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생활수급자 선정기준인 기준중위소득
턱없이 낮게 책정돼 수급자 삶 벼랑 끝에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에도 고작 ‘5.47%’ 인상 논의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나중으로 미루는 결정”
제3차 생계·자활급여소위원회 회의가 열린 서울 중구의 프레스센터 매화홀 앞. 보건복지부 직원과 경찰에 의해 가로막힌 입구에서 기초생활수급자들과 반빈곤운동 활동가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이슬하
가난한 사람들의 목소리는 또다시 이들 삶을 논하는 ‘밀실 회의’ 바깥에 덩그러니 방치됐다.
19일 오전 10시, 제3차 생계·자활급여소위원회(아래 생계·자활소위) 회의가 열린 서울 중구의 프레스센터 매화홀. 이날 이곳에선 기초생활수급비의 산정기준이 되는 내년도 기준중위소득이 논의됐다.
기초생활수급자들과 반빈곤운동 활동가들은 회의장으로 들어서는 위원들을 향해 요구안이 적힌 피켓을 번쩍 들어 올리며 크게 외쳤다. “기준중위소득 현실화로 빈곤과 불평등 해소하라!”
그러나 이들의 외침은 보건복지부 직원과 경찰에 의해 ‘소란’쯤으로 취급됐다. 고석진 복지부 기초생활보장과 행정사무관은 위원들이 반대한다는 이유로 회의장 문을 걸어 잠그며 이들을 저지했다.
피케팅 중인 활동가들 앞으로 위원들이 몸을 숙인 채 황급히 회의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 이슬하
굳게 닫혔던 문이 잠시 열리며 위원들이 먹을 과일이 들어가고 있다. 사진 이슬하
이수미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권익옹호활동가의 시선에 입구를 가로막고 있는 복지부 직원과 경찰이 보인다. 사진 이슬하
회의장은 어렵게 ‘허락’받아야만 잠깐 들어갔다 나올 수 있었다. 수급 당사자인 이수미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권익옹호활동가는 “우리의 목소리만 전달하는 건데도 위원들은 회의 중이니 얼른 나가라며 위협적인 태도를 취했다”고 회의장 안의 상황을 전하며 분통을 터뜨렸다.
- 기준중위소득, 법이 정한 원칙 어기고 예산 맞춰 정해져
기준중위소득이란 전체 가구를 소득순으로 줄 세웠을 때 중간에 해당하는 소득으로,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생활보장위원회(아래 중생보위)가 매년 결정한다.
생계·자활소위가 내년도 기준중위소득 인상안을 논의해 중생보위에 안건으로 올리면, 중생보위가 8월 1일까지 최종안을 확정해 공표한다.
기준중위소득은 2015년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최저생계비(통합급여)에서 생계·의료·주거·교육급여 등 개별급여로 나눠지며 도입됐다. 이에 따라 소득인정액이 기준중위소득의 일정 수준 이하여야 수급권자가 될 수 있다.
올해 생계급여는 30%, 의료급여는 40%, 주거급여는 46%, 교육급여는 50% 이하가 기준이다. 기준중위소득은 기초생활보장제도를 포함한 70여 개 사회보장제도의 선정기준으로 활용되고 있다.
문제는 이런 기준중위소득이 너무 낮게 책정돼 있다는 것이다. 올해 1인 가구 기준중위소득은 194만 4812원이다. 이에 따라 기준중위소득의 30%에 해당하는 생계급여는 월 58만 3,444원에 불과하다.
기준중위소득이 낮게 책정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정부가 법에서 정한 원칙을 어기고, 예산에 맞춰 자의적으로 결정하기 때문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아래 기초법)에 따르면, 기준중위소득 인상률은 통계청에서 발표하는 가계금융복지조사의 최근 3개년도 가구소득 평균 증가율을 반영해야 한다. 그러나 지난해 중생보위는 2022년도 기준중위소득을 결정할 당시, 평균 증가율의 70%만 반영했다.
이로 인해 올해 1인 가구의 기준중위소득은 194만 원에 그치게 됐다. 이는 2019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나타난 1인 가구소득의 중위값 254만 원보다 60만 원이나 적은 것으로, 물가인상률조차 전혀 반영되지 않은 수치다.
- “당신들은 이 돈으로 한 달을 살 수 있는가?”
기초생활보장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장애인과가난한사람들의3대적폐폐지공동행동(아래 공동행동)은 프레스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준중위소득 대폭 인상을 통한 생계급여 현실화를 촉구했다. 공동행동은 턱없이 부족한 수급비가 수급자들의 인간다운 삶을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동행동이 지난 2월부터 4월까지 기초생활수급비를 받는 25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가계부 조사에 따르면, 수급자들의 하루 평균 식비는 8618원이었다.
제대로 된 식사조차 할 수 없는 수급자들은 건강과 사회적 관계를 모두 잃고 있었다.
의료비 역시 수급자들에겐 큰 부담이었다. 가계부 조사에 참여한 강지헌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사무국장은 “한 수급자분은 매월 구입해야 하는 일회용 혈당 체크 바늘 가격이 부담스러워, 감염 위험에도 바늘을 여러 번 쓰고 계셨다”고 말했다.
요지 홈리스야학 학생회장이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이슬하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요지 홈리스야학 학생회장은 5년 전 모야모야병이 생긴 뒤 1년에 한 번씩 뇌혈관 확장 시술을 받아야 한다.
비급여 항목인 뇌혈관 확장 시술은 1회 시술 비용이 50만 원에 달한다.
“저는 주로 컵라면과 우유 한 잔으로 끼니를 때웁니다. 수급비를 쪼개 돈을 모으려면 결국 먹는 것을 줄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같이 더운 날에는 냉면을 먹고 싶은데, 8천 원씩이나 하는 걸 도무지 사 먹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고민만 하다가 슈퍼에 가서 비빔면을 사 옵니다. 이렇게 돈을 아껴야 큰돈이 드는 병원비를 낼 수 있습니다. 올해 12월에도 시술이 예정돼 있어 저는 매달 5만 원 이상의 돈을 10개월 넘게 악착같이 모아야 합니다. 불안함 때문인지 최근에는 정신과 진료를 석 달 넘게 받고 있습니다. 다음 달에 입원해야 한다는데, 퇴원할 때 돈이 얼마나 나올지 걱정됩니다.” (요지 학생회장)
현재 생계급여 수급 기준은 ‘기준중위소득의 30%’다. 그러나 ‘30%’라는 수치는 법에서 규정한 최소한의 기준일 뿐이다. 기초법 제8조 제2항에는 “생계급여 선정기준은 기준중위소득의 100분의 30 이상으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공동행동은 “왜 생계급여 수급자들은 전체 가구소득 중앙값의 30%로 살아야 하는가”라면서 “상대적 빈곤선인 기준중위소득을 도입한 취지에 맞게 선정기준을 상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수미 활동가는 “중증장애인인 나는 수급자로 살아온 지 20년이 넘었다. 물가도 오르고 금리도 오르는데 오르지 않는 게 수급비다”라면서 “수급자는 제대로 먹지도 못해 건강을 해치고 사회생활을 못하고 있다. 이게 차별이 아니고 무엇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회의장 문 걸어 잠근 채 ‘5.47%’ 인상안 논의
교수와 전문가로 이뤄진 중생보위 위원 구성에 대한 문제제기도 이어졌다. 이경민 참여연대 사회경제2팀장은 “시민의 복지 기준을 정하는 위원회에 당사자를 대변하는 사람은 위원으로 선정되지도 못하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수급 당사자가 배제된 중생보위는 기획재정부의 입김이 크게 작용한다.
이 팀장은 “오늘 생계·자활소위 3차 회의에 기재부가 매우 낮은 수준의 인상안을 가져올 것이라고 전해 들었다”면서 “중생보위가 예산 부처의 꼭두각시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고 힘줘 말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들 앞에 놓인 현수막에는 “고물가·고금리·고유가, 가난한 사람들의 복지 확대를 위해 기준중위소득 대폭 인상하라!”라고 적혀 있다. 사진 이슬하
중생보위 회의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져 있어 회의 속기록조차 공개되지 않는다. 수급 당사자들은 자신들의 삶이 걸려있는 문제에 대해 논의 과정을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날 열린 생계·자활소위 회의에서는 3개년도 평균 증가율 3.57%에, 통계자료 변경에 따라 1.83%를 추가로 반영해 기준중위소득을 5.47% 인상하는 안이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2023년 4인 가구 기준중위소득은 올해 512만 1080원에서 약 28만 원 오른 540만 1203원으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즉, 내년에도 생계급여가 기준중위소득의 30%로 유지된다면 4인 가구가 받게 되는 생계급여는 162만 360원으로, 이는 올해보다 8만 4036원 오른 수준이다.
정성철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비마이너와 한 통화에서 “이번 안 역시 급등한 물가가 전혀 반영되지 않아, 사실상 인상됐다고 평가할 수 없다”면서 “기준중위소득이 실제 전체 가구소득의 중간값과 현저히 다르다는 점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나중으로 미루는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중생보위는 다음 주 월요일 회의를 열고, 생계·자활소위의 인상안을 토대로 내년도 기준중위소득을 논의할 예정이다.
첫댓글 아직 멀었음
한국은 복지국가가 되기에는
중위소득 35프로 인상하고 물가 오르면 같이 오르는 것으로 해야지.
물가 오르는데 받는돈은 똑같잖아요. 참내. 운동가들 고생 많으십니다.
잘 읽고 갑니다
좋은결과 있길 바랍니다
중위소득의 30% 로 생계비책정했군요.
덕분에 알게되었어요~^^
어자피 부자들이 몰빵한 정부...
생계자활소위 5.47%
기재부제시안 4.19%
두안건 조율하면
5%선에서 결정나지않을까 하는게
제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