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노트] 뿌리내리는 클럽시스템, 그 현주소는? |
[ 2010-05-1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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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시스템은 축구 저변 확대 차원에서 환영받고 있다 ⓒ손춘근 |
한국축구에 변혁의 바람이 불고 있다. 그 동안 한국축구를 주도하던 학원축구 사이로 축구클럽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 것이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흥미위주로 축구를 배우는 축구클럽은 성적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학원축구의 대안이 되기에 충분해 보인다. 또한 창의력 넘치는, 공부하는 축구선수 양성이라는 시대적 요구에도 부합해 여기저기서 칭찬이 들려온다.
사회가 축구클럽을 반기다 보니 요즘에는 여기저기서 수 많은 축구클럽이 생겨나고 있다. 현재 초중고리그에 참가하고 있는 축구클럽만 해도 무려 97개로 전체의 16%나 된다. 축구클럽의 숫자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 더 많은 수로 늘어날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앞으로 한국 축구의 기본 토양이 될 축구클럽은 현재 어떤 상태에 있을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어버이날인 지난 8일 ‘2010 동원컵 초등리그’ 경기가 한창인 대전 한밭여자중학교(이하 한밭여중)를 찾았다. 이날 한밭여중에는 대전지역에 참가하고 있는 5개의 축구클럽이 모두 경기를 가졌고, 그 중 하은철 감독과 강정훈 감독, 그리고 정림초교의 김만기 감독을 각각 만나 클럽시스템의 현주소를 물었다.
아직 실력은 한 수 아래, 그러나 가능성이 보인다
이날 열린 5경기 중 축구클럽과 학원축구의 대결은 총 세 차례. 전적은 2승 1패로 학원축구의 승리였다. 대전지역 10위를 달리고 있는 ‘플레이 앤 스포츠’가 11위의 판암초교(9패)에 승리한 것을 제외하면 다른 두 팀은 모두 패한 것. 특히 리그 5위의 ‘대전시티즌 유소년 클럽’은 현격한 실력차를 보이며 정림초(3위)에 1-3으로 완패했다. 이날 강정훈 축구클럽(9위) 역시 변동초교(8위)에 0-1로 패했다.
“향후 2~3년 안에는 학교축구에 뒤지지 않을 것 같아요. 초등부 같은 경우는 성장세가 조금 빠른데, 지금도 클럽팀이 학교축구에 쉽게 지지는 않거든요. 학교팀 중에 잘하는 팀이 있지만 그 외의 팀에는 절대 뒤지지 않아요.” – 강정훈 감독
“아무래도 훈련량이 학교팀보다 적은 게 이유가 되겠죠. 클럽 아이들은 공부를 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지금 클럽팀들이 생각보다 잘하고 있어요. 저희가 어렸을 때부터 대회를 나가봐서 아는데 내년 쯤이면 좋은 팀들이 많이 나올 거에요.” – 하은철 감독
‘하은철 축구교실’을 6년째 운영중인 하은철 감독은 클럽축구가 아직은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단계이기 때문에 학교팀에는 실력이 뒤질 수 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아무래도 창단한지 얼마 되지 않다 보니 선수 수급이라든지 훈련시간, 장소 등이 온전치 않기 때문이다.
특히 선수수급 문제는 현재 대부분의 축구클럽이 갖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하은철 축구교실의 경우는 6학년 선수가 없어 5학년 선수들이 주축이 돼 경기를 뛰고 있다. 심지어 4학년 선수도 경기에 나서야 하기 때문에 상대팀에 6학년 선수가 있다면 아무래도 주력이나 높이, 힘에서 밀릴 수 밖에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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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훈 축구교실을 운영중인 강정훈 감독 ⓒ손춘근 |
또한 축구클럽이 학원의 개념이다 보니 경기를 위해 선수들을 강제로 소집할 수 없다는 점도 성적 저하의 원인이다. 실제로 이날 하은철 축구교실의 주전 공격수는 여행을 떠났고, 강정훈 축구교실의 몇몇 선수들은 어버이날 행사로 리그에 불참했다. 안 그래도 신체적으로 불리한 상황인데 베스트 전력마저 구축하지 못하는 셈이다. 상황이 이러니 성적이 좋을 리 만무하다.
“아직 학교축구에는 근성면에서 떨어져요. 기술은 뒤지지 않기 때문에 근성만 보완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학교축구처럼 규율이 강하지 않다보니 정신적인 면에서 반드시 이겨야 된다는 생각이 없는 것 같아요.” – 강정훈 감독
“클럽축구와 학원축구의 가장 큰 차이가 그것이죠. 아이들이 아프거나 시험이 있으면 경기에 안 나오거든요. 학원축구에서는 말이 안 되는 경우잖아요. 지금 시합을 하고 있는데 해외여행을 가고 그럴 수 있겠어요?” – 하은철 감독
그러나 이렇게 자율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축구클럽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5학년이 주축인 하은철 축구교실은 대전지역 11개 팀 중 4위를 달리고 있다. 이들이 6학년이 되는 내년에는 분명 대전지역의 강력한 우승후보로 떠오를 것이 분명하다. 하은철 감독은 “내년에는 성적에 욕심을 낼 것”이라며 만만치 않은 전력을 기대케 했다.
클럽축구에 있어 성적이란?
흔히들 축구클럽은 성적에서 자유롭다고 말한다. 아무래도 학교의 명예를 걸고 대회에 임하는 것보다는 성적에 연연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경쟁을 통한 승리의 쟁취는 축구의 가장 고귀한 요소. 승리를 향한 열정이 있어야 그를 이루기 위한 노력도 수반되기 마련이다. 여기에는 축구클럽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 없다.
“자율적인 축구를 하면서 성적까지 내면 더 좋은 것이죠. 앞으로는 성적까지 올리고 싶어요. 축구클럽에게 성적은 우리가 원하는 플레이를 펼치는 것이에요. 경기를 져도 아이들이 하고자 하는 것을 보여준다면 그것처럼 만족스러운 것이 없어요. 우승을 하는 것도 좋겠지만 아이들 스스로 만족하고 창의적으로 하게끔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강정훈 감독
현재 축구클럽이 성적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대등하지 않은 상대와 경기를 펼친다는 것이 전제되기 때문이다. 축구클럽들이 신생팀이다 보니 이미 자리잡고 있던 학원팀을 상대로 당연히 진다는 의식이 만연하고, 그로 인해 ‘져도 좋다. 즐겁기만 하다면’이라는 너그러움이 발휘된다. 그러나 만약 많은 축구클럽이 생기고, 학원팀과 대등한 상태에서 경기에 패하더라도 이런 너그러움이 유지될까? 정림초교의 김만기 감독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어차피 축구클럽도 좋은 선수를 데리고 오기 위해서는 성적을 내야 되요. 클럽을 유지하려면 유지비가 필요한데, 유지비는 아이들에게서 나오는 것이잖아요. 결국은 클럽끼리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경쟁을 해야 되요. 성적을 내야 되는 것이죠.” – 김만기 감독
현재는 축구클럽이 자리를 잡는 단계다 보니 아직은 서로간의 경쟁이 없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후, 많은 수의 축구클럽들이 생기고 서로 경쟁을 해야 한다면 결국 성적을 내야 한다는 것이 김만기 감독의 말이다. 결국 강압적인 훈련은 없지만 축구클럽 역시 성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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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학년이 주축인 하은철 축구교실은 내년을 준비하고 있다 ⓒ손춘근 |
클럽축구의 부작용, 경기력 및 학원팀과의 관계 개선에도 신경 써야
축구클럽의 가장 큰 장점은 단연 ‘자율적인 분위기’다. 어린 선수들은 자율적인 분위기 속에서 축구를 즐기고, 그 속에서 창의력을 배양시킨다. 한국축구의 단점으로 창의성 부족이 항상 지적돼 왔기에 즐기는 축구를 표방하는 축구클럽은 환영의 대상이다.
그러나 축구는 단체운동이기 때문에 개개인의 자율에 모든 것을 맡기기에는 어려운 부분도 존재한다.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한참 긴장과 각오를 다지고 있는데, 동료 한 명이 축구화를 안 가져오는 등의 작은 실수로 팀 전체의 정신력이 무너지는 것이 축구다. 그만큼 팀원 각자의 책임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축구클럽의 경우에는 리그를 치르는 중에도 시험 기간에는 공부를 하느라 연습에 못 나오는 선수들이 발생하기 일수고, 연습을 같이 하더라도 개인적인 사정으로 경기에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그러다 보니 팀원들간의 조직력을 발전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 이 경우에는 자율적인 분위기가 오히려 경기력에 지장을 주는 셈이다.
“축구클럽에서는 아이들의 공부가 우선이기 때문에 주말에 경기를 하더라도 못 오는 아이들이 생겨요. 시험 공부할 때도 참석하지 못하고요. 그런데 학교축구는 그런 것이 없잖아요. 이런 것들이 축구클럽을 운영하기 어려운 부분이죠.” – 강정훈 감독
“좋은 선수와 같이 운동을 하면 조직력이 좋아져서 개개인의 실력이 늘게 되요. 그런데 잘하는 선수들과 조금 못하는 선수들이 같이 뛰게 되면 잘하는 선수들은 못하는 선수들의 실력이 향상될 때까지 발전하지 못하는 것이죠.” – 김만기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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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림초에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김만기 감독 ⓒ손춘근 |
김만기 감독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축구클럽으로 인해 재능 있는 선수들이 한데 뭉치지 못하는 것을 우려했다. 뛰어난 선수들이 함께 모여서 훈련을 해야 실력이 느는데 축구클럽이 생겨나면서 그런 환경이 조성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한 좋은 선수를 향한 과도한 영입경쟁으로 지도자간에 보이지 않는 견제와 신경전도 존재한다며 아쉬워했다.
“학원팀과 클럽축구가 서로 경기를 하기 전에는 좋은 선수를 교류하고 그랬어요. 그런데 지금은 서로 성적을 내야 되니까 선수를 스카우트 하기가 너무 어려워요. 지도자간에도 그 전에는 분위기가 좋았는데, 지금은 자주 안 만나게 되고요.”
“우리는 클럽팀에 게임을 지면 팀이 와해가 돼요. 클럽팀에서 편하게 운동하면 되는데 뭐하러 학원팀에서 힘들게 운동하느냐는 말이 나오는 것이죠. 어차피 운동하는 시간은 비슷한데 말이죠. 학원팀의 장점도 있고요. 우리는 이기면 본전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지도자들은 클럽팀하고 경기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지도자들 사이에서는 내년부터는 학원팀은 학원팀끼리, 클럽팀은 클럽팀끼리 리그를 했으면 좋겠다는 말이 나와요.”
주변에서 축구클럽이 생긴다는 말이 종종 들려온다. 현재 분위기로 봐서는 앞으로도 수 많은 축구클럽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하은철 감독은 “갈수록 학원축구를 잠식할 것”이라며 클럽시스템의 미래를 내다봤다. 정림초의 김만기 감독 역시 클럽시스템의 성장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새로운 시스템의 도입에는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이다. 클럽시스템이 한국축구의 저변의 넓히는 계기로 받아들여지는 만큼 그로 인한 불만의 목소리와 조언에도 귀를 기울여야 더 큰 부작용을 방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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