미 기사를 읽은 뒤 나는 평소라면 읽지 않고 넘겨 버릴 기사까지도 훑어보았다. 내 의식 전체에 파급되어 있는 안절부절못하는 느낌을 이렇게 해서 조금이 라도 눌러 보자는 생각에서였다. 약속 시간이 되기 전에 나는 로비에서 M양을 기다릴 셈으로 아래로 내려갔다. 그녀는 예상보다 15분 가량 늦게 나타났다.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나는 그녀의 마음속에 감춰져있는 어떻게 할 수 없었던 많은 괴로움을 얼마만큼 풀어 줄 수 있었다. 그녀는 고맙다고 하면서, 마음속으로는 언제나 내가 시내로 나와서 자기를 도와주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전차 정류장까지 그녀와 나란히 걸으면서 나는, 산장에 있을 때부터 떠나지 않던 그 절박감은 아마도 M양의 그 생각이 텔레파시 메시지로 내게까지 옮아 온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호텔 로비에서 다시 혼자가 되어 조용히 앉아 있자니까 이것을 가지고는 설명이 미진함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느낌, 즉 절박감이 아직도 내게서 사라지지 않고 전보다 더 강하게 나를 괴롭혔다. 손목시계는 10시 30분 을 가리키고 있었다. 밤은 상당히 깊은 셈인데, 그 어떤 중대한 일은 일어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는 것 같았다. 내 마음은 실망으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바로 이 좌절의 순간, 두 사나이가 내 앞으로 다가오더니, 그 가운데 한 사람이 내 이름을 불렀던 것이다. 두 사나이는 전혀 안면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내 앞으로 다가섰을 때, 그들의 태도에는 망설임이 없었고, 그 차림새도 흔히 보는 젊은 비즈니스맨과 다른 점이 조금도 없었다. 나는 로스앤젤레스에서 강연을 한 적도 있고, 라디오나 텔레비전에도 가끔 출연하므로 팔로마의 언덕에 있는 내 산장으로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기 때문에 낯선 사람이 이렇게 갑자기 접근해 오는 일이 이상할 것은 없었다. 보아하니 두 사람 모두가 훌륭한 체격이었다. 한 사람은 180cm 좀 넘는 키에 나이는 30대 초반으로 보였다. 혈색이 좋은데다 흑갈색의 눈은 커다란 생명의 환희를 나타내는 것 같은 빛을 내고 있었으나, 그 눈길은 이상하게도 꿰뚫는 듯한 힘이 있었다. 그의 검은머리는 물결처럼 굽이쳐 있었으나 모양은 평범했다. 그리고 짙은 갈색 양복에 모자는 쓰지 않았다. 작은 쪽 남자는 더 젊어 보였다. 키는 175cm 정도이고 둥근 동안(童顔)에 살결이 희고, 푸른 눈을 갖고 있었다. 머리털도 구불구불하여 우리와 다르지 않았으나 그 빛깔은 모래 빛이었다. 회색 양복에 역시 모자는 쓰지 않고 있었다. 웃음을 띠면서 내 이름을 부른 것은 바로 그였다. 내가 알은 체하자 이야기를 걸어 온 그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이 내 손에 닿자, 말할 수 없는 기쁨이 내 전신에 가득 찼다. 그 신호는 기념할 만한 것으로, 1952년 11월 20일 에 사막에서 내가 처음 만났던 인물이 보여 준 신호와 같았던 것이다(이 사실은 <<비행접시 착륙하다>>에 자세히 나온다). 즉각 나는 이 사람들이 지구인이 아님을 깨달았다. 악수를 주고받으면서도 나는 아주 마음이 편안했다. 이윽고 젊은 쪽의 남자가 입을 열었다.
「우리는 당신을 만나 보고 싶어서 왔습니다. 같이 가시지 않겠습니까?」
「네, 같이 가겠습니다. 」
나는 마음에 아무런 거리낌도 두려움도 없이 대답했다. 우리는 함께 로비를 나왔다. 나는 두 사람 사이에서 걸었다. 호텔에서 북쪽으로 한 블럭 정도 떨어진 곳에서 두 사람은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거기에 차를 세워 두었던 것이다. 그러는 동안 잠시 그들은 아무 말도 안 했지만, 나는 이 사람들이 참된 친구임을 깨닫고 있었다. 나를 어디로 데려갈 작정이냐고 묻고싶은 생각도 없었을 뿐더러, 두 사람이 가르쳐 주지 않아도 별로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주차계원이 차를 몰고 오자 젊어 보이는 사나이가 운전석에 앉더니 내게 그 옆자리에 앉으라고 손짓했다. 또 한 남자도 앞좌석에 함께 탔다. 차는 문짝이 넷인 흑색 바탕의 폰티악 세단이었다. 핸들을 쥔 사나이는 길을 정확히 알고 있는 모양인지 운전이 능숙했다. 나는 로스앤젤레스에서 빠져 나오는 신설 고속도로만큼은 익숙하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전혀 방향을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말없이 달릴 뿐이었다. 그래도 나는 흡족해서 이 친구들이 정체를 밝히고, 나를 만나러온 까닭을 설명해 주기를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이러한 남을 믿는 태도는, 흔히 오늘날 세계에 판치고있는 불법행위를 생각할 때 어리석은 짓으로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현대 서양문명 밖에서는, 자신들보다 위대한 지혜를 가지고 있다고 인정되는 인물이 나타났을 때, 사람들은 모두 이러한 태도를 취하는 법이다. 이 같은 예절은 아메리카 인디언에게서도 볼 수 있다. 그것은 경의와 겸손, 인내와 신뢰를 나타내는 태도이다. 나는 그렇게 알고 있었으므로 그렇게 행동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사람들을 보는 순간, 나는 그 어떤 힘의 작용을 감지(感知)했었다. 광대한 지혜와 자비심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 나는 그 힘에 압도되어 자신을 어린애처럼 느끼고 말았던 것이다. 우리가 시외로 빠져나감에 따라 불빛과 건물이 뜸해졌다. 키 큰 사나이가 이때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당신은 정말 참을성이 많은 분입니다. 우리가 누구인지, 어디로 가려는 것인지 수상하게 여기시는 줄 잘 압니다.」
물론 수상히 여기고 있었음을 나는 시인했다. 그러나 나는 그래도 아주 만족하여, 두 사람이 나에게 설명해 줄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고 덧붙여 말했다. 이야기를 건 사나이는 웃음을 띠면서 운전석의 사나이를 가리켰다.
「이분은 당신들이 화성(火星)이라고 부르는 행성으로부터 왔고, 저는 토성(土星)이라고 불리는 행성에서 왔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듣기에 좋았다. 그의 영어는 완벽했다. 젊은 편의 남자도 좀 금속성이었지만 부드러운 목소리의 소유자임은 벌써 알고 있었다. 나는 두 사람이 영어를 이렇게까지 유창하게 말하는 것을 어디서 어떻게 배웠을까 하고 자문하고 있었다. 그런 생각이 뇌리를 스쳤는가 싶었는데 그들은 곧 눈치를 챘다. 이번에는 화성인이 호텔에서 만난 이후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지구인이 <연락원>이라고 부르는 신분을 가지고 이 지구에서 살면서 일하고 있지요. 아시다시피 지구에서는 옷가지나 식량이나 그 밖의 여러 가지 필수품을 입수하려면 돈을 벌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수년간 쪽 여기서 살고 있었지요. 처음에는 악센트가 좀 우스웠지만, 이제는 그 점도 극복하고 보시다시피 외계인이라고는 생각되지 않게끔 되었습니다. 일을 하고 있는 동안이나 쉬고 있는 동안이나 우리는 지구인 속에 뒤섞여 있지만, 우리가 외계인이라는 비밀은 절대로 밝히지 않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짓인지 당신이라면 잘 아시겠지요. 우리는 지구인에 대해서 당신들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지구인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불행한 상황이 왜 일어나는지 우리는 그 까닭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 자신도 다른 행성에도 인간이 존재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가 세상의 비웃음과 비판을 받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지구의 과학자들이 다른 행성에는 생명체가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을 정도니까 짐작할 수 있지요. 그래서 당신이라면 우리의 고향이 외계의 행성임을 비추기만 해도 어떤 일이 일어날지 수월하게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구인 가운데서도 생활이나 연구 때문에 타국으로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 지구에서 일을 하고 배우려고 이 지구에 왔다고 하는, 극히 단순한 사실을 입 밖에 했다고 해보십시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미친놈 소리를 듣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허가를 얻어서 고향의 별로 단기간(短期間) 돌아가는 수가 있습니다. 당신들도 어쩌다가 기분을 바꾸고 싶거나 옛친구를 만나 보고 싶거나 할 때가 있지요. 우리도 그 점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물론 이렇게 해서 자취를 감추자면 공휴일이나 주말을 택하지 않으면 안되지요. 지구인 이웃들이 우리가 없어진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나는 이 사람들이 지구에서 결혼해서 가족을 거느리고 있을지는 물어 보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런 질문을 할 분위기가 아니라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몇 분 동안 다시 침묵이 계속되었다. 어째서 나만이 그들과 우정을 누리도록 선택되었을까? 어째서 내게만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들로부터 이러한 지식이 주어졌을까? 나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무슨 까닭인지 내 마음은 아주 겸허한 기분과 고마움으로 가득 찼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토성인이 조용하게 말을 건넸다.
「우리가 지구에서 이야기를 건 사람은 당신이 처음도 아니고 유일한 사람도 아닙니다. 우리는 지구 여러 곳에 찾아가 이 밖에도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는 우리와 그와의 체험을 입 밖에 내었다가 처벌되었거나, 이른바 <사형>을 당한 사람조차 있습니다.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입을 다물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지금 쓰고 있는 책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면 이른바 금성에서 온 <우리들의 형제>와 사막에서 처음 만났다는 당신의 이야기에 힘입어 온 세계 사람들이 용기를 내어 각자의 체험을 당신에게 보고해 올 것입니다. 」(<<비행접시 착륙하다>>발간 후 이 예언의 옳음이 실증되었다. )
이 두 사람의 새로운 친구에게 나는 강한 신뢰감을 품었을 뿐만 아니라 실지로 우리는 이미 서로 만났던 일이 있는 구면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조차 갑자기 엄습해 왔다. 그리고 또 나는 이 사람들이라면 어떠한 질문에도 대답할 수 있고, 온 세계의 어떠한 어려운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필요에 따라서는 그들의 사명을 위한 일이라면 지구인으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기적까지도 실행해 보일지 모른다는 깊은 확신을 갖게 되었다. 우리는 상당한 시간, 아마도 한 시간 반쯤 미끈한 고속도로를 달려왔으나 도대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나는 그때까지도 짐작이 가지 않았다. 다만, 사막지대로 들어서고 있구나 하는 느낌은 있었다. 주변은 칠흑 같은 어둠이라 자세한 것을 알 추가 없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부지런히 그들이 한 이야기를 음미하고 있었으나, 앞에서도 말한 바 있듯이 거의 대화는 없었다. 갑자기 차가 흔들리기 시작하여 나의 생각은 깨졌다. 평탄한 고속도로에서 꺾이어 황량하고 울퉁불퉁한 비좁은 길로 차차 들어선 탓이었다. 화성인은 낮은 소리로 말했다.
「좀 놀랄 것입니다.」
이 길을 약 15분쯤 달렸으나 다른 차와는 한 대도 마주치지 않았다. 이어 나는 지상에서 부드럽고 하얗게 빛나는 물체를 보고 완전히 흥분하고 말았다. 차는 그 물체로부터 약 15m 앞에 정차했는데 그 물체의 높이는 4.5m~6m쯤 되어 보였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약 3개월 전에 내가 처음으로 마주쳤던 그 원반, 말하자면 정찰원반(偵察圓盤=Scout Ship) 비행체와 똑같았다. 차가 정지했을 때, 빛나는 우주선 곁에 한 남자가 지상에 서있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차에서 내린 뒤 나의 동행인이 소리를 내어 그 남자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는 그 원반의 부품을 만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우리 세 사람은 그에게로 걸어갔다. 그때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사람은 바로 내가 처음으로 접촉했던 우주인인 금성인 이었던 것이다. 내가 크게 기뻐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는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은 스키복 비슷한 우주복을 입고 있었으나, 이번에는 엷은 갈색 벨트로 허리를 두른 아래위로 오렌지빛 줄무늬가 있었다. 그의 빛나는 미소는 나와 마찬가지로 이 재회를 기뻐하고 있음을 말해 주고 있었다. 인사를 나눈 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려올 때 이 우주선의 조그마한 부품이 망가졌어요. 그래서 여러분의 도착을 기다리면서 새것을 만들고 있던 중입니다.」
나는 그가 모래 위에 놓인 조그마한 도가니 속의 것을 끄집어내는 것을 신기한 듯이 지켜보고 있었다.
「마침 잘되었군요. 이제는 더 손볼 곳이 없습니다.」
그때 갑자기 나는 그가 거의 완벽한 영어로 말하고 있는 것을 듣고 놀랐다. 처음 만남을 때는 영어를 전혀 못하는 것 같았는데, 지금은 사투리가 약간 섞인 영어를 하고 있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설명해 달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그쪽에서 먼저 말을 꺼내지 않는 이상 나는 질문을 삼가기로 했다. 그 대신 나는 몸을 굽히고 떨어져 있는 극히 작은 주조(鑄造)금속 덩어리 같은 것을 손으로 만져 보았다. 그것을 가져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직 약간 뜨거웠지만 손에 잡을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그것을 슬며시 손수건에 싸서 조심스럽게 코트 안주머니에 넣었다. 이 금속 조각은 아직도 내가 보관하고 있다. 세 사람의 우주인은 나의 이 묘한 행동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으나, 그 웃음 속에는 사람을 우습게 보는 오만함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금성인 은 내 대답을 미리 알고 있었을 테지만 그래도,
「그런 물건을 뭣에 쓰려고 합니까?」
하고 물었다. 나는 우주인이 다녀갔음이 사실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자료로 삼고 싶다고 설명했고, 나아가서 우리 두 사람이 처음으로 만났던 일을 공표했을 때, 내가 <모든 것을 날조한> 것이 아님을 증명하는 데는 사람들이 요구하는 <구체적 증거>를 보여 주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웃으면서 그는 대답했다.
「알 만합니다. 지구인들은 정말 기념물 수집을 좋아하는 인종이군요. 그러나 헛일입니다. 앞으로 알게 되겠지만, 이 합금의 내용물은 지구에 있는 금속과 다름이 없습니다. 어느 행성에서도 금속은 모두 같거든요.」
여기서 독자 여러분에게 말해 두는 것이 좋으리라고 생각된다. 내가 만나 본 우주인 가운데 지구인과 같은 이름을 말해 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그 까닭을 내게는 설명해 주어서 나는 알고 있지만 여기에 자세히 적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이 점에 대해서 그 무슨 신비한 내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바와 같은 이름의 개념과는 아주 다르다는 점만을 밝히는 데 그치겠다. 실지로 이 새로운 친구들을 이렇게 이름 없는 상태로 만나 보아도 내게는 조금도 불편이 없지만, 아마도 독자 여러분은 반드시 갈피를 못 잡으리라 생각된다. 더욱이 이 책에서는 앞으로도 여러 번 언급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이름을 붙여 두고 싶다. 왜냐하면 지구의 우리들은 서로가 이름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새로운 친구들을 위해서 이제부터 소개하는 이름은 결코 그들의 올바른 이름이 아니다. 이 점은 반드시 분명히 해두고 싶다. 그리고 이러한 이름을 고른 데 대해서 나 자신은 내 나름대로의 까닭이 있으며, 이 책을 통해서 저마다 이름을 갖게 된 우주인에 대해서 그 이름에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아울러 밝혀 두고자 한다. 아까 그 화성인을 나는 파아콘이라고 부르기로 하였다. 토성인은 라뮤우, 그리고 금성인 에게 준 이름은 오오손이다.
제2장
금성 정찰원반의 내부
우리가 도착한 지 얼마 안 돼서 곧 오오손은 몸을 훌쩍 날려 원반에 탄 후에 나에게도 타라고 손짓했다. 파아콘과 라뮤우도 곧 뒤를 이어 따라왔다. 앞서도 말한 바와 같이 이 정찰원반은 지상에 묵직하게 내려앉아 있어서 올라타려면 작은 걸음으로 한 걸음만 오르면 충분했다. 이전에 난생 처음으로 대기하고 있었던 원반에 가까이 갔을 때 언젠가는 타 볼 기회가 있으리라는 예감은 가졌었지만 지금은 실제로 올라타고 있는 것이었다. 내 기쁨을 제발 상상해 주기를 바라는 바이다. 처음 보는 우주선 내부를 재빨리 훑어보면서 나는 그들의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없었다. 도대체 어쩌자는 것인지, 이 정찰원반의 내부 상황을 내게 보여 주는 데 그치려는 것인지 아니면-도저히 바라기도 어렵지만-혹시 나를 정말로 우주로 데려가 줄 작정인지, 나는 이 생각 저 생각으로 머리가 어지러웠다. 우리는 곧장 선실(船室)로 들어갔다. 선실은 하나뿐인 것 같았다. 그 선실로 통하는 문은 키 큰 토성인이 몸을 굽히지 않고도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높았다. 끝으로 선실에 들어선 라뮤우의 발이 마룻바닥에 닿음과 동시에 문이 소리 없이 닫혀졌다. 그때 극히 작았지만 웽 하는 소리를 들었다. 이 소리는, 원반 벽의 상부에 장치되어 있다고 생각되어지는 거대한 코일과 마룻바닥 양쪽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이 웽 소리와 때를 같이하여 그 코일도 시뻘겋게 달아올랐지만 열(熱)은 없었다. 나는 처음 우주선을 보았을 때도 원반의 상부에 이같이 번쩍이는 코일이 있었음을 생각해 냈다. 그러나 그때 그것은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프리즘과 같이 여러 가지 색깔, 즉 빨강, 파랑, 초록색 등을 방출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어디서부터 구경해야 할지 나는 어리둥절했다. 우주선 선체의 각 부분은 연결 장소를 알 수 없게끔 완벽하게 조립되어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는지 전혀 믿어지지 않았고 나는 새삼 그 고도의 기술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에 만났던 원반에도 출입구 비슷한 곳이 전혀 눈에 띄지 않았었지만, 그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우리가 선내(船內)에 들어선 뒤로 조용히 닫혀진 문은 벌써 자취도 볼 수 없었다. 그저 단단한 벽 같은 것이 눈에 띌 뿐이었다. 문이 닫히고 벌때 소리 같은 웽 소리가 들리더니 꼭대기의 코일이 달아오르면서 선내가 차츰 밝아졌다-이 모두가 때를 같이하여 한꺼번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 사실만으로 나는 완전히 흥분하게 되어 어느 한 가지 일에 정신을 집중하려면 손을 꽉 쥐고 있지 않으면 안되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모든 것을 다른 사람에게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으려면 이 모든 것의 생김새를 뚜렷이 내 머릿속에 새겨 넣고 원반을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눈짐작으로는 선실의 내부 직경은 대략 5.4m이고, 지름이 60cm 가량의 원주(B柱)가 둥근 천장의 꼭대기로부터 마룻바닥 한가운데로 뻗어 내리고 있다. 이 기둥은 이 우주선의 자극(磁極)으로서 이것으로 자연의 힘을 추진력으로 이끌어 낸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지만,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해 주지 않았다.
「이 기둥의 정상(頂上)은,」
하면서 파아콘이 손으로 가리켰다.
「보통은 양극(陽極)이며, 짐작했겠지만 마룻바닥 밑으로 뻗은 이 기둥의 끝은 음극입니다. 그러나 필요할 때는 단추를 누르기만 함으로써 양극(兩極)을 역전시킬 수 있지요.」
나는 볼 수 있었다. 마루 한가운데에는 약 1.8m넓이로 밝은 둥근 렌즈가 박혀 있었고 그 중심을 꿰뚫으면서 자극이 서 있었다. 이 거대한 렌즈의 양쪽 벽면 가까이에, 작지만 안락한 벤치 두 개가 마주 놓여 있었다. 그것은 두 개 모두가 주변의 벽을 따라서 굽어 있었다. 나는 시키는 대로 그 한쪽에 가 앉았다. 그러자 파아콘이 내 곁에 와 앉아서 이제부터 일어나는 일을 설명해 주었다. 라뮤우는 반대쪽 벤치에 자리잡고 오오손은 조종반(操縱盤)으로 몸을 돌렸다. 이 조종반은 두 개의 벤치 사이의 바깥벽을 향해 설치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 우주선에 들어설 때 통과한, 지금은 보이지 않게 없어진 그 출입문의 정면에 자리잡고 있었다. 좌석에 앉으니까 조그마한 굴곡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막대기가 내려와서 내 허리춤에서 멈추었다. 이 막대기는 말랑말랑한 고무 성분의 재료로 만들어져 있었다. 어쩌면 그저 고무 성분을 입힌 것뿐인지도 모른다. 그 목적은 분명하다-앞으로 넘어지거나 균형을 잃거나 하는 것을 방지하는 간단한 안전장치인 것이다. 파아콘은 설명했다.
「이따금 완전히 착지(着地)했던 기체가 갑자기 지상에서 떠오르려고 할 때 심한 충격을 받는 일이 있습니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언제나 대비를 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는 웃으면서 말을 덧붙였다.
「당신네들 비행기의 안전벨트와 아주 같은 원리랍니다.」
기막힌 일이 지금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금성인과 처음으로 만난 뒤에 그가 가버리자, 나는 뒤에 처져 지금까지 이루 말할 수 없는 좌절감에 시달리면서, 어떻게 해서라도 그를 따라갔으면 하고 동경하고 있었다. 그 뒤로부터 나는 언젠가는 꼭 이 같은 특권이 내게 주어지리라고 간절히 바라며 꿈꾸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확실히 우주여행의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기쁨을 억누를 수 없었다. 아무리 불충분하더라도 나의 체험을 다른 사람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보고들은 것을 모조리 외어 두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속으로 거듭 그렇게 되뇌었다. 파아콘이 말을 계속했다.
「이 우주선은 2인 승으로 만들어져 있지요. 잘하면 세 사람까지는 탈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긴급할 때>는 더 많은 사람이 안심하고 올라탈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는 거의 없지요.」
그는 그 이상 더 설명하지 않았다. <긴급할 때>라는 것이 다른 정찰원반이 고장을 일으켰을 때 구조하려고 달려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들의 과학적 지식의 놀라운 성과에 대해서 스스로 목격하고 그 인상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는 만큼 도대체 어떤 실패가 일어난다는 이야기인지 거의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결국 그들도 또한 인간에 지나지 않으며 제아무리 진보된 문명을 가지고 있다 해도 반드시 과실이나 재난 때문에 괴로움을 당하는 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눈에 안 보이는 그 출입구 양쪽 90cm 넓이에 걸쳐서 장치된 그래프나 차트(도표) 비슷한 것을 눈여겨보았다. 그것은 마루에서 천장에 이르기까지 꽉 차 있었다. 도안 자체는 매력적이었으나 지구에서는 이와 같은 물건을 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 용도(用途)를 알아맞혀 보려고 했다. 거기에는 바늘도 눈금 같은 것도 없었고, 다만 순간적으로 비치는 섬광(閃光), 그때마다 변하는 색채와 강도만이 눈에 띄었다. 그 가운데는 어떤 특별한 도표 위를 가로질러 움직이는 유색(有色) 광선군(光線鮮)이 있었다. 아래위로 움직이는 것도 있고 십자형으로 움직이는 것도 있다. 또한 여러 가지 기하학 모양을 가진 것도 있었다. 그들이 나타내는 뜻과 기능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도들을 수 없었지만, 설명을 해주었다고 해도 내가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을 지는 의문스럽다. 그러나 나는 세 사람의 우주인이 모두 거기에서 일어나고 있는 각각의 변화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것에 주목했다. 내가 받은 인상으로는 이 계기류(計器類)는 대기라든가 우주의 상황 그리고 또 항로의 방향이나 물체의 접근 같은 여러 가지 것을 알려 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우리가 앉아 있는 벤치 바로 뒤에는 언뜻 보기에 단단하고 텅빈 감이 드는, 3m 가량 돼 보이는 벽면이 바싹 닿아 있었다. 한편 그 건너 출입구의 반대쪽에는 지금 적은 도표류와 약간 비슷하지만 그래도 및 가지 점에서 다른 바가 있는 별종(別種)의 도표가 있었다.
조종사의 조종반은 상상해 보지도 못한 기막힌 것이었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흡사한 것을 찾자면 아마도 오르간을 들 수 있겠다. 그러나 건반이나 음전(音栓) 대신에 이 조종반에는 몇 줄의 단추가 나란히 있고, 몇 개의 작은 램프가 바로 이 단추의 줄을 비추고 있었다. 램프 하나가 저마다 동시에 다섯 개의 단추를 비추도록 장치되어 있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여섯 줄의 단추가 있었고, 각 줄은 1.8m 가량의 길이였다. 이 조종반 앞에는 조종석이었는데, 우리가 앉아 있는 벤치와 매우 닮은 것이었다.
벤치 바로 옆, 조종사의 손이 간단히 닿을 수 있는 위치에, 중앙부 자기기둥[磁氣柱]에 곧장 연결되어 있는 특수한 장치가 놓여 있었다. 파아콘은 그 장치의 용도에 대해서 내가 말없이 생각하고 있었던 바를 이렇게 말하면서 입증해 주었다.
「그렇습니다. 바로 잠망경이지요. 지구의 잠수함에서 사용하는 것과 매우 비슷합니다.」
도표 따위의 표면이나 벽면의 도형에는 여러 가지 광선이 번쩍이면서 그 강도가 세어졌다 약해졌다 하고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면서 나는 이러한 반투명의 우주선이 하늘에서 이동하고있을 때, 여러 가지로 변화하는 색채를 발광하고 있다는 보고를 자주 접하였지만 이제서야 그 까닭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밖에도 이 같은 현상을 일으키는 요인은 또 있었다. 색채 변화의 대부분과 원반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빛나는 코로나-햇무리나 달무리 같은 광대(光帶)-는 모두가 우주선에서 강력한 에너지가 바깥 대기 쪽으로 방사되기 때문이며, 이른바 이러한 이온화(化) 현상과 비슷한 과정 때문에 우주선 주변이 항상 빛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선내에는 어두운 곳이 한 곳도 없었지만 그 빛이 어디서 오는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부드럽고 상쾌한 빛이 구석구석 퍼져나오는 느낌이었다. 이 빛에 대해서는 정확히 말할 수가 없다. 백색도 청색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그 어떤 색깔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 빛 속에 온갖 색채가 부드러운 혼합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렇지만 어쩌다가 한 가지 색, 두 가지 색이 유난히 강하게 번쩍이는 일이 있는 것도 같았다.
나는 그 비밀을 푸는 데 열중했고, 동시에 이 조그마하면서도 신기한 우주선 내부의 세부사항을 분명하게 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우주선이 벌써 이륙하고 있는 사실은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어쩌다가 갑자기 미동하는 느낌이 있었던 기억만은 있다. 그러나 우주선보다 속도가 현저하게 느린 지구의 비행기에 올라탔을 때에 느끼는 커다란 가속도라든가 기압이나 기온의 변화는 전혀 느끼지 못했다. 또한 지상에서 떠날 때에도 전혀 충격을 느끼지 못했다. 사실 이 지구 자체가 태양의 주위를 초속 30km의 속도로 회전하고있지만, 그 움직임은 아무도 느낄 수 없다. 그와 마찬가지로 어떠한 다른 움직임도 실감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원반 비행체에 탈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와 같은 움직임이 움직임이라기보다는 거의 정지라고 해도 좋으리라 느꼈을 것이다. 하긴 사실을 말하면 너무나 숱한 경이적인 일이 꼬리를 물고 내 의식세계에 엄습해 왔던 탓으로, 내가 그 하나 하나를 뚜렷이 분간해서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지상에 돌아와서 이 날 밤의 체험을 마음속으로 차례차례 회상하고 나서부터였다.
다음으로 나는 우연히 발치에 있는 커다란 렌즈에 눈을 돌렸다. 거기에는 놀랄 만한 광경이 내 시선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주선은 작은 마을의 지붕 위를 스칠 듯이 바짝 날고 있는 모양이었다. 지상에서 30m 가량 올라간 곳에서 굽어보듯 모든 것을 하나하나 내려다볼 수가 있었다. 알고 보니 실지로는 약 3.2km 가량의 고도에 도달해 있고 아직도 상승중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렌즈의 광학장치는 배율이 엄청나서, 원하기만 하면 우주선이 수십 킬로미터 밖의 상공에 있어도 지상의 인간을 한 사람 한 사람 포착하여 살필 수가 있다는 이야기였다.
「가운데의 자기기둥은 이중의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옆에 앉아 있던 화성인이 설명을 계속했다.
「추진력의 대부분을 공급해 줄 뿐더러, 강력한 망원경의 구실을 하고 있지요. 이 한쪽의 끝은 천장을 뚫고 나가 천공을 살피는 데 사용되고, 또 한쪽 끝은 마룻바닥을 뚫고 하계를 관찰하는 데 사용됩니다. 영상은 이 기둥을 지나서 마루와 천장에 설치된 두 개의 커다란 렌즈에 투영되지요.」
그것이 전기로 작용하는 것인지 그 밖의 수단을 사용하는지는 설명해 주지 않았지만, 렌즈의 배율은 원하는 대로 바꿀 수가 있다고 했다. 아마도 우리가 지구상에서 알고 있는 단순한 광학 계통으로 생각할 수 없는 장치가 되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반투명의 둥근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나의 산장에서는 밝은 밤엔 언제나 별 하늘이 손에 닿을 듯이 가깝게 보였지만, 이 천장의 렌즈로 내다본 별은 정말 우리 머리 바로 위에 박혀있는 듯이 보였다. 나는 기막힌 별 하늘의 아름다움과 눈 아래 번쩍이면서 스쳐 가는 지상의 광경을 바라보다가 마룻바닥의 렌즈를 관통하고 있는(또는 그 바로 밑을 지나고 있는) 렌즈의 케이블에 관심이 쏠렸다. 이 케이블은 가운데 기둥 부근에서 네 줄이 십자형으로 교차하고 있었다. 화성인은 나의 관심이 바뀌었음을 알고 이렇게 설명해 주었다.
「이 케이블 가운데서 세 줄은 자기기둥에서 뻗은 힘을 선체의 하부에 있는 세 개의 구체로 전달합니다. 이 구체는 때에 따라서는 이착륙(離着陸)장치로서 사용되고 있음을 당신도 알고 있을 겁니다. 이 구체의 속은 공동(空洞)입니다. 긴급 착륙을 할 때는 아래로 내려가고, 비행 중에는 위로 끌어올려져 있지만, 그 가장 중요한 용도는 자기기둥에서 보내져 오는 정전기(靜電氣)의 콘덴서로서의 구실입니다. 이 힘은 우주 어느 곳에나 골고루 퍼져 있지요. 그 자연의 집중적인 현상이 번개로 터지는 것입니다. 네 번째 케이블은 기둥에서 두 개의 잠망경 비슷한 기구로 이어지고 있으며, 그 가운데 하나는 조종석 옆에, 또 하나는 그 바로 뒤에, 보시다시피 중앙부 렌즈의 가장자리에 맞대어져 놓여 있습니다. 이 기구는 사실은 주요한 광학계통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 조종사는 그 덕택에 자리를 뜨는 일없이 진행 중에 외부에서 발생하는 모든 상황을 샅샅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장치는 스위치 하나로 넣었다 끊었다 할 수 있고 또 자유로이 조절할 수도 있지요. 이것은 두 승무원이 서로 간섭을 받는 일없이 망원경을 마음대로 쓸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기계설비는 모두 이 선실의 마루 밑과 밖으로 튀어나온 외부 테두리의 밑 부분에 수용되어 있었다. 이 점은 이 원반의 사진을 보면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나는 실지로 기계 따위를 보지는 않았지만, 그 대신 매우 작은 방에 안내되었다. 그 방은 기계실로 들어가는 입구도 되고 한편 긴급할 때의 수리공작실로도 사용되고 있다. 여기에는 초미니의 용광로와 2, 3개의 문 달린 선반이 있었다. 이 선반에는 짐작컨대 수리에 필요한 공구나, 재료가 보관되어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입구에서 이 방을 들여다보고 있자 조종사가 외쳤다.
「착륙 준비를 해주시지요. 모선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우리가 정찰원반에 올라탄 지 겨우 몇 분밖에 지나지 않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앉아 있었던 벤치 뒤의 벽은 조금 전까지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지금 보니까 둥근 구멍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는 놀라서 점점 벌어지는 그 구멍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카메라의 셔터와 비슷한 구조였다. 이윽고 직경 45cm 가량의 둥근 창이 하나 나타났다. 그때 나는 비로소 내가 찍은 원반 사진의 둥근 창이 바로 이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때까지 그런 창이 벽에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우리가 들어온 출입문처럼 이 둥근 창에도 덮개가 씌워져 있어서 닫혔을 때는 분간을 할 수 없도록 벽에 밀착돼 있던 것이었다. 사진에 나타난 광경을 생각해 내면서 나는 양쪽에 각각 네 개, 도합 여덟 개의 둥근 창이 있어야 될 것으로 판단했다.
「생각하신 대로입니다.」
오오손이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입증해 주었다.
「단추를 누르면 전부 또는 하나씩이라도 열 수가 있습니다. 물론 닫을 때도 같지요.」
조종사가 착륙이 절박하다는 것을 알렸을 때 화성인은,
「원반이 모선에 착륙하는 상태를 봐두면 재미있을 겁니다.」
하고 말했다. 이제 정말로 모선에 도착하는 것이다. 나의 감정은 흥분되어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상태였다. 침착을 되찾으려고 애쓰면서도 나의 마음속에는 모선이 어디서 기다리고 있는지, 어떤 방법으로 착선(着船)하려는 것인지 하는 따위의 의문이 솟아올랐다. 말로 표현하지 않은 이 질문에 오오손이 곧 대답해 주었다.
「이것은 작년에 우리가 사막에서 처음으로 만났을 때 당신과 일행들 앞에 나타나서 여려 분을 놀라게 했던 것과 같은 모선입니다. 이 모선은 이곳에서 쭉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현재 지상에서 약 12km 떨어져 있는 셈입니다. 보십시오. 이 같은 소형원반이 도착해서 이 수송선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잘 보아 두십시오.」
나는 황홀해서 둥근 창 밖을 내다보았다. 멈추어 선 채 아래쪽으로 정지해 있는 거대한 검은 모습을 발견했다. 가까이 감에 따라 이 거대한 모습이 시야에서 꿰어져 나갈 듯이 크게 불어나면서, 밖으로 아래쪽을 향해 포물선을 긋고 있는 거대한 모선의 측면이 나타났다. 천천히, 그야말로 천천히 우리의 작은 우주선은 접근을 계속, 마침내 이 거대한 수송선의 바로 위 상공에 이르렀다. 나의 동반자가 이 모선의 크기는 직경 45m,길이 600m에 가깝다고 가르쳐 주었지만, 나는 이제는 더 이상 놀라지 않았다. 이 거대한 시가(cigar)형의 수송선은 성층권에 꼼짝 않고 멈춘 채 떠 있었다. 이 진기한 광경은 나의 기억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제3장
금성의 모선
우리가 탄 작은 원반은 모선의 정상을 목표로 해서 미끄러지듯 내려갔지만 그것은 지구의 비행기가 항공모함 갑판에 착륙하는 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내가 보고 있자니까 고래의 하품을 연상시키는 것 같은 원형 속의 해치, 즉 입구가 나타났다. 이 모선의 도해(그림 참조)를 본 사람이면 아래쪽을 향해 좀 기울어져 있는 투박한 콧등 같은 부분이 위로 돌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해치는 원통상(圓筒狀)의 선체(船體)의 바닥 가장 말단에 자리잡고 있었고 그 바로 뒤에서부터 콧등의 사면(斜面)이 시작되는 것이다. 여기에 착륙한 소형원반은 전진을 계속해서 해치로 들어가 아래쪽으로 기울면서 이 거대한 모선 내부로 진행해 들어갔다. 이때 처음으로 나는 덜컥 주저앉는 듯한 느낌을 뱃속에서부터 느꼈다. 이것은 정찰원반이 이미 자체의 추진력을 쓰지 않고 모선의 인력에 끌려들어 갔기 때문인 듯했다. 그대로 원반은 그다지 가파르지 않은 사면을 계속 내려갔다. 정찰원반의 바깥 가장자리를 두 줄의 레일에 올려놓은 그 강하속도는 가장자리 부분의 마찰과 자력으로 조절되어 있다. 조종사 오오손은 그 조작을 완벽하계 몸에 익히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내가 한 번 몸의 균형을 잃을 뻔했을 때 균형을 되찾을 동안 그가 정찰원반을 멈추게 했기 때문이다. 그 뒤 다시 완만하고 미끄러운 활강이 계속된 끝에 우리는 마침내-나의 판단으로-모선의 중간쯤 됨 직한 곳에 도착했다.
정찰원반은 여기서 정지하고 곧 문이 열렸다. 바깥은 플랫폼이었다. 길이 4.5m, 폭이 1.8m가량 되어 보였다. 거기에 남자 한 사람이 서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는 케이블이 달린 금속제 버클(죔쇠) 같은 것을 손에 들고있었다. 키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어림잡아 160cm쯤 되어 보였다. 내가 보기에 그의 얼굴빛은 지금껏 만나 본 어느 우주인보다도 거무스름했다. 복장은 내가 처음 만났을 때 오오손이 입고 있었던 것과 빛깔이나 모양이 같은 갈색의 우주복이었다. 검정색 베레모 밑으로는 검은 머리털이 보일락말락했다. 나는 파아콘의 뒤를 따라 정찰선을 나왔다. 라뮤우가 내 뒤를 이었고 마지막으로 오오손이 나왔다. 베레모의 남자는 플렛폼에서 떠나려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웃는 낮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서로 한 마디도 건네지 않았다.
이 플랫폼에서 열 두셋 층계의 계단이 모선의 갑판으로 뻗어 내리고 있다. 나는 안내를 받아 그 계단을 내려가면서 도중에 위쪽을 올려다보았다. 우리를 여기까지 이끌어 온 정찰원반을 받치고 있는 두 줄의 레일은 아래쪽으로 구부러지면서 시계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레일의 사이는 어두운 공간 뿐으로 그 밑에 무엇이 있는지는 전혀 알 길이 없었다. 또 다른 한 쌍의 레일은 정찰원반 옆의 분기점으로부터 쭉 뻗어나가 선미(船尾)의 거대한 격납고, 즉 수용갑판 쪽으로 뻗어 있고 그 안에는 몇 대의 같은 형(型)의 정찰원반이 레일 위에 안치되어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여기는 수용 격납고랍니다. 행성 사이를 항행중에 작은 정찰원반은 이곳에 수용되어 있지요.」
계단을 내려오면서 내 곁에서 잠깐 걸음을 멈춘 파아콘이 이렇게 설명해 주었다.
「이제부터 다른 행성으로 떠날 예정이면 우리의 정찰원반도 플랫폼에서는 내리는 동안만 정지하고, 그대로 분기점을 통과해서 장소의 지정을 받은 뒤 이 격납고로 직행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구로 되돌아갈 예정이니까 정찰선은 이 플랫폼에서 충전(充電)해 두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지요.」
나는 뒤돌아 서서 플랫폼의 사나이를 쳐다보았다. 벌써 그는 정찰선의 가장자리에다 케이블이 달린 버클을 밀어 넣고 있었다. 가장자리와 레일의 양쪽을 연결하기 위해서였다. 이 충전이라는 작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이 버클은 내게는 지구의 기계공이 사용하고 있는 커다란 죔쇠처럼 보였다. 그 케이블의 한쪽 끝이 어디로 연결되어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아마도 버클과 레일을 연결하는 것은 회로를 완전히 하자는 데 그 목적이 있을 것이다. 아니면, 이것은 내 사견이지만, 정찰원반의 가장자리 밑에 보이지 않는 접촉점이 있어서 여기에 직접 연결할지도 모른다. 그라나 나는 질문으로 그들을 더 이상 지체시키고 싶지 않았다. 내 마음속에 일어난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오오손은 자발적으로 이렇게 이야기해 주는 것이었다.
「이 같은 소형 정찰원반은 모든 힘을 자체공급할 수가 없는 법이지요. 그래서 이 모선에서 비교적 짧은 거리가 아니면 날 수 없고 다시 충전을 하기 위해 돌아오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이 육중한 모선과 접촉 지점이나 관측 지점 사이의 연락선으로 사용되고 모선의 동력장치로부터 언제나 재충전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계단 밑에 내려와서 우리는 커다란 조종실로 들어갔다. 방은 장방형이지만 귀퉁이는 둥그렇게 되어 있었다. 크기는 대강 10.5m에 13.5m를 곱한 정도이고 높이는 대충 12m정도였다. 두개의 출입구 문을 빼놓으면 벽은 모두 색채를 띤 빛이 점멸하는 이른바 도형과 도표 따위로 꽉 차 있었다. 정찰선의 그것과 비교하자면 규모도 크고 갯수도 훨씬 많았다. 이 조종실 네 벽 가에는 3개의 작은 계단식 단(段)이 있어서 대부분의 장치를 거기서 감시하거나 조사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가장 상단에는 주력 망원경이, 가장 하단에는 별개의 망원경이 비치되어 있다. 이 두 개의 망원경으로부터 선내 각 부의 여러 장치에는 전자공학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선내 여러 곳에서 이 두 대의 망원경을 마음대로 가동할 수 있게 되어 있다고 한다. 또 이 방안에는 자동제어장치가 있었지만 상세히 서술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정찰원반 안에서도 이 자동제어장치의 소형을 본 적이 있다. 이 조종실에는 이 밖에도 몇 개의 기계류가 있었지만, 내가 보기에 움직이고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될 수 있으면 이 조종실에 남아서 이러한 도형이나 도표·채광·기계·기구 따위를 자세히 관찰하고 나아가서 그 조작법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질문을 하도록 허락해 주었으면 하고 생각했으나 그러한 것은 용납되지 않았다.
그 대신 우리는 곧장 이 조종실을 나와 두 번째 문을 거쳐서 옆의 휴게실로 안내를 받았다. 이 방은 이제까지 본 적이 없을 만큼 화려한, 홀이라기보다는 라운지였다. 문턱에 들어섰을 때 나는 일순간, 그 간결하면서도 웅장한 실내에 놀라 숨을 들이키고 소리를 죽였다. 기막힌 그 실내장치에 놀랐을 뿐 아니라 멋진 라운지 가득히 넘쳐흐르는 조화로운 분위기에 감동되었던 것이다. 이 예기치 못했던 체험에서 정신을 차릴 때까지 얼마쯤의 시간이 흘렸는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좀더 자세히 알려고 다시 내 주변을 휘둘러 볼 수 있는 침착함을 되찾기에 이르렀다. 천장은 내 어림으로는 약 4.5m, 실내 면적은 사방 12m 넓이였다. 부드럽고 신비한 청색 빛이 실내를 비추고 있었으나 여기서도 조명기구가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밝기는 어디나 같았다.
문턱에서 이 호화스러운 라운지 안으로 발을 들여놓는 찰나, 나는 순간적으로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젊은 두 여자가 소파에서 일어나 우리를 영접하러 나온 데 대해 정신을 빼앗겼다. 참으로 기막힌 놀라움이었다. 그 어떤 이유에서 나는 여자우주인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해 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아름다운 두 여자가 나타난 것이다. 두 사람의 출현 그 자체, 경탄할 만한 아름다움. 인사하기 위해서 가까이 다가오면서 확실히 나타내는 따뜻한 태도 등은 다른 행성으로부터 온 우주선의 장려한 실내를 배경으로 완전히 나를 사로잡았다. 둘 가운데서 몸집이 작은 여성이 내 손을 잡았다. 인사의 뜻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곧 내게서 떠나 방 한 귀퉁이로 갔다. 이번에는 키 큰, 아주 젊어 보이는 소녀가 몸을 굽혀서 내 뺨에 가볍게 입술을 맞추었다. 그때 먼저 미모의 여자가 무색의 액체가 담긴 작은 글라스를 손에 들고 돌아왔다. 나를 주려고 가져온 것이다. 두 여자의 따뜻한 환영에 깊이 감동한 나는 고마움을 말하고 글라스를 받아 들었다.
그 물은(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구의 맑은 샘에서 솟은 샘물 같은 맛이 났다. 그 물을 조금조금 마시면서 나는 이성을 되찾았고 이 아리따운 젊은 여자들의 모습을 뚜렷이 내 마음속에 새겨 두려고 노력했다. 물을 가져온 여자는 키가 157cm 가량이고 그 살결은 매우 고우며 물결처럼 굽이친 금발이 균형이 잡힌 양어깨 바로 밑까지 아름답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녀의 눈도 황금빛을 띠고 있었고 참으로 부드럽고 즐거운 표정을 띠고 있었다. 나는 그 여자가 나의 마음속을 구석구석 들여다보고 있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반투명이라고 해도 좋을 살결은 점·티 따위라고는 하나도 없고 말할 수 없이 가냘픈 느낌을 주었다. 그러면서 그녀의 몸에는 팽팽한 데가 있고 그녀의 살에서는 따스한 미광이 햇무리처럼 발산되고 있었다. 그녀의 눈과 코는 뚜렷했고 작은 귀에 그 힌 이빨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나이는 아주 젊어 보였다. 내 짐작으로 겨우 스물쯤 되었을까. 그 손 또한 가냘프기만 했고 끝이 길면서 홀쭉한 손가락이 그지없이 아름다웠다. 두 여자 모두 얼굴이나 손톱에 전혀 화장을 하지 않은 데 나는 놀랐다. 입술은 두 여자 모두 진한 자연의 붉은 빛을 띠고 있었다. 눈에 띌 만한 보석류도 몸에 걸치지 않고 있었다. 실지로 그러한 장신구는 그들의 자연미를 깎아내는 구실 밖에 못하는 것이다. 그녀들은 모두 비단 같은 감으로 된 옷을 몸에 걸치고 있었다. 옷자락이 길쭉하게 발목까지 늘어져 있었다. 그리고 허리에는 대조적인 색깔로 된 화려한 띠를 질끈 매고 있었다. 이 띠에는 보석류가 박혀 있었다고 생각된다. 작은 몸집의 블론드 여인의 옷은 맑은 담청색이었고 그 조그마한 샌들은 황금빛이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녀는 우리가 금성이라고 부르고 있는 행성의 여인이었다. 그녀에게 카르나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또 한 사람의 키 큰 여성에게 붙인 이름은 일무스. 그녀는 풍성한 갈색 머리를 카르나와 마찬가지로 양어깨 바로 밑까지 흘러 내리게 하고 있었다. 그것은 적갈색을 띤 흑색으로 아름답게 물결치고 있었다. 그 눈에서는 카르나와 마찬가지로 줄거운 표정을 엿볼 수가 있었다. 나는 그녀 역시 나의 마음을 속속들이 꿰뚫어 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였다. 실제로 이러한 것(텔레파시 능력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내가 지금까지 만났던 모든 우주인에게서 받은 공통된 인상이었다. 이 아름다운 미녀가 걸치고 있는 옷의 색깔은 차분한 짙은 녹색이었고 샌들은 적동색이었다. 일무스는 파아콘처럼 화성이라는 행성의 주민이다. 이 우주에서 온 여인들에 대해 묘사하려고 애쓰지만 그것이 얼마나 불가능한 것임을 나는 새삼 깨닫고 있다. 아마 나의 불완전한 묘사를 바탕으로 삼아 독자 여러분은 스스로의 상상력의 날개를 펴서 완전한 아름다움의 이미지를 추구해 주기 바랄 뿐이다. 왜냐하면 이 언어라는 것이 참된 실재를 드러내는 데 참으로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작은 글라스의 물을 마신 뒤에 자리에 좀 앉으라는 말에 나는 기꺼이 따랐다. 우리가 들어온 방문 바로 정면 벽에 한 장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이는 <신(神)>을 그린 것이라고 나는 확신했다. 그때까지 두 젊은 여자들의 아름다움에 도취돼 있던 나는 이 순간 완전히 그 감격을 잊고 말았다. 이 초상화에서 발산하는 강렬한 빛이 나를 휩쌌기 때문이었다. 그 그림은 나이로 쳐서 18세내지 25세 정도의 한 사람의 <신>의 머리와 가슴을 보여 주고 있었다. 얼굴은 남성과 여성의 완전한 조화가 구체화되어 있었고 눈엔 이루 다 표현할 수 없는 예지와 자비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그 아름다움에 취해 무아경에 빠진 나는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조차 몰랐다. 이 황흘감을 아무도 방해하지 않았고 그러다가 나는 스스로 정신을 차려 주위의 상황을 주목하기에 이르렀다. 이 <신>이 누구냐고 질문할 필요가 없었다. 카르나가 침묵을 깨고 이렇게 말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분은 우리들의 <영원한 생명>의 상징입니다. 이제 어느 우주선에도, 어느 가정에도 이 그림이 걸려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이 나이를 먹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것은 언제나 이 상징을 눈앞에 지켜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방 한쪽에 테이블이 있었고, 그 둘레에는 많은 의자가 놓여있었다. 이 테이블은 우주선 탑승원들이 식사하거나 회의를 갖는 데 사용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몇 사람밖에 그 모습을 나타내지 않지만 탑승원의 수가 백 명은 넘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이 추측은 확증을 얻을 수는 없지만 테이블의 용도에 대한 상상은 파아콘이 옳다고 시인해 주었다. 나는 또 이 실내의 대부분은 항행중 탑승원이 저마다 부서에 있지 않고 비번일 때 탑승원과 그 방문객의 휴식처로 사용된다고 보았다. 이 넓은 홀의 나머지 부분에는 여러 가지 형과 크기의 긴 의자, 소파 따위가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그 광경은 지구와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모두가 지구의 것보다는 좀 낮고 훨씬 안락했다. 디자인이나 모양도 월등 우아했고 모두 털이 북슬북슬하고 푹신한 직물로 싸여 있었다. 색깔은 가지각색이었지만, 풍성하고 따스하면서도 안정된 색을 보는 것은 더없이 매혹적이었다. 의자들 옆에는 유리나 수정으로 된 낮은 테이블이 놓여져 있었는데 그 한가운데는 재미있는 장식이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재떨이 같은 것은 구경할 수가 없었다. 나중에 깨달은 일이지만 나는 직감적으로 우주인들은 니코틴을 섭취하는 습관이 없음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내 담배는 주머니에 박혀 있는 채였다. 그러나 딱 한 번 정말로 버릇이 나와서 담배를 꺼냈더니 그것을 본 금성에서 온 작은 여인이 웃으면서 말했다.
「피우십시오, 피우고 싶으시면. 재떨이를 가져오겠습니다. 그러나 아시겠지요. 이런 묘한 습관에 빠져 있는 건 지구인뿐이랍니다. 」
나는 그녀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담배갑에서 한 개피도 빼지 않고 도로 주머니 속으로 밀어 넣었다. 내 눈으로 보았던 일을 계속 써나가기로 하자. 마룻바닥에는 사치스러운 카페트가 벽면까지 길게 깔려 있었다. 전혀 무늬없는 엷은 다갈색의 융단과 털이 북슬북슬한 부드러운 직물이었다. 그 위를 밟고 걷자니 마음이 춤추는 듯했다.
앉으라는 말에 나는 긴 의자에 가서 걸터 앉았다. 양쪽에는 파아큰과 라뮤우가 있었다. 정면에, 이야기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에 같은 형과 크기의 긴 의자가 있고 거기에 두 미녀가 오오손을 사이에 두고 앉았다. 나는 아직도 빈 글라스를 손에 들고 있었던지라 그때를 놓치지 않고 앞에 있는 낮은 테이블 위에 글라스를 내려놓았다.
이 글라스의 재질이 재미있었다. 수정같이 투명하고 아무런 무늬도 새겨져 있지 않았다. 지구에서 보는 유리와도 다른 느낌이었다. 플라스틱도 아니었다. 어떠한 재료로 만들어져 있는지 전혀 알 길이 없었으나, 이것이 쉽게 깨어지지 않는다는 것만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실내 비품에서 눈에 띄는 특징을 두루 살핀 다음 나는 벽면을 샅샅이 훑어보았다. 오른쪽으로 좀 열리다 만 커다랗고 솜씨가 일품인 문짝이 있었으나, 손잡이나 자물쇠는 눈에 보이지 않았다. 카르나는 이것이 창고에 들어가는 문이라고 가르쳐 주면서 이렇게 덧붙여 말했다.
「일단 우주 깊숙이 연구 여행을 나오면 이 우주선은 오랫동안 고향의 행성으로 돌아가지 않을 때가 흔히 있습니다. 그리고 여행중에 언제나 다른 행성에 내리는 것도 아니지요. 그래서 필수품이나 비품을 비축해 둘 큼직한 저장실이 필요한 것이지요. 저기 보세요. 저기 반대편 벽의 문은 저장실 문과 아주 같지요. 그러나 저기는 조리실이랍니다.」
그 문은 내가 식당이라고 생각한 방 옆에 있었다. 오른쪽 문 가까운 벽에 커다란 그림이 걸려 있었다. 나는 그 그림을 흥미 있게 검토했다. 그것은 어떤 도시의 그림이었으나 언뜻 보기에는 지구의 여느 도시와 다른 점이 거의 없었다. 다만 지구의 도시는 흔히 정연한 사각형의 짜임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보통이지만 여기서는 환상형(環狀型)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물론 건물은 아주 달랐다.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종잡을 수가 없다. 지구에도 숱한 건축양식이 있지만 그 어느 하나도 여기 건물에 가까운 것은 하나도 없었다. 여기서는 아답하고 경쾌한 미(美)가 극치에 이르고 있었다. 그 아름다움을 지향하고 있는 지구의 건축가는 많지만 아직도 완성한 사람은 없고 우리 인류가 꿈꾸고 있는 이상도시(理想都市)임은 분명하지만 지구에서는 아직 구경한 일이 없다. 물으나 마나 나는 여기 이 그림은 이 모선의 고향인 금성의 도시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나중에 들으니 역시 그러했다.
그 문 건너편에 또 한 장의 그림이 있었다. 구름과, 산, 농원(農園)을 흐르고 있는 냇물 따위를 그린 전원 풍경이다. 만일에 농가가 이 일대에 흩어져 있고 역시 환상(環狀)으로 놓여 있지 않았다면 자칫 잘못하면 지구의 풍경으로 알고 넘어갔을 것이다. 농가의 이러한 배열은 이 농촌을 조그마한 자급자족의 공동체로 만드는 데 있어서 장방형보다도 훨씬 더 효과를 올릴 수 있음이 분명했다. 거기에는 마을 사람에게 중요한 일용품을 공급하는 데 필요한 것은 모조리 갖추어져 있다. 금성에서는 일용품의 배당은 물론 모든 면에서 참된 평등이 실현되고 있었다. 따라서 다른 도시로 여행한다면 이는 오락이나 개인적 이유를 빼놓고는 있을 수가 없다.
반대편의 벽, 즉 길쭉한 테이블 건너편에 거대한 모선의 그림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 그림이 우리가 타고 있는 모선을 나타내고 있는지 의심스러웠는데, 이 의문이 내 마음에 떠오르자 바로잡아 주었다.
「아니지요. 우리의 모선은 훨씬 작은 것입니다. 이 그림의 모선은 배라기보다는 여행하는 도시라고나 할까요. 그 길이는 몇 킬로미터에 걸쳐 있습니다. 우리 배는 겨우 600m에 지나지 않거든요.」
독자 여러분은 틀림없이 이런 대규모의 우주선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일을 상기해 주기 바란다. 우리가 기계력에만 의존하지 않고 위대한 자연의 에너지를 이용할 줄 알게 되는 날, 거대한 우주선 내부에 도시를 건설하는 것쯤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런던이나 로스앤젤레스는 폭이 대략 64km에 가까운데 거의가 미발달한 기계력과 인력으로 쌓아 올려진 것이기는 하지만 그 자체는 경탄할 만한 가치가 있다. 그러나 인력의 문제만 해결할 수 있다면 우리지구인도 우주도시를 실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카르나가 설명했다.
「이 같은 우주선은 수없이 만들어져 있지요. 금성뿐만 아니라 화성이나 토성 그 밖의 행성에서도 마찬가지지요. 그렇다고 한 행성이 전용하려고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 그 목적은 전우주 공동체의 모든 시민을 위한 교육과 오락에 이바지하자는 것입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위대한 탐험가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세계에서는 여행은 일부 소수자의 특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권리입니다. 우리들의 별에서는 달마다 주민의 4분의 1이 이러한 거대한 우주선을 타고 여행을 떠나 다른 행성에서 머물기도 합니다. 지구의 여객선이 외국 항구에 정박하는 일과 같지요. 이렇게 해서 우리들은 광대무변한 우주를 배우고 당신네들의 <<성서(聖書)>>에도 적혀 있듯이, <아버지>의 집에는 <많은 성(城)>이 있음을 이 눈으로 확인하는 것입니다. 각 행성에 있는 지혜의 전당에는 여러 가지 기계장치가 있어서 우리 시민은 그것을 사용해서 다른 행성의 상태와 태양계 그리고 우주 그 자체에 대해서 연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실제적인 체험은 불가능하지요. 그 점, 우리들이나 당신네들이나 같지요. 그래서 이 그림에서 보신 바와 같은 우주선단(宇宙船團)을 건조한 것입니다. 문자 그대로 조그마한 인공행성이라고 해도 괜찮겠지요. 이 안에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석 달 이상 생활하고 즐기고 하는 데 소요되는 일체의 것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크기는 고사하고, 실물의 행성은 모양이 구형인데다 <신> 힘으로 창조되었고 그리고 중심이 되어 있는 태양의 주위를 타원 궤도로 움직이고 있지만, 우리의 이 조그마한 인공행성은 모양이 원통인데다가 우주를 자유자재로 돌아다닐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방금 들은 이야기를 곰곰이 되새기고 있는 동안에 별을 수놓은 천공의 개념이 내 마음속에서 점점 크게 전개되어 갔다. 나는 카르나가 말하는 <다른 행성>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내 마음속의 의문에 답해서 오오손이 입을 열었다.
「우리의 선단은 태양계 안의 다른 행성을 방문할 뿐만 아니라 가까운 다른 태양계의 행성에도 찾아갑니다. 하지만 우주에는 아직도 무수한 태양계가 있으며 그 가운데 또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행성이 있답니다. 우리들도 아직 가보지 못한 별이 쌓이고 쌓였지요.」
여기서 또다시 어떤 의혹이 내 마음속에서 고개를 들었다. 그렇다면 그들이 찾아간 이른바 그 <다른 행성>에서 도대체 그들은 무엇을 발견했을까 하고 나는 마음속으로 자문해 보았다. 금성인의 눈이 반짝이면서, 입가에는 씩 웃음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내 심중의 질문을 그는 알아챘던 것이다. 그는 다시 이야기를 계속했다.
「지구의 인간만이 유일한 예외랍니다. 다른 우주세계의 사람들은 모두가 매우 우호적입니다. 그들도 거대한 우주비행선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동포들의 오락과 교육을 위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의 행성을 찾아가면 언제나 대환영입니다. 그들도 또한 친구로서 우리의 행성으로 찾아옵니다. 그러나 이들 우주선이 절대로 접근하지 않는 곳은 지구뿐입니다. 지구의 사람들이 자기들의 조그마한 행성에 붙박여 있지 않고 우주에 대해서나 우주인에 대해서 보다 이해심이 있는 태도를 보여 줄 때까지 지구 가까이로 접근하는 일조차 허용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 같은 우주여행을 하는 동안은 연구에 소모되는 일정시간 이외에도 많은 여가가 있습니다. 서로 다른 행성에 도착하면 즐거운 모임이 열립니다. 간단히 얘기하면‥‥‥」
하고 그는 매우 분명히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다른 행성들의 사람들이라도 서로 낯선 사이가 아니라 모두가 친구들이지요. 따라서 어디를 가나 반드시 환영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주의 구석구석에 존재하는 행성을 광대한 생명의 바다에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직 우리들이 갈 수 없는 먼 곳에 있는 행성도 앞으로 우주선이 보다 훌륭히 개량되면 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태양계에서 멀리 떨어진 별이라면 우리도 거기까지 가는 데 2, 3년은 걸립니다. 그러나 태양계 안이라면 행성 사이의 거리는 몇 시간이나 며칠이면 충분합니다.」
지구에서의 거리의 개념을 되새기면서 나는 큰 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놀랍지 않습니까? 그렇게 먼 거리를 그처럼 단시간에 갈 수 있다니,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빨리 날 수 있지요?」
「스피드라는 것은 우리에게는 지구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뜻을 나타내 주고 있지요. 일단 우주선이 출발해서 바깥 세계인 우주공간으로 나가면 우주선의 스피드는 우주의 활동과 똑같이 됩니다. 지구의 비행기처럼 인공적인 추진력을 사용하지 않고서 우리는 우주의 흐름을 타고 여행하는 것입니다.」
우주를 정복하려는 초기단계에서는 금성인 이나 다른 행성인도 현재 우리를 억누르고 있는 그러한 난문제에 직면했었음을 그들이 거리낌없이 시인했을 때 나는 지구의 발달 가능성에 대해서 적게나마 계속 희망을 품을 수가 있었다. 우주여행을 하려면 기본원리로서 자연력인 인력(引力)을 정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그들은 거듭 강조하는 것이었다.
제4장
처음으로 대기권 밖을 보다
그때쯤이었다. 보기에 나와 동년배쯤 되는 남자 한 사람이 방 왼쪽 구석의 문으로 들어섰다. 그는 다정스럽게 웃고 있었다. 구석 쪽에는 사다리가 하나 서 있었는데 이 사다리를 오르면 아마도 선체의 갑판으로 통하는 것이 분명했다. 이 사다리는 아까부터 눈에 띄어 알고 있었으나 그쪽에 문이 있을 줄은 그 남자가 들어올 때까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가 나타남과 동시에 두 여인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조종실로 통하는 문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에 화성인 일무스가 되돌아왔다. 그런데 그녀는 그 화려한 가운을 조종사복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이 제복은 남자가 입고 있는 것과 같은 모양으로 색깔은 밝은 갈색이고 허리에 두른 벨트에는 아래위에 진한 갈색의 줄무늬가 있었다. 조종실로 가지 않겠냐는 그의 권유에 나는 좋아라 하고 따라갔다. 파아콘도 같이 따라왔다.
세 사람이 다음 갑판으로 통하는 사다리를 오르니, 모선에 도착한 뒤 맨 처음에 들어섰던 주조종실 쪽으로 오오손이 걸어 나가는 것이 보였다. 나이 지긋한 남자와 토성인 라뮤우는 라운지에 남았다. 갑판의 통로를 걸으면서 파아콘이 말했다.
「이 같은 거대한 모선은 어느 것이나 많은 인원의 조종사를 태우고 있습니다. 남자 두 사람에 여자 두 사람, 네 사람이 한 조가 된 교대 근무제이지요. 카르나와 일무스는 이 금성모선의 조종사입니다.」
이 통로는 내가 본 선내의 다른 곳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광원(光源)에서 비치는 평온한 빛으로 밝게 채워져 있었고 위로 경사가 져서 모선의 끝에 있는 조그마한 방까지 앞쪽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 방에 들어섰을 때, 그때까지 허리를 굽히고 도표 등을 보고 있던 젊은 남자가 이쪽을 쳐다보면서 고개를 꾸벅 하고 웃는 얼굴로 인사를 했다. 그러나 새삼스러운 소개는 없었다. 어쩐지 일무스와 한 짝이 된 조종사의 한 사람 같았다.
「지금이 좋은 기회이겠습니다.」
파아콘이 입을 열었다.
「이 모선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이 모선은 우리가 타고 온 그러한 정찰원반을 열 두 대 싣고 있습니다. 사실 이 모선 내부는 바깥에서 보고 생각한 만큼 넓지는 않습니다. 벽과 벽 사이가 기계장비로 빽빽하기 때문이지요.」
「특히 이 모선은」
하고 일무스가 말을 이었다.
「네 겹의 벽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모선에는 규모나 건조목적에 따라 보다 많은 벽이 있는 것도 있고 적은 것도 있습니다.」
조종실은 낯선 설비로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면서 나는 벽들 사이에 어떠한 기계 장비가 빽빽이 들어앉아 있는지 궁금해서 안절부절못했다. 그러자 파아콘이 말을 꺼냈다.
「시간이 얼마 없지만 될 수 있는 대로 자세히 이야기해 드리지요. 우리가 처음에 모선 안에 들어선 근방은 전체가 정찰원반의 격납고를 이루고 있지만, 그 안에는 커다란 수리공장이 있어서 필요한 정비는 여기서 끝내게 됩니다. 최초에 건조할 때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도 부품이 망가지거나 마멸되거나 할 때가 있어서, 우주를 여행하는 모선에는 만전의 준비가 요구되고 있습니다. 벽 사이에는 공기 조절장치가 설비되어 있어서 모선 내의 구석구석이 알맞은 온도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밖에도 짧은 시간으로는 설명을 다 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설비가 있습니다. 각 부의 여러 벽에는 안으로 통하는 문이 있어서 그곳으로부터 간단히 각 장치에 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각 모선에는 기술자가 타고 있어서 교대제로 일하고 있지요. 그들의 임무는 모든 부분을 쉼 없이 감시하고 점검하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고장이 난다 해도 큰일이 벌어지기까지 발견되지 않은 채 방치되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지요.」
이 조종실에서 나는 온갖 곳에 머리를 들이밀고 아래위로 두리번거리면서 관찰했다. 파아콘의 설명이 끝났을 때 청년이 손을 뻗어 계기의 한 단추를 눌렀다. 그러자 곧 지금까지 단단한 벽으로만 생각했던 곳에 둥근 창 같은 구멍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두 사람의 조종사가 방안의 반대쪽에 있는 조그마한 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그때 어떤 미동(微動)을 느꼈다. 모선의 선수(船首)가 고개를 든 모양이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어쩌면 그들의 행성까지 나를 데려가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희망은 허무한 것이었다. 움직임은 극히 한순간에 지나지 않았고 곧이어 모선은 정지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일무스가 내게 웃음을 던지면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 지구에서 8만km쯤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파아콘이 내게 둥근 창 가까이 오도록 손짓을 하며 물었다.
「우주공간이 실제로 어떻게 보이는가 알고 싶지 않습니까?」
둥근 창에서 밖을 내다보았을 때 조금 전의 실망은 이내 사라지고 말았다. 놀랍게도 지금 보니까 우주의 배경은 완전한 암흑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선체의 주변에는 갖가지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마치 도처에서 무수한 반딧불이 온갖 방향으로 점멸하면서 날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이 반딧불은 엄청난 수의 색광(色光)을 내뿜어서 마치 거대한 우주의 불꽃놀이와 흡사했다. 그 광경은 숨이 막힐 정도로 장엄한 것이었다. 이 장관에 경탄의 소리를 누르지 못하고 있는데, 파아콘이 이번에는 지구를 되돌아보면서 우리의 이 작은 천체가 이만한 거리를 두고서 볼 때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라고 재촉했다. 나는 똑똑히 보았다. 놀랍게도 우리의 지구가 힌빛을 내고있었다. 달빛과 매우 달았지만, 지구에서 올려다보는 밝은 밤하늘의 달빛만큼 밝지는 못했다. 희미한 유백색(乳白色) 광채가 지구를 둥글게 싸안고 있는 것이었다. 그 크기는 아침 일찍 지평선에서 떠오르는 태양에 견줄 수 있으리라. 지구상에서 보이는 것으로 짐작이 갈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우리 밑의 지구는 단지 하나의 커다란 광구(光球)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여기서 내려다보면 우리 지구에 헤아릴 수 없는 생물들이 웅성거리고 있다고 누가 생각이나 할 수 있으랴.
고도 8만km에서 조종사는 자동 조종장치를 작동시켰다. 일무스가 이야기에 끼여들어서 나에게 설명해 주었다.
「각 조종실에는 한 대씩 자동 조종장치가 있거든요. 단독으로도 작용합니다만, 몇 대씩 연결해서 작용시키는 수도 있습니다. 우주선의 진행을 통제하거나 위험물체의 접근을 경고하는 작용을 완전히 다 해줍니다.」
남자 조종사는 제자리에 남아 있었다. 일무스는 이에 대해서
「각 조종실에는 언제나 한 사람은 근무 위치에 있어야 되기 때문입니다.」
라는 설명을 잊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일무스는 조종장치를 좀더 가까이서 보고 싶은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각 조종사석 곁에는 조그마한 파이프 같은 것이 바닥에 박혀있었는데, 조종사는 거기서부터 손쉽게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높이에 서 있었다. 일무스는 설명을 계속했다.
「배에 처음 들어왔을 때 주조종실을 통과했었지요. 그때, 망원경이 있었던 것이 생각납니까? 이 파이프는 그 망원경으로 연결되어 있답니다.」
그러나 이때 망원경은 작동하고 있지 않았다. 이 망원경은 아마도 모선이 실지로 행성 사이를 항행하고 있거나, 관측이나 조정(調整)을 목적으로 잠시 정지하고 있을 때만 사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방안의 조종사석 부근 바닥 전체가 정찰원반의 마룻바닥과 똑같이 확대렌즈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이 모선에서는, 특히 이 렌즈를 들여다보자면 무릎을 꿇고 엎드리지 많으면 안 될 각도로 되어 있었다. 바깥에서 진행되고 있는 온갖 것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던 나는 거기 보이는 우주와 그 우주의 어마어마한 활동에 어안이 벙벙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아까 말한 반딧불 현상 외에도 헤아릴 수 없는 거대한 발광체가 공간을 통과하는 것이 보였다. 이 거대한 발광체는 내 사견이지만 불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빛나고 있음에 지나지 않았다. 특히 어느 물체는 세 가지의 저마다 다른 빛깔, 즉 빨강·보라·푸른빛을 내고 있는 것 갈았다. 이것은 별개의 우주선이 아닌가 하고 물어 보았다. 일무스는 웃으면서
「아닙니다.」
하고 대답했지만, 그 이상은 더 말하지 않았다. 때에 따라서 크기가 여러 가지인 검은 물체, 우주 그것보다도 검은 물체가 통과하고 있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 이러한 물체가 이 모선에 부딪칠 위험은 없는 모양이었다. 어느 때는 이 검은 물체가 부분적으로 빛을 내는 수도 있었다. 알고 보니이는 우리 지구에서 유성이라고 부르는 별똥으로 하늘을 날아가는 과정에서 대기와 마찰을 일으킬 때만 빛을 내는데, 그 빛이 우리 지구에서 보였던 것이다. 보아하니 이 물체는 모선의 방향으로 직진하고 있는데도 왜 충돌하지 않는 것인가를 물어 보았다.
「이 우주선 자체가」
하면서 파아콘이 설명에 나섰다.
「자연의 힘을-당신네 말을 쓰면 <전자기(電磁氣)>를 이용하고 있으며, 이 자연의 에너지를 쓰고도 남을 만큼 비축하고 있습니다. 이 남은 에너지는 우주선의 외벽(外壁)을 관통해서 공간의 어느 거리까지 방사됩니다. 이 에너지의 방사가 극히 짧을 때도 있으나, 때로는 몇 킬로미터에 걸쳐서 방사되는 수도 있지요. 이것이 온갖 물체와 지구에서 말하는 <운석> 따위에 대한 방패로서 작용하여, 이 끊임없는 에너지의 방사로 말미암아 이러한 모든 물체와의 충돌을 막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다시 설명을 계속해 나갔다.
「우주공간의 모든 천체는 우주공간에 대해서 음극을 형성하고 있지요. 그러니까 실지로는 전자력(電磁力)의 바다 속을 헤엄치고 있는 셈이 되지요. 따라서 음극의 방사선은 음극의 천체 모두에 대해서 반발하고, 동시에 두 물체의 접근으로 일어나는 마찰열로부터 우주선을 보호해 주고 있는 것이지요.」
나는 몇 시간이라도 이 장엄한 우주의 <광경>을 즐기고 싶었다. 그러나 그 시간은 매우 빠듯해서 곧 조종사는 자리로 돌아가고, 우리들은 처음에 승선했을 때에 모선이 정지하고 있던 1만 2000m의 위치로 돌아갔다. 우주선의 움직임으로는 하강중인지 방향전환 중인지를 짐작할 수 없었다. 선체의 움직임은 극히 안정되어 있었고, 거의 감지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다만 선풍기가 돌 때와 같은 어렴풋한 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모선 안에서는 호흡이나 균형을 위한 특별한 헬멧 또는 그 밖의 장비를 몸에 착용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마음속으로 쉴 새 없이 갖가지 일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내가 탄복한 것은 선내 어느 곳에서나 눈에 띄는 장치는 모두가 단추 하나로 조작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런데도 파괴용의 무기로 생각되는 것이라고는 어디에서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러나 모선으로부터 방사되는 방사선으로 조정되는 자연의 반발력을 우주공간에서 본 후에는 나는 이 힘이야말로 만일에 그 필요성이 생겼을 때 매우 효력이 있는 자체 방위책으로 쓰일 수 있다는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이러한 나의 생각에 대해 파아콘이 이렇게 말했다.
「그래요. 날카로운 안목입니다. 하지만 아직 그런 필요성이 생긴 일이 없습니다. 좀더 나아가서 만일 우리가 우주의 동포들과 목숨을 걸어야 할 싸움이 벌어졌을 때-가장 호전적인 지구인들과도-상대방을 죽이느니 우리는 차라리 자신이 멸망하는 편을 택합니다. 」
이 간결한 말 뒤에 숨은 뜻이 내 마음을 깊숙이 찔렀다. 지구의 우리 동포들이, 이를테면 대립되고 분열된 사람들이, 이와는 전혀 다른 반대의 사고를 하고 있는 현실을 돌이켜보면서 나는 슬퍼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재 지구의 강국들은 아직도 경쟁을 그치지 못하고 무서운 파괴무기를 쉴 새 없이 양산해 내고 있다. 그것은 반드시 지구상에서 점점 더 늘어나고 있는 몇십 억이라는 인간에게 죽음과 재앙과 병을 가져다 줄 것이다. 나는 젊은 병사들 마음속에 신념으로 불어넣어지고 있는 <적>에 대한 증오심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이 그들을 살인으로 몰아넣는 데 불가결한 구실을 하고 있는 것이다. 죽이려는 욕구는 <창조물> 가운데서의 인간의 위치를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있는 자연인의 천성은 아닌 것이다. 나는 생각해 보았다. 인간은 만물을 사랑하는 <영원한 아버지>에게 빌고 그 은혜를 입기 바라면서, 동시에 그 천성인 인간성 자체를 저버림으로써, 그들의 기원(祈願)을 스스로 모독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이 내 마음을 오르내리고 있는 사이에 일무스와 파아콘은 두 사람 모두 잠자코 있었다. 지금까지 한두 번 이런 생각을 되풀이해 온 것이 아니지만, 이때만큼 심각하게 느끼기는 처음이었다. 그리고서 이제부터는 이런 생각이 나의 가슴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얼마 후 파아콘이 보통 라디오 크기 만한 장치를 내게 보여 주었다. 스크린은 텔레비전과 완전히 닮은 것이었다. 그는 이것을 나에게 설명해 주었다.
「이것은 지구를 비롯한 다른 행성의 상공을 통과하거나 정지해 있을 때 밑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화면에 담거나 기록합니다. 거기서 주고받고 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실제 광경을 잡아서 스크린에 영상으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이 내부장치가 이 모든 것을 음파로 분해하면서 우리의 말로 옮겨 줍니다. 그러면서 지구의 녹음기와 같은 원리로 그 모든 것을 기록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그는 보다 더 명확하게 설명해 주었다. 모든 말들은 음악의 옥타브에 비슷한 파동 또는 음계로 이루어지고 있다. 온갖 멜로디가 및 개의 음정으로 이루어지고 있음과 같다. 이 법칙을 알면 여태껏 미지에 속했던 언어를 순식간에 습득할 수 있을 것이다. 미지의 파동이 나타났을 때는 영상의 형태로 바뀌어져, 그것이 미지의 말이나 파동이 뜻하는 것을 정확히 나타내 주는 것이다. 그는 테입를 보여 주었는데 여태껏 내가 지구에서 보아온 어떤 테입과도 전혀 같지 않았다. 어쩐지 직소-퍼즐(jigsaw-puzzle : 조각 그림 맞추기 게임)을 풀고 있는 느낌이었다. 아마도 내가 당혹한 표정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일무스는 재미있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그때는 이렇게 물어 왔다.
「아주 옛날에 지구에 살았던 사람들은 이 음향과 파동에 관한 우주적 법칙을 완전히 이해하여 응용하고 있었지요. 이렇게 말씀 드리면 물론 놀라시겠지만‥‥‥‥.」
나도 오래 전부터 그것이 사실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일무스가 또 말을 계속했다.
「이 지식은 현대문명에서는 완전히 상실되어 있지요. 여기저기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 가능성을 눈치채고 있는 사람은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아는 바라고는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다른 행성에서는 이 파동의 법칙이 교육체계의 기본적인 생각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법칙을 바탕으로 이용하면, 학생들은 모든 분야의 지식과 표현을 매우 재빨리 익힐 수가 있습니다.」
이때 파아콘이 입을 열었다.
「이제 라운지로 돌아가야 되겠습니다.」
돌아서면서 일무스를 앞세우고 나는 이 거대한 우주선이 12km에서 8만km로 상승할 때, 내부에서 전혀 아무런 움직임도 느끼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파아콘의 대답이었다.
「이 우주선은 정밀하게 건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지구에서 잠수함을 만들듯이 말입니다. 」
나는 또다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사람들은 지구인이나 지구의 발달 상황, 그리고 과정에 대해서 무엇이든지 알고 있구나 싶어서였다.
「지구의 잠수함은 물 속에 상당한 깊이까지 잠깁니다. 그러나 승무원들은 대부분 움직임을 느끼지 못합니다. 물론 계기에는 나타나지만. 그리고 또 승무원은 아주 편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지구의 잠수함도 그만큼 공을 들여서 설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물 속에 잠기는 배나 우주를 여행하는 배나 실지로는 그렇게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한 가지, 우리의 우주선은 자연력, 즉 인력을 이용해서 추진되지만, 당신네들 잠수함은 인공적인 에너지에 의존하고 있는 점이 다르지요.」
그가 말하는 한 가지 차이만 해도 엄청난 차이라고 생각되었으나 그 말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파아콘이 계속해서 말을 꺼냈다.
「만일에 지구인이 <우주>에 넘쳐 있는 자연력을 이용할 수 있게 되면 지구에서도 우리의 우주선처럼 해면에서 날아올라 대기권을 빠져, 우주까지 연속 항해할 수 있는 잠수함을 만들게될 것입니다.」
이때 나는 일찍이 1951년에 보고된 바 있는 두 개의 사건을 생각해냈다. 하나는 한국 서해안의 인천만(仁川灣) 수역에서, 갑자기 두개의 <미사일>이 밝은 하늘로부터 떨어져 내려와 바다 속으로 사라졌다는 사건이다. 이 미사일은 닻을 내리고 있었던 수상기모함 <가드너 너어즈 베이> 바로 옆에 떨어져서 약 30m 높이까지 물기둥을 뿜어 올렸다. 그 후 이 미사일은 다시 바다 속에서 날아올라 하늘 높이 솟더니, 잠깐 사이에 시계에서 사라져 버렸다는 보고서의 내용이다. 또 하나는 스코틀랜드 해변에서 일어난 일로 거의 같은 사건이었다. 파아콘은 내 생각을 알아챈 듯,
「그러니까 당신이 찍은 이런 형의 모선 사진에, <잠수함형>이라고 이름 붙인 것은 잘하신 일입니다.」
라고 말했다. 그때 우리들은 라뮤우와 나이 지긋한 남자를 남겨 놓은 채 떠났던 그 커다란 라운지로 돌아왔다. 두 사람은 아직도 앉아서 그들의 언어로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우리가 가까이 가자 두 사람은 일어서서 작은 테이블 쪽으로 걸어갔다. 거기에는 의자가 많이 놓여 있었다. 두 사람은 우리도 그들과 합류하도록 손짓을 했다. 그 의자는 식당용이나 사무용으로 쓰일 그런 물건이었으나, 그보다 더 안락했다. 우리가 자리에 앉을 무렵, 카르나와 오오손도 나타나서 한자리에 끼었다. 테이블 위에는 맑은 액체가 담긴 글라스가 놓여 있었다. 마셔 보니까 시원했다. 아주 묘하게 달면서, 뭐라고 말했으면 좋을지, 딱 집어 말할 수 없는 그런 맛이었다. 물보다 좀 진한 느낌으로 마신다기보다 먹는다고 하기에 알맞은 것이었다. 이 주스를 짜낸 과일의 이름을 들었으나, 이 맛에 견줄 만한 지구의 과일은 생각나지 않았다.
지구를 떠나와서 지금까지 지낸 시간은 전부 한 시간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짧은 시간 동안에 나의 온 생명력과 이해럭은 <우주>라는 관념을 향해서 크게 전환한 것이다. 그 성과는 내가 지구에서 산 61년 동안에 얻은 것보다도 훨씬 컸다. 우리가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앉았을 때, 모든 사람들의 눈은 입을 열려고 하는 나이 많은 우주인에게로 집중되어 있었다. 모든 행성 가운데서 그가 어떠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지는 훨씬 나중에 가서 안 일이지만, 나도 웅대한 진화를 이룩한 존재 앞에 앉아 있음을 짐작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자리를 같이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태도도 모두 나와 마찬가지였으며, 그들도 또한 이 사람 앞에서 매우 겸허한 마음이 되어 있음을 나타내 주고 있었다. 듣자니 이 노인은 지금의 육체를 지닌 채, 거의 천 년 가까운 세월을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때 그는 약 한 시간 가량 우리에게 이야기를 해주었지만, 내게는 1분으로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위대한 예지를 지닌 이 성자 앞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한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한 마디도 빠뜨리지 않으려고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제5장
우주인 성자와의 회견
「친구여.」
위대한 성자는 이렇게 입을 열었다.
「여기에 와서, 작은 원반 비행체와 이 커다란 모선 속이 어떻게 되어 이는지 두루 보았을 것이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지구에 돌아가서 그대 동포들에게 알려 줄 지식을 충분히 얻었을 것이다. 이 대기권 밖이 얼마나 유동하는 입자로 채워져 있는지도 알았을 것이다. 형태를 지닌 것은 모두 이 무형의 궁극물질에서 존재로 이르게 마련이다. 거기에는 처음도 끝도 있을 수 없다. 광대한 우주 안에는 지구인이 행성이라고 부르는 천체가 무수히 많다. 만물이 그런 것처럼 모두가 그 크기도 생김새도 다르지만, 우리들의 행성은 지구와 매우 비슷하다. 뿐만 아니라 그 대부분의 행성에는 인간이 살고, 그대들이나 우리와 같은 인간에 의해서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이다. 우리와 같은 생활방식을 가진 인류도 있고, 성장과정에서 아직도 그러한 단계에 이르지 못한 별도 있다. 당신이 알아야 할 것은, 그들 각 세계에 이르기까지 만물이 체험하는 긴 생장기간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각 행성은 가운데 있는 태양의 주위를 다른 행성과 정확한 기간을 유지하면서 동등하게 운행하며, 하나의 통일체를 형성하고 있다. 그대들 같으면 그것을 <태양계>라고 부르리라. 어느 경우에라도 우리가 우주여행을 통해서 얻은 지식으로는 하나의 <태양계>는 12개의 행성을 갖고 있다. 또한, 12개의 이러한 태양계가 태양에 해당하는 중핵(中核)의 주변에 결합되어 있고, 이것이 지구의 과학자들이 말하는 <섬우주>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섬우주가 다시 12개 모여서, 많은 성(城)으로 이루어진 <아버지>의 집안으로 모여서, 보다 더 광대한 통일체를 형성한다. 이러한 과정이 무한히 되풀이되어서 이 우주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우리 행성과, 우리들의 태양계 안의 다른 행성에서는 그대들이 이른바 <인간>이라고 부르는 생물이 성장하고, 각양각색의 발전단계를 통해서 지구인이 감히 생각도 못할 만큼 지적(知的)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진전하고 있다. 이 발전은 다름아니라, 그대들이 <자연법칙>이라고 부르는 것에 따름으로써 성장해 왔다. 알다시피 우리들은 그대들이 방안을 왔다갔다 하는 것과 같이 간단하게 우주를 여행하고 있다. 우주를 마음대로 드나든다는 것은 행성이나 인간뿐만 아니라 온갖 생동체(生動體) 안에 잠재하는 여러 법칙을 몸에 익힌 사람에게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주의 이와 같은 두 천체간의 거리, 또는 각 세계간의 거리는 지구에서 생각하고 있는 그러한 거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찍이 지구의 대륙간의 거리는 대단한 것으로 생각되었고 서로 왕래하는 데 엄청난 시간이 소요되는 것으로 생각되어 왔다. 그러나 지금은 비행기가 이 거리를 완전히 단축해서, 전에 소요되었던 시간의 몇 분의 일이면 충분하다. 그러나 거리에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대들이 지식을 넓혀 무한한 우주에서 작용하고 있는 법칙을 배우게 되면 앞으로 똑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그대들이 아직 생각조차 못한 다른 일면이 있다. 그것은 인간의 신체는 어느 행성에서나 적응해서 편안하게 지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 행성의 크기나 나이에 따라 대기상태에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나 그대들이 지구의 해면과 수천 미터의 산악에서 체험하는 그 정도의 차이 밖에는 안 된다. 남보다 이런 변화에 예민하게 영향을 받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그럭저럭 익숙해지고 마는 법이다.」
세상 사람들은 우주여행에 무거운 헬멧과 부속 파이프를, 그밖에 여러 가지 장비가 필요한 걸로 알고 있고, <만화>에서 전문가의 진지한 이론서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나 그런 그림을 볼 수가 있다. 이 점을 생각할 때 나는, <우주> 안에서 지구가 가장 뒤떨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하였다. 내 생각을 알아차렸는지, 이 위대한 성자는 거침없이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그런 것은 아니다. 지구는 태양계에서 가장 낮은 발달상태에 있지만 다른 태양계의 행성에는 사회적으로나 과학적으로나 지구의 수준에까지 이르지 못한 주민이 사는 행성이 있고 또한 과학 분야에서 두드러지게 진보를 이루어 우주여행 등을 할 수 있으면서도 개인적·사회적으로는 낮은 단계에 머물러 있는 행성도 있다. 태양계에서 지구를 빼놓은 모든 행성의 주민은 우주를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다. 주민들이 가까운 곳 밖에 가지 못하는 별도 있고, 태양계를 넘어서서 다은 <태양계>에까지 원거리 여행이 가능한 별도 있다.
생명과 우주에 대한 그대들의 이해는 매우 빈약하다. 그 결과 아무래도 다른 세계나 <우주>의 구성에 대해서 잘못된 생각을 갖기 쉬운 것이다. 게다가 그대들 자신에 대해서도 아주 무지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지구상에서도 좀더 진실을 알고자 진지하게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이 차츰 늘어나고 있음은 사실이다. 그대를 여기까지 데려온 까닭도 그들에 대한 하나의 도움으로서 우리의 지식을 받아들일 마음이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그것을 나누어주고자 생각했기 때문이다.
먼저 그대들이 절실히 깨달아야 할 일은, 다른 행성들의 주민들도 근본적으로는 지구인들과 전혀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이다. 다른 세계에서도 삶의 목적은 기본적으로 그대들과 같다. 모든 인류는 천성(天性)으로서―비록 그 천성이 아무리 깊게 파묻혀 있다 할지라도― 더 높은 곳으로 승화하려는 욕구가 있다. 지구의 학교제도는 어떤 의미에서 이 생명진화의 과정을 모방하고 있는 것이다. 지구의 학교에서는 한 단계 한 단계 진급해서 더욱더 높은 완전한 지식을 몸에 익혀 나간다. 똑같은 식으로, 인간도 행성에서 행성으로, 태양계에서 태양계로 나아가, 우주의 성장과 활동에 이바지하기 위해 보다 깊은 이해와 보다 높은 발전을 추구해 나가는 것이다.」
이 교훈으로 성자는 지구의 개개인들이 그럴 생각만 가지면 지구보다 더 높은 차원의 행성으로 발전할 수 있음을 말해 주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우리도 언젠가는 이 우주인들처럼 우주를 지배하는 여러 법칙을 배워서 그들이 하는 것처럼 다른 세계를 방문하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를 자문해 보았다. 나의 마음속에서 고개를 든 의문에 대해서는 성자는 별로 대답을 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계속 말을 계속했다.
「그대들 지구인은 <시간>이라는 것에 너무 묶여 있다. 그러나 그대들의 시간으로 생각을 해도 우주여행이 가능할 즈음에는, 얼마나 빨리 다른 행성에 도달할 수 있는지에 대해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이 모험에 관해서 지구인은 새로운 말을 만들 필요를 느끼게 될 것이다. 그대들은 우리의 우주선―지구인은 비행접시라고 부르고 있지만―이 난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 난다라고 하는 말은 지구의 비행기의 작동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구인이 말하고 있는 것 같이 <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어느 기계적 조작으로 인력을 무(無)로 만든다. 그것을 그대들은 <무중력 상태>라 부르는데, 우리는 이렇게 함으로써 인력의 간섭이나 저항에서 완전히 해방된다. 우리의 우주선이 방향을 급각도로 바꾸거나, 지구의 비행사나 과학자가 신비롭게 생각할 정도의 속도로 움직일 수 있음은 이 때문인 것이다. 이 인력을 지배하는 일이야말로 어떠한 별에 안전히 접근하거나 떨어져 나오는 데 필수적인 지식으로 여러 가지를 그대들에게 가르쳐 줄 수가 있다. 유익한 이 지식을 우리는 기꺼이 그대들에게 가르쳐 주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대들은 우리의 다른 행성들처럼 서로 평화와 우호와 모든 인류의 복지를 위해서 산다는 것을 배우지 않았다. 만일에 우리가 그대나 다른 지구인에게 이 힘(추진력)의 이용법을 가르쳐 준다면 아마 지구인들 중에는 곧 우주여행선을 건조해서 거기에 무기를 적재하고, 다른 우주세계를 정복하여 자기 것을 만들겠다고 하는 자도 있을 것이다. 현재 지구에는 군사기지로 사용할 목적으로 달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이의 획득을 노리고 있는 집단이 몇몇 있음을 알고 있으리라. 많은 지구의 과학자들은 그다지 멀지 않은 미래에 행성 사이를 항행하는 우리의 우주선 같은 것을 건조하는 데 성공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그것은 물론 다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지구인이 현재의 지구상에 팽배한 이기적인 개인생활보다, 차라리 모든 것을 포용하고 있는 우주적인 대생명(大生命)을 안고서 사는 것을 배울 때까지는 결코 우주인의 짝이 될 수 없다. 지구인이 대규모로 온다든가 체재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그대들은 더욱더 대기권 밖에 대해서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 당신들이 공간을 움직이는 것은 우주 자체에 타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언제나 쓰고 있는 비유를 생각해 냈다. 우주를 항상 움직이고 있는 광대한 바다로 비유하는 것이다. 지구의 순양선(巡洋船)들은 대해의 물결을 타고 움직이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
성자가 말했다.
「정말로 그런 것이다. 지구의 과학자가 이 원리를 연구하면 차츰 우주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할 것이다. 자연 자체는 열린 마음으로 찾는 자에게는 누구에게나 그 비밀을 털어놓는 법이다. 이미 들었으리라고 생각하는데, 우리는 배우기 위해서 우주여행을 한다. 우리의 우주선에는 여러 가지 기계장치가 있지만, 그대가 본 것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아직도 보지 못한 것이 수두룩하다. 지구에서는 우리의 우주선을 모두 <원반>이라는 말로 일괄하고 있지만 목적에 따라 크기나 종류가 여러 가지 있다. 가장 큰 우주선은 절대로 지구의 대기권 안에 들어오지 않는다. 실지로 그들은 지구의 바깥 수백만 킬로미터 안에 결코 접근한 일이 없다. 이 거대한 우주선단을 타고 여행하고 있는 수천 명의 인명을 위태롭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구인이 성장해서 보다 더 우주를 이해하지 못하는 동안에 만일 지구에 불시착하지 않으면 안 될 사태가 벌어진다면, 우리는 곧 파멸의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친구여, 지금 우리가 지구에 자주 찾아오는 까닭은 주로 현대 지구인을 위협하고 있는 커다란 위협에 대해서 경고를 주기 위해서인 것이다. 우리는 그대들의 우주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도 정통하다. 그렇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그대들을 계발(啓發)하는 것을 우리의 의무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그대나 다른 사람을 통해서 가르쳐 주려는 지식을 지구인은 받아들일 수도 있고, 귀머거리가 되어 자멸의 길을 걸어갈 수도 있다. 그 선택은 지구인이 할 일이지, 우리에게 결정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형제와 지구에서 처음 만났을 때, 그는 그대에게 지구에서의 핵폭발이 우주인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고 말한 일이 있다. 그것은 무엇 때문인가? 설령 이 폭발실험에서 발생하는 힘과 방사능이 지구 밖의 영역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해도, 이 방사능이 지구인의 생명을 위태롭게 할 것은 분명하다. 핵분열이 일어나면 끝내는 죽음의 재가 대기 속에 충만하게 될 것이다. 이 사실을 지구의 과학자도 군사 관계자도 <핵폭발> 때문이라는 것을 당연히 인정하고 있다. 이 폭발에서 발생하는 방사능이 현재는 지구에서 그렇게 멀리까지 미치지는 않고 있다. 그것은 공기보다는 가벼워도 공간 자체보다는 무겁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만일에 지구의 인류가 전면전쟁으로 돌입해서 서로 핵폭발을 계속하게 되면 지구의 인간은 거의 멸종하게 된다. 육지는 불모의 땅으로 변하고, 바다는 오염되어 앞으로 오랜 세월 생물의 생존이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우리 은하계의 균형을 깨뜨릴 만큼 지구라는 천체 그 자체가 파괴될 가능성도 있을 수 있다. 이는 직접적으로 지구만의 문제라고 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우주를 여행하고 있는 우리도, 장차 오랜 기간에 걸쳐 어렵고 위태로운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거대한 폭발이 계속되면 거기서 발생하는 에너지는 지구의 대기권을 뚫고 우주에까지 침투하게 되기 때문이다.」
만약 실제로 전쟁이 발생할 경우, 그들은 어느 정도로 지구인을 저지하는 것을 정당하다고 느끼고 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성자는 내 마음속에 생긴 이 질문에 이렇게 대답해 주었다. 「
알다시피 지구의 형제들보다 훨씬 강력한 에너지를 이용하고 있으며 이 강력한 힘을 사용하여 지구인의 힘 정도는 무력하게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을 상기해 주기 바란다. 우리는 제아무리 자위수단이라 하더라도 우주의 형제를 서로 죽이는 짓은 하지 않는다. 이러한 전쟁을 막으려면 그들에게 지구인이 어떠한 일을 벌이려고 하는지를 알려 줄 필요가 있다. 우리는 현재 그렇게 노력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다. 인간은 무지한 까닭에 전쟁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성자의 얼굴은 빛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두 눈은 내부에 감춰져 있는 어떤 아름다운 광경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성자는 부드러운 말씨로 계속했다.
「살아 있는 동안 인간은 이른바 유토피아, 즉 완전한 세계를 꿈꾸지 않는 자가 없다. 인간이 상상한 것으로 존재치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 반드시 그 어느 실재성을 가지고 있는 법이다. 그렇다면 실현 불가능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지구상에서도 실현은 가능한 것이다. 우리 은하계의 다른 행성에 사는 인간은 이미 그것을 실현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지구에는 그 완전한 세계는 반드시 지루하기 짝이 없는 것이리라>고 외치는 얼간이가 있다. 친구여, 생각해 보라.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모든 것에 정도의 차이는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완전에도 정도의 차이는 있는 것이다. 우리의 세계에서는 모두가 행복하다. 또한 삶에 대해 지루함을 느끼는 자는 한 사람도 없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던 산의 정상에 도달하면 보다 더 높은 산이 저편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이렇게 해서 언제나 완전을 향해서 전진하는 것이다. 다음 산의 높이를 재자면 그에 앞서 사이에 가로놓인 골짜기를 건너지 않으면 안 된다. 우주의 법칙에 대한 이해력은 향상되기도 하고 정체되기도 한다. 현재의 우리도 그렇지만 반드시 지구에서도 그렇게 될 것이다. 지식에 의해서 향상되면서, 이 같은 원리에 의해서 지구인은 동포에게 폭력으로 대항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같은 확신이 있으며, 그 때문에 인간은 설령 시행착오로 그렇다 하더라도,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고 자신의 운명을 형성해 나갈 권리가 신(神)에게서 주어져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이 사실은 집단이나 국가나 민족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향상과는 동떨어진 내리막길도 상당히 있지만, 마찬가지로 오르막길도 수없이 많이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은 전자를 택하고 다른 사람은 후자를 택할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형체인 두 사람을 따로따로 갈라놓는다는 뜻은 아니다. 정말로 인간은 마음만 먹으면 서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이 광대무변한 창조 세계에서는 유일한 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지구상에서 몇 번이나 우리는 <행복에의 길>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이는 좋은 말이다. 향상이야말로 행복이며 만물은 처음부터 오르막길을 따라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행복하기 때문에 인간은 자신들과는 서로 형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지구에 악한 것, 악한 인간이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우주법칙에 과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이 <유일한 최고 존재>의 우주적 생명력에 안겨 있으면서 아직도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이미 들어서 알겠지만, 우리의 세계에서는 이 <창조주>의 법칙을 실행하고 있다. 그러나 지구에서는 아직 말로만 지껄이는 단계에 있을 뿐이다. 그대가 지금 알고 있는 교훈만이라도 실행한다면 지구인들은 서로 죽이기를 곧 그만두게 될 것이다. 저들의 동포·집단·국가의 테두리 안에서 저들이 태어난 지역, 이른바 <고향>의 테두리 안에서, 선과 행복의 성취를 삶의 보람으로 알고 살아갈 것이다.
앞으로 지구 전체에 급속한 변화가 일어나서 지구인은 놀라게 될 것이다. 현재 그대들은 온 세계에 방송매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만인에게 의혹과 비난이 아니라 사랑과 관용을 가르치는 성명을 내보내면, 그것을 받아들일 정신적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은 어다에서나 나타날 것이다. 지구인의 대부분은 투쟁에 지치고, 그 여파로 생긴 참상에 지겹도록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는 바로는, 그들은 이 공포로부터 구해 줄 삶을 갈망하고 있고, 또한 그 지식에 굶주리고 있다. 이것은 여태까지 없었던 일이다. 우리는 그들의 마음이 공포와 혼란으로 가득 차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의 결과는 제 3차 대전의 씨를 뿌리고 키우는 구실 밖에 하지 못했음을 지구인은 이미 보고 깨닫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구 도처에 퍼져 있는 사랑과 관용을 받아들일 마음이나 정신적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의 협력만 있으면 아직도 늦지 않았다고 하겠다. 친구여, 때는 급박하다. <무한한 아버지>의 축복을 받아, 그대의 사명을 다하는 데 매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대와 마찬가지로 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다른 사람들(원반과 접촉했던 사람들)의 소리에 합세해, 그대의 목소리를 더욱 드높혀 주기를 바라는 바이다.」
제6장
모선에서의 문답
잠시 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 누구도 꼼짝달싹하지 않았다. 이윽고 성자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모두 이끌리듯이 따라 일어섰다. 성자는 의자 등받이에 두 손을 얹은 채, 한동안 그 자리에 서서 나의 눈을 깊숙이 들여다보았다. 그의 시선에는 그윽한 친밀감과 자비가 넘치고 있었다. 나는 결코 이 경험을 잊지 못할 것이다. 마치 축복을 받은 기분이었다. 동시에 나는 온몸에서 새로운 힘이 솟아오름을 느꼈다. 모두에게 작별의 손짓을 하고 나서 노성자 (老聖者)는 등을 돌려 방을 나갔다. 그 뒤에도 잠시 동안 침묵이 계속되었고 아무도 입을 열려 하지 않았다. 나 또한 할 말을 잊고 서 있었다. 침묵을 깨뜨리며 조용히 말을 꺼낸 사람은 카르나였다.
「이 위대한 성자의 말씀을 직접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커다란 혜택입니다.」
토성인 라뮤우는 일부러 (내 생각에) 긴장을 풀려는 듯 이렇게 말했다.
「당신을 지구로 돌려보내기 전에 좀 시간적 여유가 있습니다. 무슨 물어 볼 말씀이라도 있으면 서슴지 말고 하세요. 지금 성자께서 하신 이야기처럼 심각한 문제가 아니더라도 좋습니다.」
그는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당신에게 흥미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라도 좋습니다. 우리에게도 무의미한 것은 아니거든요.」
모두 다시 자리에 앉았다. 나는 고마운 마음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라뮤우는 지금 마음속의 텔레파시가 아닌 입으로 질문을 해도 좋다는 뜻인 모양이었다. 보통의 대화를 하자는 뜻이리라. 나는 마음속에서 가장 중대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질문했다.
「핵폭발 실험이 있은 후로, 각처에서 일어난 지구 대기권의 급작스러운 상황 변화는 저 에너지의 발생과 어떤 관계가 있었던가요?」
「분명히 있었지요. 」
라뮤우가 대답했다.
「우리는 어림짐작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결과는 우리의 측정장치가 그 결과를 기록하고 있답니다. <우리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차분히 말했다.
「잘 이해가 안 가는데 좀더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없을까요? 가령 지구에서 일어난 전쟁이 다른 행성에 살고 있는 몇 백만 사람들의 우주여행을 위험에 빠뜨린다고 해도, 어째서 당신네들은 다수를 위해서 소수를 살상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이 물음에는 오오손이 대답했다.
「설명해 드리지요. 우리는 모두 태어나면서부터 쪽, 언제나 전체를 보도록 교육을 받아 왔습니다. 그러니까 우주법칙에 반항하는 일 같은 것은 도대체 생각할 수 없지요. 이 법칙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처음부터 존재하는 것, 그리고 영원히 존속하는 것이지요. 어느 개인, 어느 집단, 어느 행성의 지적 생명체라도 모두 이 법칙에 따라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되며, 서로간의 간섭은 용납되지 않습니다. 물론, 충고나 지도는 가능합니다. 그러나 파멸을 가져오는 따위의 간섭은 결코 용납되지 않지요.」
그는 얼굴이 밝지 않았다. 내가 이 원리를 분명히 이해했는지 안 했는지, 자신이 없는 모양이었다. 이때 화성인인 파아콘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당신은 상념(想念)의 힘이라는 것을 알고 있겠지요. 우리는 육체로 지구를 방문하는 일 말고도, 지구인이 현재 파멸의 길로 치달리고 있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되기를 신념을 가지고 모두 굳게 염원하고 있답니다.」
「알겠습니다.」
내 마음속에서 문제가 명확해짐에 따라 나는 차분하게 이야기를 했다.
「이 염원의 힘이 항상 지구의 형제들에게 보내져서, 그것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라뮤우가 말했다.
「이런 일도 알고 있지요.」
일무스가 말했다.
「지구에서는 당신이나 다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하늘에 나타난 우리의 우주선이 대기권 밖에서 찾아왔다는 사실, 그리고 다른 행성에서 온 지적 생명체가 그것을 만들고 조종하고 있다는 사실들을 공군 당국이나 정부에서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구의 몇몇 정부 고관이 이미 우리와 접촉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는 착한 사람도 있어서 절대로 전쟁을 원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지구에서는 그런 선량한 사람도 오랜 세월을 통해서 지구상에서 인간들 자신이 키워 온 공포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어요.」
카르나가 조용히 말했다.
「지구 도처에서 날고 있는 비행사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겠지요. 우리의 우주선을 몇 번이고 목격한 비행사는 많지만 모두가 함구령을 받거나 협박을 당하고 있기 때문에 그 사실을 입 밖에 내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지구의 과학자도 마찬가지입니다. 」
파아콘이 덧붙여 말했다. 나는 또다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지구와 지구인에 대해서 미주알고주알 다 알고 있는 눈치였다.
「그렇다면, 」
내가 말했다.
「해결책은 길거리의 보통 사람들의 힘에 크게 의존해서, 그 힘이 온 세계 사람들에게까지 확산되어 가는 것밖에 없겠군요.」
「그들이야말로 당신에게 힘이 될 것입니다.」
파아콘이 즉각 긍정해 주었다.
「그러니까 세계 각처에서 많은 사람들이 전쟁 반대를 외치면 지구상의 각국 지도자들도 기꺼이 귀를 기울이게 될 것입니다.」
나는 이 대화로 여러 가지 일을 이해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가슴은 희망으로 부풀어올랐다. 그러나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물라 나는 화제를 바꾸어 이렇게 말했다.
「조종실에서 본 기계장치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없을까요? 소리를 기록해서 도형으로 번역한 다음 스크린에 비추는 것 말입니다.」
「물론 해 드리죠.」
오오손이 응해 주었다.
「그 가장 중요한 용도는 이 기계로 진짜 손쉽게 언어를 습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지구에서 살면서 일하고 있는 우주인은 보다 유창하게 지구의 말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지구인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우리에게도 어학의 천재라고 할 사람이 있어서, 그러한 사람이면 직접 지구인과 접촉하지 않아도 유창하게 지구의 말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여기서 그는 웃으면서, 내가 처음 그를 만났을 때 있었던 팬터마임(무언극) 같은 대화에 대해서 언급했다.
「그때는 당신이 텔레파시를 발신하거나 수신할 수 있는지를 테스트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었습니다. 그 시험 결과, 당신이 현재 여기에 와 있지요.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지구에는 개인적 체험이라는 옹색한 테두리에서 벗어난 것이면 무엇이든지 의심하려는 사람들이 어디에 가든지 있지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보낸 그 메시지는 일부러 우주 문자로 쳤던 것입니다. 이러한 문자를 이해하는 힘은 벌써 먼 옛날에 멸망한 고대문명과 더불어 사라지고 없지요. 그러나 현재에도 매우 소수에 지나지 않지만 이 문자를 번역할 수 있는 소수의 사람이 지구에 존재하고 있답니다. 이런 번역을 보여 주어도 믿지 않으려고 마음에 작정을 한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별 뜻이 없지만요.」
카르나가 밝은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다행히, 적어도 텔레파시가 있다는 사실만은 지구의 과학자들도 인정하게끔 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오오손이 또 끼여들었다.
「우리는 당신과 접촉하기 전 몇 해 동안 당신을 관찰하고, 당신이 텔레파시를 효과적으로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확인한 것입니다. 이것은 최종적으로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 입증되었지요.」
나는 물었다.
「그밖에도 여러 가지로 나를 테스트했습니까?」
「물론이지요. 당신은 및 해 동안 우리의 우주선을 사진에 찍어 왔으니까, 그만큼 당신의 상념, 즉 염원이 우리에게 전해진 것입니다. 당연하지요. 우리는 당신의 흥미가 아주 진지한 것임을 느꼈거든요. 단, 과연 그 흥미를 행동으로 옮기느냐, 옮긴다면 어떻게 하느냐, 앞으로 반드시 들이닥칠 비웃음과 비판에 당신은 얼마나 견디어 낼 수 있을 것인지, 우리와 만난 일을 자기 과시나 장사에 써먹으려는 유혹에 빠지지는 않을지, 이런 점들을 잘 밝힐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당신은 하늘을 나는 원반의 색광(色光)에 의한 모든 테스트에 합격한 것입니다.」
일무스가 다정하게 말했다.
「어떠한 비웃음이나 불신에도-당신이 제시한 사진이 위조라고 떠들썩했을 때도- 당신은 자신이 진실이라고 생각한 것을 굳게 믿고 있었지요. 우리들은 다 보고 있었답니다.」
그 소리를 들으니 나는 마음이 흐뭇해졌다. 이러한 친구들이 있다면, 이제는 조금도 주저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 가지만 더. 우리는 당신의 신중성과 판단력에 대해서 알아두고 싶은 일이 있었습니다.」
라고 라뮤우가 말했다.
「가령, 오늘밤에 성자께서 당신에게 여러 가지 말씀을 하셨는데, 그 가운데에는 성자가 말씀하신 대로 지구인에게는 아직 알려서는 안 될 이야기가 몇 가지 있습니다. 지구와 같은 세계에서는 세상을 놀라게 할 일을 발표해서 스스로 중요한 인물이 되고자 하는 유혹이 그 누구의 마음에도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지금 곧 공표해도 괜찮을 일이라도 그 전체를 인간의 지혜만을 가지고 만인에게 호소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당신의 건전한 판단력을 작용시킬 필요가 여기에 있습니다. 당신은 무엇보다도 자신이 배운 우주법칙의 전부를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는 것으로 인생의 태반을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러는 동안에 당신은 그들이 흡수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이상의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쓸데없는 것일뿐더러, 게다가 이따금 위험을 가져 올 수도 있음을 배웠을 것입니다. 우리는 당신이 이 원리를 우리에게서 받은 정보에도 적용할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텔레파시 말씀인데, 」
나는 지금껏 마음속에 간직해 두었던 질문을 하였다.
「나는 텔레파시를 응용할 수는 있지만 그 작용을 정말로 이해하고 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좀더 이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
그들은 얼굴을 마주 보면서 웃었다. 여기 앉아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나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지만, 서로가 그 기회를 양보하는 예의를 즐기고 있는 모양이었다. 사실이지,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모두 상기해 보면 지구에서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 모여 앉아 있을 때의 광경과 얼마나 다른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구에서는 이야기 가운데 뛰어들어, 관계도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고(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좀 기다리면 되는 것을), 남의 말을 아주 못 하게 방해하는 일이 흔하지만, 여기 있는 이 남녀는 언제나 서로 방해됨이 없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고 있었다. 누구 한 사람 자신의 발언권을 위해서 객담이라는 뚜렷한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없었다. 모든 사람의 동의를 얻은 듯이 오오손이 대답에 나섰다.
「지구에는 라디오라는 것이 있지요. <햄>이라고 부르는 아마추어 무선사도 수두룩하고요. 그들은 저마다 발신 허가를 받은 채널을 사용함으로써, 당신들이 에텔파라고 부르고 있는 채널에 의해 일정한 장소에 있는 일정한 자가 멀리 다른 기계 앞에 앉아 있는 자에게 통신을 보낼 수가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서로의 목소리를 같은 방안에 있는 사람처럼 뚜렷이 청취할 수 있지요. 옛날에는 이러한 통신이 가능하다고 말하면, 펄쩍 뛰면서 미친놈 소리를 들었던 것인데, 그때 비웃었던 사람들과 똑같은 성격의 인간들이 지금에 와서는 우리의 우주선이 다른 행성에서 온 것이라 하면 펄쩍 뛰면서 비웃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도의 지성밖에 안 가진 자는, 상품으로서 카운터에 늘어놓을 수 있을 만큼 분명한 물건이 아니면 아무 것도 믿으려고 들지 않지요.
상념, 즉 염원이라는 것은 라디오와 똑같아서 어떤 일정한 파장을 타고 수신되거나 전달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어떠한 기계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직접 머리에서 머리로 작용하니까요. 여기서도 거리라는 것이 아무런 장애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텔레파시가 성공하는 데는 솔직하고 민감한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당신은 및 해 동안 계속해서 우리에게 상념을 보내 왔습니다. 우리도 대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호출과 응답으로 우리 사이에 케이블 같은 굳은 연결이 이루어지고, 단일 주파수로 상념파, 다시 말하면 염원파(念願波)를 교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당신의 마음이 열려 있다면 전화로 이야기를 주고받듯이 필요한 정보는 무엇이든지 보낼 수 있지요.
증인들이 보는 가운데서 당신이 나와 만나도록 선택된 까닭은 당신의 체험에 확증을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는 그 사막에서의 우리의 만남이 허망한 거짓이 아님을 널리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용감하게도 최초의 기사를 게재했던 당신네 나라의 그 신문사의 스텝을 칭찬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만 모든 사람에게 분명히 해두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말한 마음끼리의 접촉이라는 것은 절대로 <심령적(心靈的)>이라든가 <영적(靈的)>이라 부르는 테두리에 속하지 않고, 서로의 마음에서 마음으로의 직접 전달이라는 사실입니다. <심령적>이라 부르는 것에 대해서는 다음기회에 설명해 드리지요. 이 마음의 텔레파시를 우리는 두 점 사이, 말하자면 송신자와 수신자의 <의식통일 상태>라 부르고 있습니다. 이는 다른 행성, 더욱이 금성에서는 일반에게 보급된 통신법입니다. 금성에서는 개인과 개인 사이의 통신으로 사용될 뿐만 아니라, 행성에서 우주선으로(그것이 어느 곳에 있던 간에), 또는 일정한 행성에서 다른 행성으로 통신을 보낼 수가 있습니다. 아까도 말한 바 있듯이-이 점을 분명히 알아두기를 바라는 바이지만- 지구인이 말하는 공간이라든가 <거리>라고 부르는 것은 전혀 장애가 될 수 없습니다.」
오오손이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 일무스는 슬그머니 일어나 방에서 나갔다. 그리고서 쟁반에 글라스를 받쳐들고 들어왔다. 글라스에는 먼저 내가 마셨던 그러한 청량음료로 보이는 것이 담겨있었다. 그녀가 글라스를 돌리고 난 뒤에 내가 이렇게 말했다.
「다른 행성에서 지구로 와서 우리 속에 뒤섞여 살고 있는 사람들 말씀인데, 이런 일이 오래 전부터 있었습니까?」
대답은 카르나가 했다.
「선사시대부터 쪽 있었지요. 적어도 과거 2천 년 동안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구인을 구하기 위해 지구에서 태어나도록 파견된 사람들은 예수를 빼놓고도 많지만, 예수가 책형( 刑)을 당한 뒤로는 실지로 지구상에 태어나기보다는 본인에게도 가장 위험이 적은 방법으로 우리들의 사명을 다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우주여행이 커다란 발전을 이루었기 때문에 이것이 가능하게 되었지요. 우리는 육체를 가진 채 지구로 내려가기를 원하는 지원자를 내려보낼 수가 있습니다. 이들은 그들의 사명에 대해서 면밀한 훈련을 받고 개인의 안전문제에도 여러 가지 지시를 받고 있습니다. 그 정체는 어떤 목적을 위해서 당신 같은 몇 사람의 지구인에게 알리는 일 말고는 절대로 밝히지 않습니다. 그들은 지구의 동포들 사이에 어울려서 지구인의 말과 생활양식 등을 배우고 있지요. 그리고는 고향의 별로 돌아와 지구에서 얻은 지식을 우리에게 모두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7천8백만 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지구의 역사와, 거기서 일어난 일들을 알고 있습니다. 지구인에 의해서 이루어진 역사는 그들 자신들이 파괴한 많은 문명과 함께 사라져 버렸습니다. 현재 당신네들을 위협하고 있는 그러한 파면이 과거에도 수없이 있었던 것입니다. 당신네들이 <전쟁>이라고 부르는 사태는 이미 몇 백만 년 동안 태양계 안에서는 존재치 않았습니다. 물론 모든 행성과 그 주민은 저차원에서 고차원으로 질서정연한 단계를 거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구는 질서 있는 자연의 진보를 이룩하기는커녕 오히려 성장과 파괴만을 무한히 되풀이해 왔지요. 지구의 인간 가운데서도 우리의 도움으로 지구를 떠만 사람이 있었습니다. 우리에게서 배우고 나중에 지구의 고향으로 돌아가 배운 지식을 사람들에게 전하려는 목적 때문이지요. 그러나 오늘날 같은 지구의 상태로는 이런 희망도 이제는 불가능합니다. 아무도 돌아갈 수 없게 되어 있으니 말입니다. 어디에 갔다왔다고 이야기를 하면 미친 사람으로 보여 정신병원에 갇히게 되기가 고작이지요. 오늘날 지구에서는 여러 가지 증명서들을 필요로 하는데, 오랫동안 원인도 모르게 자취를 감추었다가 갑자기 돌아왔다면 당국에서 수상히 여길 것이 뻔합니다. 우리는 동료들을 견딜 수 없을 만큼 혹독한 궁지에 몰아넣을 수는 없습니다. 이런 사실로 우리가 도와주고자 하는 사람들에게서조차 여러 가지로 방해를 받고 있는 것이 당신에게 더욱더 분명해졌을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카르나의 얼굴에는 그 아름다움이 사라지고 슬픔의 그늘이 짙어졌다. 그러나 테이블에서 글라스를 집어들어 홀짝홀짝 들이키는 사이에 그녀의 얼굴에는 다시 웃음이 되돌아왔다. 글라스를 테이블에 다시 내려놓으면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이런 슬픈 이야기를 하게 되어 안됐습니다. 하지만 우주 어느 한구석에 이러한 슬픔이 있다는 것만 해도 아주 슬픈 일이군요. 다른 행성에서 사는 우리들에게는 슬픈 사람이라고는 없습니다. 모두가 밝습니다. 매우 잘 웃지요.」
이러한 그녀의 설명에 나는 콧등이 시큰해졌다. 모두가 각자의 행성에서는 유쾌한 사람들인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우리지구의 슬픔을 동정하고, 몇 천 년 동안 한결같이 우리에게 빛을 주려고 노력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한 가지 희망이 남아 있기는 해요.」
카르나가 말했다.
「우리들은 아직 지구인을 찾아갈 수도 있고, 당신과 사귀게 된 것처럼, 앞으로도 자주 지구인과 접촉할 수 있습니다. 지금 같아서는 지구의 비행사들 때문에 우리들의 착륙이 어렵게 되어 있습니다만, 우리들의 우주선을 목격하는 지구인이 증가하면 할수록 우주선을 보는 것이 익숙해져서 다른 행성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겠지요. 그렇게 되면 지구인과 개인적으로 만날 기회도 많아질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바라고 있지요.」
「그렇게 될 것입니다」
하고 나도 같은 뜻임을 밝혔다. 우리는 모두 글라스를 비웠다. 여러 사람의 얼굴을 보니까, 지구의 현 상태에 대해서 걱정했던 근심스러운 표정은 이제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이 기분전환은 현명하고 적절한 것이었다고 깨달은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물어 보았다.
「당신들의 행성에서도 춤추거나 노래부르거나 합니까? 지구에서처럼 파티 같은 것은?」
카르나가 대답했다.
「우리들은 모두 춤을 썩 잘 춥니다.」
「우리는 율동적인 운동에 의한 신체 훈련을 교육의 기본적인 일부분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표현법을 지구인이라면 우주인의 종교적 의식이라고 말할지도 모르는 그러한 것의 일부분이지요. 말 가운데서도 시(詩)라는 형식은 산문 형식으로는 불가능한 깊은 감정을 나타낼 수 있지 않습니까. 그와 똑같은 말을 육체의 움직임으로 표현된 완전한 리듬에 대해서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예배(禮拜)의 무용을 통해서 나타냅니다. 당신네들처럼 단지 즐기기 위해서도 춤을 춥니다. 그러나 현재 지구에서 유행되고 있는 그린 춤과는 전혀 다르지요.」
카르나는 미소를 띠면서 말을 계속했다.
「우리는 지구에서 자주 구경해 왔는데 남자와 여자가 춤추고있는 동안 서로 격렬하게 몸을 들이대다가, 순간적으로 서로 떨어지고, 차고, 몸을 비비꼬고, 뛰고 하는 등 별 짓을 다 하더군요. 그런 춤은 즐겁지 않습니다. 우리들의 사교춤은 보통 그룹 단위로 춥니다. 그러나 그때그때 기분과 음악에 따라서,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춤을 추어 보이기도 합니다. 당신도 지구에서 기막힌 표현력을 가진 댄서를 보았으면 아시겠지요. 육체가 생동하는 내부의 혼의 힘으로 아름답게 약동할 때의 모습은 참으로 보기에 아름답고 즐겁다는 것을.」
「파티도 벌입니다.」
일무스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파티라는 말로 생각되는 그러한 종류는 아닙니다. 같이 잡담하거나, 긴장을 풀기 위해서 자기 집으로 친지를 초대하는 일은 우리들에게는 아주 간단한 일입니다. 그러나 대개가 야외에서 지내지요-해변이나 정원 같은 데서 말입니다. 지구에서와 마찬가지로 우리들 집에도 풀장이나 커다란 테라스가 마련된 정원이 있답니다.」
나는 이러한 훌륭한 사람들과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마침 이때, 라뮤우가 일어서면서 말했다.
「섭섭하지만 이제 당신을 지구로 다시 모셔 가야 할 때가 되었나 봅니다.」
나는 일어서서 <다음 기회>라는 말로 이 아쉬움을 잊으려고 애썼다. 들뜬 분위기 속에서 작별인사를 나누면서 우리는 서로 재회를 약속했다. 여태껏 여러 가지 가르쳐 준 것을 모두 잊지 말라든가, 지구에서의 나의 활동에 잘 이용하라든가 따위 말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단지 나는 아름다움과 따뜻함, 게다가 친밀감을 온몸에 가득히 느끼면서, 새로운 지식을 가지고 이 우주선을 떠나게 되었다. 이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 지구에서 무지가 일소되는 날, 지구인도 또한 성장하여 천성(天性)이 발현될 수 있을 것이다. 조종실로 이어지는 문 앞에 이르렀을 때 나는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았다. 마음속에 다시 한번 더 이 훌륭한 방안의 가구장식과 친구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빛나는 <영원한 생명>의 빛나는 초상 등을 새겨 두고 싶었던 것이다.
조그마한 정찰원반은 모선에서 다 충전이 되어 지구로 돌아갈 채비를 다 끝내고 있었다. 문이 열리면서 모두 함께 올라탔다. 라뮤우, 파아콘과 나였다. 라뮤우가 조종석에 앉았다. 층계를 올랐을 때, 죔쇠와 케이블은 벌써 제거되어 있었다. 먼젓번 때와 마찬가지로 끝으로 한 사람이 안에 들어서자 문이 소리없이 닫혔다. 원반이 천천히 미끄러지듯 레일을 타고 내려간다. 이중의 공기판을 통과했을 무렵에는 벌써 우주 한복판이었다. 모선의 하부로부터 빠져 나온 것이다. 레일을 타고 내려오면서 나는 다시 뱃속에 낙하충격을 느꼈지만 들어올 때처럼 그리 강하지 않았으며 시간도 짧았다. 순식간에 문이 열리면서 파아콘이 이렇게 말했다.
「도착했습니다. 지구에 돌아온 것입니다.」
그야말로 불가능으로 보일 만큼 짧은 시간이었다. 이때, 원반은 대지에 내려앉아 있지 않았다. 지상에서 15cm가량 높이에 떠 있었던 것이다. 라뮤우가 앞으로 와서 작별인사로 손을 내밀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정찰원반에 남아 있지 않으면 안 되었기에 자동차로 같이 갈 수는 없습니다. 오늘 밤 이렇게 만나 볼 수 있었음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다시 만날 그때를 손꼽아 기다리겠습니다.」
나도 그와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호텔로 돌아가면서 자동차는 말없이 달렸다. 나는 깊은 감회와 생각으로 가슴이 뿌듯했다. 물론 파아콘은 이런 나의 심리상태를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는 호텔 앞에서 차를 멈추었으나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악수를 나누었다.
「머지 않아 또 만날 것입니다.」
그는 작별인사를 했다. 언제, 어디서, 내가 그렇게 생각한 그 순간, 그는 이런 내 마음속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염려 마십시오. 적당한 때가 되면 당신에게 느낌이 일어나서 어느 사이에 적당한 장소에 당신이 가게 될 것이라고 확신하십시오.」
나는 차에서 내렸다. 손을 흔들면서 파아콘은 떠나가 버렸다. 나 혼자만이 보도에 외로이 남겨진 것이다. 호텔의 내 방으로 올라갔다. 이 우주인 친구와 헤어진 후 처음으로 나는 시계를 보았다. 오전 5시 10분 을 가리키고 있었다. 잠은 전혀 오지 않았다. 피곤한 느낌도 없었다. 나는 침대가장자리에 앉은 채 1시간이나 오늘밤의 체험을 회상했지만, 그것이 내 마음속을 통과해 버렸던 후도, 이 사건의 전부가 일반 사람들에게 있어 얼마나 어리석게 여겨질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래도 나는 이 사실을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사실이지, 나 자신도 이 몇 시간 동안에 일어난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믿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내 눈으로 본 것, 내 귀로 들은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이는 분명한 현실적 체험이었던 것이다. 이를 의심할 수는 없다.
끝내 나는 옷을 벗고 몸을 침대에 뉘었다. 그리고 깊지는 않지만 잠이 들었음이 분명하다. 눈을 떴을 때는 8시 가까운 시각이었다. 나는 급히 옷을 입었다. 아침을 먹고 집으로 돌아갈 버스를 타기에는 시간이 거의 빠듯했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도 나의 눈은 지나치는 경치나 바로 곁에 앉은 사람을 보고 있었으나, 내 마음은 어젯밤의 체험에 잠겨 아직도 우주를 여행하고 있었다. 그 거대한 우주선 안의 우주인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같은 시각에 두 곳에 몸을 둔 느낌이 몇 주일 동안 계속되었다. 나는 지상의 속박으로 가득 찬 생활로 되돌아가기가 참으로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주의 광대함과 그 영원한 활동의 아름다움, 그것을 목격하는 특권이 주어진 시간은 극히 짧았다. 그러나 나는 그 경이감을 계속해서 지니고 있는 것이다. 내가 지구 밖의 우주인 친구로부터 배운 것 모두가 나 혼자에게만 주어진 것은 아니다. 이러한 것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지구의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제7장
토성의 정찰원반
다른 세계에서 온 친구들과의 재회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시간이 흘러갔지만 점점 그들이 가깝게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두 달이 지난 4월 21일의 일이다. 나는 또 갑자기 예의 그 도시로 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래서 이튿날, 오우션 사이드까지 차를 태워 달라고 부탁해서, 거기서 로스앤젤레스로 떠나는 오후의 첫 버스를 잡아탔다. 그리고서 두 시간 남짓 달린 끝에 도시에 닿았다. 지난번과 같은 호텔에 들어 방에 짐을 옮긴 뒤, 나는 잠깐 휴식을 취했다. 그러고 나서 아래로 내려가 안면이 있는 바의 종업원과 잡담을 하려고 칵테일 라운지로 들어갔다. 그리고 난 뒤 곧 로비로 돌아와 주간지를 손에 들고서 자리에 앉아 기다리기로 했다.
이번에는 지난번에 느꼈던 불안감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산장에서 나를 이곳으로 몰고 온 충동이 무엇을 뜻하는지 나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국내 사건과 국제적 사건을 가리지 않고, 기사를 인쇄되어 있는 순서 그대로 흥미 있게, 이른바 <행간(行間)에 숨은 이야기를 읽는> 태도로 자세히 읽고 있었다. 그다지 안면이 있지 않은 두 남자가 인사를 나누려고 다가온 일 말고는 아무에게도 방해를 받지 않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고개를 드니 바로 내 앞에 화성인 친구 파아콘이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자리를 걷어차듯 벌떡 일어났다. 아마도 나는 큰 입을 벌리고 이빨을 보이면서 씨익 웃었을 것이 분명하다. 파아콘도 환하게 웃고 있었다. 우리는 늘 하던 식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나서 그는 그 뜻을 강조하면서 어떤 말을 했다. 그 말에는 분명 어떤 특별한 뜻이 담겨져 있었다. 둘이서 호텔을 나올 때,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악수라는 인사는 상당히 보급되어 있으므로, 앞으로 지상에서 당신과 접촉하는 우주인에게 당신의 신분을 밝히는 뜻에서 지금 들은 말을 추가하는 편이 나으리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 말은 특히 당신이 모르는 사람이 접근해 왔을 때 효과적일 것입니다. 앞으로도 자주 그런 일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니까요.」
「거 참 좋은 생각입니다.」
나는 찬성했다. 그때 시게를 보니까 벌써 7시 15분 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말했다.
「바쁘지 않으면 식사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가까이에 조그마한 카페가 있습니다. 거기서는 구석에 자리잡으면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
「마침 잘되었군요.」
그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몸에 영양을 공급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길을 걸으면서 나는 라뮤우의 안부를 물었다. 파아콘은 오늘밤에는 그와 같이 올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고 대답했다. 카페는 사람으로 가득했으나, 다행히도 우리가 들어섰을 무렵에 일어나서 나가는 손님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한 귀퉁이에 자리잡을 수 있었다. 우리는 테이블을 치우러 온 종업원에게 인사를 했다. 파아콘은 여종업원이 내민 메뉴를 읽어보고 나서 그것을 내려놓은 다음, 땅콩 버터를 곁들인 샌드위치, 블랙 커피, 애플 파이 한 조각을 주문했다.
「나도 같은 것으로 해주시오.」
둘만이 되었을 때 그는 조용히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나는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 잡지를 보면서 지구의 인류가 언제나 다른 집단에게 품고 있는 숱한 의혹과 적의, 증오에 대해서 가슴 아파하고 있었지요.」
파아콘이 나타난 뒤로 나는 이런 생각을 모두 잊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내 마음의 움직임까지도 알고 있나 싶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주 간단한 일입니다. 이른바 <마음의 배후>에 매우 강력한 상념(想念)이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이지요.」
그는 설명을 계속했다.
「지구의 인간들은 자신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이러한 다른 집단에 대한 파괴적 감정의 무서움을 알고 있는 경우가 아주 드뭅니다. 자신의 얌전한 성질을 자랑으로 알고 있는 사람부터 그러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극히 하찮은 일로도 사람의 자제심을 잃게 할 수 있지 않습니까. 또 조금만 자극하면 곧 전투태세로 들어가서 <자기방어>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우면서 공격으로 나옵니다. 이는 사실 감정적인 균형을 잃은 상태에 지나지 않지요. 이것이 노여움이라는 폭력을 동반할 때, 인간은 모든 이성을 팽개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일단 깨닫기만 하면 이와 같은 습관은 억제되어지거나 전부 소멸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때 식사를 가져왔다. 다시 둘만이 되었을 때 그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현재 지구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난국의 책임은 각국의 몇몇 소수인에게 부과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지구의 동포들과 일을 하기 위해서 또는 사교를 위해 만나 보면서, 나는 오늘날까지 파괴적 감정과 이기주의로 가득 찬 수많은 사람과 마주쳐 왔습니다. 공포와 혼란이 지구를 뒤덮고 있음은 당연하다고 하셨지요. 우주의 법칙을 더욱 탐구함으로써 인류를 위해서 차분히 숭고한 사상을 발전시켜 온 사람도 극히 적지만 존재합니다. 그 가운데는 <정신주의(精神主義)>라든지 <신비주의>라고 부르는, 길잡이 역할을 하는 사람도 있고 또는 그와 비슷한 아름의 것을 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들 사이에도 봉사나 상호의 행복과 같은 우주적 동기보다, 오히려 자기발전이라든가 개인적 이득을 위해서 길을 찾는 자가 더 많습니다. 이러한 이기주의가 도처에 퍼져 있기 때문에 그 결과 대중이 지도자로서 뽑는 인물도 모두가 대동소이하며, 설사 대중 속에서 태어난 지도자라 할지라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지도자라는 것은 대중이 권력을 잡고 있는 곳에서는 대중의 기호에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구 밖의 세계에서 와서 지금껏 지구인에게 들키지 않고 그들 사이에서 생활해 온 우리는, 지구인이 인간의 신성(神性)을 얼마나 감쪽같이 잊고 있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지구인은 이제 더 이상 원초에 표현되어졌던 인간이 아니고, 각각 분리된 생명체가 되어 버렸습니다. 지금의 지구인은 단지 습관의 노예에 지나지 않지요. 이 습관의 쇠사슬에 묶여 있으면서도 타고난 신성에 의한 표현을 동경하는 본래의 혼을 아직 상실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감추어진 충동은 습관이라는 질곡과 일상의 타성이라는 쇠사슬로 묶여 있는 인간을 깊이 뒤흔들어 충격을 주지 않을 수 없지요. 보다 아름답게, 보다 크게 살려고 바랄수록 사람이 깨닫고 있는 이상으로 마음속 깊이 도사리고 꿈틀거리는 본성의 덕으로, 습관에 속박된 자아는 불안과 동요를 느끼는 것입니다. 하지만 습관이라는 힘은 쌓이면 엄청나게 커져서, 이러한 현명한 내심(內心)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싶어도 그것이 어디로 데려가는지를 몰라서, 두려움을 느껴 그 소리에 따르려고 하지 않지요. 하여간 인간이 개인의 자만심이라는 쇠사슬을 팽개치고, 이 내심의 소리에 따르려고 할 때까지, 그는 항상 자신의 존재법칙에 도전하는 전사(戰士)로서 살아 나가게 될 것입니다. 당신도 알고 계시겠지요. 인간이 인생을 바꾸려고 하지 않는 한 아무도 구해 주지 않습니다. 저 <무한한 자>의 법칙을 진지하게 배우려고 하는 소수야말로 다른 사람들을 인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때 우리 우주인은 그들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파아콘이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 식사는 오랜 시간을 끌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밖에 다시 나온 그는 길가에 세워 둔 그의 차 폰티악이 있는 곳까지 두 블럭을 걸었다. 바람이 몹시 부는 밤이었지만, 폭풍우라고는 미처 생각지도 못했다. 차에 올라탔을 무렵에는 나는 파아콘이 들려 준 내용에 대해 이것저것 곰곰이 생각하였지만 나중에는 오늘 밤 어떠한 새로운 모험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거리에서 차를 달려, 지난번처럼 갑자기 간선도로에서 옆으로 꺾어 들어갔다. 그때까지의 시간이 이번에는 아주 짧게 느껴졌다. 차가 멈출 때까지의 거리도 이번에는 짧은 편이었다. 처음 내게는 오른쪽으로 나지막한 언덕이 몇 군데 보인다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둠을 뚫고 눈여겨본다고 해도, 사방으로 펼쳐진 넓은 지형뿐이었다. 다시 또 정찰원반을 만나 보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은 확실했으나, 그러한 징조는 하나도 없었다. 원반의 존재를 가리켜 주는 한 가닥의 광선조차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러나 나의 친구 파아콘은 방향에 자신이 있었는지 상당한 시간 동안 나지막한 언덕을 따라가다가 갑자기 언덕이 끊어지는 곳으로 올라섰다. 거기서 나는 비로소 저 멀리 희미한 빛이 반짝이고 있음을 발견했다.
나는 기대감으로 가슴이 뛰었다. 약 400m쯤 걸었을까. 그러자 그곳에 낯익은 정찰원반의 윤곽이 뚜렷이 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어딘가 좀 달랐다. 나의 기억에 있는 소형원반보다 훨씬 컸다. 이 원반은 아마 직경이 30m는 넘을 것이다. 둥근 창도 크고, 둥근 천장도 훨씬 납작했다. 선체의 밑으로 드리워진 그림자 하나가 거기 서 있었다. 처음에 나는 금성의 친구로만 생각했다. 이제는 낯익은 스키복 비슷한 조종복 을 입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 조종사가 내게는 처음인 미지의 남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키는 180cm 정도였고 미남이었다. 그는 서너 걸음 다가와 내게 악수를 청하면서 따뜻하고 친절한 태도로 우리를 맞아 주었다. 이 남자를 주울이라 부르기로 하자. 이 거대한 정찰원반은 화성의 것일까 생각하고 있는데, 조종사가 내 생각을 바로잡아 주었다.
「이 원반은 토성에서 온 것입니다. 물론 이것도 당신이 한 번들어가 본 일이 있는 그런 커다란 수송선, 말하자면 모선에 실려 왔지요.」
그는 몸을 돌려서 대기하고 있는 원반으로 우리를 안내해 주었다. 문은 벌써 열려 있었다. 그가 먼저 들어가고 다음에 나와 파아콘이 뒤따랐다. 이 우주선은 적어도 금성의 원반보다 직경이 네 배쯤은 크다. 높이는 두 배쯤 될 것이다. 더 될지도 모른다. 문은 지난번과 같이 파아콘의 뒤에서 소리없이 닫혔다. 내부의 조명이 갑자기 밝아졌다. 기계의 작동에 따라 낮은 소음 비슷한 소리가 들렀다. 나는 좀 앞으로 이끌리는, 그 다음에는 또 떠밀리는 기분을 느꼈으나, 몸의 균형을 잃을 정도는 아니었다. 짐작하기에 아마 이륙한 듯 싶었다. 새 환경을 살피려고 두리번거리고 있으려니까 토성인 조종사가 이 우주선은 소형원반에 견주면 크기뿐 아니라 그 밖의 점에서도 여러 모로 다르다고 설명해 주었다. 이 우주선은 지상에 떠 있었던 것이 아니고, 3개의 거대한 구형 착륙장치로 대지에 내려앉아 있었던 것이다. 내가 느낀 이륙할 때의 느낌은 저크(Jerk ;갑자기 확 잡아당기는 느낌)였다. 주울이 설명하기를, 마치 쇠 한 조각이 자석에 붙어 있는 것과 같다고 가르쳐 주었다. 이러한 저크 현상은 분리의 순간에 일어나는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전에 보아서 낯익은 청백색 빛이 발산되자, 유리 같은 반투명체 금속으로 된 벽이 눈에 띄었다. 주위에는 약 1.2m의 곡선 통로가 있는데, 이것은 우주선을 둘러싸고 있는 것 같다. 이 통로의 바깥벽에는 일련의 둥근 창이 뚫려 있었다. 그것은 소형원반의 그것보다 상당히 컸다. 눈어림으로 판단하면 이 둥근 창들은 한 상한(象限:원반을 4등분한 한 부분-역주)에 한 군(群)씩 전부 네 군 정도가 있었다. 게다가 같은 정도의 폭을 가진 복도가 전방으로 곧장 뻗어 있다. 우주선 직경의 3분의 1쯤은 되리라. 양쪽에 높은 벽이 있어서 그것이 둥근 천장에까지 미치고 있었다. 이 복도의 저편에 중앙 선실이 있는 모양이었다. 거기에 선체의 중심을 관통한 거대한 자기기둥이 눈에 띄었다. 그때 조종사가 비행중에 우주선 내부를 한번 둘러보지 않겠느냐고 권유했다. 두말할 나위 없이 나는 그것을 원했다.
길을 가리키면서 주울은 나를 중앙실로 데려갔다. 눈이 휘둥그래질 광경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에 들어섰을 때는 너무나 낯설고 복잡한 광경이어서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그림 참조) 평면도를 그리면 선체는 차바퀴 같다. 네 개의 복도는 바퀴살처럼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중앙실로 이어지고 있었다. 지금 우리는 그곳에 서 있는 것이다. 벽은 마루에서 천장까지 6m내지 9m에 이르고 있다. 벽면은 거의 전부가 색채광(色彩光)을 발산하는 도형이나 도표 따위로 가득했고, 그 표면은 직선이나 기하학 도형이 복잡한 무늬를 수놓고 있었다. 지난번에 금성 원반에서 나를 탄복케 한 바와 같이 그 무늬는 끊임없이 색채광을 변화시키고 있었다. 이처럼 보기에 아름다운 것이 또 있을까. 나는 지난번처럼 황홀하게 들여다보고 었었지만 그것에 대해 좀더 잘 이해할 수는 없었다. 원형의 벽면 주위에는 중간쯤 높이로 정교한 금속제 발코니가 있었고, 거기에는 사다리로 올라가게 되어 있었다. 벽 끝에는 반투명의 둥근 천장이 있고, 거기에 거대한 관측용 렌즈가 장치되어 있었다. 마루도 거의 전면이 같은 거대한 렌즈로 되어 있어서, 금성의 원반에서 본 렌즈에 비하면 직경이 적어도 두 배는 될 것 같았다. 그 언저리에는 구부정한 벤치가 있어서, 관측자는 거기 앉아서 우주공간을 통해서 훨씬 아래쪽 행성들을 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마루에서 둥근 천장까지 걸쳐 있는 중앙의 자기기둥이 방안전체를 위압하고 있었다.
두 개의 거대한 렌즈를 꿰뚫은 이 거대한 침묵의 금속봉, 이것이 에너지의 원천이며, 우리의 동경의 목표인 비밀-행성간 항행의 비밀이 숨겨져 있는 곳이다. 아까도 말한 바와 같이 이 우주선은 네 개의 방사형 복도가 네 개의 문으로 중앙실로 이어지고 있다. 왼쪽으로 꺾어서 지금 우리는 이 복도의 하나를 따라 걷고 있는 중이다.
복도를 반쯤 지나니까 좌우 복도 벽에 난 두 개의 아치형 입구에 이르렀다. 조종사는 오른쪽 아치를 지나 나를 어느 한 선실로 안내해주었다. 듣자니 여기가 승무원의 침실이라는 것이었다. 이 실내는 재미있는 모양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우리 앞쪽에 열 두개의 작은, 방이라기보다 구획이 있었다. 승무원들은 거기를 자기들의 침실로 쓰고 있는 것이다. 이 작은 방에는 들어가 보지 않았지만, 문이 모두 열려 있었기 때문에 내부 설비가 얼마나 완벽하게 되어 있는가를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지구의 풀먼형(型) 침대차의 설계자도 부러워할 것임이 틀림없다. 난간이 달린 사다리 같은 것이 있어서, 침실 한 귀퉁이에서 바로 위층의 방으로 올라갈 수 있게 되어 있다. 4등분된 구획가운데서도 이 구획만이 2중 갑판으로 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위층은 낮잠을 자거나 휴식하는 방으로, 소파와 푹신한 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여기서 승무원은 쉬거나 잡담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반투명인 둥근 천장의 사면은 그대로 이 실내의 천장이 되어서, 안락한 일광욕실을 연상케 했다. 아마도 멋진 휴식 시간을 여기서 보낼 수 있을 것임이 분명하다. 거대한, 구부러진 유리와 흡사한 둥근 천장 저편에는 별이 빛나고, 우주를 한눈에 내다볼 수 있었다.
그쪽을 내다보면서 나는 승무원은 도대체 몇 명이나 될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그러자 주울이 입을 열었다.
「보통은 모두 12명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나를 빼놓고 두 사람밖에 타고 있지 않습니다. 이 같은 단거리 여행에는 그 이상의 인원은 필요 없거든요.」
그때 나는 이 특별한 승무원은 모두가 토성인일까 생각했다. 이 우주선이 토성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울이 또 이렇게 바로잡아 주었다.
「이 원반은 토성에서 만들어진 것이지만, 특정 행성이 소유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 우주인 모두의 소유라고 할 수 있지요. 따라서 승무원은 모든 행성에서 선발됩니다. 아시다시피 이것은 대형 정찰원반으로서 장거리 여행을 위해 설계되었으며, 모선을 떠나 1주일 혹은 그 이상 모선에서 떨어져 있을 수 있는데, 그것은 이 원반이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에너지 발생장치를 기내에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긴급한 경우에는 모선으로부터 재충전을 위한 특별 에너지를 각 원반에 빔(Beam)으로 직접 방사해 받을 수도 있습니다.」
침실 가까이의 통로에 나와 섰을 때 발 밑에서 희미한 진동을 느낀 것 같았다. 주울이 이렇게 설명해 주었기 때문에 나는 그 까밝을 알 수 있었다.
「기계장치는 대부분이 이 부분의 마루 밑에 장비되어 있습니다. 침실에서 직접 들어갈 수 있는 공작실도 있답니다.」
나는 문을 찾았으나 헛일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나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다시 복도로 나왔을 때 다음 4등분된 구획으로 통하는 아치를 바라보았다. 거기엔 부드러운 색채광과 기묘한 장치가 있었다. 거기가 바로 조종실이었다. 조종반 앞에는 두 젊은 남자가 앉아 있었다. 우리는 그대로 전진해서 바깥쪽 원형 복도로 나왔다. 오른쪽으로 꺾으면서 주울이 말했다.
「이 방 안에는 작은 방이 있어서, 그 속에 자그마한 원거리 조작을 할 수 있는 기록용 원반이 두 대 있습니다. 이것은 접근관측용으로 발사되는 무인원반이며, 극히 감도가 높은 장치가되어 있어서, 발견한 사실을 이 정찰원반에 알려 줄 뿐만 아니라 바로 모선에도 통보합니다. 그러니까 이중으로 기록을 할 수 있는 셈이지요. 이것은 특수한 정보를 필요로 하는 사람의 요구에 응해서 행성에 관한 영구적인 기록이 되는 것입니다. 이 소형원반은 이제껏 우리가 지구나 태양계 전체, 그리고 다른 태양계 등의 여러 상태의 지식을 얻는 데 크게 도움이 되어 왔습니다.」
바깥쪽 복도를 걸어서 우리는 4개의 커다란 둥근 창이 있는 곳으로 왔으나, 바깥을 내다보려고 걸음을 멈추지는 않았다. 다음의 방사형 복도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다시 오른쪽으로 꺾어서 반투명의 단단한 양쪽 벽 사이를 지나 원반의 중심부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이 벽은 매우 두껍고 강해서 차바퀴의 바퀴살 모양같이 완벽한 구조로 되어 있다. 오른쪽 벽은 아마도 침실 뒷면의 벽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계속해서 주울은, 왼쪽 벽에는 식량과 그 밖의 원거리 여행에 필요한 물건이 보존되어 있는, 비교적 커다란 저장실로 통하는 입구가 있음을 설명해 주었다. 조종사가 <원거리 여행>이라고 말했을 때, 나는 이 우주선이 모선의 도움도 받지 않고서 행성 사이를 항행할 수 있는 것일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주울은 그 생각을 부정했다. 정찰원반은 바깥 우주를 비행하기 위해 건조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다시 한번 번쩍이면서 움직이는 벽, 이를테면 온통 도표 따위로 가득 채워진 벽이 있는 중앙실로 들어갔다. 우리는 중심 렌즈의 끝부분을 통과해서 세 번째 방사형 복도에 도달했다. 이 마지막 복도는 아직 살피지 않았다. 반대편 복도에서도 그러했지만, 여기서도 가운데쯤에 두 개의 커다란 아치가 있었다. 처음에 우리는 왼쪽 아치 밑을 지나 어느 방에 들어섰다. 거기는 그들의 주방이었다. 그러나 절대로 주방으로는 아무도 생각지 못하리라. 지구에서 부엌으로 알려져 있는 방과는 조금도 비슷한 데가 없다. 보기에 단조로운 벽으로 둘러싸인 텅 빈 것에 지나지 않다. 그러나 이 겉보기는 전혀 위장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주울이 가르쳐 준 바로는 이 벽에는 마루에서 천장까지 선반과 칸막이로 차 있으나, 우주선 안의 모든 입구처럼 문이 열릴 때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리에 필요한 연장은 모두 이 선반 안에 들어 있다고 한다. 그가 오븐이라고 부르는 물건 쪽을 향해 유리와 같은 작은 문이 한쪽 벽에 장치되어 있었다. 속을 들여다 보았지만 버너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주울은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의 조리법은 당신네와 다릅니다. 우리는 방사선, 즉 고주파를 사용해서 급속히 조리합니다만, 이 방법은 지구에서는 아직 실험 단계에 있지요. 그러나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싱싱한 상태에 있는 것으로, 주로 우리 행성에 풍부히 있는 맛있는 과일이라든가 야채를 먹습니다. 그 의도라든가 목적으로 보아서 우리는 이른바 <채식주의자>이지만, 긴급한 경우에 따로 식량이 들어오지 않을 때는 육식도 합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수채나 쓰레기통이나 수도 같은 것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가정주부가 아니므로, 그때 없었던 것까지 눈여겨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이러한 설비가 있다는 것은 틀림없다. 아마도 모두가 그렇지만, 여기에도 지구인은 상상도 못 할 기막힌 설비가 있을 것이 뻔하다. 의자나 식탁, 벤치도 보지 못했다. 그러나 필요한 것은 모두, 벽과 벽 사이에 감춰져 있는 것 같았다.
주방을 나와서 우리는 라운지로 들어갔다. 그것은 금성의 모선에서 구경한 라운지와 똑같을 만큼 아름답고 호화스러운 라운지였다. 거기에는 소파와 그 밖의 여러 가지 형의 의자가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적당한 거리에 투명한 널이 깔린 특수한 테이블이 있었다. 금성의 모선에 있었던 것과 같은 것들이다. 이 테이블에는 작지만 아름다운 장식이 부착돼 있었다. 주울의 말을 들으면, 승무원은 연구하고자 하는 행성의 대기권 내를 관찰비행하고 있는 동안은 이 방안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다. 그는 또, 지구인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여기서 여러 가지 즐거운 게임을 하거나 손님을 접대한다고 설명했다. 한 권의 책도 신문도 읽을거리도 눈에 띄지 않았다. 이러한 것들이 들어 있을 책장도 케이스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있는 것만은 확실했다. 이 방 마룻바닥을 덮고 있는 깔개는 노랑이 섞인 회색으로, 그것은 이 원반 안의 어디나 같았다. 깔개에는 특별히 무늬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거죽은 매우 껄끄러운 느낌이었으나 발로 밟고 걸으면 두꺼운 스폰지 같은 감촉을 주었다.
이 객실에서 우리는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서 중앙의 복도 쪽으로 꺾어 걸었다. 그것은 우리가 이 정찰원반에 들어섰을 때 처음 걸었던 복도로 통하고 있었다. 이 멋들어진 우주선 안에서 여러 가지를 구경하고 설명을 들었으나, 조종실을 흘깃 보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고, 이 기계장치를 움직이고 있는 동력에 대해서도 한 마디 설명을 듣지 못했다. 그들이 우주 공간에 있는 자연력을 이용하여 그것을 추진력으로 바꾸어서 여행하고 있음은 확실하지만, 그 방법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정보를 얻어보려고 생각했다. 주울은 변명하듯이 웃으면서, 우주인은 아직도 완전히 지구인을 믿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런 종류의 비밀을 알려 줄 수 없다고 말했다.
「그 까닭은, 당신네 지구인들은 아직도 감정을 통제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지 않거든요. 그 때문에 생각하기 전에 입으로 먼저 지껄여 버리는 수가 흔합니다. 그런 식으로, 이것을 악용할지도 모를 인간들에게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정보를 알려 주겠습니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부정할 수도 없었다. 이 정찰원반의 항행 속도는 엄청난 것이었다. 여러 가지 설명을 그 항행 도중에 들었지만, 아차 하는 동안에 벌써 항행은 끝나 있었다. 주울이 이렇게 말한 것이다.
「이제 모선에 닿았습니다. 착륙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지요.」
비행 거리에 관해서 그들은 한 마디도 얘기하지 않았지만, 이 모선이 금성의 모선보다 훨씬 더 멀리 지구에서 떨어져 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원반이 이 커다란 모선으로 들어가는 광경도 구경할 수 없었다. 원반의 중앙부 가까이에 있었기 때문에 밖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많은 점에서 지난번 체험과 똑같은 감각을 여러 가지로 느꼈다. 물론 왜 그런 것인지 까닭을 설명할 수는 없지만, 약간 다른 점도 있었다. 대기하고 있는 모선 내부를 하강할 때 엘리베이터로 내려가는 그러한 낙하 감각이 여기에서도 있었으나 몸의 균형을 깨뜨릴 정도는 아니었다. 정찰원반이 레일을 활강해서 정지점에 이르면 문이 열리면서 플랫폼으로 나서게 된다. 이 점은 먼젓번 모선과 같지만, 여기서는 아무도 만나지 못했고 금성의 모선에서 소형원반을, 가장자리와 레일을 죔쇠로 연결하는 작업을 맡은 사람도 없었다. 이 정찰원반에서 한 걸음 밖으로 나가 토성의 모선 안의 플랫폼에 올라서니, 이 모선은 금성의 그것과는 모든 것이 다르다는 것을 곧 알 수 있었다. 여기서는 어떠한 체험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로 가슴이 두근거렸으나, 공포감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사실 지구 밖의 우주인과 새로이 만남을 거듭할 때마다 그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공포감을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를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그때마다, 즉 그들을 만날 때마다 매우 겸허한 마음이 되어, 그들의 예지가 넘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아름다운 우주선을 방문하거나 여행할 수 있는 특권을 나에게 베풀어 준 데 대해 감사했었다. 그들이 나에게 요구하는 것은 내가 얻은 그 지식을 지구의 모든 동포에게 전하는 것뿐이다. 그가 누구이든지, 또는 어디에 있든지, 나는 그렇게 할 것이다. 그것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 숭고한 지식의 은혜를 받느냐, 그것을 모멸과 의혹 속에서 내팽개치느냐 하는 것은 각자의 자유에 속하는 것이다.
제8장
토성의 모선
이제부터 이야기하려는 내용은 좀 복잡하다. 토성의 모선에 올라탄 후로 내가 목격한 기계장치는 아주 신기한 것이었다. 처음에 나는 그 작동을 완전히 파악할 수 없었다. 얼마 만큼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된 것도 훨씬 후의 일이다. 우러가 정지한 플랫폼(나는 <플랫폼>이라고 말했으나 실지는 15m 평방의 자력 엘리베이터임이 판명되었다.)은 깊이 60m 이상 되는 거대한 수직공판을 지나서, 이 거대한 모선의 바닥으로부터 꼭대기까지 인원과 화물을 나른다. 엘리베이터의 중심부에는 자기기둥이 관통하고 있어서. 이것이 이 수직공간의 높이 전부에 미치고 있었다. 이 자기기둥이 엘리베이터를 움직이고 있는 동력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원반을 내려섰을 때 내가 처음에 놀란 것은 위로 깎아지른 듯이 솟아 있는 거대한 수직공간이었다. 우리 앞에는 난간이 붙어 있는 일종의 다리(브리지) 같은 것이 있어서, 정찰원반이 멈춘 갑판과 플랫품을 연결하고 있었다. 15m의 플랫폼이 이 수직공간을 완전히 차지하고 있지는 않았다. 주울을 따라가면서 나는 주위를 돌아보고 관찰했다. 나는 이 거대한 모선의 위압감과 방대한 구조에 위축되고 말았다. 뒤를 보니까 훨씬 높은 곳에, 정찰원반의 둥근 지붕 너머로 지금 우리가 내려왔던 넓은 공간의 천장이 보였다. 커다란 두 줄기의 레일이 위로 뻗어서 이 천장을 뚫고 있었다. 공기판이 있는 곳보다 훨씬 더 높이 뻗어 오르고 있였다. 나는 바로 그 위에 아까 우리가 들어왔던 이 모선의 입구가 있음을 발견했다. 플랫폼에 도착하여 파아콘이 일러준 대로 엘리베이터가 지나는 수직공간을 눈여겨보았더니, 여기 말고도 위쪽에 셋, 아래쪽에 세 개의 바닥 또는 갑판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모두 7층이 되는 셈이다. 각 층에는 브리지, 말하자면 수직공간으로 불쑥 튀어나온 발코니와 흡사한 부분이 있었다. 이것으로 플랫폼의 언저리와 각 층 갑판과의 사이를 메우고 있는 것이다. 이 돌출부분은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적교(吊橋:필요가 있을 때만 내려놓고 필요가 없을 때는 매달아 두는 다리. 성곽의 출입구에 많이 쓰임-역주) 모양으로 끌어올릴 수가 있다. 그 길이는 각 층의 바닥에서 천장까지의 높이와 같기 때문에 그것이 들어 올려지면 갑판의 입구를 막게 되고 수직공간에 바싹 밀착하여 입구를 완전히 가로막는다. 엘리베이터의 플랫폼이 목적하는 층에 도달하면 이 수직공간의 벽면부가 당겨 올려져서 돌출된 발코니로 변한다. 그 다음에 엘리베이터의 난간이 밖으로 나가서 발코니의 난간 구실을 하는 것이다. 엘리베이터가 위로 움직일 때는 이 난간은 발코니에서 끌려 들어가 엘리베이터의 난간으로 되돌아가게 마련이다. 정찰원반에서 내려선 직후 나는 이 난간의 작동을 자세히 눈여겨보았다. 발코니를 지나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순간, 후면의 난간이 우리들을 둘러싼다. 이렇게 되면 위쪽으로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다.
내가 하나도 빠뜨리지 않을 생각으로 관찰을 하고 있으려니까, 주울이 엘리베이터의 바닥에서 10cm 높이에 있는 자그마한 운전반 옆에 섰다. 내가 혹시 무심코 발을 올려놓을까봐 그걸 막기 위한 것 같았다. 이 운전반은 길이70cm, 즉이 15-20cm쯤 되었다. 거기에는 발로 조작하기 쉽게, 2단으로 된 여섯 개의 단추가 있었다. 단추 하나마다 용도에 따라 기호가 붙어 있었으나, 나는 읽을 줄 몰라서 무슨 기호인지 알 수 없었다. 주울이 그 단추의 하나를 밟았다. 그러자 곧 플랫폼 앞쪽에 붙어 있던 난간이 바깥으로 천천히 돌출해 나왔고, 우리들이 막 도착한 회전축의 반대측 벽면 발코니의 돌출된 난간으로 변했다. 수직공간을 종선(縱線)으로 치면 이 발코니는 횡선으로 돌출해 나와 있는 셈이었다. 우리 앞의 벽에서 아름다운 균형이 잡힌 장식문이 나타나면서 미끄러지듯 열리고, 아주 별개의 기막힌 광경을 보여 주었다.
우리는 그대로 아담한 홀로 들어섰다. 여기는 금성의 모선에서 본 홀과, 그리고 가구 세간이나 디자인이 아주 비슷했다. 단지 좀 큼지막할 뿐이었다. 어디서 비추는지 모르지만 여기서도 그 신기하고 부드러운 불빛이 방안을 아름답게 비춰 주고 있었다. 나의 시선은 곧바로 그 방에 있었던 여섯 명의 여자와 역시 여섯 명의 남자에게로 쏠렸다. 분명히 그들은 우리가 도착하길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은 작은 원을 그리고 앉아서 서로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우리가 들어서자 모두 일어서서 얼굴에 웃음을 띠였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앞으로 나서면서 우리에게 인사를 했다. 전에 만나 본 일도 없는데, 아주 따뜻하게 나를 맞이해 주는 것이다.
여자들은 아름다운 가운 같은 의상을 입고 있었다. 이상야릇하게 반짝이면서 마치 생물체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었다. 모두가 넓은 허리띠를 두르고 있었으나, 이것이 의상의 일부를 이루고 있음이 분명했다. 띠에는 부드럽고 생기 있게 빛을 발산하는 보석들이 박혀 있었다. 아직까지 나는 그런 보석을 지구에서 구경한 적이 없었다. 내가 알기로는 그 보석으로 꾸며진 띠만이 우주세계의 여자들이 몸에 지니는 유일한 장신구였다. 그 보석류에 경탄의 눈길을 보내면서, 나는 이 보석류가 지구의 그것들보다 훨씬 뛰어남은 물론이고, 이 멋진 빛은 그 보석을 몸에 지니고 있는 여성들의 빛남에서 오는 것이 아닌가하고 스스로 물어 보았다. 이 생각은 파아콘이 나중에 시인해 주었다. 여자들의 가운 자락은 손목까지 내려와 있었다. 옷의 목 부분은 둥그랬다. 색은 사람들의 기호에 따라서 달랐지만, 어느 빛이나 부드러운 파스텔 색조였고, 그것이 여기 모인 여자들에게 조화를 이룬 매력을 안겨 주고 있었다. 키가 작은 사람은 150cm정도이고 큰 사람은 170cm까지 되는 듯했다. 모두 늘씬한 몸매로 아름다운 스타일을 하고 있었다. 눈매와 코의 생김새는 고귀했고, 얼굴 모양은 귀여웠다. 살결은 희미한 장미색의 고운 것으로부터, 부드럽고 매끈한 올리브색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가 있었다. 귀는 모두 작았다. 눈은 커다란데다 표정이 매우 풍부하고 그 위에 눈썹이 아름다운 선을 긋고 있었다. 입은 모두 보통 크기였고, 자연색의 빨간 입술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 빨간빛은 살결의 빛에 따라 또 달랐다. 머리카락은 모두 어깨까지 흘러 내려 탐스럽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이루고 있었다. 남자나 여자나 모두 샌들을 신고 있었다. 여자들의 나이는 20세 전후로 보였으나 나중에 파아콘이 내게 가르쳐 준 바에 의하면 그 여자들의 나이는 30세부터 200세까지라고 한다. 여유 있게 흐르는 물처럼 그들의 몸을 감싸고 있는 가운은 여자들의 몸이 완전히 균형을 이루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었고, 나중에 몸에 착 붙는 제복으로 바꾸어 입었을 때는 한 여자여자 모두가 아름답기 그지없는 아담한 몸매를 하고 있음이 뚜렷이 드러났다.
남자들은 눈부실 만큼 흰 블라우스를 입고서 옷깃을 활짝 열어 젖힌 채 있었다. 긴소매를 손목께서 가늘게 묶은 모양이 어딘가 지구의 18세기 남자들이 입었던 의상을 닮았다. 바지도 넓어 우리 지구인의 스타일에 아주 비슷하지만, 아직 구경해 본 일이 없는 부드러운 옷감이었다. 남자들의 신장은 약 150-180cm, 모두 어엿한 체구였다. 체중도 신장에 어울리는 정도였다. 여인들처럼 살빛은 가지각색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한 남자의 살결이 적동색인 데 시선이 끌렸다. 전원이 말끔하게 깎은 머리였으나, 지구에서처럼 머리길이도 고르지 않았고, 커트도 저마다 달랐다. 내가 처음에 만난 금성의 친구 오오손 만큼 긴 머리를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때 비로소 나는 오오손이 특별한 까닭이 있어서 장발을 하고 있음을 알았다. 남자들의 얼굴은 모두 하나같이 미남형이었지만, 지구의 남자들에 비추어 볼 때 별로 다른 점이 없었다. 장담하건대, 그들이 지구인과 뒤섞이면 그들을 지구인이 아니라고 생각할 사람은 결코 없을 것이다. 나이로 봐서 30대 전반을 지난 듯이 보이는 남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인상을 뒤에 가서 파아콘이 정정해 주었다. 그가 말하기로는, 그들의 나이는 지구에서 하는 식으로 따지면 40세에서 몇백 세에까지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인사가 끝나자 우리는 곧 커다란 타원형의 테이블에 둘러앉으라는 안내를 받았다. 테이블에는 투명한 액체가 담긴 글라스가 여러 개 놓여 있었다. 모든 것이 지난번에 구경한 것과 똑같았다. 테이블의 면은 투명했으나, 지구의 유리나 플라스틱과는 투명도에서 약간 달랐다. 테이블 보는 없었다. 깎거나 새겨 넣거나 하는 등의 장식도 하지 않았다. 장식을 필요로 하지 않을 만큼 그 자재 스스로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의자들은 지구의 식당의자를 아주 빼 닮은 형을 하고 있었다. 모두 15개가 있었다. 거기 앉아 있었던 전체 인원의 숫자였다. 나는 주울과 파아콘 사이에 끼어 앉게 되었다. 우리는 글라스에 담긴 음료를 비우도록 권유받았다. 겉보기에는 순 생수(生水)처럼 밝게 보였으나, 맛은 살구 주스와 비슷했다. 달면서, 좀 끈적끈적한 맛이 있었지만 매우 맛이 좋았다. 우주여행자들은 지구에서 사용되고 있는 모든 언어에 통달하고 있었다. 그 방법에 대해서는 지난번에도 설명을 했지만, 그 재빠른 습득속도는 오늘날까지도 경이의 대상이다. 방안에 들어섰을 때, 처음으로 우리와 인사를 나누려고 일어섰던 여자가 이렇게 말머리를 꺼냈다.
「이 우주선은 과학연구소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우주를 여행하는 까닭은 단 한 가지, 우주 그 자체에 일어나고 있는 평상시의 변화를 연구하기 위해서이며, 우주를 돌면서 거기서 부딪치는 여러 가지 행성의 생물이나 상태를 관찰하고 있지요. 그러니까 당연히 여러 가지 말을 배워야 할 필요가 있지요. 우주여행이 현재처럼 완전한 상태에 이르렀음은 이러한 우주선 안에서의 연구결과입니다. 이 사실에 대해서는 금성의 모선에서도 약간의 설명을 들으셨을 줄로 압니다. 그러나 기계설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아직 모를 것입니다. 이 배에서 작동중인 기계장비를 자세히 보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저희들도 그 작용에 대해서 조금은 설명해 드리지요. 우리가 자연력의 이용법을 어떻게 배웠는지, 좀더 자세히 알게 되리라 믿습니다.」
그 여자는 말을 계속하면서, 이 모선도 어느 한 행성에 소속되어 있지 않고, 여러 행성에 공유된 배이며, 여러 별에서 사람들이 올라타서 만인의 행복과 지식을 위해 사용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이 특별여행에서는, 여자들 가운데 세 사람은 지구인이 화성이라고 부르는 행성의 주민이고, 나머지 세 사람을 금성 출신입니다. 보통 세 사람의 토성 여자도 타게 되어 있으나 어떤 사정 때문에 이번에는 참가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토성을 대표하는 것은 남자뿐입니다. 이따금 태양계 밖의 행성에서 남자나 여자가 이 모선 또는 같은 형의 다른 모선에 올라타는 일이 있습니다만, 어쨌든 승무원은 모두 가장 우수한 과학자에게서 고도의 훈련을 받고 있지요.」
마치 앞서 저녁때부터 파아콘과 나와의 사이에서 벌어진 대화가 그 동안 끊어짐이 없이 계속되어 온 것처럼 지구의 인류가 현재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이 화제가 되었다. 여느 때처럼 비난이나 꾸중의 빛은 없었다. 도리어 지구인의 고뇌를 이해하고 동정해 주고 있음이 전체 분위기로 봐서 분명했다. 한 화성인 여자가 입을 열었다.
「당신네들 지구인도 남에 대해서 그렇게 잔인한 태도를 보여주고 싶지 않겠지요. 이는 전에도 말씀 들으신 바와 같이 오로지 자신을 모르는 데서 일어난 일입니다. 이 무지가 당신네들을 <우주>의 법칙에 대해서 눈을 뜨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 <우주>의 일부인데 말이지요. 당신네들의 가정에서는 서로 품고 있는 사랑을 언제나 입 밖에 내면서 확인을 하고 있으나, 당신네들이 품고 있다는 사랑 그 자체가 남을 속박하는 소유욕으로 나타난 데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지요. 이것만큼 속박 없는 사랑과 대립되는 것도 없을 것입니다. 참된 사랑이란 서로 존경하고 믿고 이해하는 것이겠지요. 지구 밖의 세계에서 나타나는 사랑은 절대로 지구에서 잘못 사용되고 있는 그러한 비뚤어진 소유욕을 뜻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사랑이란 <신>에게서 방사되는 것으로서, 그것은 모든 창조물, 그것도 인간을 통해서 다른 만물에서 보내어집니다. 거기에는 전혀 차별이 없지요. 실제로 어느 것에는 가치를 인정하고, 어느 것에는 인정치 않는다는 일은 있을 수 없지요. 하지만 지구에 존재하는 비뚤어진 사랑을 보십시오. 그것은 오로지 지구인이 자신에 대해서나 <성스러운 아버지>에 대해서도 아주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이 무지 때문에 <전쟁>이란 것에 돌진하고, 다른 국민이나 유색인종, 게다가 종교를 달리하는 사람들을 학살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하고 있는 짓이 어떠한 짓인지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요. 우리들 다른 세계에서 사는 주민들에게는 아주 이해하기 힘든 일입니다. 지구인들은 어째서 알지 못하는지요, 서로 살육을 해도 아무런 문제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오히려 자구에 괴로움을 더가져다 줄뿐입니다. 이런 일이 쭉 계속되어 왔습니다. 앞으로도 영원히 계속되겠지요. 지구인의 과학지식은 일반사회와 인간성의 발달과정을 훨씬 넘어서 있습니다. 이 틈을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메우지 않으면 안되지요. 지구인들은 그들이 서로를 겨냥해서 쌓아 올리고 있는 폭탄 속에 얼마나 무서운 힘이 잠재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지각없이 세계적 규모의 대량학살이라는 심연으로 다가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 역시 우리들에게는 전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정말입니다.」
한 남자가 맞장구를 쳤다.
「당신네들 행동은 우리들에게 이해되지 않는 일이 많지만, 한 가지만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당신은 지구에 혈육인 아버지가 계시겠지요?」
「네」
하고 나는 대답했다.
「당신에게 이른바 혈육인 두 아들이 있다고 생각합시다. 그 하나가 무슨 까닭에서인지 당신 앞에 무릎을 꿇고 역시 당신의 아들인 또 하나의 형제를 죽이려고 결심했으니 축복해 달라고 청하면, 제아무리 그가 옳고, 다른 형제가 옳지 못하다고 해도 당신은 그의 요구를 허락할 것입니까?」
내 대답은 뻔하다.
「물론 허락할 수 없지요.」
「그럴 것입니다.」
그는 말을 계속했다.
「그러나 이와 아주 똑같은 일을 지구인은 몇천 년 동안이고 되풀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네들은 모두 각자가 이해하는 대로 <신>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류는 형제애(兄弟愛)를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만물의 <영원한 아버지>에게 요구하는 것이란 뭐냐 하면, 기껏 당신네들 자신이 하지 않으려는 것뿐이지요. 서로 교전상태에 들어가면 지구인은 더럽혀진 기도를 위해 무릎을 꿇습니다. <성스러운 아버지>에게 피를 나눈 형제를 때려눕히고, 심지어는 몰살시키려는 노력을 축복해달라고 빕니다. 우리는 당신네들과는 다른 별의 주민이지만, 같은 인류로서 지구를 분단하고 있는 각 집단을 공평하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우주>에 걸쳐서 작용하고 있는 <아버지>의 법칙을 좀더 잘 알고있으므로 우리는 결코 차별은 하지 않습니다. 이 차별감이야말로 언제나 당신네들을 동란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입니다. 지구의 상황을 보면 우리도 슬퍼집니다. 전 인류의 동포로서 우리는 우리의 손이 미치는 데까지, 또한 우리의 도움을 바라는 데까지 누구나 구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절대로 우리의 생활방식을 지구의 주민에게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사실이지, 지구에는, 아니 <우주> 어디를 가나, 태어나면서부터 악인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당신들의 인생을 지구인은 <산 지옥>이니 뭐니 하고 표현하고 있지만,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탓은 당신네들 자신에게 있습니다. 당신네들의 별도 모든 별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성스러운 창조주>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니까, 그 자체로서는 신성한 것입니다. 만일에 전 인류가 갑자기 지구 표면에서 일소되고, 공생하는 길을 찾지 않은 탓으로 사람들이 가져온 싸움, 괴로움, 슬픔 따위가 모두 사라져 없어졌다면, 지구는 아마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우주>의 모든 것을 형제로 알고 서로 우애로 사는 세계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을 것입니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잘 모른다고 하여, 인간끼리 서로 무시하거나. 상처를 주거나, 죽이거나 할 권리가 주어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당신네들은 해마다 한차례 <인류는 모두 형제>라고 해서 축제소동을 벌이고 <아버지이신 창조주>에 대해서 떠들어댑니다. 그러나 이러한 빛 좋은 선언이 내세운 행동의 실천은 온데간데없이 잊혀지고, 지구의 동포를 한 시각이라도 빨리, 대규모로 불구를 만들거나 멸망시키거나 하는 데 돈과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는 형편입니다. <신>에게 이러한 무자비한 파괴를 위해서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비는 것은 우스운 일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지구의 각 사원에서, 정부 지도자에게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속삭여지는 이러한 기원을 우리는 듣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정신나간 짓인지 당신은 모르겠습니까? 그러나 당신네들은 실지로 자신의 아들들에게는 원치 않았던 일을 <신>에게는 해달라고 빌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떠한 자기기만인지 모르시겠지요. 이는 지구인이 자신들의 <신>의 의지에 반(反)해서하고 있는 많은 일 중의 하나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삶을 살고, 제멋대로 분열되고 돌아가는 한 슬픔은 점점 더 커질 것입니다. 당신이 형제의 목숨을 노리고 있을 때, 그 누군가가 당신의 목숨을 노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 옛날 나사렛의 예수가 말한 이야기는 이 뜻을 가리키고 있지요. 예수가 이렇게 말한 일을 상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마태복음 26:52). 이 말이 얼마나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는 지구의 오랜 인류역사가 증명해 왔습니다.」
그가 이야기를 마쳤을 때, 내 눈앞에는 지구의 현실과 인류에 관한 난제가 끊임없이 어른거려서 지구인으로서, 동포와 자신을 위해 비통한 생각을 금할 수 없었다. 이러한 생각을 할수록, 지구의 현실을 바꾸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는 것이 절실히 느껴졌다. 지구인들은 그들을 움직이고 있는 배후의 진짜 동기를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충심으로부터 참된 자기에 눈뜨고, 개인의 아집과 남보다 우월하려는 욕망을 버리고 자신을 고치려고 마음먹지 않는 한, 파멸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어느 한 사람, 어느 한 국가, 세상의 어느 일부에게만 내가 언급한 바와 같은 상태에 대한 죄를 물을 수는 없다. 또한 어느 한 문명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이 상태를 바꿀 수도 없다. 책임은 저마다 누구에게도 있다. 그러나 누가 남을 강제적으로 딴 사람을 만들 수 있겠는가. 사람을 속박하고 있는 쇠사슬은 몇천 년 동안 쌓이고 쌓인 오해와 분열과 권력욕의 결과인 것이다. 이를 타파하기란 참으로 어렵기 짝이 없다. 이러한 생각을 절실히 느끼면서 나는 절로 <성스러운 아버지>에게 겸허한 몸가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성스러운 아버지>는 지구의 난제를 이해하고 있는 다른 우주세계의 자식들을 우리에게 보내서 사랑과 연민의 손길을 펼치게 한 것이다. 그들은 강제적으로 우리 지구인을 변화시키거나, 적극적으로 간섭을 할 수는 없어도, 우리들 가운데 이를 받아들이려는 생각이 있는 사람을 도울 수는 있다. 우리는 서로 적대해서 싸우거나, 이로 말미암아 더욱 사분 오열하는 대신에, 힘을 모아 단결해서 보다 나은 세계를 지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이 같은 변혁이 일어나기에는 그 전에 숱한 시간의 경과가 필요함을 나는 통감했다. 인류는 괴로움과 슬픔을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일 만큼 성장해 왔지만, 이제까지의 경위에서 벗어나려고는 결코 원치 않기 때문이다. 생각에서 깨어나면서, 나는 여자들이 자리에서 일어서 있음을 알았다.
「조종사복으로 갈아입어야 하거든요.」
하면서 상냥스러운 검은머리의 여자가 말했다.
「다음에는 기계장치실에 가기로 되어 있습니다. 거기서 여러 가지를 보여 드리지요. 놀라실 거예요.」
여자들이 나간 뒤에 나는 그 아름다운 방안을 차분히 관찰할 수가 있었다. 눈앞의 벽에는 큼직한 천체도가 붙어 있다. 그것은 태양을 중심으로 하는 태양계의 12개의 행성을 보여 주고 있었다. 태양계 주위에는 다른 태양계의 항성과 행성이 함께 그려져 있어, 그 도면은 내게는 아주 신기한 것이었다. 우주 전체에 걸쳐서 각 행성간에는 우주에 존재하는 각종 대기의 상태가 자세히 기입되어 있었다. 이것은 지구인인 우리들로서는 전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이 천체도의 지식은 우주여행의 안전을 기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는 설명을 들었다. 이 도면에는 여러 가지 기호가 표시되어 있었으나, 어느 하나도 해독할 수가 없다. 이 도면의 목적은 단지 지구에서 말하면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들이 휴대하는 여행용 도로 지도 같은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보았다. 그들 중 한 사람이 그렇다고 말해 주었다.
이 거대한 지도 저편에, 같은 벽이지만 라운지 뒷면 가까이에 이 우주선 내부를 그린 정밀한 도면이 있었다. 거기에도 나로서 전혀 알 수 없는 각종의 기호가 표시되어 있었다. 다른 벽에는 이 우주선이 방문했던 여러 행성의 풍경이 그려져 있었다. 액자에 끼워진 그림이 아니고 오히려 벽화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림이 매우 생생하게 그려져 있기 때문에, 풍경이 그대로 그 자리에 존재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이 인상은 내가 깨달은 바이지만, 그들의 회화나 초상의 어느 것에나 해당되는 특징이다. 이에 대해서 이러한 설명이 있었다. 우주인은 무슨 일을 하든지 온 정성을 그 일에만 쏟기 때문에 실지로는 그 일이 그들의 생명력의 파동이나 개성과 일체가 된다는 것이다. 이 풍경은 지구의 경치를 그린 회화나 사진과 매우 흡사했다. 산도 있고 골짜기도 있고 작은 내라든가 넓은 바다도 있었다.
여섯 명의 여자들이 조종사복으로 갈아입고 돌아오는 것이 보였다. 여자들이 들어오자 남자들은 테이블에서 일어났고 그중 한 사람이 말했다.
「이제 연구실로 가십시다.」
우리는 함께 엘리베이터로 갔다. 전에 타고 온 것이었다. 우리가 가까이 가자 문이 소리없이 열렸다. 내가 보고 있어서 알지만, 아무도 단추를 누르지를 않았었다. 이것은 현대의 광전지(光電池)의 작용과 비슷했다. 우리 열 다섯 사람이 엘리베이터에 들어서자 주울이 운전을 했다. 그는 아까 언급한 조종반의 반대편에 있는 별개의 조종반 앞으로 가서 거기서 단추를 하나 밟았는데, 엘리베이터는 소리없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우리가 남겨 둔 정찰원반은 아직도 그 자리에 있었다. 아래로 내려감에 따라 선체의 후미 저편에 펼쳐져 있는 광대한 공간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 구역의 중앙부를 지나서, 엘리베이터가 오르내리는 수직공간과는 직각으로 두 개가 한 조가 된 레일이 뻗어 있었다. 거기에서는 네 대의 정찰원반이 대기하고 있었다. 크기로나 형으로나 지구에서 우리를 실어 온 원반과 같다. 여기가 격납고임에 분명했다. 이 거대한 모선이 행성 사이를 날고 있는 동안, 정찰원반은 여기서 쉬고 있는 것이다. 원반의 바깥 가장자리를 따라서 레일보다 조금 낮은 위치에 폭이 1.8m 가량 되는 좁은 통로가 나 있었다. 그 통로의 바깥은 벽이었다. 우리는 라운지로 통하는 층에서 아래로 두 개의 발코니를 통과했다. 발코니 하나하나는 이 거대한 모선의 각각 다른 갑판으로 이어지고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라운지로 통하는 갑판에서 세 번째 층의 발코니에 이르렀을 때 엘리베이터는 멈추었다. 그 커다란 수직공간의 바닥에서 올려다보니까, 하나, 둘, 셋‥‥ 이 모함에는 일곱 층의 갑판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부드럽게 멈추자 동시에 난간이 흔들거리며 열렸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오면서 안 일이지만, 한 조의 레일은 우주선의 선수(船首) 바닥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 레일은 우리의 정찰원반이 착선(着船)했을 때의 레일과는 V자형으로 교차하고 있었다. 모선을 떠나 지구로 돌아갈 때, 이 레일을 타고 내려가는 것이구나 생각했다. 이 사실로 이 구역 전체가 이착선(離着船) 터널과 수직공간과 정찰원반의 격납고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다. 같은 부분의 어딘가에-격납고에 인접하던가 혹은 떨어진 곳에-정비·수리공장도 있을 것 같고 또한 그 너머에 선수 부분의 조종실이나 승무원실도 있을 것이 뻔하다. 나는 이러한 거대한 모선에는 선수와 선미 양쪽에 조종실이 있다고 듣고 있었다. 우리는 이때 엄청나게 큰 방으로 안내되었다. 여기가 연구실이라는 것을 알았다.
[출처] UFO와 우주법칙 1|작성자 와호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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