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개미와 검은 부케의 여자/김정범-
산란하는 공기 위로 날던 흰개미가
날개를 몸에서 떼어낸다
짝을 찾은 다음, 모두 갉아먹을 거야
지상에 남아있는 푸른 나무들을
결혼서약서를 잃은 목탄의 여자가 부케를 흔든다
날은 흑백으로 나뉘어지고
하느님의 마지막 목소리가 노을의 건반를 두드리며
흐린 샹드리에 빛을 깨웠다
창너머 불안한 수평선에 깔리는 희고 무거운 담요
검은 여자는 모래 묻은 피부를 핧았을 뿐,
하얀 손길을 허락하지 않았다
단내를 향해 흰개미가 달려간다
붉은 핏기가 가득한 나무, 탐욕의 가스가 퍼지는 방
불꽃에 날개를 태운 흰개미 무리가
쌍쌍이 나무 속으로 들어간다
달콤한 수액이 넘치는 성체의 나무
흰개미가 지은 나무의 성문 앞에서
여자는 깨진 알을 낳는다
나무 속에서 축가가 울린다
사각사각 퍼지는 결혼행진곡
새 궁전의 복도를 따라,
죽어야 할 여왕을 위한 연주가 하늘에 닿은 가지 끝까지 올라간다
여왕은 수만의 알을 낳고
흰 곤충이 장악한 나무에서
탐욕스러운 날개가 자욱이 빠져나온다
검은 부케를 든 여자의 눈물이 모래알로 흩어진다
뼈가 부서진 집의 기둥이 천천히 무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