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이 되었다. 우리는 3월의 첫 날, 안산산성에서 산성제(山城祭)를 지냈다. 금년 제사에는 시기가 시기인지라 선거도 없고, 나라는 혼란스러워 산성에 오르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전에는 구청장도 오셔서 제관을 하고, 구의원 등 선거 출마자들이 법석댔는데, 나라의 중심이 흔들린 탓인지 모르겠다. 유성문화원에서는 그래도 정성껏 제수(祭需)를 마련하여 제단에 차리고, 문화원장을 비롯한 유성구 의원 몇 분과 노은2동 동장 등 지역 유지들이 제관(祭官)으로 참여하였다. 우리 해설사회에서는 회장님이 홀기를 마련하여 사회보고, 축문은 제가 써서 읽었는데 한문으로 된 축문은 듣는 사람들이 모르므로, 우리 말로 다듬어 산성의 의미를 부여하고 현실에 맞게 풀어 썼다. 동순 선생은 제관에게 제주(祭酒)를 따라주는 역할을 하시고, 다른 여선생님들도 함께 협조하여 제사를 잘 마치도록 하였다. 지난 해보다는 참석자가 적어 조금 안타까운 느낌도 있었지만, 차라리 산성제의 의미를 알고, 자발적으로 참여한 사람들에 의해 지내는 것이 훨씬 더 보람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행사는 풍물단의 흥겨운 가락에 분위기가 살고, 제관들이 모두 유복(儒服)을 입고, 제사를 지내니 보기 좋았다. 끝나고는 모두 함께 떡을 나눠먹고, 금년도 우리 유성구 구민의 안녕과 건강을 빌며, 덕담을 나눴다. 하산해서는 근처 큰 식당에서 점심을 함께 했는데, 마침 이 곳 유성구의 국회의원인 이상민의원이 와서 인사했다.
대전일보에 다음 날 아침 신문기사가 나서, 산성제를 지내는 사진까지 실렸다. 여기서 생각나는 한가지!
대전은 산성의 도시라고들 얘기한다. 대전에는 백제시대 이후 무려 48개의 산성이 있다고 하는데, 아마 이렇게 산성제를 지내는 산성은 이 곳, 안산산성 한 곳 뿐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산성제의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는데, 어찌하여 갈수록 산성제에 대한 행정관청의 관심도는 떨어지고, 관련 예산도 삭감되는 것인지...... 조금은 걱정스럽기도 하다. 이러다가 아예 산성은 갈수록 황폐화되고, 산성제도 언젠가는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도 있다.
무릇 역사를 아는 백성이라야 나라가 살고, 그 나라가 영원하다는 얘기가 있다. 산성은 우리의 역사 속에서 선조들이 쌓은 역사의 현장이다. 그리고 지금 이 나라가 존재하는 근본도 결국은 그런 역사가 쌓여 오늘에 이른 것이 아닐까.
산성에 올라 주변의 성벽을 둘러보면, 느끼는 감정이 많다. 오랜 옛날, 선조들이 힘들여 이 산성의 돌들을 하나씩 쌓아 올릴 때, 무슨 생각을 하며, 얼마나 절실했을까? 그리고 천여 년이 지난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바야흐로 현 시국은 대통령 탄핵이라는 미증유의 사태를 맞고 있다. 부디 안산산성제만이라도 잘 보존되고, 대전의 산성들에 사람들이 찾아와 그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역사의 유적으로 남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