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즐거움은 사실 여행을 준비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 때다. 내가 전에 가 보았던 아니던, 가려는 고장을 공부하고, 그 고장을 머리에 떠 올리며 상상을 할 때에, 여행은 이미 시작된 것이고 마음은 풍선처럼 들뜨고 설레인다. 설레임이 사라진 삶은 황량하다. 뭔가를 기대하고 희망을 마음에 둘 때에, 삶은 살아보고 싶은 의욕이 절로 난다.
이제 나와 내 아내의 길지 않은 고국에서의, 아니 제주가 아닌 육지에서의 여행도 거의 끝으로 가고있다. 만종역에서는 누군가가 우리를 기다린다. 외지의 여행에서 여행자를 반기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여행은 경관을 보려고만 가는 것은 아니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 내겐 더 중요하다. 한 사람의 삶에서, 사람이 사람을 만나지 않고는 될 일이 과연 무언가? 아는 지인을 만나는 일만 생각할 일이 아니다. 길 위에서 만나게 되는 모든 작은 인연을 모두 소중하게 여긴다. 여행길에서 만나는 전혀 모르는 타인으로 부터 받는 친절은 최고의 선물이 된다.
이번에는 아르미테스님이 우리를 불러 주었다. 무조건 내가 남을 방문하겠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니, 그냥 슬쩍 내 여행의 일정을 공개해, 누군가가 불러주기를 은근히 기대하는 중에 아르테미스님의 제의를 받고 못이기는척 수락을 했다. 어쨌든 우리는 이름도 생소한 '만종'이라는 역에 내렸다. 원주라는 곳을 가려면 여기에서 내려야 한다는 정도의 지식 밖에는 없으니 말이다. 만종이라는 이름은 친근함이 있다. 밀레의 만종이라는 유명한 그림에서의 은은하고 경건한 이미지가 생각이 나서였을까?
접선의 코드명은 '베라크루즈'였다. 몇 년 전에 원주의 치악산 기슭에서의 모임이 있었을 때에, 아르테미스님을 만난 적이 있긴 하지만, 짦은 만남에 얼굴을 기억하기는 무리다. 그래서인지 전화를 받았는데, 베라크루즈를 찾으면 된다고 했다. 자동차의 품명이 그렇다는 것이다. 사실 만종이라는 시골역에서 누구를 만나기는 아주 쉽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만종역에서 내리겠는가? 수 년 전에 우리 카페에서 사랑의 추억을 주고 떠나신 로렌스님을 만나기 위해 콜로라도의 La Junta라는 작은 역에 내렸을 때를 떠올린다. 이 작은 시골역에서 한 아시안 부부가 거기서 기다리는 한 아시안 남자를 만나는 것은 눈을 감고도 할 수 있는 일임을 기억한다. 물론 만종은 그런 작은 시골역은 아니다. 만종역은 불과 2년 전인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 맞춰 개통한 KTX 걍경선의 역사로, 새로지은 현대식 건물이니 말이다.
열차에서 내려 역사를 빠져나가니 그 베라크루즈가 보였다. 무엇이든 작은 것이 아름다운 것이다. 사람을 편하게 하는 그런 작은 것들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다. 작고 느린 것과 인간의 행복은 정비례의 함수관계를 가진다. 이내 아르테미스님과 재회의 인사를 나눈다. 그 분도 또 다른 집이 있는 경기도의 용인에서 막 오는 길이라며 반갑게 우리를 맞는다. 길 위의 인생에서 만난 모든 이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그 만남이 일회성이든 아니든 그건 상관없다. 이렇게 만나면 즐겁고 행복하다.
차를 타고 한 30여분을 가니 아르테미스님의 동네로 들어간다. 큰 길에서는 꽤 한참을 간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전원주택 이다. 강원도는 내게 친근한 곳이다. 내 아내의 부모인, 나의 장인과 장모님이 모두 강원도 출생이다. 장모님은 춘천이고, 장인어른은 지금은 북녁의 땅인 평강이다. 그래서인지 나도 강원도에 남다른 애정이 있다. 연애를 할 때에, 춘천을 무시로 들락거렸다. 장모님의 고향인 이 춘천에는 아내의 외가집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골의 풍경은 크게 변한 것은 없다. 삶에 도움 또는 부담이 되는 도시적인 문명의 이기들이 더 해졌다는 것 외엔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더운 날이었다. 거실의 창문을 열어제쳐 자연의 바람을 집안으로 들인다. 소파에 앉아 두런두런 삶에서의 소소한 이야기를 나눈다. 손주 대신 집안에서 기르는 작은 개가 행복해 한다. 용인에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 답답한 차 안에서 있었기에 집에 온 것이 너무 좋은 모양이다. 이렇게 모르는 인연과 만나 차를 마시고 또 식사를 하고, 함께 대화를 나누며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는 그런 과정을 나는 좋아한다. 물론 모두가 나와 같은 것은 아니다. 내 아내만 해도 나와는 아주 다르다.
아르테미스님은 이곳 대학에서 가르치게 된 까닭으로 이곳 원주에 집이 있고 용인에도 집이 있어, 주중에는 원주에 주말에는 용인에서 지낸다고 한다. 직장에 의해서 자기가 사는 곳이 정해지는 경우는 흔히있는 일이다. 어디에 산다는 것이 몹시 중요한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누구와 어떻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한 그런 때가 되어서인지 사람이 살만한 웬만한 곳이면 다 괜찮다는 생각을 가진다. 제주에 처음 올 때인 2012년에만 해도 제주에 꼭 살아야한다고 생각했다. 제주에 대한 애정이 식은 것은 전혀 아니지만, 이제는 한 때의 그런 내 고집이 우스꽝스럽다.
우리 셋은 인근의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일요일의 저녁시간이라 제법 식당은 붐볐다. 추천을 받은 버섯 돌솥밥을 시켰다. 정갈한 나물 반찬과 함께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여기서 내가 가야할 곳은 양양의 처남집이다. 시간의 제약이 있는 터라, 식당 인근의 카페에 가는 것은 생략이 되었다. 산 중에 해는 일찍 진다. 21세기 대명천지에 해가 진다고 대수는 아니다. 그러나 아마도 옛적에는 이 첩첩 산중 강원도 산골에서 해가 진 후에는 삶에 많은 제약이 있었으리라. 그런데, 나는 KTX라는 문명의 최첨단 이기에 몸을 실으니 이런 자연의 제약과는 거의 무관한 삶을 살고있다.
짧지만 인상적인 그리고 고마운 만남이었다. 헤어지는 인사의 덕담을 서로에게 건네고 다시 경강선 KTX에 몸을 맡겨 40여분 만에 강릉에 도착하니 저녁 7시가 되었다. 역전에서 택시를 타고 강릉시외버스터미널 로 향한다. 여기에 오니 양양으로 가는 버스편은 단 두편이 남았다. 마지막 편의 바로 전인 밤 8시 30분에 출발하는 양양행 버스에 몸을 싣는다. 여행에서의 서두름과 기다림은 필수인 동시에 연속적이다. 이 둘의 완급을 잘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여행자, 아니 인생이라는 여행에서의 행복의 관건이 된다. 늦은 밤에 칠흑 속을 달리는 버스는 인생의 무게를 제대로 느끼게 한다. 여행에서의 피곤함이 있음에도, 잠은 계속 이어지지 않고 자다 깸을 반복한다.
한 시간 후인 밤 9시 반에 양양시외버스터미널 에 도착했다. 처남 부부가 차를 가지고 와서 우리를 맞는다. 피로에 쩔었지만 환한 표정으로 그들을 반긴다. 그래도 못다한 말들이 차안에서 오간다. 피로가 엄습해 온다. 오늘 밤에는 오랫만에 잠을 실컷 푹 자야겠다는 자기와의 약속을 저마다 한다. 잠에서 깨어나면 그동안 밀린 빨래를 해야겠다는 불필요한 생각까지 미리한다. 걱정도 팔자라는 말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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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여행기 (3)번을 보시면 제가 왜 사진을 올리지 않는지를 썼습니다.^^ 아무튼 읽어주셔서 고맙고요...
ㅎㅎ 무엇인가 댓글을 달고 싶은데
언어의 능력이 모자라서 "추천합니다"로 대신 합니다 ^^
여행이야기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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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시 수정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아톰님과 함께 전국을 누비고 또 회원들을 만나고 있는 느낌입니다.
아톰님의 내륙여행기 즐감하고 있습니다. 제주 여행기도 곧 나오겠지요?
https://www.youtube.com/watch?v=eZFh8erJbuk
왠지 자꾸 쓸쓸해요. 한국여행길에 함께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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