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인생은 세옹지마
.그의 이야기는 새의 발톱이 나뭇가지를 꽉 움켜잡듯 나를 단단히 사로잡았다.
. 이 작품이 좋은 평가를 받는 원인은 개인적으로는 '희망도, 절망도 아닌 살아가는 것' 자체를 긍정하고 있어서라고 생각함.
지나치게 삶을 미화한다면 비관론자들에게 납득이 되지 않을 것이고 반대라면 염세적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했을 것임.
『인생』은 작품의 골조가 되는 감정을 참 영리하게 잡았다는 생각이 든다. 때로는 가슴을 치며 울고, 자식새끼들 재롱에
웃는 게 인생이다. 사람이 떠나는 것도 인생의 과정이고 새로운 생명이 찾아오는 기쁨도 인생의 과정이다.
.인간은 살아가는 동시에 같이 죽어가는 존재야 넌 앞으로 평생 살 수 있을거 같지 일년일년 지날수록
사람은 그만큼 더 죽음앞에 다가가고 있는거야 그렇기 때문에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되는거야
. <살아간다>는 그냥 한 개인의 인생을 담담하게 그린 거임. 거기서 어떤 의미를 길어올릴지는 독자의 몫이고..
.궁하면 뜻이 작아진다.
.둔한 새가 먼저 난다.
1940년대 - 국공내전
어느 부유했던 지주의 영식으로 태어났던 푸궤이(福贵)는 도박장에서 세월을 보내는 한량이다. 하지만 한량답게 예술적 소질도 있는지, 가끔 도박장에서 공연하는 그림자극에 직접 공연에 참가하기도 한다. 푸궤이는 아버지와 아내 지아전(家珍)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계속 도박을 했고, 도박에 빠진 푸궤이를 견디다 못한 아내는 딸 펑시아(凤霞)를 데리고 아들 요우칭(有庆)을 임신한 채 집을 나가버린다. 이후 아내 지아전이 아들에게 지어준 아명은 부두(不赌). 푸궤이의 도박에 학을 뗀 지아전이 자식은 절대 도박을 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지었다고…
푸궤이의 도박상대였던 룽얼(龍二)은 원래 그림자극을 공연하던 자였는데, 타짜였던지 푸궤이는 계속 그에게 도박에서 진다. 결국 도박빚으로 푸궤이의 마지막 남은 재산인 집문서가 룽얼에게 넘어가고 그 충격으로 푸궤이의 아버지는 사망. 결국 푸궤이는 거리로 쫓겨나게 된다. 이에 대한 죄책감으로 도박을 끊고 노점상으로 근근이 살아가던 중 지아전과 펑시아, 아들 요우칭이 푸궤이에게 돌아오고, 이들을 먹여살리는 처지의 푸궤이는 밥벌이를 위해 마을을 돌며 그림자극을 하게 된다. 원래는 가게를 열려고 룽얼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사정하지만, 룽얼은 돈을 빌려주지 않고 그림자극을 해보라고 하면서 도구를 빌려줬다. 푸구이는 이전부터 도박장에서 허구헌 날 듣던 그림자극에다가 도박에 지고 나면 심심풀이로 그림자극을 했기 때문에 예전부터 꾸준히 한 탓인지 그림자극을 직업삼자마자 처음부터 꽤 잘한다. 룽얼이 타짜이기는 하지만 피도 눈물도 없는 악인은 아닌것이, 본인에게 집을 넘겨 갈곳이 없어진 푸궤이가 거처를 찾을 동안 자기가 푸궤이의 병든 노모를 얼마간 모셔주겠다고 제안하기까지 한다.[12] 이 작품에서 그림자극은 또 하나의 인생을 상징한다. 그 안에 나오는 인물들은 결국 늘 해피엔딩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몰락한 푸궤이의 상황과는 역설적인, 즉 푸궤이가 그려내는 그의 이상적인 인생이다. 그림자극 도구를 담고있는 상자는 이상적 인생이 그려지는 세계이자 현실과 구분짓는 도구적 장치이기 때문에 상자마저도 매우 아끼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곧 중국 국민당과 중국 공산당의 내전. 국공내전이 시작되자 국민혁명군에게 징집되었다. 여기서 동생을 찾아 국민혁명군에 입대한 촨씨를 알게 된다. 국민혁명군은 참패를 하고 있었고, 부상자들은 치료는 커녕 한곳에 모아두고 죽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촨씨는 홍군은 포로에게 친절하니 홍군이 오면 손들고 저항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한다. 어느날 푸구이, 전씨와 춘성은 눈 속에 웅크리고 추위에 벌벌 떨다가 춘셩이 어디선가 구해온 코트 덕에 추위를 이겨낸고 잠이 든다. 눈을 뜨니 국민혁명군이 자신들만 남겨두고 후퇴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코트는 촨씨가 찾는 동생의 코트였던 것. 촨씨는 이를 보고 어디서 찾아왔냐고 길길이 날뛰고, 손을 들지 않고 시체 더미를 뒤지다가 총에 맞아 죽는다. 촨씨가 총에 맞는 것을 보고 푸구이와 춘성도 도망치지만, 인민해방군에게 곧 붙잡히고, 손을 들고 있었기 때문에 사살되지 않았다. 아촨, 즉 촨씨는 국부군의 패전을 직감하면서 푸구이와 춘셩한테 홍군이 곧 들이닥칠 것이고 여차하면 사살될 수 있으니 항상 손들고 다녀라고 충고를 해준다. 정작 본인은 동생 코트에 정신이 팔려 헐레벌떡 뛰어다니다가 저격수의 총을 맞고 죽는다.
푸궤이는 가지고 있던 그림자극 인형 덕분에 밤에는 해방군 병사들 대상으로 위문공연을 하고 낮에는 보급품 운반이나 대포 미는일 등의 짐꾼 생활을 하며 인민해방군에 종군한다.
전쟁이 끝나자 푸궤이는 이렇게 인민해방군과 함께 행동했기 때문에 혁명에 참여한 제대군인임을 알리는 증명서를 받아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함께 포로가 되었던 춘셩은 국민당군 때부터 자동차광이어서 차를 몰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했고, 운전병으로서 홍군에 입대하여 계속 군에 남는다.
. 반혁명진압운동 (1950-51)
마침내 집으로 돌아온 푸궤이는, 생계를 위해 물배달을 하고 있는 아내와 마주치게 된다. 중국에는 물이 귀한지방이 많기 때문에, 우유배달하듯이 이렇게 물을 끓여 배달하는 일이 있어서 물배달을 했던 것. 그리고 그를 기다리던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고 딸 펑시아가 열을 앓다가 농아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귀가 완전히 먹은 것은 아닌 듯, 자전이 펑시아에게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푸궤이가 집에 돌아오자마자, 마을 촌장인 뉴촌장은 푸구이의 집을 차지했던 룽얼이 반동분자로 인민재판에 회부되었음을 알려준다.
룽얼이 인민재판에 회부된 이유는 공산당이 이 지역을 점령한 후, 롱얼의 대저택(이전 푸궈이의 집)을 인민들의 숙소로 제공할 것과 곡식창고를 열어 인민들에게 분배할 것을 요구했는데, 이에 격분한 롱얼이 공산당 관리를 폭행하고, 자신의 집과 창고를 싹 다 불태워버렸기 때문에 반혁명 사보타지죄로 기소된 것이다. 이 때 뉴촌장이 "자네 집 목재 참 좋던데? 7일 동안 계속 불탔지" 라고 가볍게 농담을 하자 거기에 푸궤이는 "그거 우리집 목재 아니라. 반혁명자 집 목재죠"라며 둘러대버린다. "도박으로 재산을 뺏기지 않았더라면 내가 저렇게 되었을 것이다."고 생각한 푸궤이는 몸서리치며, 부자가 아닌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몰론 룽얼이 사형당한 이유는 공산당관리를폭행하고 자신의 집과 창고를 싹다 불태워 사보타지죄로 사형당했기 때문에, 푸궤이가 집을 안잃었다는 가정하에 순순히 공산당관리 말을 들었다면 사형당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이전에 지아전이 푸궤이에게 돌아올 때 친정 아버지와 사이가 틀어져서 많은 돈을 가지고 오지 못했다고 했는데, 그녀 또한 친정에 있었으면 인민재판의 희생양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룽얼의 인민재판을 구경하던 푸궤이는 갑자기 지주의 아들이라는 출신성분 때문에 자기도 위험하지 않을까 불안해했고, 마침 사형선고를 받고 끌려가는 롱얼과 잠시 눈을 마주친 뒤 곧장 집으로 뛰어가는데,집으로 허겁지겁 돌아가던 중 총성이 들린다. 잠깐 근처 나무에 오줌을 싸려던 푸궤이는 총성에 놀라 그만 바지에 지려버린다(...) 집으로 돌아간 푸궤이은 지아전에게 롱얼의 총살형을 알리고 온 집안을 뒤져 인민해방군의 제대군인 증명서를 허겁지겁 찾게 된다. 그러나 그 증명서는 푸궤이의 겉옷 주머니에 들어간 채로 지아전이 세탁하는 중이었다. 푸궤이는 급히 옷을 꺼내 군데군데 찢어진 증명서를 잘 말려, 집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걸어두고 그제서야 안심한다. 훗날 푸궤이의 집에 처음으로 방문한 펑시아의 남편 완얼시가 이 증명서를 보고는 어르신 혁명영웅이셨네요!라고 놀라며, 마치 영웅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푸궤이를 바라봤다.
대약진운동 (1959-61)
얼마 후 중국에서 마오쩌둥이 대약진 운동을 일으키게 된다. 푸궤이가 사는 마을 사람들도 좋아라 하면서 집집마다 철 공수를 하여 토법고로를 돌리고 조리기구가 없어지자 난생 처음 공동식당에서 식사를 하게 된다. 이 공동식당을 흔히 캔틴(Cantin)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제도가, 대약진운동 후의 대기근으로 인한 초대형 아사 사태의 전조가 된다. 대약진 운동의 농업집단화 항목에 써 있는 공동식당(허삼관 매혈기에서 발췌) 참고. 영화에서는 이 공동식당에 대해서 니우는 '배고프면 공동식당으로 오면 고기고 생선이고 배터지게 먹을 수 있어.'라고 한다. 이게 처음에는 (1958)에는 너나할거없이 음식을 풍성하게 먹고 그랬지만, 이후 대약진운동의 부작용으로 기근이 찾아오자 풀죽같은 음식이나 먹으며 겨우 끼니를 잊거나 이마저도 없어 쭐쭐 굶거나 풀뿌리, 나무껍질이나 벗겨먹는것이 일상이 되었고, 결국 이후 정권을 잡은 류사오치와 덩샤오핑은 이런 공동식사제도를 폐지했다.
펑시아는 여전히 어머니의 배달 일을 돕고 있었는데 동네 개구쟁이 꼬마들이 귀가 안들리는 그녀를 상대로 장난을 치고 이를 요우칭이 목격한다. 화가 나서 달려들지만 쪽수에 밀려 이기질 못하자, 골목대장 아이가 밥먹는 틈을 노려서 뜨거운 국수에 매운 소스를 듬뿍 담아 머리에 퍼부어 복수를 한다. 이 아이의 아버지가 화가 나 길길이 날뛰자 처음에는 푸구이도 애들끼리 싸움인데 진정하라고 하지만 아이의 아버지는 오히려 반동적인 행위라고 몰아붙인다. 그러자 총살당한 룽얼이 생각났는지, 사람들 보는 앞에서 아들을 개패듯이 두들겨 패 무마시킨다.
이런 환경 속에서 푸궤이의 아들 요우칭은 집에서 염소를 길렀는데, 이를 어찌나 소중히 여기던지 평소에도 근처에 올라가 염소 먹일 풀을 가득 뜯어오고, 학교에 있는 도중에도 집에 뛰어와 염소에게 먹이를 줄 정도였다. 그러나 대약진운동으로 철 공출이 되며 이 염소 역시 공수되고 마는데, 염소를 보낼 수 없었던 어린 소년은 마을에 염소를 모아놓은 곳까지 따라가서 자신의 염소에게 밥을 주는 일을 계속한다.
대약진운동이 지속되며 어른부터 어린애까지 밤낮으로 혹사 당한다. 이 마을에선 제철생산작업을 하고 있었고, 요우칭도 예외가 아니었다. 하루는 이런 일 때문에 요우칭이 잠이 모자라 너무 피곤해 학교를 가기 싫어했는데 푸궤이는 부득불 아들을 업어 학교에 데려다준다. 그러나 학교에 가서도 담장 밑에서 졸다가, 후진하는 트럭에 부딪혀 무너진 담 밑에 깔려 사망한다. 그런데 하필 그 트럭에 타고있는 높으신 사람은 국공내전 시기 푸궤이와 그림자극을 같이 하며 다니던 후배인 춘셩으로, 간부인 구장이 되어 마을로 금의환향하려 오던 중에 벌어진 일이었다. 중화인민공화국 초창기의 직책으로 현재는 시당 서기(공산당의 시 우두머리로, 당이 행정에 우위를 가진 중국의 사정상, 시장보다 높다)이나 현(군)당 서기에 해당한다. 춘성이 국공내전이전에 떠돌이 그림자극단 단원이었음을 상기하면 몇년만에 대단한 출세를 한 셈이다.
춘셩은 푸궤이에게 자기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범위에서 보상을 하려고 하지만, 푸궤이와 자전은 아들을 죽인 춘셩을 용서하지 않는다. 원작소설에서는 요칭은 교통사고가 아닌 매혈하다가 과다출혈로 죽고, 매혈을 담당한 여자의 남편이 춘셩이었다. 요우칭과 사이가 좋은 남매였던 펑시아 역시 동생의 죽음에 분노해, 동생을 죽인 차의 유리창을 깨고 한바탕 난동을 피운다. 이때 운전수와 실랑이가 붙지만, 춘셩은 죄책감에 펑시아를 놔주고 본인은 혼자서 걸어간다.
1960년대 문화대혁명
세월이 흘러 1960년대 중국에서는 마오쩌둥이 주도한 문화대혁명이 뒤흔든다. 푸구이는 예전에 룽얼이 처형당하는 것을 보고 부귀영화에 대한 미련을 다 버렸고, 요우칭을 치어 숨지게 한 춘성이 미안한 감정에 푸구이를 좋은 자리에 앉히려고 하지만 이것도 다 거절하고 아내와 함께 물장사에만 머물렀기 때문에 오히려 이 시기를 무사히 보낸다.
이 시기에 뉴촌장의 중매로 딸 펑샤는 공장 홍위병 지도자 완얼시(万二喜)와 결혼하게 된다. 완얼시는 원래 선천적 장애가 아니라 공장에서 일하다 불의의 사고로 크게 다친후 발을 절게 되었다. 마오쩌둥과 당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한데다가, 산업재해 피해자로 혜택을 받아서 근로 감독관이 되었다. 단지 장애 때문에 결혼을 하지 못하여 같은 장애인인 펑시아와 혼담이 오가게 되었다는 내용이 있다. 완얼시는 공장의 홍위병 지도자이지만,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서 장인에게는 매우 예의바르게 행동한다.
완얼시의 경우는 지역내 작업장 즉 공장의 근로 감독관이므로 현재의 직위로 따지면 부장~상무 사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시 공산당의 공무직은 등급제에 따라 23~1등급까지 나뉘어서 급여 및 배급도 차등을 두었다. 장융의 대륙의 딸에선 쓰촨(사천)시를 관할하는 시장이자 국장인 실제 아버지가 10등급, 실제 어머니인 샤오홍은 열렬한 공산당원이자 청렴했던 아버지의 의지에 따라 17등급에서 훗날 15등급까지 승진되었는데 어머니의 직함은 쓰촨시 여성 노동국 부국장이었다. 완얼시의 경우엔 적어도 21~20등급 정도로 추정된다. 10등급인 아버지에게 주어진 배급 혜택은 전용 관리인 1명과 2~3명의 무장한 보초병이 지키는 현대식 아파트에 전화가 개통되어있고 2일에 한 번씩 뜨거운 온수샤워가 가능했으며 아버지 봉급 외에 한 달에 한 번씩 나오는 노랑 쿠폰을 바꿔 달걀 10개, 식용유 800g, 설탕 600g, 고기 및 육류 1.2Kg, 사과 같은 과일류는 작황 사정만큼, 포풀러 광목 등을 포함한 옷감 3필인데 비해 어머니의 초록 쿠폰은 그의 1/4 수준이었다. 그리고 공산주의 사상에서 금지된 서구의 문화, 즉 마돈나나 비틀스 같은 것도 극장에서 수시로 봤었다고 회고한다. 소설 중 장융은 어린 시절 외할머니와 함께 배급소에 가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쿠폰을 바꿔서 장을 봤다고 회고하고 있다.
이 시기는 문화대혁명의 광풍이 지배하던 시기라서 결혼예물은 마오쩌둥 어록과 마오쩌둥 뱃지, 결혼예복은 턱시도와 웨딩드레스가 아닌 인민복이고, 축시는 마오주시, 축가도 마오찬양가가 나온다. 이때 요우칭을 본의 아니게 죽인 이후로 아직도 이 가족에게 용서를 받지 못한 춘셩은 나중에 푸궤이에게 선물을 전달하지만 지아전은 그 선물을 돌려보내라고 한다. 그 뒤에 푸궤이의 말이 걸작인데, 바로 마오쩌둥의 초상화를 들면서 '뭐? 이거 마오주석님인데?'(…)
이후 푸구이는 사위 얼시로부터 춘셩이 주자파로 찍혀 비투회에 출두하게 되었다는 얘기를 듣는다. 비투회는 홍위병의 사설 인민재판으로 이 영화에 나오는 왕교수처럼 조리돌림으로 끝났지만, 심한경우는 홍위병의 린치로 사망하는 경우도 있었다. 춘성은 주자파로 찍혀 모진 고생을 당하고, 아내까지 자살하는 비극이 닥치게 된다. 견딜 수 없게 된 춘셩은 자신의 모든 돈을 푸궤이에게 건내주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나 푸궤이는 통장을 다시 돌려주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견뎌내야 한다. 지옥 같은 전장에서도 살아 돌아왔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끝내려고 하나?'라고 하면서 춘셩을 다독인다. 지아전 또한 돌아가는 춘셩에게 '당신은 우리에게 목숨 하나를 빚졌으니 열심히 살아나가야 한다.'고 격려해준다. 지아전이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춘셩을 용서해준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장면. 한편 매번 소식을 전해주던 뉴촌장도 푸궤이를 찾아와, 그림자극 도구도 반동으로 몰리니 태울 것을 강요한다. 결국 다 태우는 것을 지켜본 후 쓸쓸히 사라진다. 얼마안가 푸궤이는 뉴촌장에게 중매해줘 고맙다고 예물(달걀)을 들고 찾아오는데 뉴촌장은 씁쓸하게, 자신이 반동으로 몰려 홍위병이 주최하는 비투회에 출두하게 되었다고 이야기 한다. 푸궤이도 여기에 대해서는 '왜 죄다 주자파 반동으로 몰리는거지?'라고 불만을 표한다.
펑샤는 만삭이 되어 산통으로 병원에 입원하는데, 당시는 문화대혁명 시기라 병원에 있던 의사이란 의사들은 죄다 반동으로 분류되어 홍위병들이 죄 잡아가 버려, 남아있는 사람이 없었다. 병원을 지키고 있었던 건 생초짜나 마찬가지인 학생들 뿐이었던 것이다. 한 마디로 병원에 베테랑 의사-간호사는 모두 반동으로 비투회에 끌려가고, 졸업도 안한 의대생과 간호대생들이 의사, 간호사랍시고 병원에 진을 치고 있었던 거다.
병원에 온 푸궤이 가족은 베테랑 스탭이 하나도 없는 상황을 걱정하고, 완얼시는 공장 홍위병 지도자라는 신분을 이용해, 비투회에 끌려가 있던 대학 교수급 전문의 왕교수를 빼와 진료를 보게 하려 하지만, 그는 홍위병의 등쌀에 며칠간 굶어서 힘이 하나도 없었다. 이를 안타깝게 본 푸궤이는 밖에 나가 만터우를 사와 왕교수에게 준다. 그 와중에 완얼시와 펑시아의 아들은 무사히 태어났다. 왕교수는 허기에 허겁지겁 먹다가 체했고, 이를 본 푸궤이는 물을 가져다주지만, 위속에서 만터우가 물을 만나 불어서 혼절한다. 문혁때는 미식도 부르주아의 행동이라는 이유로 음식점들이 죄다 문닫거나, 만터우나 죽같은 음식만 팔았다. 그리고 지금도 중국 서민들이 만터우를 먹는 이유가, 차와 같이 마시면 배를 값싸게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갑자기 펑시아가 산후 출혈을 하게 되었고,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인 홍위병 의대생들이 어버버 하고 있는 가운데서 왕교수는 혼절해 있어서 도움을 주지 못해, 과다출혈로 사망한다.[18] 여기서 재밌는것은 펑시아의 아들은 이름을 만터우로 짓게 되었는데, 그 이유가 뭔고 하니 '옛 사람들이 말하길, 음식 이름으로 사람 이름을 지으면 염라대왕이 음식으로 착각하고 수명을 일찍 정하지 않아서, 그만큼 더 오래 산다'는 것이었다. 만약에 홍위병들이 들었다면 봉건사회의 잔재+미신을 믿는 반동이라면서 펄쩍 뛰었을 것이다. 이후 후일담에서 혼절했던 왕교수는 트라우마로 인해, 만터우 뿐만 아니라 밀가루 음식은 입에도 대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푸궤이 왈 "그럼 쌀만 먹을 텐데, 쌀값은 꽤 비싼데…"
1970년대 에필로그
국공내전, 대약진운동, 그리고 문화대혁명 등 역사의 피바람을 몰고 왔던 사건들이 모두 끝나고 평온한 시대가 찾아온 이후의 이야기… 노년이 된 푸궤이와 지아전의 에피소드를 그리고 있다. 만터우의 나이로 봤을 때는 1970년대 중반이다. 사실 문화대혁명의 공식적인 종말은 마오쩌둥이 사망하는 1976년이지만, 실제로는 1969년이면 어느정도 정리가 되었다. 홍위병 덕으로 정권을 되찾은 마오쩌둥은 인민해방군을 동원하여 쓸모없어진 홍위병들을 진압했고, 이후 홍위병이 주최하는 비투회나 반달행위와 같은 일은 더이상 없어진다. 이후 홍위병들을 포함한 학생들은 상산하향 운동으로 시골로 보내져 마오쩌둥이 사망할 때까지 삽질을 하게 된다. 이렇게 시골로 간 홍위병들의 후일담 소설들이 90년대부터 쏟아져 나왔는데 그 중 하나가 늑대 토템이다.
그들에게 남겨진 가족은 사위인 완얼시와 그의 아들이자 외손자인 만터우(馒头)뿐. 에필로그에 나온 만터우의 외관이나 펑시아의 묘 앞에 늘어진 만터우의 연령대별 사진이 담긴 액자들의 숫자를 고려해보면 아마 만터우는 에필로그 당시 7~8세쯤 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 할아버지 옆에서 할머니의 약을 들고 오거나 할아버지가 밥 지을 때 불을 피우는 식으로 돕겠다고 말하고, 할머니께 '착한 아이' 라는 칭찬을 듣는 걸 보면 나잇대에 안 맞게 꽤 의젓한 아이로 추정된다. 딸인 펑시아가 그랬던 것 처럼...
아들 요우칭과 딸 펑시아를 잃었기에 매년 요우칭과 펑시아의 묘에 온 가족이 성묘를 하고 만터우의 성장사진을 액자로 만들어 펑시아 묘에 보여주며, 성묘가 끝난 뒤 가족의 오붓한 식사장면과 함께 만터우가 살아갈 앞으로의 세상은 더 좋은 세상이 될 것이란 푸궤이의 말과 함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영화는 막을 내린다.
그 전에 만터우가 병아리를 사와서 병아리는 어디에 두면 좋냐고 자꾸 물어보는 장면이 나온다. 만터우의 말을 들은 푸궤이는 식사하기 전에 자기가 썼던 그림자 연극의 소품들을 담아놨던 상자를 꺼내며, 병아리를 여기에 담으라고 한다. 병아리는 보다 더 큰 집에서 살아야한다는 게 그 이유. 한평생 그림자극용 소품상자를 그토록 소중히 여겼으나 이제는 외손자에게 병아리를 키울 수 있게 주는 것을 통해 푸궤이의 삶의 변화를 엿볼 수 있다. 이는 또한 앞서 그림자극이 푸궤이가 그려내는 또 하나의 이상적인 인생을 나타낸다 하였는데, 그것을 담고 있던 세계(상자)를 공식적으로 외손자에게 승계하는 장면이다. 그림자 도구처럼 병아리는 만터우의 또하나의 인생을 대변하며, 이는 병아리(닭)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증명된다. 푸궤이가 이야기할땐 이미 성장한 닭이었는데, 닭의 새끼가 병아리라는점에서 만터우에 비유됨을 알 수 있다. 또한 병아리를 키워서 더 큰 동물을 사서 부자가 되자는 말은 자기 아들이었던 요우칭이 처음 동물을 기르게 될 때 나눴던 대화이다. 다만 그땐 푸궤이가 공산주의에 대한 믿음을 가질 때라 손자 만터우에게 얘기를 할 때는 이 이야기의 결론이 다르게 된다. 그리고 이 씬 주변 장면 중에 손자의 이름과 같이 만두가 나오는 씬이 있다.
비교적 희망차게 끝나는 영화와 달리 원작은 더 암울하다. 특히 푸궤이는 끝까지 불행한데 그가 사랑하는 아내 지아전은 곧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사위는 작업 중 시멘트에 깔려 죽고, 혼자 남은 유일한 혈육인 손자 만터우(원작에서는 이즈음 아명 만터우가 아닌 본명 쿠건(苦根)으로 불린다)조차 콩을 많이 먹다 급체로 죽는다.
영화 개봉 당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도 영화관을 나가는 사람들이 극소수였을 정도로 유명한 장면. 몸이 아픈 외할머니, 그런 아내를 위해 묵묵히 일하는 외할아버지,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도 홀로 장인, 장모를 부모처럼 모시며 아들을 아끼는 사위이자 아버지… 본 영화가 보여주고자 했던 주연들의 인생과 가족애를 거짓 없고 애절하게 보여주었던 식사 장면은 지금도 최고의 명장면으로 회자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