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라고 하면 대동여지도 김정호 정도만 알고 있었다.
예전에 영월에 몇번 갔을 때 호야지리박물관을 둘러보면서 지구본은 예쁘네, 다양하네, 지도를 보면서도 이런 걸 어떻게 그렸을까 아무리 자료를 참고했다고 하지만 하며 흘러가듯이 본 후 도록을 구입해왔다. 아직도 책장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막내와 공부하면서도 거의 보지 않는 부분이 지리부분이다.
지도가 필요한 경우는 어느에 위치한 나라인지를 알기 위해 또는 국내여행을 가는 지역을 찾아보고 어디쯤에 위치하는지 대강의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지와 여행 전에 관광안내도를 받아 경로를 잡을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보는 경우가 없다. 예전에는 운전하는 분들 차 뒷부분에 지도책이 있었던 기억이 나지만 난 운전을 안하는 사람이라 필요없었다. 그러니 더더욱 지도와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지도를 만드는 사람과 그것을 들고 다니면서 물건을 팔고 사고 했을 사람들을 생각하니 무지가 부끄러웠다.
지도에 나타난 중화주의, 도교, 한 폭의 에술과 같은 지도에 마음이 빼앗겼다. 삼면이 바다인 해안의 지도를 일직선으로 표현 한 것을 보면서 아무것도 모르겠는데 하며 한 참을 들여다 보고 글을 읽으며 웃었던 기억까지 .... 지도를 만드는 사람들의 자세와 마음, 그것들을 자료로 만든 대동여지도를 보면서 감탄만 했다.
이 책에는 인문학에 대한 생각과 기억하고 싶은 문장들도 많이 있었다. 그중에 몇개만으로 간추리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지도를 하나 씩 살펴보는 재미도 새롭다. 이렇게 지도를 자세히 본 적이 있나하는 생각까지 했다. 다음에 박물관에 가서 지도를 본다면 '알면 보이고 보이면 느끼나니, 그때 바라보는 것은 예전과 다를 것이다'라는 문장이 떠오를것 같다.
지도를 만드는 마음, 인문학의 마음을 생각하며 글을 읽어서 인지 이 마음이 널리 퍼졌으면 하는 마음에 명수정 작가의 [세상 끝까지 펼쳐지는 치마]가 떠올라 같이 읽었다. 그림책만 읽었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가슴이 충만해지고 따뜻해졌다.
<내가 찾은 문장>
p26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을 보려고 하고 이해하고 싶은 대로만 이해하려 든다. 이것은 좋다 나쁘다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신념이라는 것 자체가 그렇게 작동하게 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에서 천하도를 만든 이유가 유교와 중화 의식때문이라면, 서양의 찬하도는 기독교 때문이었다.
p51 길은 인간의 역사와 함께 존재했다. 길을 통해 물자가 교류되었으며 문명이 전파되었다. 따라서 길이 없다 해도 결국에는 절로 길이 나게 된다.
p71 전근대 세계의 지식은 주관성을 우선시하며, 자신과 주변의 공동체를 둘러싸는 연계망 사이에서 통용되는 상식이었기 때문이다. 세계나 한반도의 모습을 왜곡하여 그리더라도 그 행간을 읽어 낼 수 있는 암묵적인 약속이 있었기에 그러한 모습의 지도가 탄생할 수 있었다.
p102 시대를 앞서가는 지식인은 외로울 수밖에 없다. 자신의 이야기에 동조해 줄 사람들이 너무 멀리 있거나,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을지 모르게 때문이다.
p126 아무리 자세히 들여다보아도 지도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 안에는 분명 사람의 흔적이 존재한다. 그리고 세상은 흙과 땅만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가람이 만들어가는 것임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p160 진정한 학문은 끝의 열매가 아니라 그 근본이 얼마나 야무진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p183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문명의 기억을 증거하고 지키기 위한 노력, 비단 영화 속 사서만은 아닐 것이다. 그 길을 미숙하고 느리지만 오늘도 걸어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