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의 두레박 셋
상상相相 속에 살고 있는 나
혜성 / 사교과(3학년)
어린 시절 나는 부처님과 은사 스님의 정성스러운 보살핌 아래 따뜻하고 편안한 환경에서 성장해 비교적 이른 나이에 불법문중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출가 후 대중처소에서의 행자생활과 운문사 강원에서의 각종 습의를 익히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서당 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인생의 전부를 절에서 보낸 나에게 스님으로서 앉고 눕고 걷는것은 자연스러운 행동들이었다. 하지만 마음은 아직 그렇지 못했던 탓일까. 대중생활을 거듭할수록 가슴 속 어딘가 이름 모를 답답함은 깊어만 갔다.
운문사 입방 첫날, 수많은 대중 스님에 당황도 잠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는 일념으로 실수 연발인 서로를 도듬어 주며 철을 거듭하다 보니 어느새 사교가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운문에 물들어 여유가 생겼음에도 밖으로만 시선을 두었던 나는 '그렇게 말하면 안 돼, 그렇게 행동하면 안 돼' 라는 말을 하는 횟수가 늘어갔다. 억눌려 있었던 업들이 꿈틀대기 시작했던 것이다.
시작은 도반을 위한 표현이었을 내 말들은 어느덧 화살이 되어볐고, 도반을 위한 마음이었을 내 행동들은 타인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나라는 상을 더욱 견고하게 했다. '왜 나의 마음을 몰라줄까? 어떻게 저렇게 행동할 수 있지? 등의 수많은 번뇌는 그렇게 나의 지난 사집 여름철을 길고도 깊은 고뇌의 시간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혼자서 괴로워하던 어느 날, 이런 나를 안타까워한 한 도반 스님이 넌지시 말헸다.
"혜성 스님! 다른 사람 부처님 만들려고 하지 말고, 혜성 스님이 부처님 되어 보는 건 어때요?"
얼굴이 화끈거리고 가슴이 저릿하며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그렇다. 사실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면 나의 괴로움은 밖을 향한 불만족에서 비롯되었고, 그리고 그 기준엔 항상 '늘 최선을 다하는 혜성' 이라는 상이 있었다. 그리고 또 화를 참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실망하며 두 번째 화살을 일부러 맞는 일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었다. 나 자신의 무자비함을 타인의 잘못으로 돌리며 제 스스로 빚어낸 상상相相의 바다 속에서 길을 잃고 표류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무엇에 그토록 열심었던 걸까/ 이제까지 내가 해 왔던 노력은 과연 바른 노력이었나?'
길고 깊은 고뇌 끝에 나의 노력은 시작부터 옳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는 데 이르자, 나와 남을 함께 태웠던 분노의 눈물은 참회의 눈물이 되어 얼룩진 마음을 씻어내었다. 그리고 떠오른 어른 스님께서 주신 기억 속 짧은 편지.
"매일 매일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좋은 삶을 만드는 방법이다.
나의 바른 모습은 나를 이롭게 하기도 하지만 남도 바른 삶을 이끌게 된다.
오늘을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이다."
나만을 위한 노력이 아닌 나와 남을 모두 이롭게 하는 올바른 노력을 지어야지. 밖으로만 맴도는 내 마음을 낚아채 더 이상은 나의 상상들에 속지 말아야지. 그렇게 이 귀한 오늘을 살아내야지... 그러다 보면 마음까지도 출가한 수행자가 되어 부처님과 조금이나마 비슷하게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 할 수 있지 않을까? 수 없는 다짐들로 두 손 모아 부처님께 발원해본다.
이 글기 불기2567년 雲門지 여름호에 있는 글을 퍼왔습니다.
그리고 운문사 홈폐이지 계관운문에서 더 자세히 볼수 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이 사무실에 있다가 요즘은 현장에도 나가고 있습니다.
사리암에 글 올리는것이 조금씩 늦어지고 있습니다. 조금 이해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당분간은 늦어질것 같습니다. 다시 사무실로 복귀하면 나아질것입니다.
운문사 사리암 도반 법우 여러분 나반존자님의 가호 가피 많이 많이 받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첫댓글 가을 단풍 국화 모두 예쁘네요 늘 소식 전해주심에 감사합니다 _()_ 나반존자 나반존자 나반존자님 감사합니다 ()()()
가을 🍂 글과 사진 반갑게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반존자 나반존자 나반존자님 ()()()
나반존자님 나반존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