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샬롬은 너희 하나님이시다
이제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 모두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아멘.
로마서 15:33
나는 당신이 두려워할 때 주님께서 평강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시기를 원하신다고 확신합니다. 그러면 “평화의 하나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바울이 유대인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그래서 그가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기를”이라고 말한 것은 “여호와 샬롬이 너희와 함께 있기를 원하노라”고 말한 것이었습니다. “여호와 샬롬”은 히브리어로 “평화의 하나님”을 뜻합니다. 이제 여호와 샬롬이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곳은 구약의 사사기 6장에 나오는 기드온의 이야기입니다.
기드온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는 미디안 사람들이 메뚜기 떼처럼 이스라엘에게 내려와 농작물을 멸하고 가축을 약탈하면서 밤낮으로 이스라엘을 위협했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잔인한 적들을 두려워하여 산속의 굴과 굴에 숨었습니다.
기드온이 겁에 질려 버려진 포도주 틀 바닥에 숨어서 어떻게든 주워온 보잘것없는 마른 곡식 줄기를 타작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그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고 그를 둘러싼 모든 공포의 소식에 압도되었습니다.
기드온이 두려워하는 가운데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나타나 이르되 너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삿 6:12).
구약에서 “주의 사자”라는 표현을 찾을 때, 그것은 대개 성육신 전 상태의 우리 주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기드온이 두려움의 구렁텅이에 있을 때 그에게 나타나셔서 그를 큰 용사라고 부르셨습니다. 정말 놀랍지 않나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습니까? 테러에 대한 보고를 듣거나 바이러스에 노출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두렵고 불안합니까? 두려움이 당신을 숨어 있게 만들었나요? 사실, 당신이 어떻게 느끼든, 우리 주 예수님께서 지금 당신을 보실 때 그분은 당신을 용감한 남자 또는 용감한 여자로 보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시는 모습이 놀랍지 않습니까? 우리를 정의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어떻게 보는가가 아닙니다. 우리 주 예수께서 우리를 보시는 방식이 우리를 정의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읽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말씀이 우리에 대해 말하는 것을 발견하기 위해 그것을 읽습니다. 친구여, 당신이 지금 어떤 상태에 있고, 당신의 삶이 얼마나 엉망이더라도, 주 예수님은 당신에게서 가장 좋은 점을 보신다.
그분은 이생에서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는 여러분의 잠재력, 은사, 소명, 운명을 보신다! 그리고 기드온 이야기의 결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분은 당신이 그분을 신뢰하고 그분의 눈을 통해 자신과 상황을 볼 때 당신을 인도하시고 그분의 보호에 대한 간증이 되도록 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