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의미]
무대예술연구회(舞臺藝術硏究會)1921년-1921년 현철의
연예강습소(1920년 2월) 제1기생들 이경손(李慶孫), 김정원 (金正元)·유수준 (兪守濬)·김두현 (金斗鉉), 엄진영 (嚴進永)을 중심으로 조직된 무대예술연구회에서 서울 단성사에서 안톤 체홉 作 <곰>, <결혼신청>, 키쿠치 간 作<돌아온 아버지> 등을 시연하였으나 흥행 실패, 해산하였다. 하지만 1924년에 부산에 일본인이 세운 영화사인 조선키네마주식회사가 설립되자 무대예술연구회 단원들을 이끌고 연기진으로 입사하였다.
또한 역사적 기록을 살펴보면 앞에서 말한 단체와 연관성이 확인되지 않았지만 1943년 3월 허집(許執)이 무대예술연
구회(舞臺藝術硏究會)를 학술단체로 설립한다. 3대강련 즉, “역사의 바른 전진의 길을 밟아 가장 진보적인 예술적인 연극을 연구‧창조‧실천‧제공할 것” 이라는 취지로 설립 활동을 하였다.
[2022년 설립비젼]
무대예술연구회(舞臺藝術硏究會)는 선배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직장인들로 구성된 동호회로 연극 뿐만아니라 뮤지컬을 공연하고 단편 영화도 제작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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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대예술연구회(舞臺藝術硏究會)
현철(玄哲)의 예술학원이 해산되자 이때의 학생 중 이경손(李慶孫)‧김정원(金正元) 등이 1924년 4월 이상필(李相弼)‧이채전(李彩田)‧박승호(朴勝浩) 등의 배우를 모아 조직한 극단.
서울과 부산, 양산 등지를 순회하며 체호프의 「결혼신청」, 유고의 「희무정(噫無情)」, 톨스토이의 「부활」, 기쿠치 히로시(菊池寬)의 「돌아온 아버지」, 이기세(李基世)의 「희망의 눈물」, 김영보(金泳俌)의 「시인의 가정」 등을 공연하였다.
2) 무대예술연구회(舞臺藝術硏究會)
1946년 3월 무대예술연구를 위해 조직한 단체. “역사의 바른 전진의 길을 밟아 가장 진보적인 예술적인 연극을 연구‧창조‧실천‧제공할 것” 등의 3개항을 강령으로 허집(許執)을 위원장으로 하여 조직한 학술단체.
1946년 5월 춘계연극강좌를 개최하여, 이서향(李曙鄕)의 「연극개론」, 안영일(安英一)의 「연출론」, 서항석(徐恒錫)의 「극장론」, 유치진(柳致眞)의 「희곡론」 등 연극 전반에 걸친 20여 개 분야에 대하여 강의하였고, 7월에는 여자 소인극 강좌를 개최하였다. 8월에는 「해방 1주년기념 제1회 시연회」를 개최하여 예이츠의 「혁명에의 각성」 등의 작품을 발표하였고, 10월에는 제2회 추계연극강좌를 개최하여 송석하(宋錫夏)의 「조선연극사」, 서항석의 「세계연극사」, 유치진의 「애란극운동」, 그리고 이서향의 「근대극 강화(講話)」 등을 강의하였다.
이 밖에도 1947년 3‧1기념연극제에 혁명극장‧자유극장‧낙랑극회 등과 함께 함세덕 작, 이서향 연출의 「태백산맥」 공연에도 관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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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2)는. 네이버 검색
한국현대문학대사전 2004. 2. 25.
권영민교수님 글 발췌