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위험한 산엔 무슨 일이지?"
'그러는 당신들은 무슨일인데?'
이 말을 간신히 삼킨 페트릭은 '상대는 기사다.기사'라고 되뇌었다.
"도와주셔어 감사합니다. 괜한 신경을 쓰게 만들어 드린 것 아닌지 모르겠군요."
한 마디로 안해도 될 짓 했다는 말.
페트릭답지 않게 뾰족한 말투였다. 그런 모습에 린이 고개를 기울였다.
페트릭 자신만 있다면 상관이 없지만 자신의 단장은 인간이다. 이런 부류의 이들은 인간들이라면 무조건 천하다고 보는 놈들이었다. 디올도 하프엘프. 자신의 단장과 디올이 받을 무시를 생각하니 점점 불쾌해지는 페트릭이었다.
기사들의 일행이 더 있었는 지 한 무리가 나타났다.
"무슨 일인가요. 기사단장."
무리 가운데 마차에 있던 아름답게 생긴 여인이 창문을 열고 물었다.
구불거리는 금발에 푸른 눈동자는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하지만 린들은 이런 험한 산에 마차를 타고 온 여자를 보며, 알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 오크떼를 만난 여기 있는 자들을 도와주었습니다."
"어머. 그럼 이들은 우리의 도움을 받은 건가요?"
재수없다. 도움을 요청한 적도 없었고 자신들이 처리 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자신들이 도왔다는 듯, 은인처럼 행동하는 이들이 마음에 안든 일행들...
과민반응 일지도 모르지만, 이들과 되도록 어울리고 싶지 않았다.
"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럼 다음에 만난다면 이 은혜를 값을 기회가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그럼 이만..."
재빨리 인사를 하고 자리를 뜨려 했던 일행은 재수없는 여자의 말에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어머. 이 산맥은 위험하죠. 오크보다 더 강한 몬스터들도 많답니다. 저희와 같이 가시는 편이 더 안전하실거에요. 저희 기사들에게 오크는 아무것도 아니죠."
우리도 오크는 식후운동도 안된다는 말이 입 바로 앞에까지 나왔지만 꾹 참았다.
기사들을 데리고 다니는 것으로 보아 귀족영애 같았다. 이런 자존심 센 자들을 건드린다면 골치 아파질게 분명했다. 가디언에게도 무식하게 나가는 귀족들이 있는데, 이런 귀족들은 알아서 피해야 한다.
그리고 인물이 엄청난 다뷰안과 디올에게 보내는 눈빛이 심상치 않은 것으로 보아 쉽게 놔주지 않을 것 같았다. 페트릭이 린을 바라보자 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죄송하지만 신세 좀 지겠습니다."
기사들과 공작영애는 린에게 허락을 받는 듯한 페트릭의 모습에 의아해 했지만 곧 잘못 본것이라고 판단했다.
"호호호. 전 토반 공작가문의 토반 가델피시아 카나리아라고 한답니다."
꼴에 공작영애다.
린은 오만 놈이 다 공작이라고 생각하며 제국이 망하지 않은 것에 신기해 했다.
하지만 사실 토반 공작은 현명하고 온화해 국민들에게 평판이 좋은 자였다. 그런 훌륭한 공작 밑에 딸은 왜 저 모양인지...세간은 공작의 자식복 없음을 불쌍히 여겼다.
"어머. 그럼 가디언들이시라구요? 어깨에 달고 있는 고리는 단을 상징하는 것 아닌가요?"
특히 다뷰안에게 관심을 보이며 계속 말을 거는 공작영애. 그래도 아는 건 있는지 단원들의 어깨에 달린 황금빛 고리를 보며 말했다.
"네. 부족하지만 단원으로 있습니다."
페트릭이 정중하게 대답하자 영애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럼 단장이 누구란 말인가? 내가 알기로는 다이아급 가디언이 단장을 맡는다고 하던데."
단장이 아는 척을 하며 끼어들자, 린들은 속으로 욕을 했다. 그딴 건 몰라도 되 임마!
페트릭이 흘끗 린을 보았지만 린은 고개를 작게 저었다.
이들에게 린이 단장이라는 것을 말하면 믿지 않을 뿐더러 더 재수없게 굴 확률이 높았다.
린은 후드를 걸치고 있어서 단장이라는 표시를 나타내는 고리는 숨겨져 있었다.
그러자 페트릭은 다뷰안을 가리켰다.
"저 분이 저희 단장님이십니다."
졸지에 단장이 되어버린 다뷰안. 다뷰안도 겉에 옷을 하나 더 입고 있었기에 고리는 보이지 않았다.
다뷰안이 페트릭을 살짝 째렸다. 하지만 영애를 보며 다시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에 페트릭은 왠지모를 한기가...
"엘릭스 다뷰안이라고 합니다. 공작영애."
다뷰안이 깔끔하게 예의를 차려 말하자 영애의 눈이 빛났다.
"실력이 대단하신 것 같은데 직위를 받지 않으신 건 가요?"
"네. 직위를 받을 만한 실력은 되지 않습니다."
공작영애는 다뷰안이 귀족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대하기 쉬워졌는지, 아예 따로 곁에 두고 말을 하고 있었다. 가끔 디올도 쳐다보았는 데, 그 눈빛은 노예시장에서 괜찮게 생긴 노예를 보는 눈빛이었다.
공녀의 눈이 디올을 향하자 디올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도 공녀의 눈이 의미하는 뜻을 읽을 수 있었다.
수치감에 입술에 피가 나도록 깨무는 디올의 앞에 서는 자가 있었다. 린이 자리를 옮겨 공녀의 시선에서 디올을 가린 것이다. 그러자 공녀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단장님.."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디올에게 린은 희미하게 웃어보였다.
"쉿. 괜찮아. 난 내껄 누가 음흉하게 보는 건 용서 못하거든."
장난스럽게 말하는 린의 모습에 디올이 글썽거렸다.
"에휴. 넌 너무 마음이 약해..."
디올을 자신의 몸으로 가린 린을 보며 공녀가 날카롭게 말했다.
"인간을 데리고 다니시다니, 단장님은 마음이 너무 넓으신 것 같네요. 시중드는 아이로 두셨나요? 후훗. 자상도 하셔라. 분명히 저 계집이 무릎꿇고 빌었겠죠? 단에 들어가는 것은 인간에게 큰 영광일테니까요."
공녀의 목소리는 다른 기사들에게까지 들렸고 그 말을 들은 기사들을 린을 쳐다보았다.
단원들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공녀 옆에 있던 다뷰안만 재빨리 표정관리를 했을 뿐. 그러나 그 안의 살기는 감추지 않았다. 그레이와 미뉴아는 뛰쳐나가려 했으나 린이 눈으로 경고를 보내자 제자리에서 씩씩거렸다.
등 뒤의 디올의 행동도 제지한 린은 그들에게 전음을 보냈다.
'함부로 움직이지마. 난 인간이야. 이 곳에서 이들이 하는 행동은 당연한 것. 이런 상황에 마주칠 때마다 흥분할 건가?'
린의 따끔한 말이 머리속에 들리자 그들은 겨우 진정했다.
그러나 그들은 린이 동시에 여러명에게 전음을 보냈다는 사실은 알아 채지 못했다.
단원들의 살기를 느끼지 못한 공녀는 계속 말했다.
"저도 제가 키우는 인간아이가 있는데...피 흘리며 죽어가던 아이를 치료해 주었답니다. 호호호... 제 딴에는 은혜를 값는다고 얼마나 노력하는지..."
린이 인간이라는 말에 공녀 뒤쪽을 보자 12살 쯤 되었을까...작은 소녀가 표정도 없이 서있었다. 검은 머리의 주홍빛 눈은 어딜 보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제대로 먹지도 못했는지 마른 몸으로도 꼿꼿하게 서있는 소녀의 모습에 린은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공녀님."
허리를 숙이며 린이 말하자 공녀는 거만한 자세로 눈을 깔았다.
"왜 그러지?"
다른 이들도 린의 행동을 궁금해 했다.
"부탁이 있습니다."
"부탁을 하려면 후드부터 벗어야 하는 것 아닌가? 예의도 모르는 것이구나."
그러자 린이 후드모자를 벗었다. 결 좋은 백금발과 하얀 얼굴이 드러나자 기사들이 감탄했다. 그리고 기사단장의 얼굴이 묘하게 변했다. 예쁘게 생긴 린에게 관심을 드러내는 기사들을 보며 공녀는 날카롭게 말했다.
"그래 부탁이 뭐지?"
"공녀님이 기르고 계시는 저 소녀와 같이 있고 싶습니다."
"어째서?"
"같은 인간을 만날 기회가 적고, 저와 같이 공녀님의 은혜를 입은 아이와 대화를 해보고 싶어서 입니다."
허리을 숙이며 말하는 린에게 공녀는 은혜를 베풀 듯 린의 부탁을 허락했다.
"하해와 같은 은혜 감사드립니다."
그러곤 린은 소녀를 데려갔다.
"단장님?"
소녀를 데리고 돌아온 린을 보며 디올이 의문을 표했다.
그러나 린은 웃기만 했다.
"안녕?난 린 엘류시아라고 한단다. 린 언니라고 불러. 네 이름은 뭐니?"
그러나 소녀는 표정없는 얼굴은 공허하기만 했다.
"음. 말을 하지 않아도 상관없어. 말을 하고 싶을 때 가르쳐주렴. 난 너가 좋거든."
예쁘게 웃으며 말하는 모습에도 소녀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나 린은 신경쓰지 않았다.
그 이후로 린은 소녀를 챙겨주었다. 엄마처럼 음식을 챙겨주기도 하고 잘 때도 옆에서 잠이 들때까지 토닥여 주었다. 소녀의 반응을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 주기만 했다.
그 이외의 일은 기사단장이 추근거린다는 것 뿐. 자신의 시녀가 되라고 은근히 말하는 단장의 눈빛은 징그럽기 짝이 없었다. 끓어오르는 살기를 린은 필사적으로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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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분입니다. 오늘 올리고 내일은 쉴려구요...
즐거운 주말 되세요^^
첫댓글 작가님도 즐거운 주말 되셔요~ ㅎㅎ
후후.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시고 또 재밌는 글 올려 주세욤ㅎㅎ
기대에 보답할 수 있도록 노력할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