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발, 콜록. 빨리 나폴레옹씨 줘."
역시나 오늘도 어김없이 오후 8시에 그가 헐떡이며 편의점으로 들어왔다.
손님이 없을때면 난 아예 그를 기다리고 앉아 죽치고 있다.
고등학생 주제에 대학생한테 반말을 찍찍하며 양주 나폴레옹씨를 찾는 그 녀석.
여태껏 후한이 두려워 곱게 양주를 내밀었지만 오늘은 안될 것 같다.
경찰새끼 하나 떠서 나까지 끌고가면 난 뭐라고 해야 할 것인가.
겨우 '고등학생 하나 무서워서 나폴레옹씨 맨날 드렸습니다.'라고 할 것인가.
오늘은 절대 그에게 양주를 곱게 넘겨선 안되고 민증을 까던지 해야겠다.
더 더욱 무서워진 눈매로 뭐하냐는 듯 날 쳐다보는 녀석이다.
"뭐하고 있어. 빨리 내 놔."
"안되겠는데요. 손. 님."
"쿠쿡, 놀고있네. 뭐라고 그랬냐?"
손님이 없어서 망정이렷다. 매우 건방진 녀석의 말투에 나는 쫄았다.
그리고 녀석에게 손을 내밀어 '마시고 싶으면 민증 까.'라고 눈빛을 보냈다.
신기하게도 그 눈빛을 읽은건지 녀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내놓겠지 하던 건 안 내놓고 뽀얀손을 내 손위에 올려놓는 녀석이다.
어이가 없어 입술끝이 미세하게 올라갔고 녀석은 아니냐는 듯 도리도리했다.
눈에 약간 힘을 주며 고개를 끄덕이자 손을 내려놓고는 '응.'하고 대답했다.
그러더니 껌을 씹고 있던건지 내 손위에 예의있게 껌을 툭하니 뱉는다.
슬슬 내 눈썹이 운동을 하기 시작하고 녀석은 재미있는지 웃어댄다.
"고등학생 주제에 까불지마시죠."
"피식. 그러세요?, 권보아씨."
내가 내 이름에 약간 놀라자 그 녀석은 내 가슴께를 웃으며 가리킨다.
손님께 내 본성격을 보여드릴까 걱정되어 난 참으며 껌을 떼어냈다.
나도 녀석의 이름을 알고싶어 녀석을 쳐다보았지만 명찰은 달고 있지 않았다.
새파랗게 젊은것이 매일 양주마셔서 금방 죽고 싶은 거로구나.
너 빨리 죽게 도와주고 싶지만 밥 한 끼 더 먹은 내가 어떻게 그럴 수 있겠니.
난 '빨리 나가버려라, 아가야.'하고 손짓을 했더니 녀석, 웃고 있다.
내가 나폴레옹씨를 넘길 것 같지 앉자 차갑게 굳어버린 녀석.
즐겨선 안될 상황이지만 22세 나 권보아에겐 녀석이 참으로 귀여워보인다.
"나 어차피 금방 죽어. 그러니까 내 놔."
"그건 제가 알 바가 아니죠."
"쿨럭. 너 폐암이라고 들어봤을 거 아냐."
그러며 녀석은 심하게 기침을 해대기 시작했고 난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손으로 가리지못한 녀석의 입에서 나온 피들은 바닥으로 추락했다.
내가 뭐라하기도 전에 녀석은 계속 기침을 해댔고 얼굴은 빨개져있었다.
그럼 매일 매일 수척해지는 게 폐암이라는 것 때문이었나.
난 쓰러질 듯 위태롭게 기침하는 녀석을 부축하며 테이블로 왔다.
'나폴레옹씨와 항상 입맞춤하니 폐암이 생긴거겠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툭'하고 떨어진 건 녀석의 주머니에 있던 말보로였다.
술과 담배로 찌든 인생을 살아온 녀석이 무척이나 한심스러워 보이기 시작했다.
폐암이라는 걸 알면서도 넌 포기하고 술과 담배를 사랑해왔겠지.
병원에 데려가야할까 생각되었지만 녀석이 싫어할 게 뻔했다.
"쿨럭, 쿨럭...... 하아... . ."
"괜찮으신가요?"
"쿡. 너 겁먹었구나. 쿨럭!!!!"
이 새끼가 진짜. 죽을듯이 기침을 해대는 너 때문에 목소리가 떨리잖아.
여기서 이대로 죽으면 사람들이 내가 죽였다고 오해할 것 같아.
그럼 니가 책임질거냐? 니가 살아 일어나서 '폐암이 절 죽였습니다.'해줄거냐고.
그리고 또 네가 사랑하는 외로운 나폴레옹씨 반품될 게 뻔한 거잖아.
녀석은 갑자기 내 손에 자기 휴대폰을 쥐어주었고 '1번눌러.'라며 말했다.
지 애인이라도 불러서 너 데려가라고 말하라는거야, 뭐야. 이 녀석아.
난 어쩔 수 없이 녀석의 휴대폰의 1번을 꾸욱 눌렀고 신호음이 갔다.
'여보세요.'라는 로우톤 목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이 상황에서도 난 목소리에 반했나보다. 정신을 차린 뒤 차근차근 말했다.
"쿨럭쿨럭. 뭐래냐?"
"금방 오겠다고 하던데요."
"근...... 쿨럭!!!!!"
뭐라하려던 녀석의 입에선 다시 피가 나왔고 난 아꼈던 손수건을 건네주었다.
손수건으로 최대한 입을 막고 기침을 하는 녀석이 처음으로 불쌍했다.
그리고 왠지 녀석이 더 궁금해졌고 빨려드는 내가 이상할 뿐이었다.
장례식하게 되면 난 나폴레옹씨를 들고 가서 건네줘야겠다.
참, 말보로도 여러 갑 준비해서 갖다주면 좋아라하고 가져가겠지.
편의점문이 급하게 열리고 예쁘장하게 생긴 남자가 헉헉대며 들어왔다.
난 신경도 안쓰고 녀석을 살피며 연신 '괜찮냐?'만 반복했다.
"아, 일단 감사합니다."
"아니요. 괜찮아요."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쿨럭. 보......아."
내 이름을 다정스레 부르던 녀석은 결국 남자의 품에서 쓰러져버렸다.
그리고 그렇게 녀석은 편의점을 나갔고 금새 사라져버렸다.
보아라고 작게 속삭이던 녀석의 음성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귀에 박힌 건 오래고 점차 몸과 마음을 지배하기 시작하며 새겨졌다.
1일, 2일, 3일...... 15일이 지나도 녀석의 목소리가 맴돈다.
매일 8시를 기다리던 나로써는 내가 참 바보같고 한심해져갔다.
그냥 죽었는지 살았는지 생사를 알고싶을 뿐이라고 생각하며 지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는 걸 보면 가버린걸까. 저 세상으로.
"저기요. 저 기억하시나요."
"아, 네. 기억나요."
"그럼 녀석도 기억하시죠?"
갑작스레 찾아온 예쁘장한 남자에게서 이상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녀석이라면 그 녀석밖에 없겠지. 난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교대시간이 되었는데 맞춰서 온건지 자기와 어딜가자고 했다.
녀석의 무덤으로 가는것인가, 아님 강가나 그런곳에 가는건가.
1시간 30분이란 시간을 지나 도착한곳은 별장으로 보이는 곳이었다.
내려서 가보라는 남자의 말에 난 혼자 별장안으로 들어갔다.
무덤이 아닌걸보면 아직 이 세상에 남아있는 것 같다. 왠지 그렇게 느껴진다.
그럴 줄 알았으면 말보로와 나폴레옹을 두둑히 챙겨와야 하는 것인데.
'왜 날 불렀을까.'하는 생각을 내 머리는 생각해내지 못했다.
"왔네. 대담한 편의점양."
"그래. 왔다."
"존대가 아니군. 손님이 아니라 그런가."
"그건 당연한 것 같은데?"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는 듯 했다. 녀석의 안색은 정말 말이 아니었다.
정말 이대로라도 죽을 것 같은 얼굴이었으며 눈매는 힘을 잃었다.
이리오라는 듯 힘겹게 손짓하는 녀석에게 천천히 다가가 옆에 앉았다.
기다렸단듯이 내 어깨에 자기 머리를 기대고는 노래를 부른다.
내 심장을 도려내려 작정을 한 것인지 녀석의 목소리는 아름답고 슬펐다.
"내가 없는 너의......하루 어떻게 흘러가는건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난 너무나 궁금한데.
너의 작은 서랍속에 일기장이 되고싶어.
알 수 없는 너의 그 비밀도 내 맘속에 담아둘래. 너 몰래......"
"의외로 잘 부르네."
"당연한거지. 난 완벽하니까."
"................................"
"근데 죽을거니까 완벽해봤자지."
고개를 돌려 녀석을 쳐다봤을 때 녀석은 눈을 감고 있는 상태였다.
녀석의 노랫소리가 왜 죽음의 목소리로 들렸던건지 나에게 화가 났다.
비록 거친 숨소리지만 내 옆에서 이렇게 녀석이 숨을 쉬고 있는데.
숨이 점점 더 거칠어갈수록 내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계속 들끓고있었다.
고등학교한테 술 팔 때보다 더 짜릿하고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도대체 난 뭐가 무서운걸까. 이대로 녀석이 죽어버릴까봐?
한참 생각의 나라에 빠져있는데 녀석의 차가운 손길이 느껴졌다.
욕짓거리만 내뱉는 녀석의 험한입이 오늘따라 반갑게 느껴지는 건 착각인가.
"너도 보답해야 될 거 아냐."
"나 노래 못 해."
너 지켜보느라 노래따위 부르고 싶지도 않고 듣고싶지도 않아.
다 들어줄 자신 있으면 꾀꼬리같은 목소리로 당장 불러주겠지만...... 아니잖아.
노래 못한다고, 까마귀같다고 하면 노래부르는 대신 널 볼 수 있잖아.
고개를 젓는 녀석은 너무도 여려보였고 안아주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자꾸만 '불러봐.'하는 음성이 너무도 간절하게 들려왔다.
어쩔 수 없이, 정말 어쩔 수 없이 네 노래에 보답해준다. 불쌍해서!!!!!
난 고개를 끄덕거리곤 천천히 입을 열었지만 목이 메여왔다.
노래짱인 내가 정말 '까악까악.'하고 울어버릴까 겁이 나기도 했다.
"내 마음이 이런거야 지켜볼수만 있어도.
너무 감사해 많이 행복해 나 조금은 부족하더라도.
언제까지 너의 곁에 연인으로 있고 싶어......
너를 내 품에 안은 채 굳어버렸으면 싶어 영원히."
"하, 뭐야. 정말 까마귀네?"
"닥치고 가만있어. 숨이나 제대로 쉬어."
"......유...지원... . ."
녀석의 무거운 머리가 내 무릎위로 떨어져버렸고 정적만이 감쌌다.
내 노래처럼 너랑 굳어버렸으면 좋겠네, 아주. 겁나 죽어버릴 것 같아.
죽으면서 할 말이 네 이름뿐이 없어? 정말 잘났다, 너.
사람 이렇게 쇼크주고 죽어버리고는 네 이름 기억하길 바라는거야? 잔인해.
새파란 고등놈 니 이름만 이 세상에 남길 원하는거냐. 뭐야.
이 세상에서 내가 니 이름 기억해주길 바라는구나. 그런거구나......
언제부터 들고 있었던건지 녀석의 왼손엔 내가 준 비싼 손수건이 쥐어있었다.
이 손수건은 아까워서라도 내가 가져야겠고 니 이름 기억하려면 필요해.
"혼자 가실 수 있으시죠?"
"네. 안녕히 계세요."
다시 편의점으로 돌아왔을 때 나폴레옹씨가 그렇게 미워보일때가 없었다.
멋있는잔에 대충 따라서 원샷을 하고 손수건을 꽉 쥐었다.
입가엔 하지 못한말과 쓴 맛이 어울리고 마음속으로 들어가 슬픔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위대한 이 나폴레옹씨에게 담아두려한다.
유지원이라 했나. 그 녀석 이름을 이 잔에 묻고 마시면 내 맘이 기억하겠지.
추운 겨울, 편의점의 나폴레옹의 애인 그 녀석은 내 심장을 가져갔다.
그래서 심장이 없는 난 어느 누구도 사랑할 수 없어졌다.
내 마음과 내 눈과 심장이 나도 모르게 향했던 그 녀석은 이미 내 심장을 가지고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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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기보아소설·
단편완결
* 위대한 나폴레옹 한 잔에 담아둔 네 이름 *
은빛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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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2.16 18:52
댓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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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ㅇ0ㅇ,,,멋져요!!!!ㅠ0ㅠ!!!
와ㅏㅏㅏㅏㅏㅏㅏㅏ표현이너무 굳뜨 에요 > < 와 ㅠㅠㅠㅠ
>_<!!!!!!!!!!!!이쁭식무리자식♡어디간거야, 은빛해권.....................................바부.......나 모라구불러야해......................................................................................아모튼 사랑해 '^ '*버디에서 갈쳐주기이잉♡
체본 // 아, 멋진가요? (긁적) 정말 감사드리구요. 전 왠지 단편에 정이 가서;;;
첼륜 // 표현ㅠ 최대한 열심히 쓴건데...... >,.< 정말 감사해요!!!
하멜 // 큐트멜♪ 은해는 안되고 은빛이나 이름불러(강제) -.ㅜ뭐 네 맘이지용★
재밌어요-0 -!!!!!!!!!
애원 // 그냥 삘(;;) 받아서 쓴건데 재밌다니 다행이에용♡
동방신기 노래네요>_< 재미있게 읽고가요乃
은빛언니는ㅇ_ㅇ.단편도잘쓰는구나> <~ 엄머 멋져멋져><★ 은빛쨩 잘보고가요 유후~♬
'부족하더라도' 가 아니라 '부족 해도'군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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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ㅇ.ㅇ.......멋있다^ ^+
읽고 또 읽어도 마음에 들어요.^^;
와 멋있다+ 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