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30장 1~11절/징계후에 구원(324/276)
예레미야는 유다가 바벨론을 섬겨야 살 길이 열린다고 선포하였다. 이러한 선포는 여호야긴 왕이 바벨론으로 귀족들과 끌려간 후에 더욱 강하게 드러났다. 그러나 유다는 지금 자기의 나라의 왕과 귀족들을 잡아가고, 성전의 기구들도 약탈해 가고, 더욱이 나라를 멸망시킬 것 같은 바벨론을 섬기라는 예레미야를 통해서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감정적으로 도저히 받아 들일 수가 없었다. 아무리 그 말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이미 감정은 바벨론을 원수처럼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죽더라도 바벨론에게 대항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치사하게 바벨론을 섬기면서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때에 거짓 선지자인 하나냐가 나타나서 예레미야의 말을 틀리고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말씀은 2년이 지나기도 전에 잡혀 갔던 사람들은 돌아오고 성전 기구들도 모두 돌아오게 된다고 선포했다. 백성들은 하나냐가 선포한 2년이라는 말에 귀를 기울이며 예레미야의 말을 완전히 외면해 버렸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 하나냐는 2년은 고사하고 2달 만에 예레미야가 선포한 대로 죽고 말았다. 그리고 예레미야는 포로가 되어 끌려 간 사람들에게 거짓 선지자들의 말에 미혹되지 말라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70년이 지나면 돌아오게 하겠다고 말씀하신 것을 전하면서, 그 땅을 위해서 기도하고, 삶의 터전을 일구며 살라고 하였다(29:1~14).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또 다른 절망이 찾아왔다. 하나님께서 귀환을 약속하신 것은 좋은데 그 약속이 70년 후에 이루어진다면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냐라는 것이다. 70년의 세월이 흘러가면 지금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단 한 사람도 살아남아 있을 사람이 없는데,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다.
70년의 세월이 지난 다음에 회복될 것이라는 말을 듣고 다시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다시 말씀을 주신다. 하나님은 분명히 돌아오게 하신다는 것이다(2,3). 이렇게 돌아오게 해 주겠다고 약속을 하지만 포로가 되어 끌려간 사람들은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이렇게 반문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 포로의 시간이 너희에게는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포로의 시간은 공포의 시간이고, 두려움의 시간이고, 해산하는 여자가 얼굴이 겁에 질려 새파래지는 것과 같은 고통의 시간이 될 것을 말씀하신다(4~8). 그러나 이 고통의 시간을 지나가게 하시면서 하나님은 그때에 이방인의 멍에를 완전히 꺾어 버리고 다시는 이방인을 섬기게 하지 않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다윗을 왕으로 섬기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9).
그러면 이 약속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성취가 되었는가? 돌아올 때 이스라엘과 유닥 함께 돌아왔다. 그리고 이들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70년이 될 때에 성전을 세우면서 완전히 회복이 되었다. 그러면 이방인을 섬기는 자리에서 완전히 해방이 되었는가? 그렇지 않다. 돌아와서 성전을 세웠지만 여전히 이들은 이방인을 섬기고 있었다. 아직 바벨론은 건재하여 섬기고 있었고, 그 이후에 바벨론이 망한 다음에 다윗이 왕으로 등극하지 않았다. 이스라엘 나라를 세우고 왕관을 쓰고 합당하게 왕권을 행사하는 왕은 등장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헬라, 로마로 이어지면서 이방인들의 섬기면서 살았다. 그러면 하나님의 약속은 실패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방인을 섬기는 자리에서 왕 다윗을 섬기게 하시겠다’고 하셨는데, 그 왕 다윗이 누구인가 하는 것을 먼저 바르게 해석을 해야 한다. 다윗은 이미 죽은지 오래다. 다윗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태어나기 수백년 전에 벌써 고인이 되어 버린 사람이다. 그렇다고 다윗이 백성을 다스리겠다고 다시 살아날 리 만무했다. 그러기에 여기에서 다윗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선포한 그 말씀을 완전히 이루실 어떤 다른 존재로 보아야 한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다윗을 대신할 어떤 존재를 메시아, 그리스도라고 부르면서 기다렸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오게 되면 그를 통하여 세워지는 나라는 어떤 방해도 장애물이 되지 않아서, 어느 곳에 있든지 자신의 백성을 찾아서 불러올 것이다(10). 도대체 이러한 일을 행하실 구원자는 누구란 말인가? 바로 하나님의 독생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세우고자 하는 나라는 혈통적으로 세워지는 나라가 아니라, 온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 사함 받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거하는 나라를 세우고자 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 나라에서는 ‘태평과 안락을 누릴 것이며 두렵게 할 자가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이 주시는 태평과 안락은 세상적인 것이 아니다. 사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세상나라 사람들이 부와 사치와 명예를 있는 대로 누리면서 살 것이다. 그러니까 세상적인 부와 행복에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아니라, 오히려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는 앗수르와 바벨론이 누리고 있었다. 반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고통과 있는 것마저 때로는 빼앗기는 과정을 겪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에서 많은 것을 가졌다고 해도 그가 평안과 안락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참된 평안과 안락을 누리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거할 때이다. 그때만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평강과 안락을 누리게 된다. 그리고 그 평강과 안락을 누릴 때 하나님의 백성은 징계를 받으면서 누린다(11). 하나님은 하나님의 법에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은 징계하시면서 무죄한 자, 거룩하고 의로운 자로 만들어 가실 것이다. 그러나 악한 자는 하나님의 징계가 그들에게는 형벌이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는 영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