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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유네스코의 평생학습 보고서 -평생학습의 네기둥
세계적인 석학 12명을 위원으로 구성된 유네스코 21세기 세계교육위원회는 21세기를 전망하며 새로운 사회의 모습을 상정하고 이에 맞는 교육적 대응과 전략을 보고서로 집필하여 낸 바 있다. 여기에서 살펴보게 되는 교육의 네 기둥 이론이 그것이다. 이러한 신교육관은 오늘날 교육개혁의 방향과 주요사업을 수립하는데 있어 중요한 시금석이 될 수 있으며 학교교육헌장에서 21세기 시민을 기르는 교육자들이 늘 유념해야 할 학습방향 및 교육과정의 구성 및 학습전략, 평가지침이 될 것이다.
1. 알기 위한 학습 (Learning to know)
알기 위한 학습은 인간 개개인의 삶에 의미를 주는 살아 있는 지식의 습득을 위한 학습을 말한다. 보편화되고 객관적인 지식의 내용 습득보다 실생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도구와 학습방법에 숙달하는 것이다.
그것은 삶의 목적인 동시에 수단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수단으로서의 교육은 개인이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존엄성을 지키면서 살아나가고 직업기술을 발전시키고 또 의사를 소통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알기 위한 학습
은 이해하고 알고 깨닫는 일 자체의 즐거움에 그 기반을 둔다. 오늘날은 응용지식의 중요성을 무시할 수 없어서 즉각적 소용이 없는 공부는 점점 소홀히 취급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교육기간이 점점 더 길어지고 자유시간이 더 많아짐에 따라 개인적인 연구로부터 즐거움을 누리고자 하는 성인들의 숫자 또한 날로 늘어가고 있다. 주변환경의 다양한 측면들에 대한 지식의 분야들이 확대됨에 다라 사람들은 더 많은 지적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비판능력을 고양하며, 또 독립적인 판단력을 갖춤으로써 현실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점에서 볼 때, 학습자들은 다채로운 학문의 과학적 방법론에 관한 지식을 어느 정도나마 적합한 형태로 획득하여 '과학의 친구'가 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중등교육의 경우는 특히 경제적 근본주의에 입각한 효율성과 생산성 위주의 응용학문이나 직업교육에 경사되는 교육은 조심해야 할 것이며, 과학부문의 경우에서도 과학적 기초소양을 습득하며 사회적 진보에 대한 이해와 현대의 패러다임이 가져다준 도구적 개념과 준거들에 대한 기본적 소양훈련을 받아야만 한다.
다시 말해 21세기 미래에서는 전문 연구자들이나 학자들도 교양적 지식을 배척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장차 미래사회에서 요청되는 교양인은 "참으로 잘 훈련된 지식인이어야 하고 이는 광범위한 지적 배경을 가지고 소수의 몇 분야를 심도 있게 연구할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교양교육을 통해 개인은 다른 언어와 지식 분야에 접촉할 수 있게 되며 무엇보다도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된다. 자기만의 분야에 묻혀 버린 전문가들은 다른 사람들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멀어지는 위험을 감수하게 된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들은 협력이 쉽지 않은 일임을 알게 될 것이다. 교양교육은 사회를 시공간적으로 연계시켜 주며, 다양한 분야의 학문세계를 접하고 활용하도록 하여 지식에 대한 감수성을 높임으로서 학문간의 상승적인 발전효과를 가져온다. 지식, 특히 연구분야에 있어서 일부의 소중한 발전은 학문간 경계부문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알기 위한 학습은 "학습하는 법에 대한 학습"을 의미하며 문제 분석력 및 집중력, 평가 관련 사고력을 습득하기를 요구한다. 어릴 때부터 어린이들은 사물과 사람들에 주의를 집중하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이는 특히 텔레비전에 지배당하고 있는 현대사회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대중매체를 통한 정보더미들의 급속한 확산과 광범하게 퍼진 채널 바꾸기 습관은 지적 발견과정에 장애가 된다. 지적 발견과정은 본래 시간투자를 요구하고, 입수한 내용을 더 깊게 곱씹을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집중력 학습은 여러 형태를 Elf 수 있는데 다양한 게임, 산업체 훈련,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는 여행, 과학실험 등이 있다.
고급사고력을 키우고 사고의 전략을 세워나가고 이를 스스로 모니터링할 수 있는 능력(이른바 메타인지 능력)이 있다면 이는 학습자에게 닥친 문제나 쟁점을 효과적으로 해결하여 나갈 수 있고 대중매체가 무책임하게 퍼부어 놓는 단순정보들의 늪에 빠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우리가 마음대로 막대한 양의 정보를 저장하고 순환시킬 수 있다는 이유 때문에 더 이상의 기억은 필요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상상만 해도 위험 천만하다. 우리는 분명히 '마음으로' 배운 것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사고력 연습은 처음에는 부모가 어린이들에게 그리고 다음에는 교사들이 소개하게 되는데, 그것은 반드시 구체성과 추상성 사이의 양방향 교류를 포함해야 한다. 그러므로 교수와 연구에 있어서 가끔 상호 모순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연역법과 귀납법의 양자는 반드시 조화를 이루어야만 한다. 특정한 학문분야에 있어서는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보다 더 적합한 경우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지만, 대개의 경우 일관된 사고과정은 양자의 조화를 요구한다.
지식을 획득하는 일은 지속적 과정이며, 모든 형태의 경험들에 의해 풍요로워 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지식의 획들은 노작 경험과 점점 더 밀착되어가고 있으며, 노작(勞作)은 그 성격상 반복적인 것을 탈피해가면서 더욱 강화되고 있다. 초기교육은 삶의 전 과정을 통한 계속학습을 가능하게-일터를 떠나서도 일이 가능하게 할 씨앗과 터전을 제공했다면, 성공적이라고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2. 행동하기 위한 학습(Learning to do)
이는 개인의 환경에 대한 창조적 대응 능력의 획득에 대한 학습을 말한다. 알기 위한 학습과 행동하기 위한 학습을 구별하기는 매우 힘들다. 행동하기 위한 학습은 직업훈련 문제에 보다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그것은 어떻게 하면 어린이들이 배운 바를 실천하도록 가르칠 수 있으며, 어떻게 하면 교육이 미리 예측하지 못한 가운데 생겨나는 미래의 직업을 준비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UNESCO 21세기 세계교육위원회는 특히 이 중에서 후자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
금세기 산업유형의 발전경향을 보았을 때 인간노동은 점점 실체가 없는 정신적인 것 위주로 발전되어 그에 따라 산업분야에서도 노동의 지적 관련성 및 서비스 부문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음을 평생교육 과정에서 유념해 나가야 할 것이다.
평생교육의 활성화를 통하여 각 개인이 학습하는 방법을 배우도록 해야 할 것이며 행동하기 위한 학습은 21세기 정보화 사회의 부각에 따라 평생학습의 차원에서 다양한 직업세계를 이해하고 주체적으로 역할을 다할 수 있는 개인적 능력의 신장을 앞세운다. 기술진보의 결과 새로운 생산과정은 보다 지적이고 정신적인 작업, 이를테면 기계를 제어하고 관리하고 감독하는 작업들로 대체되고 있으며, 이와 동시에 설계하고 연구하고 조직하는 일들로 대체되고 있다. 왜냐하면 이제 기계들은 그 자체로서 보다 '지능적'이 되었으며 육체적 노동에 대한 요구는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 현장에서의 기업가들은 노하우라는 관점에 머물러 있는 기술을 요구하는 대신에 특정 개인의 창조적 능력을 찾고 있다. 이러한 능력은 평생교육의 과정에서 기술, 직업훈련을 통해서 획득된 엄격한 의미의 기술, 사회적 행동, 팀웍을 위한 소양. 그리고 솔선수범 및 진취성의 발휘. 타인과의 협동과 갈등의 관리 기술 등을 포함하는 복합체로 나타나고 있다.
행동하기 위한 학습의 내용과 관련하여 유념할 사항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① 학습내용으로 다루어 질 사항은 인간 서비스에 관한 사항들이다. 그 예는 시장부문보다 보다 전통적인 비시장 부문 모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를테면 모든 종류의 전문가들, 기술감독·자문 서비스, 금융·회계·관리 서비스 등이 전자이며 후자의 경우는 사회봉사와 교육, 읠 등을 들 수 있다. ② 학습의 과정에서는 지식정보와 의사소통을 가장 중요하며, 특정 목적을 위한 특정 정보의 개인적인 획득과 처리가 강조된다. ③ 학습의 내용 중에서는 전통적인 훈련에서는 꼭 필요치 않았던 인간적 자질. 곧 안정적이고 효과적으로 개인간의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과 관련된 자지를 고양하는 것이 핵심사항으로 등장하였다. ④ 학습의 기능은 직업에만 제한되어 있지 않고 사회 발전에 공식적으로 또는 비공식적으로 참여하기 위한 보다 광범위한 목적에 관련되어 있다. 종종 그것은 직업기술의 문제인 것만큼이나 환경문제 및 범죄문제 등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기도 한다. ⑤ 과학문명을 통한 근대적 기술의 습득과 더불어 지역적 상황의 특수성을 고려하고 사회문제 해결에 필요한 혁신과 창조의 특수한 능력을 함께 계발하도록 한다.
3. 함께 살기 위한 학습(Learning to live together)
이는 공동체 속에서 다른 지역 사람이나 외국 사람과의 조화 있는 삶의 영위와 공존하며 참여할 수 있는 능력을 학습하여 가는 것을 말한다. 함께 살기 위한 학습은 21세기를 여는 하나의 열쇠이다. 그것은 급속하게 변화하는 세계에 의해 제시된 다양한 도전들에 대한 대응을 의미하며, 구체적으로는 개인의 삶과 직장생활에서 제기되는 새로운 상황에 창조적으로 적응하는 교육적 대응이다.
이러한 종류의 학습은 아마도 오늘날의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중의 하나일 것이다. 현대사회는 인류의 진보 속에 기대했던 희망을 배반하는 폭력이 너무나 자주 난무하는 세계이다. 전 인류의 역사를 통해 갈등은 항상 존재해 왔다. 그러나 20세기를 거쳐오면서 핵무기의 발달 등 인류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위험이 극대화되었으며 인류를 자멸시킬 수 있는 가공의 능력이 갖추어져버렸다.
과연 타인들과 그들의 문화, 그들의 정신적 가치들을 존중하게 함으로써 평화적으로 갈등을 피하고 해결할 수 있는 교육의 형태를 고안할 수 있을 것인가?
사람들은 매우 자연스럽게 자신들이나 자기네 집단들의 자질을 높이 평가하고 다른 사람들을 향해서는 편견을 은닉하려드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오늘날 경제적 활동의 특징상 국내뿐 아니라 국가간에도 경쟁이 일반화되어 있는 분위기로 말미암아 경쟁심과 개인적 성공이 최우선시되고 있다. 그러한 경쟁은 이제 무차별적인 국가간 지역간 경제전쟁과, 국가들과 세계를 분할하고 역사적인 적대자들을 부추기는 부자와 빈자간의 긴장으로 치닫고 있다. 불행한 것은 교육이 종종 경쟁을 잘못 해석하여 이러한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데 관여한다는 점이다.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는가? 경험상 우리는 이러한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는 다른 집단의 사람들과 접촉하고 의사 소통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을 배웠다. 만약 다른 집단들이 서로 경쟁관계에 놓여 있거나 그들의 환경에서 불평등한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경우에는 오히려, 잠재되어 있던 긴장을 불질러 갈등으로 내닫게 할 수도 있다. 그 반면에 접촉이 평등한 상황에서 이루어지고 공동의 목표와 공유된 목적을 가질 경우에는 편견과 잠재된 적대감은 감소될 수 있고 보다 편안한 협력과 우정까지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므로 교육은 서로 보완적인 행로를 가야만 할 것 같다. 한 차원에서는 다른 사람들을 서서히 발견하게 되고, 또 다른 한 차원에서는 삶을 통해 목적을 공유하는 경험을 가져보는 것이다.
교육의 과업은 언제나 인류의 다양성과 함께 그들간의 유사성·상호의존성에 대한 인식을 가르치는 데 있다. 구체적으로 함께 살기 위한 학습을 위하여 유념할 사항은 다음과 같다.
①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면 먼저 자신을 알아야 한다.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 세상에 대한 바른 관점을 갖게 하기 위해서 교육은 가정에서든 지역사회에서는 학교에서는 먼저 그 자신들이 누구인지를 발견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② 다른 사람이나 타 지역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고 가치를 부여하기 위한 문화 상대주의적 입장과 태도를 기른다. 예를 들어, 젊은이들에게 다른 민족과 다른 종교의 관점을 가질 수 있도록 가르침으로써 성인들 사이에서 증오와 폭력을 낳게 하는 이해결핍의 상태를 면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종교와 관습의 역사를 가르치는 일은 이처럼 미래의 행동에 대한 유용한 기준을 제공한다.
③ 실제 가르치는 행위는 타인에 대한 인정을 배제하고서는 일어날 수 없다. 상대의 인격을 존중하고 대화나 토론을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만약 교사가 아이들의 호기심과 비판정신을 고취시키지 않고 권위주의적으로 억누른다면 이로움보다는 해로움이 더할 것이다. 만약 교사가 자신들의 아이들의 역할모델이라는 점을 망각한다면, 그들이 가르치는 학생들을 영원히 다른 사람들에 대한 수용자세를 갖추지 못할 것이며 사람들과 집단들, 그리고 국가들 간의 긴장에 직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④ 공동의 목표실현을 위한 교육적 배려를 체계적으로 실시해 나간다. 사람들은 상금이 걸린 일을 일상적 일과에서 벗어나 함께 할 때에는 서로의 차이나 심지어 갈등까지도 유보하거나 때로는 잊어버린다. 사람들은 그러한 일들에서 새로운 자신을 찾게 된다. 그래야만 그들은 개인적 일상성을 극복하고 서로의 차이보다는 공통적으로 가진 것들을 강조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예는 스포츠에서 볼 수 있다. 유사한 경우이지만 일에 관한 한 많은 모험사업들은 위계적인 조직에서 흔히 발견되는 갈등들을 공동목표를 통해 극복하지 않는 한 성공을 기대하기 어렵다.
⑤ 어린 시절부터 스포츠나 문화활동에의 참여를 통해, 그리고 도는 불우 이웃들을 돕기 위한 지역사회 개선사업, 인본주의적 활동, 세대간 지원활동 등과 같은 사회봉사에의 참여를 통해 협력활동에 기여할 시간과 기회를 많이 제공해 나간다.
함께 살기 위한 학습은 오늘날 지역간 국가간의 분쟁이 심각하게 벌어지는 상황에서 특히 요청되는 교육적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나라에서도 지역간의 감정을 경험할 수 있고 집단간 각종 다양한 이기주의를 볼 때 이 같은 교육적 고려는 더욱 요청된다. 세계적으로도 함께 살기 위한 교육적 배려는 우리 나의 남북한 갈등사태를 비롯하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민족간의 갈등 인도네시아에서의 동티모르 사태, 최근의 코소보 사태에 이르기까지 인종간 민족간의 상호 이해와 화합의 이행은 매우 중요한 것이 되고 있다. 이밖에도 지구촌의 함께 맞고 있는 공해환경문제, 이상기후, 생태계의 파괴 등에서 볼 수 있는 환경문제,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한 식량부족과 빈곤의 문제, 학교총기 난사사건 및 범람하는 각종 폭력과 테러 사건을 볼 때 이제는 학교에서부터 국제시민 육성교육과 이웃이나 타 지역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공동체 의식교육이 매우 시급해졌음을 깨닫게 한다.
그리하여 교육에서는 기본 예절과 공동체의식의 형성 및 타지역 문화와 가치관에 대한 문화 상대주의적 태도를 육성하는 교육이 매우 중요하게 되었다. 이는 오늘날 국제이해 교육 혹은 세계교육 등으로 각급 학교에서 강조되고 있다. 이런 교육은 우선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를 올바르게 하는 일이 이루어져야 하며 타인의 문화에 가치인정과 존재의 확인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다. 자기이해란 자신의 가치와 존재에 대한 정체성의 확립, 자아개념의 형성을 주로 의미한다. 타지역이나 타국가의 문화에 대한 상호인정과 문화교류의 활성화는 인류 공동의 문명과 번영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고 세계화를 촉진하며 국제시민의 육성에 이바지하는 첩경이 된다.
4. 존재하기 위한 학습(Learning to be)
이는 교육의 궁극적 목표로서 앞의 세 가지 교육적 기능의 총체로서 나타나는 것으로, UNESCO 21세기 교육위원회는 각 개인의 전인적 발전, 곧 마음과 몸, 지능, 미적 감각, 개인적 책임감, 정신적 가치의 모든 면에서의 조화로운 발전을 통하여 이룩되어진다고 밝힌바 있다.
존재하기 위한 학습에 대한 구체적 내용은 1972년 유네스코에서 펴낸 에드가 포르(Edgar Faure)의 "존재하기 위한 학습 : 교육세계의 오늘과 내일"(Learning to be : The world of Education Today and Tomorrow)이라는 보고서의 지배적인 주제이다. 그 보고서의 권고안들은 여전히 매우 타당하다. 왜냐하면 21세기에는 모든 사람들이 공동의 목표를 획득하기 위해 더 강한 개인적 책임감 아래 보다 큰 독립심과 판단력을 실행할 필요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 내부에 묻혀 보물처럼 숨어 있는 그 어떠한 재능도 결코 미개발 상태로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 몇 가지만 열거하자면 기억력, 추리력, 상상력, 육체적 능력, 미적 감각, 다른 사람과 의사 소통하는 소질, 그리고 지단지도자로서의 타고난 카리스마(이는 이른바 가드너 교수가 주창한 다중지능이론과 상통한다)-이런 것들은 더 큰 자기인식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입증한다. 이 같은 교육의 목표가 구현된다면 또 하나의 교육 유토피아가 실현되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그것은 지식의 획득·쇄신·활용에 바탕을 둔 학습사회이다. 이는 교육과정에서 강조되어야 할 세 가지 요소로서 정보를 수집하여 선택·정리·관리 및 이용에 대한 학습을 제공해야 한다.
즉 학습자는 독립적 위치에서 자기결정력을 행사하는 것을 의미하며 UNESCO 21세기 교육위원회 보고서에서는 교육은 각 개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문제를 풀고, 스스로 결정하며, 자신의 책임을 모두 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의 주된 원동력 중의 하나는 사회적·경제적 혁신이며, 이를 위해서는 의심할 바 없이 상상력과 창의력이 질이 특별히 강조되어야 한다. 그런데 상상력과 창의력은 인간 자유의 가장 명확한 표현이라고 할 수도 있으나, 개인의 행동들을 일정한 기준으로 표준화하려는 관점을 비추어보면 위험스러운 것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어린이와 젊은이들에게는 미학·예술·스포츠·과학·문화·사회 모든 분야에서 발견과 실험의 모든 기회가 주어져야 하며, 그들의 당대와 전 세대들이 창조한 것들을 만날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학교에서의 시문학 교육은 최근 문화적인 측면보다는 실용적인 측면이 더 강조되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다른 나라들을 이해하는 방법으로서 매우 유효 적절하고 학습자 개개인에게는 상상력과 창의력을 길러주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존재하기 위한 학습은 교육 발전의 목표를 인격의 완성에 둔다. 즉 교육은 학습지를 개인으로서, 가족과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시민으로서, 생산자로서, 기술 발명자로서, 또 창의적인 상상가로서 자신의 표현기술 및 다양한 임무를 모두 풍요롭게 하는 것이다.
개인의 성장은 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되고 살면서 계속되는 것이며, 스스로 깨달으면서 시작하고 그리고는 남들과의 관계로 확장하는 변증법적 과정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교육은 무엇보다도 인격의 지속적인 성숙을 겨냥해 나가는 내적인 여행이라 할 수 있다. 성공적인 생업을 준비하는 수단으로서의 교육은, 따라서 매우 개인적인 과정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상호작용을 구성해 나가는 과정이다.
[출처] 교육의 네기둥이론과 그 시사점|작성자 yejehaksa
국제기구에서의 평생교육 정책동향
평생교육 정책은 시대와 상황의 요구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되고 평생교육 개념에 기초하여 달라지고 있다. 자아실현과 사회적 적응을 강조하던 인문교양 중심으로의 평생교육 개념이 직업교육과 평생고용 가능성 증진을 위한 평생교육 정책을 중심으로 다양하게 제시되어 실행되고 있다. 특히, OECD 국가를 중심으로 많은 나라들이 평생교육을 교육개혁 또는 국가 인적자원개발 전략의 중심에 두면서 모든 사람을 위한 평생교육 체제 구축, 이라는 정책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또한 교육의 공급자 중심의 평생교육 개념이 교육의 수요자 중심의 평생학습 패러다임으로 전환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평생교육정책은 수요자 중심의 정책보다는 공급자 중심의 평생교육정책이 주를 이우고 있다. 본 장에서는 평생교육을 이끌어온 대표적 국제기구인 UNESCO, OECD, EU 의 평생교육을 살펴보고자 한다.
가. UNESCO 의 평생교육 정책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평생교육이라는 용어는 UNESCO 가 가장 먼저 사용한 개념이다. UNESCO에서 1960년대말 요람에서 무덤까지 생애에 걸친 평생교육의 필요를 강조하는 이념을 처음으로 제시하였다.
UNESCO 는 1949년 덴마크 엘시노어(Elsinore) 에서의 제1차 세계성인 교육회의 (UNESCO 는 ,1949) 를 시작으로 1997년 독일 함부르크 제5차 세계성인교육회의 (UNESCO, 1997) 에 이르기까지 5차례에 걸친 국제회의를 개최하여 평생교육의 이념을 정립하고 실천사례를 보급하였다. 초기에는 성인교양교육, 성인기초교육 및 문해교육 중심의 정책을 다루었으나, 이후 성인 계속교육에 중점을 두고 있다
참고문헌 : 변종임 외8인 (2006) 각국의 평생교육 정책
책선정이유: 과제 유네스코 네기둥 을 찾기 위하여 책을 선정하였으나 내용이 없어서 몇자 공부 하였습니다 . 유네스코 네기둥 관련 내용은 도서관에서 찾기가 힘들고 책을 구하지 못 하였습니다.
느낀점
처음 대학문을 넘어서 강의실 에서 만난 교수님은 너무나 차갑게만 느껴지고 나는 죄를 죄은 사람처럼 교수님에 강의를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이 희미하고 그러던 교수님은 이재는 저녁상을 가져오시는 어머니의 밥상과 가치 따뜻하게만 느껴집니다. 우리들의 잘못을 강의 중에도 하나하나 꼭꼭 찝어 말씀하시며 수업하시는 모습은 우리들의 어머니 입니다.
지금은 우리들이 듣기엔 교수님 말씀이 쓰기만 하지만 언잰가는 골마 터진 우리의 마음을 고쳐주는 치료제로 쓰여질 겁니다. 저는 잊지 못할 교수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항상 하품 할 때면 입을 가리고 하라는 교수님 말씀이 생각납니다. 오늘도 차안에서 하품을 하며 교수님을 생각합니다. 하루에도 교수님 말씀 생각을 안 해본 날이 업습니다.
자상하기만 하시던 교수님 헤어짐을 생각을 하니 서운한맘입니다. 만남은 헤어짐의 약속이고 헤어짐은 또 만남을 약속하는 것이라 생각 합니다. 언잰가 또 만나겠지요. 이재는 헤어지지만 다음에 교수님 뵐때면 져도 많이 성숙하였겠지요. 요새는 제가 많이 성숙함을 느낌니다. 평생교육론 육혜숙 교수님 감사합니다. 교수님은혜 어디 가서나 잊지 못할 겁니다.
또 만나기 위한 약속을 하며 안녕히 계세요 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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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봤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항상 존경스럽습니다. 열심히 하시는 모습이 굉장히 보기 좋네요^@^.
정말 볼때 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정말 대단하신거 같아요~~^-^
강선생님~~
너무나 많은 발전과 열심히 하시는 열정 본받고 싶습니다.
어린 학생들과 같이 열심히 공부하시고 점점 더 많은 발전을 이루어 내시니 참 감사합니다.
강선생님과의 만남을 기뻐합니다.
또다시 삶의 여러곳에서 기쁨으로 다시 만나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저도 공부많이 하여 교수님과 같은 지도자로 우뚝서고 싶습니다.
존경합니다. 제겐 교수님 강의를 들은것이 행운이 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