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홍모 목사
오늘은 한국교회가 지키는 어린이 주일입니다.
어린이 주일이 되면 우리는 어른이면서도 마치 내가 어린이가 된 기분이 되고,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느낌을 주어서 얼마나 좋은 날인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어린이주일을 맞아 우리 교회에서 자라나는 모든 어린이, 엄마 품에 안겨있는 갓난아기로부터 유아부, 유년부, 소년부의 어린이들과 중고등부의 청소년들 모두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당신에게 나아오는 모든 어린이들을 품에 안으시고 머리에 손을 얹어 축복하셨습니다.
어린이들이 조금 소란스럽다고 제자들이 나무라고 꾸짖을 때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어린이들은 그들의 부모님들과 선생님들에게 100% 의존 관계에 있습니다. 스스로 자립하지 못하고 스스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부모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면서 살아가는 것처럼 우리 모든 사람들도 우리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면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어리다고 하여 무시하거나 경시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누구나 영접하시고 환영하시고 만나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어른들이나 어린이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의 최종의 목표는 하나님의 나라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에서 이미 이루어져 우리 성도들의 마음 속에 있으며, 우리의 삶을 마치는 날에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거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가장 먼저 우선해야 하고 최후 최종의 목표가 되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인 것입니다.
오늘은 어린이주일로 어떤 말씀을 가지고 설교할 것인가 생각하다가 잠언2:1-9의 말씀을 중심으로 하여 "지혜로운 어린이로 키우자"는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지혜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이냐 하는 근본적인 문제와 지혜로운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는 방법의 문제와 지혜로운 사람의 결과는 어떻게 되느냐 하는 결론적인 문제를 가지고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별로 지혜롭지 못한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으로 키우라고 말씀드리기가 송구스럽지만, 하나님의 말씀이요, 명령이기에 선포하는 것입니다.
아라비아의 한 왕에게 '피에로'라는 지혜롭고 충성스런 하인이 있었습니다. 그만 피에로가 왕에게 용서받지 못할 큰 실수를 했습니다. 왕은 당장 참수하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자기를 위해 충성스럽게 일한 것을 생각해서 왕은 마지막으로 선심을 베풀어주기로 했습니다. "이제까지 너의 충성에 대한 보답으로, 죽는 방법에 대해서만큼은 너의 소원을 들어주겠노라. 네가 결정해라"고 하였습니다. 한참 있다가 피에로가 대답을 하였습니다. "왕이여! 저의 소원은 늙어서 죽는 것입니다" 어쨌든 그것도 죽는 방법 중에 하나였습니다. 왕은 그의 지혜를 칭찬하고 그를 늙어 죽을 수 있도록 풀어 주었습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대답이었습니다. 이러한 삶의 지혜란 대단한 위력을 가지는 것입니다.
지혜는 한 생명을 살리기도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보람을 누리며 승리할 수 있습니다. 지혜는 우리에게 풍성한 생명을 주고 능력을 주며 복을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요즈음 우리 사회는 영적인 빈사상태에 들어가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물질만능 사회, 황금제일주의에 빠져 인명을 경시하고 있습니다. 지난주간 우리는 경악을 금치 못할 사건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돈이라는 것이 무엇이라고 그렇게 아까운 여성들의 생명을 죽인다는 말입니까? 또 이 세상을 헤쳐나갈 힘이 좀 부친다고 하여 동반 자살하는 이들이 많아졌습니다. 이렇게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가 무서운 독버섯처럼 번져나가는 것이 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정치하겠다고 하는 이들은 이러한 정서적인 공항 상태에 빠진 현대인들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꿈을 심어줄 수 있어야 하는데 자기가 나서면 다 잘 살게 해주겠다고 합니다. 잘 사는 것보다는 정의로운 사회, 건전한 시민정신을 가진 사회, 세계 어떤 사람들보다 정직하게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찾아야 합니다. 젊은이들에게 꿈과 소망을 심어주고 정직한 사람들이 더 잘 사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한 본보기가 되어야 하는데 성실은 뒤로하고 요령만 보여주는 것 같아서 걱정이 됩니다.
잠언의 말씀은 지혜자의 권면입니다.
솔로몬의 잠언, 르무엘의 잠언, 여러 지혜로운 현자들의 가르침을 모아놓은 것이 잠언이라는 책입니다. 그 옛날에 이런 지혜로운 고견들을 말하고 가르쳤다고 하는 것은 인류의 문화유산이요, 하나님의 감동으로 주신 교훈의 말씀들입니다. 잠언이란 어떤 사건이 아닙니다. 어떤 줄거리가 있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잠언은 어떤 문단으로 나눌 수 있는 긴 설교도 아닙니다. 아주 짧고 짧은 한 두 마디의 격언과 같은 간결한 교훈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잠언의 앞 부분에서는 지혜에 대하여 좀 길게 설명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과 같은 것이 그런 유형의 말씀입니다.
1. 지혜가 무엇입니까?
지혜란 히브리어로 "머쉴레"라고 하는데 그 뜻은 "분별력이 있다. 사려 깊다, 신중하다, 사리에 맞다"는 말입니다. "호크마"라는 말도 자주 쓰입니다.
잠언에 나오는 지혜와 명철 그리고 지식은 거의 같은 의미를 가진 것으로 강조하는 용법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표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진리와 의에 건전한 판단력이 겸비된 것을 말합니다. 지혜는 우리가 찾고, 연구하고, 배우는 지식이나 능력 이상입니다. 지혜가 스스로 존재합니다. 지혜란 "건전한 판단력과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지혜란 인간의 통찰력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지혜를 의인화하여 창조주 하나님의 의지와 일치되는 삶의 방식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지혜라는 말이 히브리어나 헬라어에서 여성명사이기에 한 여인으로 의인화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어보면 지혜가 한 인격체처럼 표현되어 많은 사람들을 오라고 부르며 손짓하고 있고 이것저것을 하라고 명령하기도 합니다. 이 지혜가 잠언에서는 인격화되어 있습니다. 지혜가 스스로 "나"라고 말하며 하나님처럼, 부모처럼, 스승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지혜가 길거리에서 부르고, 광장에서, 길모퉁이에서, 성문 앞에서 부른다고 합니다.
유대교에서 지혜를 토라 즉 율법과 동등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후대에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지혜를 본래부터 신적인 존재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지혜를 나타내는 전문적인 용어로 "휘포스타시스" 곧 본질이라는 말로도 이해하였습니다. 지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재가를 받은 신중함과 통찰력이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중에 오는 은사인 것입니다.
이러한 지혜는 어떤 특수한 계층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희한한 종교적인 체험을 하신 분들이 독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지혜의 소중함을 알고 지혜를 사모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경청하고 묵상하고 찾아 얻으려는 이들이 간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혜가 무엇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입니다.
잠1:7-9에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사슬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잠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지혜의 원천이 되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아는 것은 지혜를 얻는 비결입니다. 하나님은 공경하고 두려워할 분이시지만, 세상의 다른 것을 두려워하고 공경한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 앞에서 우상숭배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기리고 높이는 그 분의 뜻을 준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믿는 사람이어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예배드리는 것은 우리의 인생을 풍성하게 하는 아주 중요한 시간입니다. 이 시간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예배드리면서 귀한 생각들이 떠오르고, 진하게 느껴져 오고, 아, 이것은 나의 삶에 적용하여야겠다고 생각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잘 정리하고 모아서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예배드릴 때에 우리의 마음이 정결해지고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말씀을 경청하게 되고 헛된 욕심도 내어버리게 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을 하나님의 원하시는 관점으로 해석하고 세상을 판단하게 됩니다. 그런 모든 것이 예배를 통하여 얻어지는 유익인 것입니다. 예배를 통하여 얻는 유익은 한 주간을 승리로 이끌어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매주일 예배를 귀하게 여기고 빠지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마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흉악하여도 우리의 몸을 죽일 수 있을 것이지만,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사람의 몸과 영혼을 함께 멸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경외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하니 공포의 대상으로 알고 무서워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분을 높여드리고 섬기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할 때 거룩한 두려움이라는 말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람이란 사람답게 살기 위하여 인생의 도리에 대하여 배워야 합니다. 학교교육이 입시 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서 윤리를 가르쳐야 하고, 인성교육에 힘서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 청년이 미국의 유명한 대학을 졸업하고 국제적인 기업에 취직을 하려고 했는데, 보기 좋게 떨어졌습니다. 이 청년이 사회 봉사한 것이 한 건도 없고, 오로지 공부만 한 것이 낙방의 원인이었습니다. 헌혈도 한번 아니하였고, 고아원에 다녀온 적도 없고, 누구를 도와준 적도 없습니다. 그래서는 이 사람은 인간이 되지 못하였다고 본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배우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강남에서는 초등학생이 학교에서 돌아와서 과외 선생님들이 오는데 9명이 요일별로 시간별로 오는 것입니다. 영어회화는 가장 기본이고, 영어작문, 수학, 과학, 영재 프로그램, 피아노, 독서지도, 뇌 호흡, 미술, 컴퓨터, 운동도 하는데 남자는 축구, 여학생은 수영 쉴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의 교육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하여 배우는 것이 아니라, 남보다 출세하고 더 잘 살기 위한 교육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 사회에 일어나고 있는 온갖 부정과 부패는 이렇게 조금 더 잘살기 위하여 요령에 밝고, 악한 술수도 마다하지 않고, 꾀만 늘어가는 것입니다. 인생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인간답게 살아가느냐 하는 것은 다 성경에서 배워야 하고, 그것은 우리에게 지혜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가장 귀한 보석이라고 하면 은, 금과 진주가 있었습니다. 전에는 은이 금보다 더 비싼 적도 있었다고 하는데 은은 흔해졌고, 금이 보존과 지불의 가치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진주는 보면 볼수록 그 빛이 영롱하고 찬란하여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그렇게 귀한 보석들도 이 세상에서는 귀하다고 하지만, 사람의 영혼을 살릴 수 없습니다.
귀한 보석을 몇 점 가지고 있다고 하여도 그것이 우리의 심령에 평안을 주고 영생을 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가장 값진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요, 믿음이 소중한 보배인 것입니다.
엡5:15에 보면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고 하셨습니다. 세상 많은 사람들을 보면 "지혜 있는 자"도 있고 "지혜 없는 자"도 있습니다.
시편 14:1에 보면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는 사람이기에 생각이 부패해지고 그의 행실이 나빠서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2. 지혜를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입니까?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하셨습니다. 야고보 선생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약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 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는 당신의 피조물들에게 널리 개방되어 있습니다.
1-5에 "내 아들아 네가 만일 나의 말을 받으며, 나의 계명을 네게 간직하며, 네 귀를 지혜에 기울이며 네 마음을 명철에 두며 지식을 불러 구하며 명철을 얻으려고 소리를 높이며, 은을 구하는 것 같이 감추어진 보배를 찾는 것 같이 그것을 찾으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나의 말"이라고 하는데, 현자의 말, 현자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나의 말은 다시 나의 계명이라고 하셨으며, 계명은 다시 지혜라는 말로, 명철이라는 말로, 지식이라는 용어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시 보배라는 말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와 지식의 근본이라고 하셨는데,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요, 계명을 지키는 것이요, 그것이 곧 지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혜롭게 살아가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며, 계명을 간직하며, 귀를 기울이고, 우리 마음에 두어야 하고, 소리쳐 불러 구하여야 하고, 은을 구하는 것 같이 감추어진 보배를 찾는 것같이 찾아야 합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깨달을 것이며, 하나님이 누구인가, 어떤 분인가, 나와 무슨 관계를 가지신 분인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을 다 소유하였어도 먼저 지혜를 소유하여야 하고 또 활용하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마음에 새기려는 사람이 은혜를 받고 깨달음의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우리를 속박하고 부자연스럽게 하려는 것이 아니며 결코 무거운 것이 아닙니다. 다 나에게 유익하게 하시려고 주시는 은혜의 말씀이요, 생명의 말씀이며, 축복의 말씀입니다.
무엇을 하라는 것과 하지 말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인간입니다. 인간이면서 해야할 것을 하지 않고, 하지 말라는 것을 골라 하는 것은 사람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지혜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귀한 말씀이라고 생각되면 마음판에 새겨두고, 나는 은혜 받아야 할 사람이라고 외치고 소리쳐 기도하고 성경을 공부하는 자리가 있으면 깊고 오묘하신 말씀을 찾아 내 것으로 만들려고 힘써야 합니다.
돈을 버시는 분들을 보면 비상한 재능들이 있습니다. 은을 구하는 것처럼 감추어진 보배 곧 돈을 버는 것처럼 지혜를 구하고 찾으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사람답게 살아야 하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하고, 천국 백성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지혜를 얻기 원하십니까?
듣는 자세, 수동적인 자세에서 한 걸음 능동적으로 부르며 구하고 찾아야 합니다. 이젠 되었다고 안주하지 말고 하나님 나라에 이르는 날까지 계속하여 구하고 찾아야 합니다.
은을 구하는 것이 얼마 힘든 일입니까?
문맥 속에 담겨있는 지혜를 얻기 위하여 문맥을 살펴보고, 사건 속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찾기 위하여 사건을 나의 삶에 현장화하여 살아가는 중에 지혜를 얻어야 할 것입니다.
3. 지혜로운 사람의 결과에 대하여 알아보아야 합니다.
(잠2:6-9) "대저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심이며 그는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시나니 대저 그는 정의의 길을 보호하시며 그 성도들의 길을 보전(保全)하려 하심이니라 그런즉 네가 공의와 정의와 정직 곧 모든 선한 길을 깨달을 것이라"
여기에 보면 정직한 자, 행실이 온전한 자, 정의의 길을 가는 자, 거룩한 길을 가는 성도가 나옵니다.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십니다.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는 방패가 되어 주시사 지켜주시고 보호하십니다. 정의의 길을 가는 자를 보호하시고, 그 성도들의 길을 보전해주십니다. 지혜를 말씀하시면서 정직을 말하고, 행실의 온전함과, 공의와 정의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이 다 연관되는 것이요, 지혜가 공유하고 있는 덕목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우리 자녀들에게 지혜를 소유할 수 있도록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무장시켜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큰 죄는 짓지 않습니다. 사람을 죽이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세계적으로 지혜로운 민족을 말하라면 유태인과 중국인을 꼽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들에게 수 없는 많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은 성경이 있었습니다. 2000여명의 랍비들이 성경을 해석해놓은 탈무드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들에게 성문화되지 아니한 구전도 많았습니다. 어려서부터 들려주는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그 수많은 이야기 속에는 인간의 지혜가 담겨 있는 법입니다.
중국에는 삼국지라는 세계적인 고전에서부터 수 없는 현자들의 책과 철학서적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들은 전쟁도 수없이 치르면서 병법도 많이 개발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할 말이 많은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곧 삶의 지혜가 된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책을 읽게 해야 합니다. 동화도 많이 들려주고 위인들의 이야기도 많이 들려주어야 합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무엇보다도 성경을 많이 읽고 그 말씀 속에서 지혜를 얻으며, 능력 있는 사람, 가치관을 분명히 하는 사람으로 키워야 합니다.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경외하는 중에 세상을 살아가는 참된 지혜를 소유하여 참 인간답게, 하나님의 백성으로 신실하게 살아가야겠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지혜였습니다. 예수님은 옛날에 솔로몬 왕의 지혜로운 말을 듣기 위하여 땅 끝에서 온 남방의 여왕을 예로 들면서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 안에 하나님의 지혜가 나타났으며, 예수님을 만나고 그 분을 모셔들이는 것이 지혜를 얻는 비결인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어린이주일입니다. 어린이들은 보는 대로 행동하는 사람들입니다. 부모님들이 보여주시는 대로 살아갈 것입니다.
미국 한인교회를 시무하는 한 목사님이 여러 교인들과 학생들이 모인 가운데 신앙문제에 대하여 교회의 미래에 대하여 토론하게 되었습니다. 한 학생이 말하였습니다. 나는 주일을 지키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자가용을 타는데 어머니 아버지가 차를 타시고 시동을 거는 순간부터 목사비평, 장로 비평, 누가 보기 싫다는 등 그런 이야기를 하실 때마다 다음 주일에 교회에 오지 않겠다고 수없이 다짐하다가는 할 수 없이 교회에 나온다고 하였습니다. 그 때 온 회중이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신앙의 본을 보여주세요. 섬기시는 모습, 협력하시는 모습, 성실한 모습을 보여주세요.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신령한 은사를 주시는데 사모하는 영혼들에게 위대한 비전을 주시고, 비상한 재능도 주시고, 세계사에 빛낼 영적인 거목으로 키워주십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을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지혜이신 예수님을 모신 사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지혜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시고, 신앙의 좋은 본을 보이면서 자녀를 키우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