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의 명가 부평초등학교 78회 졸업생이자 남일이의 중고등학교 동창이면서
예전의 저두 축구를 했던 사람으로서 한마디 하겠습니다.
남일이가 저의 초등학교에 전학온건 초등학교 5학년때였습니다.
그당시 만수초등학교 축구부가 없어져 남일이가 저희 학교로
전학을 왔죠...그리 크진 않았지만 눈만은 초등학생답지 않게 컸던 남일
오늘 서세원쇼를 보면서 정말 기가 찼습니다.
남일가 조폭이 될뻔했다????
전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8년이라는 시간동안 축구를 했던 사람입니다.
남일이는 여러분이 생각하는것처럼 터프하고 운동을 하지 않았다면
조폭이 되었을꺼라는 그런 인물이 절대 아닙니다.
월드컵이 되어서 축구의 열풍이 불어서 축구선수들이 주목되고 있지만
여러분 앞에 이름 석자 정도 알리려면 얼마만큼 땀을 흘리고 얼마만큼
맞아야 하는지 아시긴 아십니까?
그런 고생을 해서 한 사람이 스타가 되었습니다.
남일이가 흘렸던 땀방울만큼 이제 그만한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오락프로그램에서 웃음거리로 만들어 버려야 합니까?
정말 화가 납니다.
마치 놀려고 양아치가 되려고 운동을 그만두려했다는식의 말...
정말 화가납니다.
축구국가대표가 되기가 얼마나 어려우신지는 아실테죠
그럼 축구란 운동을 대한민국에서 하기가 얼마나 어려우신지는
알고 있습니까?
열악한 환경,,,운동부라는 이유로 당연해여겨지는 가혹행위
저역시 남일이의 그런 모습을 10년 가까이 가까이에서 봐왔고
저역시 그런 모습으로 살아왔습니다.
전 지금 조폭도 하고 있지 않고 양아치도 아닙니다.
하지만 전 중도의 포기를 하고 말았습니다.
저도 남들처럼 친구들과 어울리고도 싶었고
더운날엔 쉬고 마라톤 선수처럼 뛰어다니기 싫었습니다.
운동선수는 터프하고 무식하다라는 고정관념이 여러분들 맘속에 자리
잡혀있는것도 잘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남일이는 축구부애들중에서도 가장 순했던 애였다고 기억합니다.
축구선수가 축구를 그것도 고등학교시절에 포기한다는건
인생을 포기하는것과도 같습니다.
해온거라곤 축구밖에없고 축구외엔 할수 있는 일이 없다란걸 너무나
잘알고 있기 때문이죠 또 사회에 인식또한 운동선수는 무식하다
멍청하다란 관념때문에 어느 한곳 취업하기도 힘든상황이었구요
그렇다고 공부를 해서 대학에 간다는것은 더욱더 불가능하구요
그럼 우리가 할수 있는 일이 뭐겠습니까
웨이터를 한다고 웃음거리가 됩니까?
제 기억으론 남일인 서빙을 했습니다
여러분들중 호프집같은곳에서 서빙 안해본사람 있습니까?
사실 서세원쇼에서 지껄이는 말이 오히려 축구를 그만둔 저를 가지고
지껄이는 말처럼 들렸습니다.
전 지금 기분이 무척 안좋지만 여러분이 우려하는 만큼
남일이는 불량했던 사람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남일이는 정많고 동기들 후배들 잘챙기고 묵묵히 굳은일 했던
그런 평범한 운동부 였습니다.
예전에 같이 고생했던 칭구였지만 지금 그는 슈퍼스타가 되었습니다.
그를 보면서 전 잊으려고 했던 축구부시절을 생각합니다.
하지만 남일이가 성공해서 너무나 좋습니다.
여러분이 좋아하는 그런 스타와 한때였지만 같이 고생했다는게
너무나 자랑스럽니다.
그리고 막판에 대표팀에서 탈락된 효연이, 오리지날 터프가이 이상헌선배
그리고 지금은 무명이 되었지만 공잘차던 기복이.. 모두모두 남일이 처럼
다시 한번 빛을 발하며 대 부평고에 명예를 살려주었음합니다.
축구때문에 전 제인생에 많은 걸 잃어버렸지만 이 칭구 그리고
부평고 시절의 우리 동창들 그리고 선배들,후배들 만큼은 축구때문에
많은걸 가졌음 합니다.
그리고 저또한 축구를 했다는 과거를 자랑스럽게 말할수 있는
그때가 왔음 합니다.
그리고 울 부평고 출신의 이임생선배,이상헌선배,노정윤선배,
곽경근 선배,무연선배, 남일이, 수원삼성의 조만근이, 안효연이,
서기복이, 까막득한 후배지만 이천수, 최태욱 화이팅
2. 남일이 아빠가 쓴 편지--------
남일이에게..
주말 모처럼 경기도 용인 공사현장에서
집으로 돌아와 비디오를 켰단다.
말수가 없고 착하기만 한 우리 막내가
상대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격렬하게 몸싸움을 하는
경기 장면을 보니 여간 대견스러운 게 아니구나.
경북 상주에서 무일푼 신세로 인천 무의도로 올라와
고기잡이를 할 때만 해도 태극마크를 단 아들을 둘 줄은 몰랐었지.
섬마을에서 나고 자란 너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축구공을 갖고 놀기를 좋아했어.
가진 것 없는 부모였지만 자식이 그토록 바라는 데
뒷바라지를 해보자고 마음 먹었지.
넌 어릴 때부터 두 형들하고는 달랐단다.
성격이 온순하고 동네 어른들께 인사 잘하는 예의바른 아이였어.
먼 바다로 나가 고기잡이를 했지만
전국 축구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아오는 네가 있어 힘이 났단다.
선장이 되었을 때는 하늘도 도왔는지 만선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지.
하지만 그것도 잠시..욕심이 과했던지
선박사업에 실패하는 바람에 빚더미에 앉고 말았단다.
바다를 떠나 당장 먹고 살려니
아파트 건설현장을 떠돌아 다닐 수밖에 없었어.
어깨가 부서지도록 시멘트를 날랐지만 네 엄마 역시
인부들의 밥을 지으며 생활비를 보탤 수밖에 없었단다.
할 수 없이 너를 외할머니에게 맡겼지.
그래서였나.
네가 고등학교 1년 때인가 축구를 그만두겠다고
집을 뛰쳐 나갔을 때 아버지의 가슴은 무너져 내렸단다.
수소문 끝에 8개월 만에 너를 찾았는데
훈련이 너무 힘들다고 했지.
이왕 시작한 운동이니 끝까지 한번 열심히 해보자고
아버지와 약속해 주었지.
하지만 대학교 2년 때 또다시 운동을 포기하겠다며
대전 어느 공사판에서 벽돌을 지어 나르는
너를 마주했을 때는 심장이 멎고 말았단다.
아버지가 걸어온 공사판의 길로
너를 들어서게 할 수는 없었어.
하고픈 말이 많았지만
가슴 속에 묻어둘 수밖에 없었단다.
아버지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다.
프로축구단에 입단할 때 받은 연봉을 아버지의 통장에
고스란히 넣어주었을 때 얼마나 울었는지 아니….
얼마전 한국 선수로는 유일하게 골드컵 ‘베스트 11’에
선정됐다는 소식에 할머님이 많이 우셨어.
기껏해야 돼지비계 넣고 김치찌개를 끓여준게 전부인데
가족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훌륭하게 성장해준
네가 고맙고 기특했기 때문이란다.
항상 남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너이기에
별명이 ‘숨어있는 황태자’라고 하더구나.
조상을 하늘 같이 모시고 어른을 공경하는 마음이야
너를 대신할 수 있겠니.
이번 어버이날 무의도 선창의 식당 고모님께 부탁해
돼지 3마리를 잡아 동네 어른들에게 대접하기로 했다.
부디 몸조심하고 16강 진출의 염원을 달성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