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이야기/ 김보현
나에게 어떤 스포츠를 가장 좋아하냐고 물으면 주저없이 야구라고 답할 것이다
물론 지금은 볼링이나 당구 등 직접 하는 게임을 주로 즐기며 친하게 지내고 있지만 나는 어렸을 때부터 야구가 좋았다
TV가 드물었던 시절이라 라디오 중계방송을 통해 야구를 만나게 됐는데 생생하게 전해지는 캐스터의 중계방송이 너무 멋있었고, 어렵고 복잡한 야구 규칙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것이 흥미롭고 좋았던 것 같다
당시에는 프로야구가 없었던 시절이었고, 실업야구보다는 고교야구가 인기가 더 많았는데, 나는 고교야구보다는 수준이 조금 높았던 실업야구를 더 좋아했다
당시 실업 팀으로는 한일은행, 상업은행, 제일은행, 기업은행, 농협, 한전 등으로 주로 금융기관이 많았고 기억에 남는 선수로는 김응용, 박영길, 강병철, 김우열, 김차열, 하갑득, 한동화, 강태정, 유백만 등이 있다
대표적인 기록경기 종목인 야구를 좋아하고 야구규칙과 선수들의 기록은 훤히 꿰고 있었지만 실제로 야구를 할 기회는 별로 없었으며, 기껏해야 학교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캐치볼을 하는 정도가 전부였다
나에게는 야구규칙과 관련해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
중학교 1학년 때 였는데, 체육교사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야구장 전광판에 있는 H, B, E는 알겠는데 FC는 뭔지 모르겠다고 하시며 혹시 아는 학생이 있냐는 말씀을 하시는 거였다
다시말해, 타자가 안타를 쳐서 진루하면 H, 볼넷이나 사구로 진루하면 B, 야수의 에러로 진루하면 E에 불이 들어오는 것은 알겠는데 FC는 어떤 경우에 해당되는지 잘 모르겠다는 말씀이셨다
드디어 그동안 내가 갈고 닦은(?)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기회가 온 것이다
나는 용감하게 교단에 나가 FC란 Fielders Choice의 약자로, 야수가 타자를 1루에서 충분히 아웃 시킬 수 있음에도, 타자주자보다는 선행주자를 잡기 위한 플레이를 펼쳤다가 선행주자와 타자주자가 모두 살게 되는 경우로, 결과적으로 야수의 선택에 의해 타자주자가 진루하게 됐다는 의미에서 우리말로는 '야수선택'으로 표시한다는 것, 그리고 비록 1루에서 아웃되지 않고 진루에 성공을 했더라도, 타수에는 들어가고 안타로 기록되지 않기 때문에 타율은 떨어지게 된다는 등의 내용을 설명했던 기억이 있다
내가 본격적으로 응원하는 구단을 갖게 되고 야구장에 자주 가기 시작한 것은 1982년에 프로야구가 출범하고 부터였다 당시 무력으로 정권을 잡은 군사정권이 국민의 관심을 다른 쪽으로 돌리기 위한 목적도 있었던 프로야구 출범에 많은 국민들이 열광했고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출범 첫 해, 서울을 연고지로 하는 MBC 청룡, 부산을 연고지로 하는 롯데 자이언츠, 대구를 연고지로 하는 삼성 라이온즈, 광주를 연고지로 하는 해태 타이거즈, 대전을 연고지로 하는 OB 베어스, 인천을 연고지로 하는 삼미 슈퍼스타즈 이상 6개 구단이 참여하였는데 서울이 고향인 나는 자연스레 MBC 청룡을 응원하게 됐다
프로야구의 원년 챔피언은 박철순이라는 걸출한 투수를 보유한 OB베어스가 차지했으며 내가 응원한 MBC청룡은 아쉽게도 3위에 그치는 성적을 올리는데 그쳤다
당시 프로야구의 열기는 대단했으며, 야구가 그동안 인기를 누려왔던 축구를 제치고 단연 최고 인기 스포츠 종목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나의 MBC청룡 사랑은 MBC청룡이 LG트위스로 바뀐 후에도 계속 되었으며, '신바람야구'를 표방한 LG트윈스가 1990년과 1994년 코리안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며 절정에 달했다
주중에도 한두차례는 잠실야구장을 갔었는데 6시30분에 시작하는 경기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퇴근시간인 6시 땡하자마자 퇴근을 하곤 했으며, 일요일이면 LG트윈스 어린이회원이기도 했던 아들을 자주 데리고 가기도 했다
지금도 LG트윈스 우승의 주역인 김용수, 김동수, 정상흠, 이광은, 유지현, 김재현, 서용빈, 노찬엽, 김상훈, 이상훈 선수 등이 생각나며, LG트윈스가 이기고 있는 게임의 7~8회이면 마무리를 하기 위해 갈기머리를 휘날리며 힘차게 마운드로 달려 나가는 야생마 이상훈 투수는 아들이 특별히 좋아하는 선수였다
야구 경기 자체가 재미있고 좋기도 하지만, 녹색의 싱그러운 잔디가 깔려있는 야구장의 드넓은 그라운드에 매료되지 않을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어디 그 뿐이랴! 야구장을 가득 메운 3만여 관중과 그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우렁찬 함성소리는 묘한 전율과 흥분감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지금은 코로나19로 수용 인원의 30%까지만 입장이 가능한데, 빠른 시일 내에 예전의 열기를 느낄 수 있는 날이 왔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야구를 흔히 인생에 비유하곤 한다
아무리 많은 점수 차이로 지고 있어도 일거에 뒤집을 수 있고, 빈타에 허덕이던 선수도 결정적 한 방을 날려 승부를 결정지을 수 있는 것이 야구다
그만큼 변화무쌍하고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것이 우리들 인생과 비슷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가 하면 야구는 반드시 1, 2, 3루를 거쳐서 홈으로 들어와야 점수를 내는 게임이다
아무리 홈런을 쳤더라도 1, 2, 3루를 거치지 않고 홈으로 들어올 방법은 없다
그만큼 야구나 우리 인생이나 모두 하나하나 단계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내 인생을 야구에 비교한다면 과연 나는 지금 몇 회쯤일까?
5회는 지난 거 같고 6회의 어느 지점을 지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지금 진행 중인 6회, 그리고 아직 남아있는 7, 8, 9회에 어떤 변화가 있게 되고, 무슨 일이 내 앞에 펼쳐질지 자못 궁금하다 |
첫댓글 자문위원님의 야구사랑 멋지네요
저는 제일 못 하는게 농구랑 야구예요 ㅋㅋㅋ
우리 고문님 글솜씨는 정말 쵝오!!! 대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