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술 답사기] ⑩ 부자진
농민신문 2021-04-28
‘솔솔’ 허브향 ‘살살’ 목넘김 ‘술술’ 나오는 그의 ‘진’면목
지난해 4월 국내 최초 수제 진 제품 출시
아버지와 아들 함께 만들어 ‘父子진’ 명명 직접 기른 유기농 허브 등 100% 국산재료
대한민국 주류대상 수상 쾌거…인정 받아 6월 오크통 숙성한 신제품 내놓을 예정
“마티니, 당연히 보드카 말고 진으로. 베르무트 병을 바라보며 10초간 저어줘요.”
우리나라에서 600만여명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 <킹스맨>의 한 대사다. 이 대사는 전세계적으로 마티니 열풍을 불러일으킨 007 시리즈의 “보드카 마티니. 젓지 말고”라는 명대사를 패러디한 것이다. 많은 사람이 사랑하는 칵테일 마티니는 진을 베이스로 한 술이다. 진은 알코올에 주니퍼베리(노간주나무 열매)로 향기를 내는 투명한 증류주로 원래는 네덜란드에서 해열제용으로 개발했으나 와인값이 부담스러웠던 서민이 한둘 마시기 시작하면서 네덜란드 국민 술로 부상했다.
경기 양평에서 ‘부자진’을 만드는 조부연(왼쪽)·조동일 부자가 술의 주재료인 주니퍼베리 묘목밭을 돌보고 있다.
우리 술이라기엔 생소한 진이 국내시장에서 차츰 영역을 넓히고 있다. 국내 진시장을 선도하는 양조장 중 하나가 바로 ‘부자진’이다. 이름의 ‘부자’는 갑부를 뜻하는 말이 아니다. 아버지 부(父), 아들 자(子). 말 그대로 아버지 조부연씨(69)와 아들 조동일씨(40)가 함께 만든 술이다.
<부자진>에 들어가는 모든 재료는 100% 국산이다. 주재료는 아버지 조씨가 20년간 운영 중인 유기농 허브농장에서 재배하는 양평산 허브다. 아들인 조동일 부자진 대표가 처음 진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건 오랜 외국 생활 중 한국에 잠깐 들어와 아버지의 농장일을 도우면서였다.
“우연치 않게 아버지의 허브농장 창고에 말린 허브를 정리하러 들어갔어요. 창고에 들어선 순간 향긋한 허브 향기가 밀려왔죠. 아버지가 키운 다채로운 향기를 가진 허브로 뭐든 만들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평소 진을 즐겨 마셨고, 그러다 허브를 넣은 진을 만들게 됐죠.”
조 대표는 영국과 싱가포르에서 잘나가던 뱅커 생활을 완전히 정리하고 2년 반의 노력 끝에 지난해 4월 국내 최초 크래프트 진(개인 또는 소규모 양조장에서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수제 진)인 44도 <부자진>을 출시했다. 진은 외국에서 유래한 술이지만, 가장 한국적인 진 생산에 주력했다. <부자진>은 증류주에 국내에서 생산한 주니퍼베리를 첨가하고, 12종류의 유기농 허브, 캐모마일, 제주산 유기농 한라봉, 솔잎 등의 재료를 더한다. 외국산 진과 달리 목 넘김이 깔끔하고 향이 풍부한 게 강점이다.
“제가 머릿속으로 맛을 그리면, 허브 박사인 아버지가 그 맛과 향이 나는 허브를 척척 갖다주세요. 아버지의 농장에서 자라는 허브만 50여종이 넘죠. 제가 원하는 술을 만들 수 있었던 건 모두 아버지 덕이에요.”
부자의 맛은 시장에서도 먹혔다. ‘2021 대한민국 주류대상’에서 스피릿 진 부문 대상을 받은 것. 조 대표는 아버지 응원에 힘입어 44도 <오미자진>과 44도 <개똥쑥진>을 연이어 출시했다. 특히 <개똥쑥진>은 아버지에게 헌정하는 술이다. 유난히 개똥쑥향을 좋아하는 아버지 입맛에 딱 맞는 술을 만든 것이다. 은은한 개똥쑥향이 나고 매콤하면서도 청량감이 있다.
<부자진>을 더 맛있게 마시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조 대표는 <부자진>은 특유의 풍부함 때문에 얼음을 넣지 않은 원액 그대로인 ‘니트(Neat)’나 얼음을 넣은 ‘온더록스(On the Rocks)’ 모두 잘 어울린다고 조언했다. 더운 날엔 얼음에 <부자진>과 토닉워터를 1대 1 비율로 탄 진토닉도 시원해서 좋다. 5성급 호텔인 그랜드하얏트서울에선 <부자진>을 베이스로 한 <부자진토닉>과 <부자마티니> 등을 판매 중이다.
“진은 그냥 마셔도 좋지만 칵테일 베이스로도 훌륭한 술이에요. 올 6월엔 오크통에 숙성한 신제품을 출시할 예정이고, 또 바텐더들이 칵테일 베이스로 쓰기 좋은 56도 진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조 대표는 앞으로 수출에도 힘쓸 예정이다. 현재 호주·싱가포르에 소량 수출했으며, 외국시장을 겨냥해 활발한 마케팅을 벌일 예정이다.
“애초에 <부자진>을 만들 때 수출을 염두에 뒀어요. 술 포장지에 이름과 설명을 영어와 중국어로 표기한 것도 그 때문이죠. 스코틀랜드의 <헨드릭스 진>이 유명해진 것처럼 한국의 <부자진>도 언젠간 전세계인이 마시는 술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부자진> <오미자진> <개똥쑥진>은 375㎖ 4만4000원, 525㎖ 5만6000원이다. 구입을 원한다면 ‘부자진’ 누리집(bujagin.com)에서 주문하면 된다.
양평=박준하 기자 june@nongmin.com
‘부자진’으로 진토닉 만드는 법
1. ‘부자진’ 40∼50㎖를 준비한 잔에 넣는다.
2. 얼음을 넣어 술을 차갑게 만든다.
3. 토닉워터나 탄산수를 40∼50㎖ 붓는다.
4. 취향에 따라 민트, 레몬, 말린 과일을 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