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적이면서 좋은 차, 페라리 푸로산게
모터매거진 2023. 11. 7. 22:10 수정
페라리 푸로산게를 두고 여러 가지 말이 있지만,
페라리답게 달린다는 것 하나는 확실하다.
페라리 푸로산게 사진 모터매거진 최재혁 기자
페라리 푸로산게를 두고 정말 말이 많았다. 아무리 봐도 SUV인데, 페라리는 이 차를 끝까지 SUV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걸로 사람들 사이에서는 싸움도 벌어졌었다. 필자는 그 광경을 보면서 딱 하나가 생각났다. "파인애플 피자는 피자가 아니다"라고 외치던 이탈리아 사람들의 기묘한 고집이다. 그 교황이 에스프레소에 물을 탔다고 "교황이 커피를 망치고 있다"고 대놓고 이야기하는 이들이니 일관됐다고 해야 할까.
그러니까 페라리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SUV는 절대로 스포츠카가 될 수 없다'는 고집을 안고 사는 셈이다. 애초에 그것을 누가 법으로 정해 놓고 "스포츠카를 SUV 형태로 만드는 사람은 극형에 처한다!"라고 외치는 것도 아닌데, 그게 무서운 것인지 푸로산게를 만들면서 SUV가 아니라고 아주 힘을 주어 이야기하는 것이다. 롤스로이스가 컬리넌을 만들고서 "SUV가 아니라 하이 사이디드 비클"이라고 말하던 그때가 갑자기 떠오른다.
그냥 실용적이고 편한 차를 만들고 싶었어
SUV는 잘 팔린다. 스포츠카 브랜드라고 해도 SUV는 반드시 손을 대고 싶은 유혹인 것이다. 그 선례를 만든 것이 '포르쉐 카이엔'이다. 등장했을 때 스포츠카 마니아들은 다 놀랐지만, 결과적으로는 죽어가던 포르쉐를 단번에 살리고 오히려 폭스바겐을 차지하는 꿈까지 꾸게 했다. 그리고 그 전통(?)을 이어받아 람보르기니 우루스는 국내에서도 인기를 누리면서 람보르기니를 탄탄하게 만들고, 벤틀리 벤테이가는 전체 벤틀리 판매량의 1/3을 차지할 정도가 됐다.
그래서 페라리도 많이 팔기 위해 SUV에 손을 댔는가 하니, 그게 약간 이야기가 다르다. 물론 푸로산게가 페라리 모델들 중에서 양산차(라고 하기엔 미묘하지만 그래도)를 지향하긴 하나, 연간 생산 2000~3000대 정도다. 그리고 페라리 모델의 판매 수명이 일반적으로 4~5년 정도니 최대로 잡아야 1만5000대 정도. 게다가 푸로산게는 이전에 페라리를 구매했던 고객에게 판매가 먼저 배정되었고, 이것만으로도 생산량이 모두 예약되었다는 이야기도 돈다.
만약 페라리가 진짜로 많이 팔겠다고 욕심을 냈다면, 푸로산게의 생산량을 이렇게 제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푸로산게는 '그냥 이런 차도 만들고 싶었다'라고 보는 게 더 맞다. 애초에 그렇게 볼 수밖에 없는 것이, 차체 크기가 높이를 제외하면 이전에 판매했던 'GTC4 루쏘'와 거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네 개의 도어와 적어도 도로 위 장애물은 어느 정도 거를 수 있는 최저지상고 등을 갖추기 위해 이런 형태가 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
페라리 푸로산게 사진 모터매거진 최재혁 기자
SUV라기보다는 주행 성능을 강조한 크로스오버
외형에 대해서는 여태까지 이야기가 많았고, 보는 이마다 느끼는 것도 다를 것이니 넘어가고 싶다. 사실 이 차에서 중요한 것은 외형보다는 실내와 뒷좌석, 그리고 주행 성능이기 때문이다. 실내로 들어오면 독립 배치된 네 개의 버킷 시트가 반긴다. 대시보드는 특이하게 좌우가 거의 동일한 디자인인데, 운전석 위치를 바꿔서 생산하기는 정말 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페라리도 터치 시대를 받아들이고 있는데, 심지어 스타트 버튼도 터치 방식이다.
에어컨과 시트 열선 등 주요 기능은 중앙에 있는 다이얼로 조작한다. 가운데 터치패널에서 기능을 선택하면 다이얼이 솟아오르고, 그 다이얼을 돌리거나 다이얼 내 기능을 터치해 조작한다. 조금 복잡하지만 페라리의 조작 체계라고 이해할 수는 있는 정도다. 2열 도어는 벨트 라인에 돌출된 플라스틱을 살짝 당기면 롤스로이스처럼 열린다. 전자식 도어라 탑승 뒤 버튼만 누르면 자동으로 문이 닫힌다. 실내는 생각 외로 공간이 있고, 2열 헤드룸도 약간의 여유가 있다.
시동을 걸고 앞을 보는 순간 느껴지는 것이 '높은 시선'이다. 정확히는 SUV의 시선은 아니고 왜건을 기반으로 지상고를 약간 올린 정도 그러니까 크로스오버의 시선에 가깝다. 그래도 초반에는 꽤 높게 느껴질 것인데, 푸로산게를 제외한 페라리 모델들이 워낙 지면에 낮게 깔려 있으니 그럴 수밖에. 오른쪽 패들을 당겨 기어를 D에 맞추고 발진하면, 즉시 12기통 엔진이 활약한다. 각오 없이 가속한다면 패들을 조작할 여유가 있나 싶다.
그 움직임은 꽤 놀랍다. 시선 외의 주행 감각은 12기통 페라리의 그것이기 때문이다. "페라리의 자동차인데 당연한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필자가 놀란 것은 이전에 운전했던 GTC4 루쏘보다 812 슈퍼패스트에 더 가까운 움직임을 보였다는 것이다. 네 명이 탑승하는 긴 자동차가 아니라 두 명이 탑승하는 짧은 자동차의 기민한 움직임 그대로다. 뒷바퀴 조향 시스템이 들어가 있으니 더더욱 그렇게 느낀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서스펜션과 전자제어 시스템이 주는 안정성도 이번 기회에 제대로 알 수 있었다. 운전이 조금 서툰 이가 운전할 때 뒷좌석에 탔는데, 브레이킹 포인트부터 가속 페달을 밟는 법, 코너를 탈출하는 방법까지 모두 좋지 않았다. 옛 페라리라면 그 시점에서 좌우로 마구 미끄러지거나 제어 불능으로 사고를 낼 법도 한데, 푸로산게는 그 모든 동작을 적절히 거르면서 받아들이고 차체를 안정적으로 붙잡았다. 놀라운 발전이라고 할 수밖에.
사실 이번에는 너무 짧은 시간만 주어졌고 일반도로를 주행할 수 없어 푸로산게를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물론 폐쇄된 도로였으니 속도를 아무리 내도 경찰이 과속 딱지를 끊으러 올 일은 절대로 없지만, 이 정도의 페라리라면 일반도로에서 즐길 것이기 때문이다. 페라리만 애용하는 마니아가 진귀한 F40은 차고에 모셔두고, 일상용으로 푸로산게를 애용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래서 다음에는 일반도로에서 꼭 즐겨보고 싶다. 그때는 할 이야기가 더 많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